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돌아왔다-71화 (71/175)

71.

“힘들지 않으십니까?”

윤수호는 어느새 자신의 옆으로 다가와 무거운 표정과 말투로 묻는 이금찬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힘들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이 자리에서 가장 마음이 무거우신 분은 다름 아닌 사령관님이시지 않으십니까.”

“각오는 했습니다. 하지만 희대의 몰상식하고 비상식적인 사령관으로 낙인찍혀 역사에 기록된다 한들, 이 업보를 후대에 넘겨 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이금찬의 흔들리지 않는 눈빛에 윤수호는 나직하게 질문했다.

“제 존재가 특무대……. 특히 섬멸부대에 독이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윤수호의 질문에 이금찬은 고개를 저었다.

“독과 약의 경계선을 구분한 건 인간입니다. 약도 과하면 독이 되고, 독도 경우에 따라서는 약이 되는 법이니까요. 인간이 왜 독과 약의 경계를 구분했을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인간이 중독에 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부하들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며 이금찬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가장 강한 영웅을 쓰러트리는 건 적의 창칼이 아니라 미녀가 건네주는 달콤한 술이듯, 아무리 강한 부대라도 목표의식을 잃고서는 결코 전장에서 승리할 수 없는 법이지요. 저희는 그동안 윤수호라는 커다란 나무 그늘에 너무 많이 의지하고 말았습니다.”

“그 부분을 미처 신경 쓰지 못한 제 불찰입니다.”

윤수호가 고개 숙여 사과하자, 이금찬이 기겁하며 손사래를 쳤다.

“어이쿠! 이러지 마십시오, 위원장님. 위원장님께서 사과하실 일이 결코 아닙니다. 위원장님의 배려, 희생정신, 솔선수범하여 대원들을 이끌고 지휘하시던 그 업적은 대대손손 칭송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니까요. 정말로 대원들에게 사죄하고 죗값을 치러야 할 사람은 접니다.”

이금찬은 무거운 얼굴로 말을 이어 갔다.

“위원장님을 만난 이후로 저는 비로소 섬멸팀이 구원을 얻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위험한 재앙종의 출현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데도 섬멸팀의 사상자는 역대 최저치를 매일같이 갱신했으니까요. 그렇게 부대원들이 다치지 않고 목숨을 온존한 채 임무를 완수할 수 있다면, 저는 그것이 섬멸팀을 위한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금찬은 고개를 내저으며 작은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목숨을 바쳐 국가를 수호한다는 기치 아래 싸우던 섬멸팀이, 어느 순간 국가보다 자신의 목숨을 돌보기 시작하더군요. 물론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이전 같으면 충분히 자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임무조차 여유 병력을 더 지원하고도 실패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그제야 저는 깨달았지요.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조금만 힘들어도 위원장님이라는 거목을 찾고 있었단 사실을 말입니다.”

치우팀이라는 존재가 있음에도 섬멸팀은 결코 마음을 놓거나 각오가 약해진 적이 없었다.

치우팀은 절대적이지 않고, 자신들이 그들을 받쳐 주지 않으면 절대 이 나라를 지킬 수 없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수호는 달랐다. 그가 존재함으로 인해 이 나라는 안전하다. 절대로 위험해질 수 없다.

그만큼 윤수호라는 존재감은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그 절대적인 존재감이 오히려 섬멸팀에게는 독이 되었다. 자신들이 애쓰지 않아도 어차피 윤수호가 해결 해 줄 것이라고…….

언제부터인가 그들의 마음이 타성으로 젖어 갔던 것이다.

“지금 이 작전은 수술입니다. 마음속에 말라붙어 버린 타성을 제거하기 위한 수술 말입니다. 그러니 아프고 괴롭더라도 지켜봐야지요. 끝까지 버텨봐야지요. 그래야지만 썩어 빠진 근성을 고치고 섬멸팀이 새롭게 태어날 수 있을 테니까요.”

“보기보다 독한 분이시군요.”

“제가 독하다고요?”

윤수호의 말에 이금찬은 피식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대꾸했다.

“제가 보기에는 위원장님도 만만치 않으십니다. 101팀의 이선호 팀장이 이번 작전에 참여했다는 걸 위원장님께서도 잘 알고 계실 텐데 단 한 번도 도움을 주지 않고 계시잖습니까.”

