82.
치우팀이 엘도라드와 정식으로 훈련을 받기 위해 자리를 옮기자 산에는 윤수호와 은지한, 그리고 두 명의 의동생들만 남았다.
“둘 다 이리 와.”
꿀꺽…….
윤수호가 손짓하자 두 사람은 마른침을 삼키며 윤수호의 앞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윤수호의 호출에 아무 생각 없이 이곳을 찾아오긴 했지만 설마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 못 했던 그들이었다.
‘단순히 구경하라고 부르신 건 아닐 테고…….’
이선호와 조춘영은 긴장된 마음으로 윤수호의 앞에 섰고 윤수호는 두 사람을 스윽 훑어보더니…….
“너희는 약하다.”
“…….”
뜬금없이 팩폭을 날렸다.
그러나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른 녀석이 똑같은 얘기를 했다면 말 대신 ‘죽빵’으로 예절을 가르쳤겠지만 상대는 윤수호다.
아마 공승환이 이 자리에 있었더라도 합죽이가 되었을 게 분명했다.
“아, 미안하다. 너무 두서가 없었군. 확실히 너희 둘은 자신의 자리에 맞는 실력을 갖추고 있지. 그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재능과 노력을 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것을 미리 밝히마.”
“신경 쓰지 마십쇼, 형님. 저희가 약하다는 건 사실 요즘 들어 더욱 더 뼈저리게 느끼고 있으니까요…….”
“동감입니다. 그나마 선호가 저보다 낫죠. 선호는 그래도 동료들과 함께 자신들만의 능력으로 웨이브를 막아 내지 않았습니까? 저 같은 경우는 형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아마 지금쯤 땅속에서 거름이나 되고 있었겠죠.”
한 사람은 그칠 줄 모르고 쏟아지던 웨이브의 절망을…… 다른 한 사람은 적의 손에 붙잡혀 목숨을 포기하던 절망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두 사람 다 내용은 다르지만 결과는 똑같은 절망밖에 없었다.
이전에는 나름 팀장으로서의 자긍심과 실력을 겸비했다 자부했는데…… 요즘 들어 그 모든 것이 송두리째 뿌리 뽑혀 나가는 기분이었다.
“나는 너희들이 좋다.”
“예?”
“갑자기 그게 무슨…… 아, 물론 저희도 형님이 좋죠. 그런데 갑자기 그런 말씀은 왜…….”
뜬금없는 윤수호의 고백에 이선호와 조춘영이 당황하자 윤수호는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부드럽게 미소를 그렸다.
“이 세상에 돌아와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 너희라 다행이었고, 너희가 내 동생이라는 사실이 무척 자랑스럽다.”
“형님…….”
이선호는 눈시울을 붉혔고 조춘영은 이미 코까지 훌쩍거리며 눈물을 닦았다.
윤수호는 시간이 지날수록 손에 닿지 않을 곳으로 높이 사라져 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알고 보니 윤수호는 여전히 자신들의 의형이었고 자신들은 그의 동생이었던 것이다.
“지금까지는 너희의 재능과 노력으로 너희 분수에 맞는 자리에서 훌륭하게 그 소임을 다 하고 있다 생각되어 따로 가르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윤수호는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세상은 지금부터 더욱 더 급변하고 위험해질 거다. 그런 세상을 헤쳐 나가기에 너희의 힘은 미약하기 그지없는 것도 사실이다.”
윤수호의 팩트에 두 사람은 진지한 얼굴로 윤수호의 말에 집중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이런 말을 꺼낼 사람이 아니란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너희는 내 가족이나 다름없다. 나는 가족들만큼 너희들도 무사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너희에게 두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윤수호는 검지를 펼치며 말을 이었다.
“하나는 지금 이 상태에서 내가 가르쳐 주는 무공을 익혀 더욱 더 크게 성장하는 것이다. 노력과 재능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기대하는 만큼의 노력만 따라 주더라도 최소 오버 알터는 되지 못할지언정 퍼펙트 오러는 가볍게 구사할 수 있는 수준은 될 거다. 특무대에서도 단숨에 최고 전력이 될 수 있겠지.”
“……!”
“그, 그게 정말입니까?”
이선호가 놀라 눈을 부릅떴고, 조춘영이 경악하여 다시금 되물었다. 윤수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검지에 이어 중지까지 펼쳤다.
