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돌아왔다-65화 (65/175)

65.

-가출요?

“그래.”

전화를 통해서 자신이 알고 있는 상황을 그대로 박여진에게 전달한 윤수호.

그에 박여진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더니 대답했다.

-여고생이라면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예요. 그런 상황에서 어머니가 집을 떠나고 아버지랑 둘이 살고 있었다면, 아버지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았을 거고요. 형제가 없다면 특히 더 그럴 수 있죠. 그런 상황에서 믿었던 유일한 가족이 자신에게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르려고 했다면…….

박여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경찰에 신고 들어온 건 없다고 하셨죠?

“없다더군.”

-이유는 두 가지일 거예요. 그런 아버지라도 잡혀 들어가면 정말로 자신은 혼자 남게 된다는 두려움. 그리고 다른 하나는 어른들에 대한 불신이죠.

“어른들에 대한 불신?”

-가장 믿었던 어른인 아버지가 그런 짓을 저지르려고 했는데, 생판 모르는 어른들을 어떻게 믿겠어요? 설령 경찰이라고 해도요. 하지만 하루만 밖에서 지내봐도 알 거예요. 미성년자는 혼자서 살아가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그리고 그런 아이들에게 다가와 악마처럼 유혹하는 애들이 있죠.

“설마 가출팸?”

-맞아요. 가출팸은 운영하는 아이들과 가입하는 아이들의 목적이 서로 다른 집단이에요. 가출팸을 찾는 아이들은 집 대신 먹고 잘 수 있는 곳을 원하지만, 가출팸을 운영하는 아이들은 데리고 있는 아이들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게 목적이니까요. 저는 지금 거의 다 도착했는데 위원장님은 어디세요?

“나도 거의 도착했다. 그럼 만나서 자세한 얘기를 나누도록 하지.”

통화를 끊은 윤수호는 빠르게 하늘을 날아 서울로 돌아왔다.

서울로 돌아온 그가 찾은 곳은 다름 아닌 나무그늘 청소년 쉼터였다.

“위원장님!”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지?”

쉼터에서 박여진과 만난 윤수호는 곧장 그녀에게 방법을 물었고, 박여진은 미리 차순옥에게 부탁해 소집한 아이들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지금은 이 아이들의 도움이 누구보다 필요해요. 어쩌면 경찰이나 수색팀보다 더요.”

박여진의 말에 곁에 있던 차순옥이 말을 더했다.

“여진 자매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가출팸을 이끄는 아이들은 소위 큰형, 큰오빠, 큰누나, 큰언니라고 불리는데, 이 아이들 역시 미성년자가 대부분이죠. 가출한 아이들이 어른들은 믿지 않아도 또래 형, 누나들은 믿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하지만 결국 가출팸을 이끄는 아이들 또한 미성년자예요. 아이들을 먹이고 재우려면 집과 식량이 필요한데, 그 아이들도 미성년자들이라 부모님의 허락 없이는 돈을 벌 방법이 마땅치 않죠. 그래서 자신이 데리고 있는 아이들을 범죄에 이용하는 거고요.”

“그게 사실이니, 동수야?”

윤수호는 박여진과 차순옥의 말을 듣고 한동수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한동수는 다소 무거워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보통 남자애들은 사람을 때리고 협박하거나, 위험한 물건을 옮기는데 주로 끌려가요. 미성년자라 잡혀도 크게 문제가 없어서 그렇대요. 여자애들은 돈을 받고 몸을 파는 경우가 대부분이고요.”

한동수는 지난날을 떠올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저도 가출팸을 꽤 많이 전전했는데, 다 그런 일을 시켰어요. 하기 싫다고 거절하면 그날은 온종일 큰형에게 맞고 물 한 모금 못 마셨어요. 그렇게 맞다가 죽는 애들도 몇몇 봤고요. 여자애들 같은 경우에는 실수로 임신이라도 하면 가출팸에서 쫓겨났어요. 임신을 하면 돈을 못 번다는 이유로요…….”

윤수호는 이들 덕분에 가출팸에 대한 생리에 대해서 잘 알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박여진이 이 아이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한 이유도 이해할 수 있었다.

“결국 가출팸은 대부분이 범죄 집단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인데……. 그렇다면 수색팀이나 경찰들이 쉽게 찾아내지 못할 거라는 말도 이해가 되는군. 포주들이 애초에 단속해 놓을 테니까.”

“말씀하신 대로에요. 포주라고 해도 가출 청소년이다 보니까, 같은 처지의 아이들이 뭘 가장 두려워하는지 잘 알고 있죠.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걸 가장 두려워해요. 하지만 경찰을 만나면 집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필사적으로 피하고 숨어 다니죠.”

“게다가 미성년자들이 운영하는 가출팸은 보통 대포 통장을 쓰거나 노숙자들에게 명의를 사서 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단시간 내에 찾기도 힘들고요.”

