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문파를…… 만드신다고요?”
“그래, 이미 대통령님과 총사령관님의 허가는 받아 둔 상태다.”
조춘영이 놀라 어벙해진 얼굴로 윤수호를 쳐다보았다. 그건 이선호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치우팀과 은지한 역시 처음 들었다는 표정으로 놀라 윤수호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조춘영이 은지한에게 물었다.
“너도 몰랐어? 삼촌이 저런 결심을 했다는 거?”
“네, 저도 처음 듣는데…….”
“갑자기 마음을 바꾸신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형님? 형님께서는 본래 형님의 기술과 지식이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까 봐 공개를 꺼리셨잖습니까.”
이선호의 질문에 다른 사람들도 공감했다. 그러자 이선호가 자신의 추측을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혹시 이번에 발생한 던전 때문입니까?”
윤수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의 재앙종은 우리나라의 특무대만으로도 충분히 대응 가능한 수준이었다. 설령 피해가 막심할 것으로 추정되는 녀석들이 간혹 튀어나오더라도 내가 정리하면 그만이었지. 하지만 던전은 다르다.”
윤수호는 자리에 꿇어 안더니 나뭇가지를 들어 바닥에 그림을 그렸다.
그것은 자신이 들어갔던 균열을 대충 형상화한 낙서였다.
“우리가 ‘웨이브’로 지칭한 던전의 1차 재난부터 사실상 엄청난 인력과 피해가 요구되지. 사실상 던전으로 진입하지 않는 이상 웨이브는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던전에 진입하면 공략할 때까지 외부로 탈출하는 게 불가능하다. 즉, 외부에서 어떤 문제가 일어나도 지원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
“이번에야 운 좋게 던전이 하나만 나타나서 살았지만 만약 두 개 이상 나타났다면…….”
“우리나라는 끝장이었겠지.”
조춘영은 주먹을 틀어쥐며 이를 악물었다.
비단 조춘영뿐만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특무대 최정예 요원이라 불리는 치우팀 역시 좌절감을 느끼기는 마찬가지였다.
객관적으로 분석했을 때, 대한민국은 헌터 약소국이 맞았다.
인구수도 적고, 땅덩이도 작고, 인재풀도 좁았다.
말이 대한민국 최정예지, 치우팀 본인들도 자신들을 정말로 강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특무대와 정부에서 국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지어낸 말일 뿐.
오버 알터는 강한 존재지만 오버 알터만 되어도 한 나라의 최정예 부대에 입대할 조건을 만족하는 강대국은 없었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 독일, 영국, 프랑스, 심지어 옆 나라 일본만 해도 해당 국가 최정예 대원이 되려면 퍼펙트 오러를 구사할 수 있는 오버 알터 정도는 되어야 했다.
심지어 언급한 국가들은 모두 오버 알터조차 초월한 능력자…… 톱 텐을 보유한 국가들이었다.
살아 있는 핵병기, 걸어 다니는 항공모함 등으로 불리는 일인(一人) 국가 전력을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윤수호도 똑같이 느끼고 있던 바였다.
하지만 지금처럼 아슬아슬한 균형의 추가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지식과 무공은 오히려 우리나라에 독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섣부르게 큰 힘을 가지게 된다면 주변국들이 크게 경계하게 될 테니까.
하지만 던전의 발생으로 인해 이미 균형은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고 지금은 이것저것 따질 여유조차 없는 상황이라는 게 윤수호의 마음을 바꾼 것이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네? 무슨…….”
“정말로 우연하게 던전이 한 개만 발생했다고 생각하냐고.”
조춘영은 깊이 생각하더니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윤수호에게 되물었다.
“의도적일 수도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우리나라만 그랬다면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추산했을 때 한 국가당 평균적으로 던전 발생은 1회에 그쳤다더군. 이건 우연이 아니야. 누군가의 의도된 계획이지.”
“어째서일까요? 더 큰 혼란을 바랐다면 던전을 그만큼 많이 만들면 그만일 텐데…….”
공승환의 의문에 윤수호가 답했다.
“총사령관님께서는 이번 현상이 재앙종의 발생과 유사점이 많다고 하더군. 재앙종의 발생도 처음에는 드물었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증가하고 있다지?”
“그렇다는 건……!”