“두 번째는 알터로서의 모든 능력을 포기하고 기초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윤수호의 두 번째 제안은 두 사람으로서도 상당히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대관절 알터로서의 모든 능력을 포기하라니…….
물론 윤수호가 그런 말을 꺼낸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 제시에서 너희에게 가르쳐 줄 무공은 축기와 운기가 전부 생략되고 활기만을 다룬 반쪽짜리 무공이다. 애초에 오러가 있으면 축기와 운기를 배울 필요가 없으니까. 오러의 활용법과 다르게 축기와 운기를 운용한다면 기존의 오러와 매우 큰 반발 작용을 불러일으키더군.”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윤수호는 대답대신 고갯짓으로 은지한을 가리켰고 두 사람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은지한이 어색하게 웃으며 뒷목을 긁적였다.
“괜히 궁금하답시고 도전하시는 건 추천해 드리지 않을게요, 진심으로.”
꿀꺽…….
그 어색한 웃음에서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위험을 감지한 두 사람이 마른침을 삼키며 윤수호에게 물었다.
“그럼 지한이도 첫 번째 방법으로 무공을 배운 겁니까?”
“그래, 다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실히 해 둘 필요가 있다. 냉정하고 잔인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지한이의 재능은 내 가족이라는 사실을 떠나 객관적으로 봐도 천부의 재능에 해당한다. 오히려 내가 가르쳐 줄 무공의 운기와 축기가 녀석이 가진 재능을 밑돌 정도지. 그래서 오러를 운용할 수 있는 활기와 초식만 가르쳐 주었다.”
이선호도 조춘영도 윤수호의 말을 어렵지 않게 인정할 수 있었다. 세상에 리퍼만 한 천부적 재능을 가진 괴물이 몇이나 될까?
아마 은지한이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고 나이와 경험을 더 쌓았다면 윤수호를 만나지 않았더라도 톱 텐에 버금가는 강자가 되었을 터였다.
물론 그렇게 된다면 대한민국 뒷세계에 끔찍한 절대자가 탄생했겠지만.
각설하고, 윤수호는 정확히 첫 번째 조건과 두 번째 조건의 장단점을 일러 주었다.
“첫 번째 조건은 단숨에, 그리고 빠르게 강해질 수 있지만 한계가 명확하다. 나는 그저 너희들이 가진 오러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셈이니까. 너희들의 오러는 평범한 알터보다 훨씬 뛰어나고 방대하다. 하지만 이후 오버 알터로 각성하지 못한다면 너희는 내가 생각하는 실력 이상을 뛰어넘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힘들겠지.”
윤수호는 두 사람의 표정을 살피면서 말을 이었다.
“두 번째 조건은 토대부터 쌓는 만큼 오히려 지금의 실력을 되찾는 것만 하더라도 긴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어쩌면 지금의 수준조차 되찾을 수 없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윤수호는 진심을 담아 얘기했다.
“경우에 따라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을 지는 나조차도 상상할 수 없다. 중요한 건, 두 번째 선택을 할 경우, 나는 너희들에게 너희에게 맞는 최상의 무공을 선택하여 가르칠 생각이다. 참고로 두 번째 선택을 할 경우, 너희들은 특무대에서 제대하여 내가 세울 문파에 편입될 예정이니까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하도록.”
“예? 특무대를 제대해야 한다고요?”
“특무대와 문파를 전혀 별개의 기관으로 두실 생각이십니까?
조춘영과 이선호가 놀라서 묻자 윤수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특무대가 알터를 대원으로 영입한다면 내가 세울 문파는 알터가 되지 못했을지언정, 재능과 뜻이 있는 기린아들을 받아들여 문원으로 육성할 생각이다. 너희들은 현재 특무대가 어떤 것 같나?”
“그게…….”
“…….”
두 사람은 신중하게 고민했다. 먼저 대답한 사람은 이선호였다.
“덩치가 너무 커져 버린 코끼리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덩치를 키울 필요는 반드시 있었습니다만…… 너무 갑작스러운 성장 탓에 고장 난 곳이 많은 것도 사실이죠.”
