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자. 그럼 마무리를 지어 보도록 할까.”
“아뇨, 삼촌.”
“응?”
윤수호가 이번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해 김상열의 집으로 들어서려 하자, 은지한이 삼촌을 말렸다.
“이번 일은 어쨌거나 누나 친구 때문에 시작된 학교 문제잖아요. 그러니까 저랑 누나한테 마지막까지 맡겨 주시면 안 될까요?”
“지한이, 너…… 벌써 삼촌을 뒷방 늙은이 취급하는 건 아니겠지?”
“오백 살이면 솔직히 늙었다는 말도 부족한 게 사실이죠.”
은지한의 너스레에 윤수호는 피식 웃으며 조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 고맙다. 하지만 여기서부터는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야. 어른들이 아이들을 멋대로 이용해 먹었다면, 그 죗값을 치르게 하는 것도 어른들의 의무다. 개인적으로 삼촌은 더 이상 너희가 이번 일로 마음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삼촌…….”
은지한은 자신과 누나를 걱정하는 윤수호의 진심을 엿볼 수 있었다. 실제로도 당차기 그지없는 은지연조차 이번 일로 마음에 상처를 꽤 많이 입었으니까.
물론 은지한의 심력을 은지연과 비교하는 건 아니지만, 윤수호는 어지간하면 조카 남매가 평범한 삶을 살아가길 원했던 것이다.
“네, 삼촌. 그럼 뒤를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그렇게 은지한이 떠나자 윤수호는 곧바로 박여진에게 지시를 내렸다.
“박 팀장. 이 주변으로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신경 써 주겠나?”
-예, 위원장님.
그렇게 홀로 남은 윤수호는 조카가 깽판을 친 집으로 들어가, 아직도 쓰러져 뒹굴고 있는 가출팸 무리를 확인하였다.
과연 은지한답게 아이들을 전투 불능으로 만들어 놓은 모습은 깔끔하면서 확실했다.
그때였다.
“수호 형!”
“동수구나.”
화장실에 숨어 있던 한동수가 밖이 조용해졌음을 깨닫고 방으로 나오자, 마침 들어오던 윤수호와 눈이 마주친 것이다.
“미안하다, 이런 위험한 일을 부탁해서.”
“아뇨, 저도 뿌듯했어요. 형이 구한 아이, 혹시 보셨어요?”
한동수의 질문에 윤수호는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한동수 역시 어두워진 낯빛으로 말을 이었다.
“그 녀석, 형이 서둘러 찾지 않았다면 아마 크게 다치거나 죽었을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무사하고, 그 여자애도 분명 무사할 테니까.”
윤수호는 피식 미소를 그렸다.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자신을 위로하는 한동수가 꽤나 의젓하고 기특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 고생했다. 그리고 밖에서 잠시만 기다려 줄래? 너희들이 꼭 해 줬으면 할 일이 하나 더 남아 있거든. 걱정 마라. 그건 그렇게 위험한 건 아닐 테니까.”
“물론이죠. 형! 아, 참! 그리고 이 녀석이 이 가출팸의 큰형이에요. 이름은 김상열. 강남에서는 그래도 알아주는 가출팸의 큰형인데, 여기 말고도 이 녀석이 관리하는 팸이 몇 개 더 있어요. 우리 팸도 그중 하나였고요.”
그렇게 한동수는 쓸 만한 정보 하나를 남겨 두고 밖으로 나가 대원들의 보호를 받았다.
한동수가 나가자 윤수호는 기절한 척 누워 있는 김상열의 멱살을 가볍게 잡아 공깃돌처럼 번쩍 들어 올렸다.
“기절 안 한 거 다 알고 있으니까 순순히 대답하는 게 좋을 거다, 핏덩아. 네 뒤에 어떤 놈들이 있건, 그놈들이 지금 많이 짜증이 난 나보다 위험하진 않을 테니까.”
윤수호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이들 때문에 은지한이 하지 않아도 될 쓴소리를 누나에게 했고, 그 때문에 남매와의 관계가 몹시 서먹해진 것도 사실이었다.
게다가 조카들과 같은 또래에 같은 처지이면서, 오히려 자신들 같은 불쌍한 아이들을 이용하고 괴롭히는 이들의 못된 행태에 참을 수 없는 구역질을 느꼈다.
