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돌아왔다-72화 (72/175)

72.

같은 시각.

산 정상 부근 상공에 군용 수송 헬기 한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부터 두 팀으로 나뉘어 섬멸 및 탐색 작전을 개시한다. A팀은 나를 따라 재앙종의 발생 지역을 탐색, B팀은 강세찬을 팀장으로 삼아 적들을 섬멸한다.”

“무적!”

공승환의 마지막 브리핑이 끝나기가 무섭게 치우팀 대원들이 일제히 헬기 밖으로 뛰어내렸다.

빠른 속도로 자유낙하를 시작한 대원들이지만, 누구 한 명 낙하산을 펴는 이가 없었다. 애초에 낙하산 같은 건 메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간다!”

콰아앙!

호쾌한 함성과 함께 유성처럼 떨어져 내려 주변을 초토화한 사람은 추소담이었다.

이름과 다르게 2m가 넘는 훤칠한 키와, 중장갑을 연상시키는 근육질 떡대를 자랑하는 추소담.

섬멸 작전의 선봉은 언제나 이 남자의 역할이었다.

“소담이가 길을 열었다! B팀은 재앙종 무리의 허리를 끊어! 더 이상 놈들이 밑으로 내려가지 못하게 여기서 막아야 한다!”

“서둘러! 우리가 늑장 부리면, 그만큼 밑에서 목숨 걸고 싸워주는 섬멸팀이 위험해진다!”

낙하산 없이 빠르게 지상에 착지한 치우팀은 곧장 작전에 따라 미리 배정받은 구역으로 흩어지며 길을 뚫기 시작했다.

사실상 재앙종으로 이루어진 강물 위로 물고기 몇 마리가 떨어져 내린 형국이었다.

하지만!

“저리 꺼져!”

촤촤촤촤!

“징글징글하구먼.”

콰콰콰콰쾅!

누군가가 검을 휘두르자 수십 마리의 재앙종들이 갈려 나가고, 어떤 이가 내지른 주먹질에 수십 마리의 재앙종들이 비명을 지르며 분쇄되었다.

재앙종의 강물에 뛰어든 물고기들은 개개인인 오버 알터로 각성한 초인들. 즉, 평범한 물고기가 아니라 상어인 셈이었다.

그들은 빠르게 자신의 구역으로 전진하며 흐름의 허리를 끊기 시작했다.

다행히 쏟아져 내려오는 재앙종들은 3~4급 정도의 비교적 등급이 낮은 재앙종들이었지만, 문제는 숫자였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녀석들이 쏟아져 나오는 거지?”

“지금 그걸 대장이 조사하러 가는 거잖아. 그나저나 징글징글하게 많긴 하구먼. 이 정도로 많은 숫자는 나도 처음 보는데?”

“부대장이 있었으면 환장을 했겠네. 좋아서. 하여간 그 양반은 대체 어디를 싸돌아다니는 건지, 원. 꼭 필요할 때만 없단 말이지.”

“없는 사람 얘기해 봤자 뭘 하겠냐. 보나 마나 수행이랍시고 오지에서 별 이상한 녀석들이랑 드잡이질하고 있겠지.”

“B 구역은 정리 끝났다!”

“이쪽도!”

치우팀이 자리를 잡고 놈들의 허리를 끊어 버리자, 더 이상 산 밑으로 내려가는 재앙종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대로 밑에 남은 녀석들은 섬멸팀이 어떻게든 알아서 해결할 것이다.

섬멸팀의 목적이 산 밑으로 내려온 재앙종들을 민가로 가지 못하도록 막고 섬멸하는 것이라면, 자신들의 목적은 더 이상 이 재앙종들이 산 밑으로 내려가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한 마리도 놓치지 마! 우리가 놓치는 만큼 잔뜩 지친 섬멸팀이 피해를 볼 테니까.”

“그나저나 이거, 수가 많아도 너무 많은데? 아무리 약한 녀석들뿐이라지만, 대장이 빨리 원인을 찾아내지 못하면 우리도 위험할 수 있겠어.”

“그럼 뭐, 여기서 죽는 거지. 별거 있냐? 무서우면 지금이라도 내려가든가. 네 자리 정도야 나 혼자서도 충분히 커버 가능하거든.”