윤수호는 고개를 끄덕인 후 한동수에게 시선을 돌렸다.

“동수야, 너 혹시 가출팸 좀 알고 있니?”

“물론이죠. 강남에 있는 가출팸 중에 제가 모르는 곳은 없을걸요. 만약 있다고 해도 최근 우리 쉼터로 들어온 애들이 있으니까, 걔들한테 물어봐도 되고요.”

아닌 게 아니라 윤수호의 빵빵한 지원과 차순옥의 노력 덕분에 쉼터는 예전의 활기를 되찾은 것도 모자라, 자매결연을 맺은 청소년 보호 센터들 또한 활발하게 운영 중이었다.

그리고 어디서 소문이 퍼졌는지 모르겠지만, 윤수호가 관심을 가지고 후원하는 쉼터라는 소문이 돌자 지역 단체장들과 기관에서도 더욱 신경을 썼다. 덕분에 최근에도 가출팸에서 도망쳐 쉼터를 찾아오는 아이들이 꾸준하게 늘어나는 추세였다.

“원장님,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무래도 이 아이들의 도움 없이는 힘들 것 같아서요.”

“좋습니다. 대신 한 가지만 약속해 주시겠습니까? 아이들을 절대로 위험에 빠트리지 말아 주세요. 그것만 약속해 주신다면 저도 동수와 아이들의 의견에 반대하지 않겠습니다.”

“약속해 드리겠습니다.”

윤수호는 굳은 각오로 고개를 끄덕였고, 그에 차순옥도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의 의지를 내비쳤다.

“동수야, 너는 어때? 형 좀 도와줄래?”

“당연하죠! 형한테 입은 은혜가 얼만데……. 걱정 마세요. 금방 찾아드릴 테니까.”

그렇게 한동수를 비롯하여 가출팸의 위치에 빠삭한 아이들이 현장 지휘부에 투입되자, 지지부진하던 수색 상황에 한층 더 가속도가 붙었다.

* * *

“아, 나! 이 쌍×이 보자보자하니까!”

콰당!

강남 가출팸중 한 곳인 상열팸의 포주, 김상열이 한 여자애를 거칠게 밀쳤다.

그러자 강하게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진 여자애가 도끼눈을 뜨고 김상열을 노려보았다. 놀랍게도 그녀의 정체는 다름 아닌 임수현이었다.

“뭘 눈깔 치켜뜨고 꼬라봐, 쌍×아. 뒈질라고. 눈 안 깔아?”

“상열 오빠, 그년 패는 건 상관없는데, 얼굴은 건드리지 마. 가격 떨어지니까.”

여자애들은 자기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커다란 아이스크림을 통째로 퍼먹으면서도 임수현에게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임수현이 집을 뛰쳐나왔을 때, 누구보다 임수현의 아픔을 공감해 주고 달래주던 바로 그 여자애들이었다.

임수현은 김상열을 노려보며 자신의 솔직한 대답을 씹어 뱉었다.

“난 분명 하기 싫다고 했어. 내가 왜 너희들 때문에 내 몸을 팔아야 되는 건데!”

“아니, 씨발! 가출해서 갈 곳 없는 년 먹여 주고 재워 줬더니 이제 와서 뻐팅기고 지랄이네. 이런 상황을 뭐라 하더라? 적 뭐시기였는데…….”

“적반하장도 유분수?”

“그래, 그거! 이 쌍×이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밥값은 해야 할 거 아니야, 밥값은!”

김상열의 억지에 임수현도 지지 않고 악다구니를 질렀다.

“난 분명 거절했어! 그런데 멋대로 끌고 온 건 너희들이잖아!”

“거절은 니미…… 내가 봤는데? 순순히 따라 오더만. 씨발×이 구라를 쳐?”

“그거야…….”

임수현은 그때 일을 떠올렸다.

저들이 자신을 처음 발견했을 무렵, 자신들의 무리에 넣기 위해 접근하여 수작질을 부렸지만, 임수현은 단칼에 거절했다. 그들을 따라가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남자애들까지 나서서 거의 반강제로 끌고 가자,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깨달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려 했지만…….

어째서인지 도와 달라는 목소리가 목에서 터져 나오지 않았다. 그냥 지나가는 어른들만 봐도 식은땀이 흐르며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던 것이다.

만약에 도와 달라고 소리쳤다가 저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라도 하면 어떡하지? 경찰에게 잡혀가면 다시 집으로 끌려가야 되는 거 아닌가?

그 순간, 자신을 겁탈하려던 아빠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고, 임수현은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이들에게 반강제적으로 끌려 왔던 것이다.

“저 × 저거, 딱 보니 처녀네. 내 말이 맞지, 언니?”

“이 와꾸에 처녀면 더 비싸게 팔아야 하는 거 아니야? 오빠. 그 언니, 처녀 맞는지 확인해 보고 맞으면 열 배로 올려. 그래도 사려고 줄을 서는 아저씨들 많을걸.”

