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형님, 그냥 우리 자수하죠? 더 이상 도망 다니는 것도 힘들고, 먹을 것도 다 떨어졌고…….”
“종철이 말이 맞습니다. 이렇게 도망 다녀 봤자 잡히는 건 시간문제라고요.”
“이 상황을 역전할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닌데, 평생 이렇게 도망 다닐 생각이 아니라면 그냥 자수하고 감형이라도 받는 게…….”
2차 범좌와의 전쟁이 끝난 지금, 참전했던 대형 길드의 잔당 중 대다수는 이미 자수하거나 검거 완료된 상황이지만, 우성민과 그의 부하들처럼 꿋꿋하게 도망 다니는 사람들도 존재했다.
“이런 씨발, 나약한 새끼들! 저 새끼들이 평생 우리만 쫓을 만큼 한가할 거 같아? 요즘 세상이 얼마나 미쳐 돌아가는데 여유롭게 우리만 쫓고 있을 수 있겠냐고.”
“하지만…….”
“두고 봐. 딱 1~2년만 이렇게 존버하면 녀석들도, 개돼지 시민들도 금세 시들시들해져서 우리 따윈 까맣게 잊고 다른 일에 열중할 테니까. 우린 딱 그때까지만 버티면 되는 거야.”
우성민은 확신에 찬 얼굴로 주먹을 불끈 틀어쥐더니 살벌한 눈빛으로 부하들을 훑어보며 엄포를 놓았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또 징징거리는 새끼 있으면 특무대가 아니라 내 손에 뒈질 줄 알아. 알겠어?”
“혀, 형님……!”
“뭐냐. 종철아, 너부터 가려고?”
“쉿!”
우성민이 도끼눈을 뜨고 자신을 쳐다보자, 종철이 검지를 펴 자신의 입술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식은땀을 흘리며 주변을 경계하는 모습에 우성민도 절로 자세를 낮추고 사방을 살폈다.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은 전라북도 평암시 외곽의 깊은 산중.
버려진 자연인의 폐가를 임시 아지트 삼아 불도 켜놓지 않고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야밤에 이런 곳을 누가 찾아올까?
“추격팀이냐?”
당연히 자신들을 쫓고 있는 특무대의 추격팀일 것이다.
그런데 무리 중에서 가장 감각이 날카로운 종철의 대답이 이상했다.
“이건…… 사,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요?”
“뭐?”
“그, 그럼 지나가던 산짐승이겠죠. 멧돼지라든가, 고라니라든가…….”
다른 녀석의 말에 종철은 사색이 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 치고는 너무…… 많은데?”
흠칫!
종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들의 감각에도, 밖에서 접근하는 수많은 무리의 흉포한 살기가 느껴졌다.
우성민은 다급하게 반쯤 박살 난 창문 밖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 순간, 그의 눈이 이쪽을 향해서 다가오는 수많은 흉흉한 눈빛들과 마주친 것이 아니겠는가?
“튀, 튀어!”
다짜고짜 튀라는 우성민의 말에 두 번 생각 안 하고 그의 부하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한편, 종철은 달리던 도중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드는데…….
“예! 거기 특무대죠?”
그것은 다름 아닌 스마트폰이었다. 만약을 위해 전원을 끈 상태로 가지고 다니고 있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자 가릴 처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너, 이 새끼! 폰을 왜 가지고 있어? 내가 분명 다 버리라고 했잖아!”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이러다 다 죽게 생겼는데!”
이렇듯 본의 아니게 숨어 있던 수배자들의 빠른 신고로 특무대가 늦지 않게 출동할 수 있었다.
* * *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는 놈들은 동선 체크 확실히 해서 분산됐을 때 섬멸하고, 도로 봉쇄는 철저히 한다. 여기서 고속도로를 따라 30km만 가도 민가가 나오는 거 알지?”
“예, 사령관님!”
섬멸부대 사령관인 이금찬 중장이 현장에 직접 출동하여 부대를 진두지휘하자, 대원들의 사기와 긴장도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사령관님께서 직접 현장에 오시다니, 별일이네요?”
“그만큼 특수하거나 위험한 작전이라는 거겠지. 혹은 둘 다거나.”