“지랄 마셔.”

대원들은 농담 삼아 얘기했지만, 역설적으로 이들이 현장에서 농담을 한다는 얘기는 그만큼 긴장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디서 재앙종을 찍어 내는 공장이 생긴 것도 아니고, 대체 이 많은 재앙종들이 어디서 튀어나오는 거야?’

‘제발 빨리 좀 찾아내 주십쇼, 대장. 이거 까딱 잘못하면 전멸입니다.’

한편, 모두의 기대와 걱정을 등에 업은 공승환은 일부 팀원들과 함께 재앙종들의 흐름을 역류하며 이 현상의 원인을 쫓고 있었다.

강물의 흐름을 거스르는데 당연히 편할 리가 있나?

쏟아져 내려오는 재앙종들의 0순위는 당연히 공승환 일행이었다.

“측면 수비를 더 단단히!”

“후방 경계도 늦추지 마!”

그렇게 믿을 수 있는 대원들이 옆과 뒤를 지켜 주자, 공승환은 온전히 정면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스읍…….”

콰콰콰콰콰콰쾅!

힘을 한 점에 집중한 공승환의 공격력은 놀랍도록 무시무시했다.

한 손으로 들기 버거워 보이는 중검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검을 휘두를 때마다 오러의 폭풍이 전방을 순식간에 휩쓸어 버린다. 3~4급 재앙종들로는 검기의 폭풍을 감당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크에엑!

카아아악!

폭풍에 휘말린 재앙종들이 비명을 지르며 찢겨 나갔다. 그들의 죽음 뒤로, 절대로 보일 것 같지 않았던 길이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가자!”

“으아아아아!”

그렇게 공승환과 호흡을 맞춰 가며 전력으로 흐름을 거슬러 근원지 코앞에 다다른 일행들.

“자, 잠깐! 이곳에 이 정도 규모의 동굴이 있었다고?”

“아, 아니. 지도에는 물론이고, 최근 촬영된 위성사진만 봐도 여기에 이런 동굴은 없었어!”

팀원들이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근원지라고 추정되는 곳에 도착한 일행의 눈앞에는, 한눈에 봐도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동굴의 입구가 있었다.

“이 정도 크기라면 위성이나, 하다못해 아까 헬기 위에서라도 보이지 않았을 리가 없을 텐데…….”

“아무리 나무가 우거졌다지만 이건 말도 안 돼.”

공승환도 재앙종들을 베어 내며 그들의 말에 공감했다.

한눈에 봐도 높이가 10여 미터에 폭이 20미터는 넘어 보이는 거대한 동굴의 입구였다.

이곳의 나무가 열대지방처럼 넓은 잎의 나무들이 우거진 것도 아니고, 이만한 크기의 동굴이라면 그들의 안력을 고려했을 때 벌써 눈에 보였어야 한다.

그때였다.

“결계의 일종이로군요.”

‘이 목소리는…….’

공승환과 일행들은 목소리의 주인을 쫓아 눈을 돌렸다가 깜짝 놀랐다. 어느새 윤수호가 자신들의 곁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위원장님!”

“아무래도 이 근처에 진법이나 결계 같은 미지의 힘이 작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결계에 진입하지 않고서는 외부에서 흔적을 찾을 수 없도록 말이죠.”

말을 하면서 윤수호는 검결지를 가볍게 휘둘렀다.

촤아악!

그러자 그의 손가락 끝에서 뻗어 나온 채찍 같은 검기가 사방을 휘몰아치며, 수백 마리 재앙종을 한순간에 도륙했다.

수백 마리 재앙종이 1초도 걸리지 않아서 갈려 나가는 모습에, 공승환은 작전 이전에 직접 만나 전해 들었던 이금찬의 공지가 떠올랐다.

[이번 작전에서 위원장님은 섬멸팀에 가담하지 않으실 거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보고로는 3, 4급으로 추정되는 재앙종만 수백이 넘는다고 들었습니다. 위원장님의 도움 없이는 피해가 너무 클 텐데요?]

[그래서 내린 결정일세. 더 이상 독이 퍼지는 건 막아야 하지 않겠나.]

[…….]

당시에는 사령관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독이라니? 윤수호의 존재가 설마 독이라고 말씀하신 걸까?

