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돌아왔다-78화 (78/175)

78.

“도대체 누가 그런 악질적인 짓을 벌인 것일까요? 정말 신이라는 존재가 존재해서 이런 일을 꾸민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우주적 법칙에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인지…….”

천호진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주억이며 공감했다.

재앙종의 출현처럼 이번 던전 발생도 마찬가지로 아무런 징조없이 시작되었다.

그때 브리핑을 담당하는 김건희 대위가 정보팀에서 건네받은 자료를 토대로 의견을 얹었다.

“현재 던전 발생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그중에는 현재 궤멸적인 타격을 입은 국가들도 존재하고, 아직 해결 중인 국가들도 있지만 최초로 던전을 클리어한 국가는 우리 대한민국뿐인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위원장님께서 이 나라에 계셔 주신 덕분이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위원장님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수호신이자 국민들의 영웅이십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우레와 같은 박수가 윤수호에게 쏟아져 내렸다.

이런 범세계적인 위기 상황일수록 한 명의 절대자가 주는 존재감과 안도감은 이루 필설로 형용하기가 불가능했다.

아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느낀 것이겠지.

하지만 윤수호의 표정은 오히려 더 무거워졌다.

자신이 이 나라를 수호하고, 가족을 지키고, 국민들을 보호하는 건 상관없다. 아니, 오히려 바라던 바였다.

하지만 그 결과, 자신에 대한 의존도가 맹목적으로 높아짐에 따라 어떤 부작용이 일어나는지도 똑똑히 두 눈으로 지켜봤다.

‘더 이상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순 없어.’

무엇보다 이제부터 시작인 던전에 대해서는 자신 혼자서 해결하는 게 불가능한 경우도 많이 생겨날 것이다.

결국 지금 윤수호에게 필요한 건 ‘팀’이었다. 등을 믿고 맡길 수 있는 ‘동료’였다.

윤수호가 손을 들자 그의 머리 위로 쏟아지던 우레와 같은 박수가 거짓말처럼 그쳤다.

“여러분의 성원에는 깊이 감사드리지만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닙니다. 던전의 출현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니까요. 던전을 창조한 존재가 정말로 신인지…… 혹은 우주적 법칙의 오류인지, 재앙종의 출현과 모종의 연관이 있는 것인지,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당연히 해결 방법도 현재로선 찾을 수 없는 상황이죠.”

윤수호의 연설에 좌중이 다시 침묵에 잠겼다.

애써 분위기를 끌어 올렸던 한 장군은 입맛을 다시며 아쉬워했다. 설마 윤수호가 이런 상황에서 저런 돌직구를 날릴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탓이다.

“다만 저는 이 현상이 어떤 존재가 일부러 계획한 일이라고 한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의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재앙종의 출현에 이어 던전의 출현이 어떤 연관이 되어 있을 거라고도 보고 있죠.”

“재앙종의 출현과 던전의 출현이 서로 연관이 되어 있을 수도 있단 말씀이십니까?”

천호진이 되묻자 윤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재앙종의 출현으로 인류는 그동안 접해 보지 못했던 미지의 힘. ‘오러’를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이를 인류 진화의 시발점으로 관측하는 자들도 있더군요. 만약 이 현상을 일으킨 어떤 존재가 있고 그가 일부 학자들이 생각하는 의도를 가지고 던전을 발생시켰다면 그 의도가 무엇일까요?”

윤수호는 소지품 창에서 다양한 아이템들을 꺼내 원탁에 늘어놓으며 말을 마쳤다. 특히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대부분 포션에 집중되어 있었다.

다른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포션만으로도 인류의 삶과 미래는 크게 바뀔 것이 분명했다.

그 모습을 무거운 표정으로 지켜보던 천호진이 조심스럽게 추측했다.

“문명의 변화……가 아닐까요?”

천호진의 추측에 윤수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앙종과 던전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시련, 방법, 보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죠. 실제로 재앙종은 인류에 커다란 시련을 가져왔지만 인류가 안고 있던 에너지 기아를 해결하는 데에 큰 일조를 했습니다. 현대 병기로도 대적하기 어려운 재앙종을 상대하기 위해 오러가 발현되었죠. 던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윤수호는 팔짱을 끼며 말을 이어 나갔다.

“공략할 방법을 완전히 없앨 수도 있고, 탈출이 불가능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공략 방법은 반드시 존재하고 귀환 스크롤이라는 탈출 방법도 분명 존재합니다. 심지어 던전을 공략하면 막대한 보상까지 획득할 수 있죠. 현대 문명으로도 흉내조차 불가능한 새로운 문명의 이기를요.”

“그렇다면 이건 우주적 법칙의 오류라기보다 어떤 초월적 존재의 의도일 가능성이 높겠군요. 그 존재의 목적은 인류의 진화일까요?”

그 순간 윤수호는 엘도라드에게 들었던 말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 존재가 아이처럼 들떠 있었다던 엘도라드의 말이 사실이라면 너무나도 끔찍한 진실이 멀지 않은 미래에 자신들을 반겨 줄 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 당장 이들에게 그런 절망을 안겨 줄 필요는 없었다.