“내, 내 뒤에 있기는 뭐가 있다고…… 그러세요……. 저는 정말 그냥 가출한 애들이 길거리에서 비참하게 지내는 게 안타까워서…….”
김상열의 대답에 윤수호는 차가운 눈빛으로, 말없이 옆에서 불안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던 김상열 무리 중 한 명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녀석의 엄지를 쥐더니 나직하게 물었다.
“저 녀석의 말이 사실이야?”
“그, 그게…….”
으드득!
“끄아아악! 거짓말이야! 저 새끼, 순 개구라라고요! 아아악!”
‘저 개새끼가……!’
꺾인 손가락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며 고통을 호소하는 녀석을 보며, 김상열은 속으로 그를 원망했다.
“안 되겠다. 너는 좀 더 맞자.”
“자, 잠깐만요! 그, 그게……. 커억!”
윤수호는 김상열의 머리채를 잡고 바닥을 질질 끌고 가더니, 여자애들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상열 오…….”
“……빠…….”
때마침 정신을 차린 여자애들은 김상열의 얼굴을 보자마자 반색하며 자신들을 구하러 온 줄 알았지만 이내 고개를 숙였다.
머리채를 잡혀 끌려온 상황과, 그의 머리채를 잡고 있는 윤수호의 얼음장처럼 차가운 표정을 봤기 때문이다.
거기서 김상열은 윤수호에게 정말 개처럼 처맞았다.
처음에는 자신을 따르는 여자애들 앞에서 맞는다는 수치심에 이를 악물고 참았지만, 그건 몇 초 되지 않았다.
“자, 잘못했습니다! 살려 주세요! 제발 그만……. 커억!”
이내 뼛속 깊이 파고드는 끔찍한 고통과 무자비한 폭행에, 김상열은 두 손을 싹싹 빌며 용서를 구했다.
하지만…….
“손이 움직이는 걸 보니까 아직 덜 맞았구나.”
“……!”
김상열은 결국 맞다가 기절했지만, 얼굴을 벽에 처박자 숨이 막혔는지 다시 거친 숨과 핏물을 내뱉으며 정신을 차렸다.
옆에서 그 끔찍한 광경을 지켜보던 여자애들은 저들끼리 뭉쳐 사시나무처럼 떨었고, 밖에서 정신을 차린 남자애들도 차마 움직이지 못할 만큼 몸이 굳어 버렸다.
윤수호의 몸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살기 때문이었다.
“이제 살고 싶으면 뭘 해야 하는지 알겠지?”
끄덕끄덕!
치아가 전부 부러진 김상열은 입에서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악마의 심기를 거스르면 안 된다는 생각, 그 하나뿐이었다.
“질문 하나, 네 뒤를 봐주는 녀석들의 정체와 위치. 질문 둘, 네가 알고 있는 가출팸의 위치 전부. 어때, 쉽지?”
“그, 그러니까…….”
김상열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윤수호가 원하는 모든 정보를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이 악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였기에, 거짓을 꾸미거나 둘러댈 정신머리도 존재하지 않았다.
털썩…….
알아낼 것을 전부 알아낸 윤수호가 녀석을 놓아주자, 김상열이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에 윤수호의 시선이 옆에 있던 여자애들에게로 옮겨 갔다.
흠칫!
“……!”
그녀들은 윤수호의 시선이 자신들에게 향하자 소리 없이 울며 더욱 서로를 바짝 끌어안았다.
차라리 소리라도 지를 수 있으면 마음이라도 편할 텐데……. 아파서 비명을 질렀다는 이유만으로 더 세게 처맞던 김상열의 모습을 생각하면 숨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은지연에게 당해 부러져서 퉁퉁 부은 팔다리 밑으로 흘러나온 액체가 방바닥을 적시며 시큼한 냄새가 순식간에 퍼졌다.
“너희는…….”
히끅!
“너희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거 같지?”
윤수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들을 내려다보는 윤수호의 표정은 얼음장처럼 차갑고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너희들에게 상처를 준 세상에 복수하며 살아도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거지?”
“……!”
“하고 싶으면 해. 하지만 지금 너희가 해 온 건, 그냥 너희 같은 희생양을 데려와 너희가 당했던 짓을 똑같이 분풀이하고 있는 것뿐. 그건 복수가 아니야, 병신 짓이지. 이제 그 대가를 치러야 할 때가 찾아온 거고.”