“그럴 리가요. 저는 지금도 전력으로 돕고 있는걸요.”

“도움을 주고 계시다고요?”

“사령관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지금은 제가 가만있는 게 섬멸팀을 돕는 거라고요.”

“아, 그렇군요.”

자신이 한 말을 그대로 돌려주는 윤수호에게 이금찬은 한 방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저렇게 태연한 모습은 이해가 잘되진 않았다.

“이 팀장과 의형제를 맺으실 만큼 각별한 사이라고 들었습니다. 걱정은 안 되십니까?”

“걱정이 왜 안 되겠습니까? 다만 저는 선호, 그 녀석을 믿습니다. 애초에 제 도움을 바라고 싸우거나 임무에 임하는 가벼운 녀석은 결코 아니니까요. 그리고…….”

윤수호가 이금찬을 쳐다보며 싱긋 웃었다.

“수술을 하신다는 분께서 설마 부하들을 전멸하게 놔두실 거란 생각은 더더욱 들지 않는군요.”

“이것 참…… 어깨가 더더욱 무거워지는 것 같습니다.”

“선호라면 잘 해낼 겁니다. 물론 정말 위험한 순간이 온다면, 그때도 가만히 있을지는 자신할 수 없지만요.”

그렇게 윤수호와 이금찬은 무거운 심정으로 전황을 지켜보았다.

* * *

“후욱, 후욱…….”

촤악! 서걱!

몸이 무겁다.

아니, 무겁다는 말도 이제는 옛말이다.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억지로 움직이자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뼈마디가 부서지는 것 같다.

“크아아아!”

그러나 이선호는 비명에 가까운 기합을 지르며 억지로 몸을 틀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비유가 현실이 되기 때문이다.

콰앙!

불과 1초 전에 그가 있던 곳에 거대한 철퇴가 무서운 기세로 내리꽂혔다. 바닥이 부서지고 튄 돌조각이 이선호의 다리를 아프게 때렸다.

파앗!

이선호가 몸을 날렸다. 이 기회가 아니면 놈의 목을 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후웅!

전력을 다해 휘두른 일검이 푸른빛을 번뜩이고…….

서걱.

잘려 나간 재앙종의 머리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다들 정신 차려! 아직 후퇴 명령은 내려지지 않았다! 여기서 포기하면 우리는 물론이고 우리가 지키는 사람들까지 전부 다 뒈지는 거야! 알았어?”

“예! 팀장님!”

“우오오오오! 여기서 뒈질 수는 없지! 난 아직 신혼 초……. 읍읍!”

“야, 이 미친 새끼야! 누가 마음대로 사망 플래그 세우고 지랄이야, 지랄이!”

101팀원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유쾌하게 떠들며, 있는 힘 없는 힘 전부 긁어모아 서로의 등을 지켰다.

“앞만 뚫어라. 내가 쓰러지지 않으면 내 동료도 쓰러지지 않는다.”

이선호의 각오 섞인 격려에 팀원들도 의지를 불태우며 전력으로 응전했지만, 이미 그들 역시 한계였다.

쓰러트린 재앙종의 숫자가 이미 수백이 넘어간 지 오래지만, 쓰러트린 숫자 이상의 재앙종들이 여전히 산에서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다.

‘대체 뭐지? 설령 게이트가 열렸다고 해도 지금쯤이면 닫히고도 남을 시간이다. 그런데도 재앙종이 끊임없이 출몰한다는 건…….’

탐지국에 걸리지 않은 것도 그렇고, 재앙종의 끊임없는 출몰도 그렇고, 보통 사태가 아니었다.

아마 자신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미증유의 또 다른 재앙이 시작된 것일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지금 중요한 건 임무를 완수하는 것. 후퇴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혹은 놈들이 전멸할 때까지 이 자리를 사수하는 것.

자신과 같은 사명감으로 버티고 서 있는 팀장들과 대원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대다수의 섬멸팀이 사실상 포기를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누군가는 도망칠 수 없어 허무하게 목숨을 버리고, 누군가는 명예도 긍지도 모두 잊은 채 동료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이미 그들의 머릿속에 윤수호는 사라진 지 오래다. 그리고 윤수호라는 거대한 나무 그늘이 사라진 자리에는 절망만이 가득했다.

“선배! 어떡하죠? 이러다가는 전멸할 것 같아요!”