“저도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중요한 건 지금부터 모든 사람들이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것뿐입니다. 이 시련에서 인류가 살아남아 진화하게 될지, 전멸하여 도태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죠.”

“…….”

회의장의 분위기가 더할 나위 없이 무거워지자 윤수호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지는 마십쇼. 저도, 여러분도,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서 노력한다면 분명 방법은 있을 겁니다. 벌써부터 포기하기에는 남은 인생이 너무 아까우니까요.”

“본 사령관 역시 위원장님의 말씀에 적극 동의하는 바입니다. 애초에 쉬운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엿 같으면 엿 같은 대로, 힘들면 힘든 대로 발버둥 치며 사는 게 사람 사는 인생이지요.”

회의는 그것으로 종료되었다.

각 사령관들은 지금부터 잠도 못 자고 대책 회의에 들어가게 되겠지만 윤수호는 아니었다.

“위원장님, 벌써 가시려고요?”

“예, 내일 아침에 아버지랑 함께 저수지 낚시를 가기로 약속했거든요.”

“그렇군요. 두 분의 풍어를 기원하겠습니다.”

윤수호는 천호진의 배웅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세상이 어떻게 미처 돌아가든 윤수호가 바라는 것, 그리고 지키고 싶은 것은 단 하나.

그냥 가족들과 행복하게 사는 것뿐이었다.

* * *

다음 날 아침.

“조심해서 다녀와요.”

“혹시라도 위험한 일이 생기면 그냥 다 오빠한테 맡기고 지한이랑 같이 튀어. 아빠. 알았지?”

“야, 오빠도 걱정하는 척 정도는 좀 해 주지?”

오혜연과 윤수아의 따스함 넘치는 배웅을 받으며 윤지석, 윤수호, 은지한 3대가 함께 차를 타고 시외로 나섰다.

“지한이 너는 뭐한다고 황금 같은 주말에 할아버지랑 삼촌을 따라와. 그냥 누나처럼 나가서 친구들이랑 놀지.”

윤수호는 운전을 하면서 백미러로 뒷자리에 앉아 있는 은지한을 힐끔 쳐다보았다.

은지연은 임수현을 비롯한 친구들과 논다고 아침부터 잔뜩 꾸미고 나간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괜찮아요. 어차피 성하도 알바한다고 바쁘고, 가끔은 이렇게 삼대가 오붓하게 낚시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서요.”

“지한이 너…… 혹시 성하 말고 친구가 없니?”

윤지석은 진심으로 걱정을 담아 물었지만 다소 필터링이 부족했던 질문에 은지한의 표정이 피카소의 작품처럼 깨져 버렸다.

“무, 무슨 말씀이세요! 할아버지. 저, 진짜 친구 많은…….”

“어, 지연아.”

“사, 삼촌!”

그 순간, 은지한의 표정이 사색으로 물들었다. 윤수호가 블루투스를 통해 노빠꾸로 은지연에게 전화를 걸어 버린 것이다.

-네, 삼촌.

“잘 놀고 있어?”

-지금 친구들이랑 카페에서 아침 먹고 쇼핑 가려고요. 아참, 그리고 카드 빌려줘서 고마워요. 삼촌! 사랑해요~

“뭘. 원래 삼촌 노릇은 돈으로 하는 거라더라. 그나저나 하나만 물어보자. 지한이 있지.”

-네, 오늘 지한이랑 같이 낚시 가신다면서요. 그 녀석이 무슨 말썽이라도 부렸어요?

“그게 아니라 지한이 학교에서 친구 많냐고. 성하는 알겠는데 다른 친구들 얘기는 워낙 안 하다 보니 좀 걱정이 되더라고.”

-아~ 지한이 그래 봬도 남자애들한테 인기 많아요. 공부도 썩 잘하는 편이고 스포츠는 뭐, 두말 할 것도 없고. 이제는 붙임성도 나름 나쁘지 않은 녀석이니까. 그래도 뭐, 단점이 아예 없는 건 아니더라고요.

“단점?”

-성하한테 들은 얘기로는 롤을 뒈지게 못 한대요. 롤이 리그 오브 로스트라는 게임인데 오죽했으면 성하가 처음으로 지한이한테 큰소리를 쳤다나 봐요. 너~무 못 해서. 그것 빼고는 친구 관계도 완만한 것 같던데.

“그래, 알았다. 재미있게 놀다 와라.”

-네! 삼촌. 할아버지~ 그럼 나중에 집에서 봬요!

“오냐, 잘 놀다 오너라.”

은지연 특유의 애교섞인 콧소리와 함께 통화가 종료되자 차 안에는 묘한 정적이 감돌았다.

그 정적을 먼저 깨 버린 사람은 다름 아닌 윤수호였다.

“친구들 오늘 PC방 간대?”

“…….”

“가는구나, PC방.”

“…….”

“삼촌도 롤이라는 게임은 조금 들어서 알고 있거든? 티어는?”