“선호 말이 맞습니다. 문제는 그걸 고칠 시간도, 돌아볼 여유도 없다는 게 아닐까요? 멈춰서는 순간 나라가 위험해지니까. 그래서 아프고 고장 나더라도 달리는 걸 멈출 수 없는…… 그런 코끼리라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의 의견에 윤수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인천을 지배하던 서의찬도 그런 악성 종양 중에 하나였지. 그 밖에도 무수한 종양들이 지금도 특무대 내부에서 자라고 있지만 그걸 돌볼 여유도, 치료할 시간도 마땅찮은 게 현실이다. 대안이 없기 때문이지.”
윤수호는 자신의 문파가 그 대안이 될 수 있기를 바랐다.
“교류하고, 견제하고, 협력한다.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가 하면, 필요할 때는 힘을 합치고, 서로의 상처를 과감하게 치료해 주기도 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성장시키는 조직. 내가 만들 문파는 그런 조직으로 키울 생각이다.”
“…….”
두 사람의 표정이 무거워지자 윤수호가 말했다.
“지금 당장 답을 할 필요는 없다. 어디까지나 선택은 너희 몫이니까.”
그 말에 이선호와 조춘영은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윤수호를 쳐다보며 그 즉시 확답했다.
“아뇨. 더 이상 생각할 건 없을 것 같습니다.”
“어, 너도? 우연이네. 사실 나도 그렇거든.”
이선호와 조춘영은 서로를 힐끔 쳐다보더니 씨익 웃으며 힘 있게 대답했다.
“문파에 들어가겠습니다. 부디 가르침을 부탁드리겠습니다. 형님!”
* * *
그날 저녁.
오랜만에 자주 가던 고깃집에서 모인 윤수호와 이선호, 조춘영 삼인방은 숯불에 구워져 가는 삼겹살을 중심에 두고 소주병을 기울였다.
“후회 안 하겠어? 특무대를 제대하는 것도 모자라 오러를 포기한다는 거 말이다.”
윤수호는 두 사람의 술잔을 채워 주며 물었다.
두 사람에게 있어 특무대가 어떤 직장인지, 그들이 맡은 바 임무를 어떤 심정으로 임하는지 모를 윤수호가 아니었다.
돈보다 자긍심과 명예, 그리고 조국을 위해서 목숨을 바쳤던 동생들이 스스로 특무대 전역을 선택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형님도 참 별 걱정을 다 하십니다. 그냥 자리만 옮겼을 뿐, 어차피 하는 일은 똑같을 텐데요, 뭐.”
“저야 뭐…… 월급만 따박따박 챙겨 주시면 불만은 없습니다. 으하하하!”
마음이 심란할 텐데도 되레 자신에게 신경을 써 주는 동생들의 모습이 기특하고 대견했던지 윤수호의 한쪽 입꼬리가 기분 좋게 올라갔다.
“그리고 문파를 택한 이유 중 하나는 저희들을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이선호는 투명한 술잔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특무대원 중에서 누구도 강해지는 것을 꿈꾸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특히 저나 춘영이 같은 현장직이라면 더 더욱 그런 열망이 크죠. 하지만 아무리 바라고 노력해도 자신의 한계에 부딪히는 순간…… 곧잘 좌절하고는 현실에 순응해 버립니다. 꿈은 결국 꿈이었다고…….”
“…….”
말 하지 않았지만 윤수호도 이선호의 기분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역시 무림을 떠돌면서 수없이 많은 좌절을 경험했고, 그때마다 더욱 더 강해지길 갈망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갈망이 어긋나 한 때, 혈귀(血鬼)라고 불리며 세상을 공포에 물들였던 적도 있었다. 그만큼 강함에 대한 무인의 열망은 다른 무엇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 그 꿈을 이룰 방법이 생겼습니다. 도전하지 않을 이유가 없죠. 춘영이 너는?”
“이하동문. 내가 멍청하고 단순하긴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세계 최강께서 직접 사사해 주시겠다는데 그걸 거절할 만큼 빡대가리는 아니거든. 이런 기회를 놓친다면 그건 세상 둘 도 없는 킹 오브 빡대가리일 거다.”
“오랜만에 의견이 맞네.”
두 녀석은 서로 가볍게 주먹을 부딪쳤다. 그 모습에 윤수호는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술잔을 높였다.
“그래, 어디 한 번 어디까지 강해지나 보자. 나도 궁금하네. 너희들이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지.”
짠.
세 사람의 술잔이 부딪히며 맑은 소리를 냈다.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