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돌아왔다-68화 (68/175)

68.

그렇다면 김명치의 선택지는 한 가지뿐이다.

“황철이라는 길드가 있는데, 우리가 입수하는 가출팸 애들은 전부 그쪽으로 공급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그쪽에서 가출팸을 비롯한 고아들의 수요가 늘었으니까요. 거기서 가출팸이나 고아들을 모아서 무슨 짓을 하는지 전 잘 모릅니다. 관심도 없고요. 정말입니다! 어차피 우리야 돈만 받고 물건만 건네주면 되니까요.”

“정확한 위치는?”

“저, 저도 모르죠! 저도 청량구에서 녀석들이 지정해 주는 위치를 찾아가 거래를 했을 뿐이니까요. 애초에 길드 녀석들이 자기들 아지트를 그리 쉽게 알려 줄 리도 없고…….”

‘황철이라…….’

지금까지 살아남은 길드라면 2차 범죄와의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중소 규모의 길드거나 아예 신생 길드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박 팀장. 들려?”

-네. 위원장님.

“아무래도 가출팸이나 고아들을 전문적으로 밀매하는 길드가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을 전문적으로 밀매하는 길드요?

박여진의 놀람과 분노가 무전기 너머에서도 전해졌다.

그녀가 가출 청소년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진 것도 물론 있지만, 그녀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의 상식으로 아이들을 이용해서 범죄를 저지르는 건 악질 중의 악질이기 때문이다.

비사 길드가 대형 길드 중에서도 가장 크게 지탄 받은 이유 역시, 그들이 아이들을 범죄에 이용했기 때문이 아닌가?

“일단 이 녀석을 이용해서 놈들의 아지트를 알아내야겠다. 그리고 가출팸을 이용하는 다른 조직들이나 관계자들도 싹 다 파악해서 잡아 처넣어야지.”

-알겠습니다. 그럼 이쪽에서도 인원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 * *

“응? 거래 일자도 아닌데 이 새끼가 무슨 일이지?”

황철 길드의 길드원이자 브로커 최영만은 난데없이 걸려온 김명치의 연락에 어리둥절하면서도 전화를 받았다.

“어, 김 사장. 오랜만이야.”

-최 실장님,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잘 지낼 리가 있나? 요새 우리 같은 놈들은 숨 한번 편하게 쉬기 힘든 세상인데. 그래. 거래날짜도 아닌데 웬일로 전화를 다 했어?”

-그게……. 요 근래 특급 품질의 아이들이 들어와서 말입니다.

“특급 품질?”

-알터로 각성한 애들은 열 배로 비싸게 쳐 주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이번에 무려 열 명이나 물건이 들어왔는데, 이 애들이 딴맘 먹기 전에 빨리 처분하고 싶어서 말입니다.

“알터로 각성한 애들이 열 명이나?”

최영만이 깜짝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지금까지 알터로 각성한 아이들은, 보수에 비해 위험도가 높은 특무대보다 큰돈을 만질 수 있는 길드를 택하는 아이들의 비중이 훨씬 높았다. 세상이 멸망해 가는 와중에 나라를 위해서 입대하느니, 크게 한탕 벌고 자유롭게 살고 싶은 검은 욕망이 더 컸던 탓이다.

그러나 범죄와의 전쟁 이후, 그들이 선망하던 대형 길드들이 한꺼번에 무너졌다. 그와 동시에 길드의 입지가 위축되면서, 자연스럽게 길드로 향하던 알터 아이들의 발걸음 역시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지금 어지간한 길드들은 인력난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황철 길드 역시 마찬가지.

그런 상황에서 알터로 각성한 아이들을 열 명이나 판다니, 군침이 돌지 않을 수 없을 터였다.

“그거, 확실한 거지? 아무리 김 사장이라도 구라면 가만 안 둬.”

-보면 바로 탄로 날 거짓말을 제가 왜 하겠습니까? 장소와 시간만 말씀해 주시면 제가 확실히 데리고 가겠습니다.

“알았어. 그럼 장소는…….”

그렇게 장소와 시간을 알아낸 김명치가 떨리는 눈빛으로 전화를 끊고 윤수호의 눈치를 살폈다.

“시, 시키는 대로 다 했습니다. 그럼 저는 이제…….”

“일단 가서 보자고. 그쪽에서도 당신 얼굴은 확인해야 안심하고 모습을 드러낼 테니.”

윤수호는 김명치와 함께 약속한 시각, 약속한 장소에 도착하였다.

놀랍게도 그곳은 강남의 어느 클럽 하우스였다.

늦은 밤에도 사람이 북적이는 이곳에서 인신매매를 한다는 게 놀랍기 그지없지만, 윤수호는 오히려 수긍했다.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오고 가도 눈에 띄지 않는 곳. 여차하면 인파 속에 몸을 숨겨 달아날 수 있는 데다, 최악의 상황에서는 많은 일반인을 인질로 삼을 수도 있겠지. 머리를 잘 썼군.’

클럽에 들어가자 평소에도 김명치를 자주 본 웨이터가 능숙하게 그에게 접근하여 안내했다.