“실버요.”

“솔직하게.”

“……브론즈.”

주눅든 손주의 모습이 안쓰러웠던지 윤지석이 씁쓸하게 웃으며 위로를 건넸다.

“사, 사람이 어떻게 다 잘할 수 있겠니. 할아버지도 겔러그 1탄을 못 깨 봤단다. 네 삼촌도 스타인지 뭔지, 유일하게 하던 게임이 그거였는데 컴퓨터를 못 이겼어. 안 그러냐?”

“아니, 아버지, 그건……!”

“조용히 해. 이 녀석아! 게임 못 하는 건 우리 집안 유전이야.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고. 그런 걸로 삼촌이 조카 기를 죽이면 되겠니?”

“…….”

윤지석은 모르고 있었다.

조카를 위로해 준다고 삼촌을 혼내던 그 말들이 모두 비수가 되어 은지한의 마음을 쑤시고 있다는 사실을…….

여튼 우여곡절 끝에 경기도의 어느 저수지에 도착한 세 사람.

관리가 전혀 되지 않은 저수지는 주변이 온통 잡초투성이에 수면 위에도 녹조가 가득했지만 상관없었다.

촤아악!

윤수호가 검결지를 휘두르자 무성했던 잡초가 말끔하게 벌초되었고, 그가 손을 한 번 휘둘러 바람을 일으키자 벌초된 잡초들이 바람에 휩쓸려 깔끔하게 치워진 것이다.

“너 화장실 갔다 온다는 거 아니었니, 지한아?”

“아, 잠깐 볼일 보러 갔는데 근처에 떠돌이 녀석들이 몇 마리 있어서 좀. 헤헤~”

무슨 산보 갔다가 버섯이라도 캐 온 것처럼 머쓱하게 웃으며 은지한은 얼굴에 묻은 재앙종의 핏자국을 닦아 냈다.

“자, 그럼 우리도 자리를 잡아 볼까?”

“근데 아버지 낚시는 할 줄 아세요?”

“아니, 처음인데?”

“근데 갑자기 낚시는 왜…….”

“저번에 TV 보니까 그냥 한번 해 보고 싶더라고. 너무 뜬금없었나? 하하하!”

멋쩍게 웃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윤수호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죄 짓는 것도 아닌데 하고 싶으면 하는 거죠. 덕분에 아버지랑 단둘이 이것도 좀 마시고요.”

윤수호는 아이스박스에서 차가운 진이슬 한 병을 꺼내 흔들었다.

꿀꺽…….

“그, 그래도 네 엄마가 아침 댓바람부터 술 마신 거 알면 노발대발할 건데…….”

“그래서 안 드신다고요? 어쩔 수 없죠. 그럼 저 혼자…….”

덥석!

“딱 한 잔만! 맛만 보는 건 괜찮겠지?”

독수리처럼 진이슬을 낚아채는 아버지의 모습에 윤수호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럼 안주도 구해야죠. 제일 많이 낚는 사람이 오늘 가서 설거지 당번 면제 어때요?”

“나야 좋지.”

“콜!”

세 사람은 그렇게 설거지 내기가 걸린 낚시를 시작했다.

하나 윤지석과 은지한은 모르고 있었다. 무림에서 윤수호가 무공 다음으로 유명했던 것이 바로 낚시였다는 사실을…….

그런데!

“또 잡았구나! 초심자에게 어복이 따른다더니, 오늘이 그날인가 보구나. 으하하하!”

“대박 월척이다!”

이상한 일이었다. 윤수호의 통발에는 한 마리도 없는데 윤지석과 은지한의 통발에는 낚시로 잡아 올린 물고기들이 가득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몰랐지만 사실 이건 윤수호가 일부러 그들에게 고기를 몰아 준 덕분이었다.

지금도 수면 아래에서는 고기들이 윤수호의 낚싯대를 향해 줄을 서고 있었지만 윤수호는 일부러 고기를 낚아 올리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몰려든 고기들은 근처에 있던 윤지석과 은지한의 낚싯대로 머리를 돌릴 수밖에 없었고…….

이렇듯 윤지석과 은지한이 무한정 낚아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윤수호는 이것으로 충분했다.

애초에 낚시는 지겨울 만큼 즐겼던 자신이고 오늘은 그저 아버지와 조카가 즐겁게 낚시를 즐길 수 있으면 그걸로 만족하려 했다.

“우리 수호는 아무래도 오늘 날이 아닌 모양이구나. 어복이란 게 따를 때가 있고, 멀어질 때가 있다고 하니 너무 실망하진 말고. 어이쿠, 또 올라왔네?”

“헐, 대박! 삼촌 이것 봐요! 물고기가 내 팔뚝보다 더 크다니까요? 삼촌도 노력하면 저보다 더 큰 물고기를 잡을 수 있을 테니까 힘내세요. 포기하면 안 돼요. 파이팅!”

“…….”

……그래, 만족하려 했다.

감히 겁 없는 조손이 잠자는 용의 수염을 건드리기 전까지는…….

검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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