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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누구십니까, 이분은? 단순한 재앙종은 확실히 아닌 것 같습니다만…….”
공승환의 질문에 쓰러져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던 치우팀 대원들도 억지로 상체만 일으켜 이목을 집중했다.
그만큼 엘도라드의 정체가 궁금했던 탓이다.
물론 조춘영과 이선호도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윤수호의 대답을 기다리긴 마찬가지였다.
그에 윤수호가 엘도라드를 정식으로 소개했다.
“소개하죠. 이쪽은 내가 던전에서 사귄 벗. 황금의 왕, 엘도라드라고 합니다.”
“더, 던전에서 사귄 벗요?”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아니, 대체 던전이 뭐길래…….”
윤수호의 대답이 불러 온 파장은 적지 않았다. 애초에 던전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그들이었기에 혼란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대해 윤수호는 보충 설명을 했다.
“엘도라드는 다른 세상에서 전설로 추앙받던 존재입니다. 그 당시 대륙에 그 이름을 모를 정도가 없을 정도로 엄청난 강자였죠. 죽은 엘도라드의 영혼은 던전을 창조한 존재와 계약을 맺고 그곳을 지키는 보스 몬스터가 됐다는군요.”
“지금도 생각나는군. 과인이 전력을 다 해도 이길 수 없었던 존재는 처음이었으니까. 그때 생각만 하면 지금도 몸이 근질근질하니.”
“참아, 지금은 때가 아니니까.”
정말로 마음이 동했는지 엘도라드가 호승심이 불타오르는 눈빛으로 윤수호를 쳐다봤다.
윤수호는 피식 웃으며 거절했고 엘도라드는 다소 시무룩한 표정으로 낙담했다.
“거기서 전 엘도라드를 특정 조건을 만족시키며 쓰러트렸고 덕분에 엘도라드를 소환할 수 있는 아이템을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특정 조건이라 하시면……?”
“제약이 걸리지 않은 전력의 엘도라드를 쓰러트릴 것.”
“확실히 쉬운 조건은 아니군요.”
치우팀은 등골이 오싹했다. 지금 겨룬 엘도라드만 해도 반 이상이 장난이었다.
그저 알몸을 가리기 위한 용도의 낡은 로브에, 심지어 무기라고 하기도 부끄러운 나뭇가지를 들고 자신들을 상대했다.
그런데 결과는?
대한민국 특무대 최정예 요원들이라 불리는 치우팀이 압도적으로 패배했다.
물론 여기 있는 인원은 치우팀 인원의 총 1/3도 되지 않았다. 치우팀도 그간 여러 인재들이 합류하면서 상당히 강해졌다.
하지만 모든 인원이 집결한다고 해서 엘도라드를 쓰러트릴 수 있을까? 공승환은 자신할 수 없었다.
“던전을 공략하려면 그…… 엘도라드 같은 분을 쓰러트려야만 하는 겁니까?”
“야, 어깨 펴라. 김세민, 치우팀은 무슨 일이 있어도 쫄지 않는 거 모르냐?”
조심스레 묻는 김세민을 오수영이 타박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 하는 오수영도 표정이 무겁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니, 어쩌면 김세민을 향한 타박은 그녀 자신에게 하는 얘기일 수도 있었다.
“너무 세민이한테 뭐라고 하지 마라. 다들 똑같으니까. 던전에 엘도라드 님과 비슷하게 강한 녀석들이 보스 몬스터라고 버티고 있으면…… 솔직히 나도 자신은 없다.”
“야, 정소담 너까지……!”
탱킹과 패기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정소담까지 약한 모습을 보이자 오수영이 발끈하려다 침묵했다.
거기에 대해서 윤수호가 대답했다.
“그렇다고 걱정을 사서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전에도 얘기했지만 던전을 창조한 존재는 우리에게 극복 불가능한 시련을 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엘도라드만 해도 그의 기사들인 고블린 마스터 네 명을 쓰러트리면 각각 인장을 얻을 수 있는데 그걸 활용하면 최대 엘도라드의 힘을 1/16까지 축소할 수 있죠.”
“1/16?”
“그 정도면…….”