팀원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장비를 점검하며 임무 개요를 살펴보던 이선호는 자신을 찾아와 말을 건네는 후배, 107팀 팀장 함지은을 돌아보지 않고 대꾸했다.
“이번에 수배자들이 목격한 재앙종들 말입니다. 단순한 떠돌이는 아니겠죠, 선배?”
“떠돌이라고 하기에는 현재 파악된 숫자만 해도 너무 많아. 심지어 지금도 증가하는 추세고. 이건 단순한 떠돌이가 아니야.”
재앙종들에 대한 대처가 미흡했던 초기에는, 게이트에서 출현하는 재앙종을 해결하지 못하고 그대로 놓치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렇게 풀려난 재앙종들은 떠돌이가 되어 전국을 초토화했고, 지금도 그 상처 대부분이 복구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대다수 떠돌이는 특무대 전력을 증강하면서 차근차근 처리했고, 근래 몇 년 사이에 발생한 재앙종 중에서 떠돌이가 된 놈들의 비율은 고작 5.7%. 그마저도 일주일 이상 버틴 녀석들은 1%가 되질 않아.”
“그만큼 우리 동료들이 갈려 나가긴 했지만요.”
“그만큼 시민들을 지킬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
“하여간 누가 그분 의동생 아니랄까 봐…….”
함지은은 피식 웃으며, 고지식하고 사명감 넘치는 선배의 대답에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말을 정리하자면, 현재 대한민국에 남아 있는 모든 떠돌이 재앙종들을 긁어모아도 저 산에 웅크려 있는 재앙종들만큼 모으지는 못해. 게이트가 출현했다면 모를까.”
“하지만 이 일대에 게이트 발생 시그널은 없었잖아요?”
“그러니까 위쪽에서도 골치 아픈 거겠지. 이금찬 사령관님이 직접 찾아오신 이유이기도 할 거고. 아니면…….”
“아니면?”
그때였다.
웨에엥! 웨에엥!
“출동이다!”
“휴식 끝났다. 서둘러 움직여!”
붉은 경보기가 작동하며 요란하게 사이렌이 울리자, 이선호와 함지은은 팀원들을 이끌고 서둘러 바리케이드로 집결했다.
거기에는 정비를 마친 것인지, 어느새 엄청난 무리의 몬스터들이 산사태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쿠구구구구구구구!
크어어어어!
크르르!
아우우우우!
다양한 울음소리와 함께 지축을 울리며 쏟아져 내려오는 그것들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얼어붙을 것 같은 흉성을 띠고 있었다.
이내 산사태처럼 쏟아져 내려온 녀석들이 파도가 되어 바리케이드를 덮쳤다.
“가자!”
“괴물 놈들을 쓸어버려라!”
“섬멸팀의 의지를 보여 줘!”
섬멸팀은 함성으로 용기를 북돋우며 재앙종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곧이어 재앙종들의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이 사방에서 난무하고, 특무대원들의 오러가 빛을 뿜었다.
현장은 금새 전장이 되었다.
수백 마리가 넘는 재앙종들과 수백 명이 넘는 섬멸부대가 서로의 목숨을 뺏고 빼앗으며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전황을 이어 나갔다.
촤악! 서걱! 빠각! 으드득!
사방에서 살점과 내장, 찢긴 사지가 난무하고 피보라가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허억, 허억……!”
광기와 살기에 번들거리는 재앙종의 붉은 안광에 압도당해 한 신입 대원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돌덩이처럼 굳은 몸뚱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고, 이내 녀석을 발견한 재앙종의 거대한 주먹이 그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이런 병신이……!”
콰직!
“크아악!”
“티, 팀장님!”
자신의 팀원을 구하기 위해 몸을 날린 팀장 한 명이 신입의 목숨을 구한 대가는 너무나도 컸다.
허리가 박살 나며 내장이 그대로 으깨진 팀장은 피를 토하며 즉사했고, 그 모습에 더욱 얼어붙어 버린 신입 대원 역시 팀장의 뒤를 그대로 따라갔다.
대장의 희생으로 각성한 부하의 통쾌한 복수극처럼 영화 같은 이야기는 이 잔혹한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오로지 살육과 비명, 피와 죽음만이 이곳에 존재하는 전부였을 뿐이다.