애간장이 탄 함지은이 이선호에게 다급히 소리쳤다. 그녀 역시 오러가 바닥나기 직전이라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이었다.

그때였다.

“천하무적의 깃발을 걸고, 이 땅을 수호하는! 우리는 대한의 용사! 섬멸의 붉은 창!”

그 순간.

갖가지 소음으로 정신없이 시끄럽던 전장에 한순간이나마 정적이 흐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선호가 목이 터지라 외친 것은 다름 아닌 섬멸부대의 군가, ‘섬멸의 붉은 창’이었다. 훈련소에 입소해서 가장 먼저 배우는 군가로, 지옥 같은 훈련 중에도 목이 터지라 부르며 그들과 함께했던 바로 그 군가였다.

섬멸부대의 대원들은 얘기한다, 치매에 걸려도 그 군가만큼은 절대로 잊어버릴 수 없을 거라고.

“재앙의 무리가 이 땅을 위협해도! 붉은 창은 나아간다! 승리를 쟁취한다!”

이선호가 재앙종과 사투를 벌이면서도 목이 터지라 군가를 외쳐 부르자, 옆에서 듣고 있던 팀원들과 함지은 역시 따라서 군가를 외쳐 부르기 시작했다.

“전우여, 함께 가자! 우리는 무적이다! 섬멸의 붉은 창은 꺾이지 않으리라!

“아아! 붉은 창이여! 섬멸의 붉은 창이여! 이 땅의 평화 위에 쓰러지거라!”

군가가 끝나면 반복해서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이내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천하무적의…….”

“재앙의 무리가…….”

놀라운 일이었다. 이선호를 시작으로 점점 더 많은 대원이 군가를 부르기 시작하더니, 조금씩 눈빛이 돌아오고 힘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에게 군가는 단순히 힘들 때 지르라고 가르쳐 준 악다구니가 아니었다. 그 지옥 같은 훈련을 이겨내면서 매 순간 다지는 각오와 결심, 흔들리지 않는 의지의 표명이자 목적의 분출이었다.

돈이 목적이었다면 빌런이 되는 게 더 많이 벌었을 것이다. 안전이 목적이었다면 각성을 하고서도 특무대에 지원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럼에도 특무대에 지원한 목적은 단순했다.

지키고 싶었으니까.

그게 나라가 됐든 가족이 됐든, 연인이 됐든 친구가 됐든, 하다못해 취미 생활이나 좋아하는 단골 빵집이든 상관없다.

목숨 걸고 지킬 만한 의미와 의지가 있기에 특무대에 지원한 것이고,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결코 타인이 시켜서가 아닌,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손으로 지키고 싶어서 이곳에 있는 것이다.

“씨발! 한 번 뒈지지 두 번 뒈지냐!”

“115부대! 전열을 재정비한다!”

“섬멸팀의 의지를 보여라!”

“우리는 자랑스러운 엘리트 부대! 섬멸부대의 대원들이다!”

“가자!”

체력도 오러도 바닥났을지언정, 섬멸부대의 의지와 각오만큼은 오히려 처음에 비할 바 없이 드높고 뜨거웠다.

“체력과 오러가 바닥난 녀석들은 후방으로 가서 쉬어! 싫다는 놈들은 억지로라도 잡아끌어다 쉬게 해라!”

“강한 놈들과 1 : 1로 붙지 마! 최대한 3인 1조로 응전해라!”

“물러서지 마! 놈들의 숫자도 확실하게 줄어들고 있다!”

사기를 되찾은 섬멸부대의 위세는 처음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오히려 처음보다 더 강하고 거세게 몰아붙이며 재앙종들조차 주춤할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재앙종들도 만만치 않았다. 녀석들은 줄지 않는 숫자를 무기로 삼아 끊임없이 섬멸팀을 몰아붙였다.

아니, 몰아붙이는 줄 알았는데…….

“봐라! 끝이 보인다!”

“놈들도 무한정 튀어나오는 건 아니라고!”

“조금만 더 힘내면 이길 수 있다!”

힘내라고 던진 거짓말이 아니었다.

정말로 재앙종이 연이어 쏟아져 나오던 산에서, 어느 순간부터 재앙종의 흐름이 끊어져 있었던 것이다.

끝이 보이기 시작한 섬멸팀은 그야말로 죽을힘을 다해 재앙종들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진짜 전투는 지금부터였다.

검신이 돌아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