그럴 일은 없을 거로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그런 말을 한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의 광경을 보니 어느 순간 이해가 되었다.

자신이야 윤수호를 보고 더 강해지고 싶다는 욕망을 키울 뿐이었지만, 모든 대원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특히 천외천에 다다른 그의 능력을 보고 있으면, 그에게 자꾸만 기대고 싶고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당연했다.

‘이런 건 단순히 명령이나 훈계 따위로 고칠 수 없다. 타성이란 건 어느 순간 저도 모르게 의식 깊숙한 곳에 뿌리를 내리는 법이니까.’

“팀장님?”

“예?”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습니까?”

공승환은 그제야 자신이 윤수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화들짝 놀라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잠깐 정신이 나가서…….”

“아닙니다. 안으로 들어가 보죠. 제가 앞장설 테니 따라오십시오.”

이런 결계 안쪽은 미지의 영역이나 다름없다. 그렇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먼저 대응할 수 있도록 윤수호는 선두를 자처했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는 와중에도 재앙종들은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마치 동굴 전체가 재앙종의 생산 공장이라도 되는 것인 양…….

“이건 말이 안 되는데……. 동굴 입구도 그렇지만, 내부가 이렇게 깊고 넓을 수 있다니……. 지금까지 온 거리만 해도 이 산 둘레의 몇 배는 되지 않습니까?”

윤수호와도 인연이 있던 치우팀 김세민의 의문에 윤수호가 직접 답해 주었다.

“신기에 다다른 진법이나 결계 중에는 시공간의 법칙을 무시하고 그것을 장악하는 것도 더러 있습니다. 그것은 때론 현실을 바꾸기도 하고, 현실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들어 내기도 하죠.”

“예? 그게 무슨……. 그런 일이 정말 가능한 겁니까?”

김세민을 비롯해 다른 특무대원들, 심지어 공승환조차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윤수호의 말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그대로 믿기에는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저도 직접 경험한 적은 몇 번 되지 않습니다. 이건 그중에서도 특별한 것처럼 보이는군요.”

몬스터를 분쇄하며 앞으로 나아간 일행은 결국 동굴 끝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저, 저건…….”

“설마…….”

일행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동굴 끝에는 거대한 공동이 존재했는데, 바닥에는 누가 그렸는지 알 수 없는 복잡한 형식의 마법진이 있었다. 그리고 경악스럽게도 그 마법진에서 재앙종이 끊임없이 소환되고 있었다.

“마법진? 세상에……. 무슨 판타지 영화도 아니고…….”

“처음 보는 종류의 게이튼데? 아니, 저게 게이트는 맞는 겁니까?”

“일단 재앙종을 불러들이고 있으니 게이트라고 봐야겠지.”

마법진을 바라보는 공승환의 안색이 굳었다.

보통의 게이트는 응축된 에너지를 재앙종 소환에 모두 소모한 후 자연 소멸한다. 즉, 재앙종이 소환되면 게이트가 자동으로 파괴되는 것이다.

그런데 재앙종을 꾸준히 소환하면서 자연 소멸하지 않는 게이트가 있다?

이보다 끔찍한 재앙은 없을 터였다.

“물리력으로 파괴해야 하는 걸까요?”

공승환의 질문에 윤수호는 게이트를 살펴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마법진을 향해 검결지를 휘둘렀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콰콰콰콰콰콰!

때마침 소환되던 재앙종들은 검기에 휘말려 찢겨 나가고 바닥도 검흔이 깊이 남았는데, 마법진은 마치 물에 비친 달그림자처럼 출렁거리더니 제 모습을 되찾은 것이다.

“제가 진법이나 결계에 조예가 깊은 건 아니지만……. 이건 물에 비친 달의 그림자 같은 겁니다. 실체는 따로 있겠지요.”

“그 말씀은 지금은 이걸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

윤수호는 말없이 마법진을 좀 더 깊게 살펴보았다. 그러다 경악할 만한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잠깐? 이건……!’

“위원장님! 위원장님!”

공승환의 다급한 부름에 윤수호가 고개를 들었다.

마법진 한가운데에서 불길한 빛을 띠는 공간의 균열이 나타나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검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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