“크윽!”
그그그극……!
함지은이 달려든 재앙종의 뼈칼을 흘리자, 칼날을 따라 불똥이 튀었다.
서걱!
뼈칼을 완전히 흘려보낸 함지은은 있는 힘껏 달려든 녀석의 머리통을 베어냈지만, 승리에 취할 사이도 없이 바로 다음 녀석의 움직임에 집중할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싸웠을까?
“둥글게 방진을 만들어서 로테이션으로 휴식하자. 이대로는 우리 모두 얼마 못 버티니까.”
정신없이 싸우던 와중에 등을 맞댄 온기와 목소리가 이선호의 것임을 깨달은 함지은이 크게 소리쳤다.
“이 정도로 버텼으면 위원장님께서 오실 때도 되지 않았을까요, 선배?”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서걱!
이선호는 달려드는 재앙종 세 마리의 목을 한꺼번에 베어내며 대꾸했다.
“가장 위험한 곳에 가장 앞장서 주시는 분이 위원장님이잖아요. 그런데 오늘은 도착하실 때가 넘었는데도 보이지 않는 게 이상해서요. 혹시 그분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함지은도 지지 않겠다는 듯, 달려드는 개 형태의 재앙종을 썰어 버리면서 되물었다.
“나도 몰라. 다만 내 생각이 맞는다면……. 아마 대답을 듣지 않는 게 더 좋을 수도 있을 거다.”
“그거, 꼭 들어 달라는 말이죠, 선배?”
“하여간…….”
쾅!
이선호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젓더니, 달려드는 재앙종의 공격을 막아 내며 대답했다.
“아마 형님은…… 그러니까 초장에 현장에 도착하셨을 거다.”
“네? 그럼 왜 지금까지 도와주시지 않고…….”
“주변을 둘러봐라.”
이선호의 말에 주변 상황을 둘러보던 함지은은 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다.
“위원장님! 어디 계십니까? 이러다 다 죽겠습니다!”
“젠장! 위원장님만 오셔도 이런 새끼들은……!”
“위원장님! 위원장님!”
분노, 절망, 안타까움, 두려움, 간절함 등등.
수많은 감정이 뒤섞인 그들의 애타는 외침은 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었다.
윤수호.
지금 섬멸팀은 절대자의 등장만을 애타게 바라면서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이게 무슨……?”
“이제 느꼈냐? 이게 섬멸팀의 현주소다.”
“…….”
그랬다.
싸우는 게 아니라 버티고 있었다.
“자기 목숨을 최대한 아끼며 방어적으로…… 그러다 보면 언젠가 형님이 와서 처리해 주겠지. 그런 × 같은 마음가짐으로 싸우는데 이길 턱이 있나.”
그의 말처럼 산에서는 재앙종들이 쏟아져 내려오는데, 섬멸팀 대원들은 애초부터 이길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
특무대의 꽃이자 엘리트 부대라고 불리는 섬멸팀의 정예 부대원들이 그 실력에 맞지 않게 허망하게 목숨을 잃는 경우도 대다수였다.
“저도 양심에 찔려서 할 말이 없네요. 그럼 아까 선배가 생각한, 사령관님이 직접 이 현장에 참전하신 이유도 설마…….”
“아마 십중팔구 형님을 제지하기 위해서겠지. 그리고 형님은 사령관님의 말씀을 수용해 주셨을 거다. 섬멸팀이 타성에 젖어 가는 걸 누구보다 강하게 느꼈을 두 분이실 테니까.”
촤악!
정면에서 달려드는 재앙종을 베어낸 이선호의 눈에, 재앙종을 앞에 두고 도망치는 대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것도 한둘이 아니었다. 몇 명이 도망을 치기 시작하자,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이 흔들린 다른 대원들이 그들을 따라 도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에도 물론 이런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처럼 심각하지는 않았다.
“하아, 하아……!”
이선호는 거칠게 호흡을 몰아쉬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느끼기에 확실한 것은, 이 전쟁의 승패와 상관없이, 지금 이 상황은 분명한 섬멸팀의 위기라는 사실이었다.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