윤수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연은 한 번이면 족해. 같은 우연이 두 번 연속 일어났다는 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그랬다면 재앙종의 발생 확률이 증가하는 것도 설명이 가능하지.”
윤수호는 동그라미 속에 물음표를 그리며 말을 이었다.
“이 수수께끼의 존재는 우리에게 최소한의 적응 시간을 주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너무 강하면 즐길 사이도 없이 전멸해 버리고, 너무 약하면 재미가 없으니 조금씩 난이도를 높여 가면서. 물론 어디까지나 내 가정이긴 하지만.”
“이런 미친 정신병자 사이코패스가……!”
조춘영은 저도 모르게 하늘을 향해서 주먹감자를 먹이며 시원하게 욕을 쏟아 냈다.
윤수호의 말을 부정하기엔 지금 돌아가는 꼴의 앞뒤가 너무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옆에 있는 엘도라드는 던전을 창조했다는 존재와 계약까지 하지 않았는가?
“놈에게 있어 유희 끝에 인류가 멸망하든, 생존하든 그건 큰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니 우리 가족, 우리나라, 우리 세상은 우리가 지켜야지.”
“이 얘기를 왜 총사령부 긴급 소집 회의에서는 말씀하시지 않으셨는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공승환의 질문에 윤수호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매 맞은 아이들에게 똥물까지 끼얹을 순 없으니까요. 이미 충분히 절망적인 상황이라는 것을 그들도 잘 알겁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초래한 존재가 사실은 인류의 존망 따윈 관심 밖이고 자신의 유희에만 관심이 있다는 사실까지 밝힐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흐음…….”
공승환은 납득이 갔다. 어차피 진실을 안다고 하더라도 절망적인 상황이 바뀌는 것은 아닐 테니까.
“가장 큰 문제는 던전뿐만이 아니라는 겁니다. 던전이 추가됐다는 사실이죠.”
“그렇죠. 던전이 생겼다고 해서 재앙종의 출현이 멈춘 건 아니니까요.”
실제로 치우팀은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충청도에 나타난 6급 재앙종 세 마리를 처리하고 왔다. 이제 6급 이상이 무리지어 나타나는 건 그리 드문 일도 아닐 정도였다.
“현재 인류가 직시한 재앙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재앙종이고 둘째는 던전 그리고 셋째는 인류니까요.”
“인류가…… 재앙이라는 말씀이십니까?”
“그게 무슨…….”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하자 윤수호가 알려 주었다.
“아까도 설명했지만 현재 가장 큰 문제는 던전이 추가됐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비단 던전에서 출몰하는 웨이브와 보스 몬스터 때문만은 아닙니다. 정작 심각한 문제는 바로 이거죠.”
윤수호는 소지품 창을 호출하여 아이템 하나를 꺼냈다.
“검이네요?”
“검이네.”
“검이다.”
“검이 왜?”
겉보기에는 세련됐다는 점 이외에 특이점을 찾아볼 수 없는 검이었다. 윤수호는 그 검을 조춘영에게 던져 주었고 조춘영은 가볍게 받아 들었다.
“좋은 검이네요? 무게 중심도 잘 잡혀 있고 무엇보다 세련된 게 딱 내 스타일이네.”
“춘영아, 검을 쥔 상태에서 시동이라고 말해 봐.”
“예? 아, 네. 시동!”
갑작스러운 윤수호의 요구에 의아함이 들긴 했지만 조춘영은 군말없이 윤수호가 시키는 대로 트리거를 발동하였다.
그러자 모두의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일이 일어났다.
“우왁!”
“저, 저건……!”
“말도 안 돼…….”
“어떻게……?”
사람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지만 가장 놀란 사람은 당사자인 조춘영 본인이었다.
털썩…….
“흐익……!”
그는 다리에 힘이 풀려 엉덩방아를 찧는 와중에도 손에 든 검을 마치 갓난아기 다루듯 조심스럽게 다뤘다.
그도 그럴 것이 퍼펙트 오러가 피어 있는 검이 사람에게 스치기라도 하면 사지 따위는 종잇장처럼 댕겅 잘리기 때문이다.
그랬다.
지금 조춘영의 손에 들린 검에 맺혀 있는 순백의 청렴한 기운은 의심할 여지없는 퍼펙트 오러였다.