“그 전에 일단 교육 좀 하고. 이 쌍×이 좋게 좋게 말로 하니까 영 알아먹질 못하네.”

김상열은 수건 하나를 그녀의 입에 억지로 물렸다.

“꽉 물어라, 이 갈려 나가기 싫으면.”

“……!”

그러고는 무자비하게 밟기 시작했다.

얼굴을 제외하고는 가리는 곳 없이 차고, 때리고, 밟고…….

원시적인 폭행은 잔인하고 무자비했지만, 그걸 지켜보는 아이들은 환호하고 열광했다.

‘여긴 미쳤어!’

임수현은 이곳이 지옥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밟고 때리는 김상열도 그렇고, 자신이 맞는 모습을 보며 환호하는 여자애들도 그렇고……. 이쪽과는 전혀 다른 세상인 듯 게임이나 폰에만 집중하며 신경조차 쓰지 않는 다른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딘가 크게 망가지고, 그 망가진 부분이 고쳐지지 않은 채 점점 더 멀쩡한 곳까지 망가져 가는 아이들…….

그런데 임수현을 더욱 슬프게 만드는 건, 이런 상황에서도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거나 아빠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냥 이렇게 죽어 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이제는 아픔도 무뎌질 정도로 고통에 익숙해졌다.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비릿한 피 맛이 느껴지며 숨이 넘어갈 무렵, 임수현은 눈을 감고 조용히 죽음을 기다렸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그때였다. 거칠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 것은.

쾅쾅쾅쾅!

“뭐야. 누가 왔나 본데?”

“야, 누가 멋대로 배달시켰냐?”

“아니, 배달시킨 사람 아무도 없는데?”

“오빠가 한 번 나가 봐.”

“칫!”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자신에게 모이자, 김상열이 혀를 찼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가출팸의 리더는 자신이기 때문이다.

김상열은 한 손에 야구 배트를 들고 조심스럽게 문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문에 달린 작은 창을 가리던 커튼을 걷어 방문자를 확인했다.

“뭐야, 너……. 한동수?”

“오랜만이다, 김상열. 그동안 잘 지냈냐?”

상대가 인연이 있던 한동수임을 확인한 김상열이 창문 너머로 주변을 확인하였다.

“나 혼자 왔다. 이 새끼는 여전히 겁이 많네. 너, 그래서 큰형 노릇은 어떻게 하고 사냐?”

“너 같은 병신 새끼가 신경 쓸 일 아니고요. 떨거지 애들 모아서 빌어먹고 다닌다더니, 얼굴에 개기름이 반질반질하다? 잘 먹고 지내나 봐?”

‘아직 내가 쉼터에 들어간 사실은 모르는 건가? 하기야, 우리가 남들이 신경 쓸 만큼 규모 있는 가출팸도 아니었으니까.’

다행히도 상대는 자신이 쉼터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 말인즉, 자신이 무슨 목적으로 방문했는지 상대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거 말인데……. 아무래도 내가 잘못 생각한 것 같아서.”

“뭐가?”

“애들 버리고 나라도 새롭게 출발해 보려고. 씨발! 도움도 안 되는 애새끼들 데리고 다니는데, 내가 죽겠더라. 내가 무슨 예수, 부처도 아니고……. 그래서 다시 시작해 보려는데, 좀처럼 새 팸 구하는 게 잘 안 되네.”

“너는 씨발아. 나이가 몇 갠데 너 같은 늙다리 새끼를 팸에서 받아 주겠냐? 내년이면 우리 둘 다 성인이다. 팸에서 졸업해야 할 나이라고.”

“그래서 남은 1년이라도 최선을 다해 불살라 보려고. 그래야 조직에도 눈도장 찍고 출셋길 열리는 거 아니겠냐? 옛정을 생각해서 좀만 도와주라, 친구야.”

“지랄마시고 딴 데 가라. 여기 네 자리 없다.”

김상열이 축객령을 내리고 커튼을 닫아 버리자 한동수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부탁좀 하자, 상열아! 밥 주고 재워만 주면 네가 시키는 건 뭐든 다 할게! 마음에 안 들면 그냥 패도 되고! 상열아, 어떻게 안 되겠냐?”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커튼이 걷히고 김상열이 모습을 드러냈다.

“진짜 보수는 따로 없다. 밥이랑 이불만 줄 거야.”

“당연하지! 야, 고맙다.”

김상열이 문을 열어 주자, 집 안으로 들어선 한동수가 속으로 미소를 그렸다.

상열팸은 강남에서도 알아주는 가출팸이었다. 일단 이곳에 잠입한 뒤, 내부에서 다른 가출팸들을 조사하다 보면 임수현의 행방도 금방 찾을 수…….

“……어?”

검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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