“김 사장님, 또 오셨네요. 그런데 옆에 일행분은…….”

웨이터가 옆에 있던 윤수호를 가리키며 묻자, 김명치가 눈치를 살피며 말을 더듬었다.

“보, 보면 몰라? 경호원이잖아, 경호원! 나, 참! 웨이터면 웨이터답게 눈치가 있어야지.”

“……!”

웨이터 역시 황철 길드의 길드원이었다. 그는 김명치가 조용히 보내는 사인을 눈치채고는 태연하게 연기를 이어 나갔다.

“아,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최 실장님께서는 2층 VIP 룸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올라가 보시죠.”

“그래, 수고하고.”

웨이터가 몸을 비켜 열어 준 길로 윤수호와 김명치가 지나가자, 그는 단숨에 눈빛을 바꾸고는 품속에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

“그래, 나다. 2층으로 김명치가 날벌레 한 마리를 달고 왔다. 김명치는 살려 두고 날벌레는 신속하게 처리하도록.”

한편 2층으로 올라간 윤수호와 김명치는 웨이터의 무전을 받고 복도를 가득 채운 황철 길드의 길드원들과 마주했다.

“웨이터가 제법 눈치가 좋은 녀석이었던 모양이군. 네가 보낸 사인을 놓치지 않고 이렇게 환영 인사까지 준비한 걸 보면 말이야.”

“……!”

김명치는 순간 입 밖으로 심장이 튀어나올 만큼 놀랐지만, 애써 진정하며 속으로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아무리 그래도 상대는 황철 길드의 길드원들 50명이다. 정의감에 미쳐서 날뛰는 어중이떠중이 알터 한 명 정도야 쉽게 요리할 수 있을 터였다.

그렇게 정확히 5초가 지났다.

“죄, 죄송합니다, 선생님! 제가 감히 귀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헛짓거리를……. 제발 목숨만……!”

떡대들을 쓰러트리는데 1초, 떡대의 와이셔츠로 주먹에 묻은 피를 닦는 데 4초를 소비한 윤수호.

김명치는 곧바로 그 자리에 대가리를 박더니 목에 피를 토할 기세로 소리치며 자신의 죄를 고했지만, 윤수호의 관심은 그에게 있지 않았다.

김명치를 기절시키고 방에 도착한 윤수호.

그러나 눈치를 채고 도망친 것인지 최영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룸에 남은 거라곤 굴러다니는 양주와, 잔뜩 겁에 질린 여자들뿐이었다.

“여기 있던 녀석은?”

“가, 가셨는데요?”

윤수호의 질문에 여자들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잔뜩 겁에 질린 그녀들은 성인이라기엔 뭔가 앳되어 보였다.

이 방은 VIP 룸이다. 문을 닫으면 방음은 완벽할 테니, 밖에 소란을 듣고 겁에 질린 것을 아닐 터였다.

“혹시 너희들도 집에 돌아갈 수 없는 아이들이니?”

“그, 그게…….”

“야, 조용히 해!”

윤수호의 눈치를 살피며 대답을 망설이는 아이들.

이런 끔찍한 곳에서조차 집에 돌아가는 것만큼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아이들의 표정이 훤히 보였다.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서, 선생님, 저는 어떻게…….”

퍽! 털썩.

문을 닫고 나온 윤수호는 더 이상 필요 없어진 김명치를 기절시킨 후, 박여진에게 연락하여 이곳에 대한 상황을 설명했다.

“수거해야 할 쓰레기들과 가출팸으로 추정되는 소녀들이 있다. 상당히 겁에 질린 모양이니 잘 타일러서 대처할 수 있도록.”

-예. 위원장님.

통화를 마친 윤수호는 곧장 방에 남아 있는 최영만의 기척을 쫓아 기감을 펼쳤다. 다행히도 도망친 지 얼마 되지 않은 녀석의 기척이 근처에서 느껴졌다.

그 순간.

윤수호의 모습이 사라졌다.

* * *

경기도 지흥시 상도동.

지리적으로 북한과 가까운 이곳은 우리나라에서도 인구수가 가장 적은 곳 중 하나였다.

그렇다 보니 재앙종 사태가 일어나자 가장 먼저 버려진 도시 중 한 곳이 되었다. 이후 한동안 사람의 출입이 뜸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이곳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한 사람들이 있었다.

황철 길드.

서울의 이권 싸움에서 밀려난 그들은 이곳에 터를 잡고 서울 복권을 위해서 세력을 키우는 길드였다.

그들의 주력 사업은 가출팸이나 고아 같은 버려진 아이들이었다. 세상의 관심에서 벗어난 아이들을 신경 써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에 반해 활용 가치는 무궁무진한 아이들.

그리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이런 외딴 지역에 터를 잡은 황철 길드야말로 길드장 황철에게는 자신의 이상향이자 왕국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언제나 변함없을 것 같았던 왕국에 대이변이 발생했다.

쾅!

“야, 이 새끼야! 넌 노크도 없이……!”

“지, 지금 이럴 때가 아닙니다, 형님! 특무대 놈들이 떴다고요!”

“뭐?”