인장 하나로 엘도라드의 힘을 절반 봉인시키고, 다른 인장으로 또다시 거기서 절반의 힘을 봉인시킨다.
이런 식으로 네 개의 인장을 모두 사용해 엘도라드의 힘을 봉인하면 그의 힘은 1/16까지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왜 형님께서는 전력의 엘도라드 님과 싸우신 겁니까? 편하게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야 당연히 형님께서야 자신이 있으셔서 그런 거겠지. 선호 너 형님이 물로 보이냐?”
“그런 뜻이 아니잖아. 조춘영, 이 밥통아.”
언제나처럼 티격태격하는 두 친구의 모습에 윤수호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선호의 예상이 맞다. 내가 그걸 알아차린 건 엘도라드를 쓰러트리고 전리품…… 즉, 아이템을 정리하면서 우연히 발견한 거니까. 그리고 그게 내가 너희들을 부른 이유기도 하고.”
“역시…….”
“우리를 부른 이유요?”
조춘영이 의문에 모두가 윤수호를 쳐다보았다.
그 순간, 윤수호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 * *
며칠 전.
윤수호는 천호진과 함께 청와대를 찾았다. 대통령의 긴급 호출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당연히 새롭게 등장한 미지의 재앙, 던전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심려가 크신지 안색이 많이 안 좋으십니다.”
“위원장께서 보기에도 그렇습니까? 잘 먹고, 잘 자고, 잘 싼다고 생각하는데도 몸이 왜 이렇게 마르는지…… 하여간 이 자리가 사람 피 말리는 자리인건 확실한가 봅니다. 하하하! 자, 두 분 다 자리에 앉으시죠.”
윤수호는 대통령 선우진과 가볍게 악수를 나눈 후 그가 권한 자리에 착석하였다. 그러자 비서들이 두 사람의 앞에 준비된 차와 자료들을 내려놓았다.
“바쁘신 분들을 모셔 놓고 귀한 시간을 뺏을 수는 없으니 본론으로 바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최근 발생한 미지의 재앙…… 속칭 던전에 대해서는 저 역시 보고를 받았습니다. 솔직히 거짓이라고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선우진은 무겁게 한숨을 내쉬며 가지고 있던 자료를 넘겼다.
“두 가지 이유 때문에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더군요. 하나는 던전을 경험한 당사자가 위원장이시라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다른 국가에 나타나기 시작한 던전의 또 다른 재앙 때문입니다.”
다른 국가가 느린 게 아니었다. 사실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클리어 한 윤수호의 속도가 비정상적인 것이다.
선우진도, 천호진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다른 강대국들은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음에도 생존자는 얼마 되지 않다더군요. 그나마 강대국들이나 던전 사태를 막을 수 있었지 유럽 일부 소국이나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동유럽이나 중동의 많은 국가들은 국가가 멸망하고 수많은 난민들이 발생했다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던전을 막지 못했을 경우 일어나는 재앙이 정확히 무엇입니까?”
윤수호의 질문에 선우진이 어두운 얼굴로 대답했다.
“저희도 정확히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워낙 위험한 곳인지라 해당 지역에 파견된 요원들의 생존율도 극히 낮았기 때문이죠.”
“…….”
그 순간, 윤수호의 머릿속에 엘도라드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왜 그러십니까? 위원장.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윤수호가 갑자기 한숨을 내쉬자 선우진이 걱정하여 물었고 윤수호가 대답했다.
“던전 안에서 보스 몬스터 엘도라드에게 들은 얘기가 있습니다. 저를 쓰러트리면 자신과 부하들은 새 생명과 새 육신을 얻어 현신할 수 있다고. 아마 2차 재앙이란 던전에 출입한 공략대가 전멸했을 경우, 던전에 도사리고 있던 몬스터들이 모두 현신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제약이 걸리지 않은 온전한 힘을 가진 상태 그대로 말이죠.”
“허허!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터무니없는 재앙이 아닙니까?”
“현재 던전 피해 지역의 상황은 어떤지 대략적으로라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까?”
거기에 대한 대답은 천호진에게서 나왔다.