“너, 너 언제부터…….”
“나 아니야! 내가 한 거 아니라니까?”
“하기야…… 네가 오버 알터로 각성한 것도 모자라 퍼펙트 오러까지 쓸 수 있는데 조용히 입 다물고 있을 놈이 아니긴 하지. 그렇다는 건…….”
이선호는 윤수호를 쳐다보았고 윤수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건 검의 능력이다. 던전에서 획득한 아이템이 퍼펙트 오러를 발현한 거다. 두 눈으로 본 것처럼 사용자가 누구든 트리거만 시동하면 누구나 퍼펙트 오러가 맺힌 검을 다룰 수 있다. 심지어 검에 담긴 에너지가 모두 소모돼도 충전하면 다시 사용할 수 있지.”
“…….”
과연 여기서 윤수호가 한 말의 가치를 모르는 멍청이가 있을까? 조춘영조차 입을 떡 벌리고 벙 쪄 있는 걸로 봐서는 아무도 없는 듯싶었다.
“그럼 설마 일반인도…….”
“맞아. 일반인도 아이템을 사용하면 오러가 담긴 검을 사용할 수 있다. 마나로 신체를 강화시켜 주는 아티펙트를 입고, 그 검을 사용하면 훈련과 재능에 따라서 일반인조차 알터를 쓰러트리는 게 가능해졌다는 말이다.”
“……!”
사람들은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특히 공승환의 표정은 똥 씹은 사람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만약 강대국에서 던전을 통해 대량의 아이템을 획득할 경우, 훈련을 통해 일반인도 얼마든지 알터 이상의 능력을 가진 군대를 소유할 수 있겠군요.”
공승환의 말을 오수영이 받았다.
“반대로 던전을 공략할 힘이 부족한 국가의 경우, 던전 때문에 국력은 더욱 쇠약해지겠지.”
“강대국은 더 강해지고, 약소국은 더 약해지는 건가…….”
“그렇지 않아도 알터의 등장으로 위태롭던 국가 간의 파워 밸런스가 단숨에 무너질 거다. 그 이후의 미래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
“그래서 인류가 세 번째 재앙이라고…….”
치우팀 각자가 내놓은 추측에 윤수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찬 밥 더운 밥 가릴 때가 아닙니다. 최악은 던전이 마지막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거니까요. 만약 던전에 가까스로 적응했을 때쯤, 던전보다 더 최악의 시나리오가 시작된다면 그때 가서 준비하는 건 자살 행위죠.”
윤수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선언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가 판단하고, 내가 육성하고, 내가 책임지는 문파를 만들 생각입니다. 눈앞에 산재한 수많은 재앙들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서요.”
“그럼 특무대는…….”
공승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윤수호가 자신만의 문파를 만드는 건 상관없지만 그렇게 되면 특무대에 소홀할까 걱정이 앞섰던 것이다.
그에 윤수호는 웃으며 그의 걱정을 불식시켰다.
“저는 기본적으로 특무대의 고문 위원장입니다. 특무대에 소홀할 이유가 없죠. 엘도라드를 여러분께 소개시켜 드린 이유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엘도라드 님을요?”
“과인을?”
엘도라드도 뜻밖이었는지 자신을 가리켰다.
“엘도라드는 무예에 대한 지식이 해박합니다. 이 친구라면 기존 특무대에 부족한 기술과 강해지는 방법을 특무대의 방식에 맞게 잘 지도해 줄 겁니다.”
“과인에게 이 핏덩이들을 가르치라는 말인가?”
“잘하면 원하는 소원 하나 들어줄게.”
“과인의 소원을 뻔히 알면서 그런 당근을 던지다니…… 좋다! 싹수가 없는 녀석들도 아니니 한번 가르쳐 보고 판단하는 것도 늦지 않겠지. 다만 과인의 훈련은 너희들이 상상하는 것만큼 무르지 않다. 죽음도 각오하도록.”
‘이래서 위원장님은 먼저 엘도라드 님의 실력을 우리에게 체험시켜 주신 거구나.’
“무적!”
이미 엘도라드의 실력과 강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치우팀이 절도 있게 경례를 올렸다. 그들이야말로 강함에 누구보다 목말라 있는 자들이었으니까.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