“난데없이 들이닥쳐서, 지금 공장부터 훈련소까지 닥치는 대로 들쑤시고 있습니다! 어서 피하셔야 합니다!”

부하의 다급한 외침에 황철은 대략 정신이 멍해졌다.

그의 말처럼 황철 길드의 자금줄이라 할 수 있는 공장, 훈련소, 교육소, 수술동 모두 특무대의 기습을 받아 초토화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실시간으로 윤수호에게도 무전을 통해 전해지고 있었다.

-위원장님, 공장 제압 완료했습니다. 이 새끼들 여기서 애들을 이용해 마약을 제조하고 있었던 모양인데요? 중독된 아이들의 숫자가 상당합니다. 즉시 의료진 호출하도록 하겠습니다.

-수술동도 제압 완료했습니다. 아무래도 공장에서 일하다 중독된 아이들을 여기서……. 씨발! 역겨워서 말도 안 나오네. 위원장님, 그냥 이 새끼들 다 죽여 버리면 안 됩니까? 살아 있을 이유도, 가치도 없는 악마 같은 새끼들인데…….

-교육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미친 새끼들, 여자애들만 모아놓고 성 접대를 가르치는데, 이게 말이 됩니까? 심지어 제 딸보다 어린애도 있었다고요! 씨발!

-훈련소 제압 완료했습니다. 여기서는 알터로 각성한 남자애들과 비각성 남자애들을 구분해서 전투원으로 육성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이 배운 대로 자기 목숨은 도외시하고 칼부터 들이미는데……. 아무래도 이 개새끼들이 세뇌를 단단히 시켜 놓은 모양입니다. 이것들, 사람이 아닙니다.

각 섹션의 제압을 완료한 특무대 팀장들로부터 전해지는 보고와 감정들에 윤수호는 짧게 대답했다.

“적들의 저항이 거세다면 어쩔 수 없죠. 지금부터 제압 작전을 섬멸전으로 이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윤수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할 팀장들이 아니기에, 그들은 나직하게 대답한 이후 명령을 이행했다.

한편, 윤수호 역시 때마침 혼자서 어떤 무리와 마주친 상황이었다.

길드의 정예 병력과 함께 도주하려던 황철이었다.

황철 역시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윤수호를 보고 적잖이 당황하며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뭐 해? 빨리 저 새끼 치워 버려!”

“예, 형님!”

명령을 내리고 다급히 다른 쪽으로 몸을 돌려 도망치려는 황철. 한시가 급한 황철에게 윤수호를 신경 쓸 시간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콰콰콰콰콰콰콰!

“……!”

윤수호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날파리 같은 놈들을 향해 짐승처럼 구부린 손가락 끝을 휘둘렀다.

그러자 검붉은 빛의 흉흉한 빛깔을 띤 폭풍 같은 강기가 전방으로 휘몰아치며 황철의 부하들을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콰아아아아앙!

그것으로도 모자라 끝없이 뻗어나간 검붉은 강기의 폭풍은 이내 그들이 빠져나온 10층 높이의 빌딩조차 집어삼키더니 그대로 빌딩을 무너트려 버렸다.

이 모든 것은 윤수호가 손을 한 번 휘갈긴 것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허…….”

털썩.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진 황철은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며 윤수호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방금의 위용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한 이상, 맞서 싸운다거나 도망친다는 선택지는 애초에 그의 머릿속에서 사라진 것이다.

윤수호는 겁에 질려 움직이지도 못하는 그의 부하들을 전부 찢어 죽여 버렸다. 살아 있을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쓰레기들에 대해서 윤수호의 손속에 자비는 없었다.

그러나 황철은 달랐다.

이 모든 일의 책임자인 황철에게는 오히려 죽음조차 사면이 될 수 있었으니까.

툭툭툭.

“끄으윽……!”

황철의 이빨을 모두 부수고 손발의 힘줄을 끊어놓은 윤수호가 몇 개의 점혈을 가한 순간, 황철이 눈을 뒤집으며 게거품을 물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데, 겉보기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어 보였다.

윤수호는 그런 황철에게 조용히 입을 열었다.

“‘괴충’이라는 점혈법이다. 마교에서조차 끔찍한 죄수를 고문할 때만 사용하는 점혈법이라더군. 듣기로는 수만 마리의 개미 떼가 전신의 혈관을 따라다니며 몸속을 뜯어먹는 느낌이라고 하던데, 지금 네게 이보다 어울리는 형벌은 없겠지. 그러니 쉽게 죽을 생각하지 마라. 끈질기게 살면서 이제까지 네가 저지른 죗값을 달게 받아라.”

그렇게 황철 길드는 마무리 되었지만, 모든 일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황철 길드를 철저히 조사한 끝에 특무대와 검경이 합동으로 여기저기서 고통받는 가출팸, 고아들을 구출했고, 관련된 범죄자들을 구속했다. 그런데 그렇게 구출된 아이들의 숫자가 무려 10만 명에 달했던 것이다.

‘음, 산 넘어 산이라는 말이 딱 와닿는 순간이군.’

윤수호는 이 문제에 대해서 차차 해결책을 찾아보기로 생각하며, 당장은 고통받는 아이들을 구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검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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