“위성과 피난민들의 얘기를 종합해 본바, 다행인지 불행인지 던전 발생 지역 주변으로 피해가 크게 확산되는 모양새는 없었습니다. 보통의 재앙종이 생명체를 찾아 먼 거리를 이동하며 피해를 주는 걸 생각하면 이례적인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성이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엘도라드가 특이 케이스가 아니라면 놈들은 모두 인간과 비슷하거나 인간 이상의 지성과 인격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그런 놈들은 보통 각자의 목표가 있기 마련이죠. 그게 전설 속의 존재라고 한다면 목표라기보단 미련에 더 가까울 겁니다. 자신이 생전에 이루지 못했던 일을 여기서 하려고 할 수도 있겠죠.”
윤수호의 얘기에 천호진과 선우진의 얼굴이 동시에 굳어 들었다.
8~9급 재앙종을 능가하는 괴물이란 사실만으로도 이미 천재지변급 재앙이다. 그런데 거기다 더해서 인간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인격과 지성을 소유했다면…….
인간들은 이미 반쯤 멸망한 것이나 마찬가지란 뜻이었다.
“놈들이 출현 장소에서 움직이지 않는 건…… 아마 자신들의 영역을 공고히 구축하기 위해서일 겁니다. 어떤 일이든 기틀이 확실하게 다져져야 움직일 수 있을 테니까요. 아마 피해 지역이 다른 재앙종 때보다 거의 멈춰 있다시피 한 건 그런 이유일 가능성이 높을 테죠.”
윤수호는 가볍게 숨을 내쉬며 말을 덧붙였다.
“물론 지금까지 얘기한 건 전부 제 억측에 가까운 추측에 불과합니다. 이렇다고 확신할 만큼 정확한 정보가 없으니 최악에서 또 최악을 가정하고 대책을 세우는 수밖에요. 다른 나라들은 어떻습니까? 특히 톱 텐이라고 불리는 능력자들을 보유한 나라들 말입니다.”
“아…….”
윤수호의 질문에 정신을 차린 천호진이 대답했다.
“솔직히 최초나 다름없는 이번 던전 사태에 톱 텐을 투입한 나라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정보가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자국 최강의 병기나 다름없는 존재를 쉽게 위험에 노출시킬 수는 없을 테니까요. 막말로 제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위원장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말렸을 겁니다.”
천호진이 도끼눈을 뜨고 째려보자 윤수호가 머쓱하게 웃었다.
“그 때문에 공 팀장님이 총사령관님께 많이 혼났다고 들었습니다. 이것 참…… 공 팀장님께는 괜히 미안하네요.”
“하하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란 것도 있으니까요. 결과적으로만 보면 우리나라가 가장 피해가 없었으니 위원장님의 선택은 옳았다고 할 수 있었겠죠. 하지만 저도 그렇고 옆에 계신 총사령관도 그렇고 위원장님이 던전으로 혼자 뛰어들어 가셨다는 보고를 받았을 땐 심장이 내려앉는 걸 넘어 멈추는 줄 알았습니다.”
선우진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니 이렇듯 무사히 돌아와 주신 것만으로도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을 대표해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제 위원장님의 옥체는 혼자만의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앞으로는 좀 더 신중하게 움직이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예, 편하게 말씀하세요.”
윤수호는 말하기 전, 속으로 생각을 다듬었다.
이게 정말 옳은 일인지, 이 결정으로 인해 앞으로 대한민국이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바뀌게 될 지 자신조차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모든 걸 떠나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 있었다.
엘도라드가 던전을 창조한 존재에게 느낀 감정.
아이처럼 들떠 있다는 말…….
신중하거나 걱정하는 게 아닌, 신난 아이처럼 들떠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윤수호는 알 수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최악을 가정해서 대응해야만 했다.
‘놈에게 있어 어쩌면 인류의 진화는 안중에 없을 수도 있다. 그저 자신의 유희를 위해…… 즐거움을 위해 인류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라면…….’
피해자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한 나라가, 문명이, 종이 멸망하는 것도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가족들과의 행복을 위해 가족을 지키고,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윤수호의 바람과 대척점에 위치한 목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윤수호는 마음을 바꿔 결심을 굳혔다.
지금 이 나라에, 그리고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과 소중한 것들을 스스로 지킬 수 있는 힘이다.
“제 문파를 만들어야겠습니다.”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