윤수호가 신호를 주자 요원들이 집 안으로 들어와 아이들을 체포하기 시작했다.
윤수호에게 잔뜩 겁을 집어먹은 아이들은 순순히 체포에 응해 끌려갔다.
* * *
윤수호가 주도하여 정리한 2차 범죄와의 전쟁 이후, 서울의 치안은 몰라볼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일단 항상 인력이 부족했던 대테러 부대에 큰 여유가 생기면서, 대원들이 충분한 휴식을 취할 시간이 생긴 것이 가장 컸다. 몸과 마음을 완전히 충전한 채로 근무에 임하는 대원들의 사고는 그 전보다 훨씬 줄어들었고, 윤수호의 활약으로 지원자는 늘어나면서 인원이 크게 확충된 것이다.
바꿔 말하면 범죄로 먹고사는 길드와 조직들에겐 이만한 악재도 없었다.
강남 품평구 일대를 주름잡던 멸치파도 마찬가지였다.
잘나갈 때 그들은 구역 안에서라면 심지어 경찰들 앞에서도 목에 힘을 주고 다니던 녀석들이었지만, 이제는 밤이 아니면 외출조차 못할 정도로 세력이 크게 줄어 버린 것이다.
“하아, 씨발……. 대체 어쩌다 우리가 이런 꼴이 됐냐?”
“그러게. 왕년에는 경찰들도 우리 눈을 못 마주쳤는데. 니미…….”
패악질을 일삼던 왕년을 떠올린 조직원들은 향수에 젖어 다시금 자신들의 세상이 돌아오길 간절히 바랐지만…….
애석하게도 그들은, 설령 그런 날이 오더라도 자신들은 즐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응? 뭐야, 이 새끼는? 여기가 어디라고…….”
“보아하니 위장 간판에 속아서 찾아온 새끼 같은데, 지금 특무대나 짭새한테 걸리면 골치 아프니까 확실히 겁주고 돌려보내. 혹시라도 틀어질 것 같으면 조용히 처리해서 묻어 버리든가.”
“예, 형님.”
CCTV로 입구를 감시하던 조직원들은 한 남자가 대놓고 자신들의 본거지에 들어서자 빠르게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이런 미친……!”
“야! 빨리 애들 소집해! 비상이다!”
CCTV로 지켜보고 있던 조직원들은 크게 당황했다. 남자를 협박하라고 보낸 녀석들이 되레 그에게 어이없이 당해 쓰러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평범한 남자가 아님을 직감한 멸치파의 조직원들이 전부 소년을 막기 위해 집결했지만…….
콰앙!
“뭐, 뭐야? 누가……!”
“멸치파의 두목, 김명치가 누구지?”
“…….”
박살 난 문 너머에서 찾아온 윤수호를 보고 멸치파의 두목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윤수호가 지나온 길 뒤로 부하들의 시신이 처참하게 널브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형님! 뒤로 물러서십쇼! 위험한 놈입니다!
“꼬, 꼼짝 마! 거기서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면 바로 쏜…….”
촤악! 퍼억!
김명치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눈앞의 사내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방금까지 멀쩡하던 자신의 부하 둘 중 한 명은 머리가 터지고, 한 명은 몸통이 반으로 갈려 죽어 버린 것이다.
‘단순한 알터가 아니다! 씨발! 저런 괴물 새끼가 나한테 뭐 먹을 게 있다고…….’
마른침을 삼키며 두 눈을 부릅뜬 김명치에게, 윤수호가 차분히 질문했다.
“네가 강남에서 제법 많은 가출팸을 관리하고 있다지? 너 말고 가출팸을 조직적으로 관리하는 녀석들, 그리고 아이들을 납품하는 곳까지 알아야겠다.”
“그, 그건…….”
푹!
김명치의 대답이 잠깐이라도 늘어지자 윤수호는 망설임 없이 그의 쇄골에 오다가 주운 나이프를 박아 넣어 주었다.
“끄아아악!”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나는 분명 알아야겠다고 말했다. 질문이 아니라.”
“……!”
윤수호의 눈을 마주하는 순간, 김명치는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말 한마디에 따라 여기가 자신의 무덤이 될 수도 있음을…….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