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방과 후.
담임 선생님에게 임수현의 집 주소를 알아낸 은지연은 학교가 끝나고 동생과 함께 임수현의 집으로 향했다.
“계세요?”
똑똑똑.
문을 노크해 봤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아무도 안 계신가…….”
“아니, 안에 한 사람의 기척은 있어.”
덜컥.
은지한이 문고리를 잡아 돌리자 가볍게 문이 열렸다. 처음부터 잠겨 있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자, 잠깐만! 허락도 없이 이렇게 남의 집에 들어가도 돼?”
문이 열리자 자연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서려는 동생을 보고 깜짝 놀라 은지연이 잡았다.
“문도 안 잠겨 있는데 안에 사람은 있고, 노크해도 응답이 없었잖아. 어쩌면 왜 함부로 들어왔냐고 욕먹는 게 가장 좋은 상황일 수도 있어.”
“아…….”
은지연은 은지한의 말을 곧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곳은 자기 일만도 벅차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낙후된 동네고, 다들 자기 일만으로도 벅찼다. 옆집에서 사람이 죽어 나간들 신경 쓸 사람이 과연 있을까?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
그렇게 동생의 뒤를 따라 조심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선 은지연을 가장 먼저 반긴 건 바로 불쾌한 냄새였다.
오래 묵은 곰팡내와 퀴퀴한 먼지 냄새, 한구석에 쌓여 있는 빨랫감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구린내까지 묘하게 뭉쳐서, 말로 형용하기 힘든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저씨!”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할지, 신고 들어가야 할지 망설여질 만큼 개판 오 분 전인 방에서, 은지연은 쓰러져 있는 임우택을 발견하고 서둘러 다가갔다.
“정신 차리세요, 아저씨! 괜찮아요? 어우! 무슨 술 냄새가……!”
은지연이 임우택을 챙기는 와중에 방을 스윽 훑어보던 은지한이 눈을 부릅뜨더니, 이내 차갑게 눈매를 좁히며 다른 곳을 조금 더 둘러보았다.
“술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시는 건가? 맥박도 불안정한 것 같고……. 얼른 119에 전화해야…….”
윤수호에게 살짝 배운 진맥을 활용하여 임우택의 상태를 확인한 은지연이 다급하게 폰을 꺼내 들었을 때였다.
“비켜 봐, 누나.”
“어? 야, 야!”
짝!
은지한은 누나를 옆으로 물리고는, 그대로 임우택의 멱살을 잡더니 들어 올린 것도 모자라 그의 뺨을 후려갈겼다.
우당탕, 쿵쾅!
볼품없이 날아가 구석에 처박힌 임우택의 입가에서 피가 흘렀다. 아무래도 입안이 터진 모양이었다.
“너, 미쳤어?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아저씨! 괜찮…….”
은지연은 말도 못 할 만큼 충격을 느끼며 다급히 임우택을 부축하기 위해 달려가려 했고, 은지한은 그런 누나의 어깨를 잡아 말렸다.
“미친 건 내가 아니야. 이 자식이지.”
“그게 무슨…….”
은지한은 대답 대신 턱짓으로 한 구석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임수현의 교복과 옷가지 등이 널브러져 있었다.
은지연은 동생의 분노에 이상함을 느끼며 옷가지로 다가갔다.
“우욱!”
그리고 입을 틀어막으며 헛구역질을 했다. 너무나도 역겹고 더러운 짓거리의 결과물을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서, 설마 이거……?”
“수현이 누나는 아버지랑 둘이 산다고 했지? 그럼 교복뿐만 아니라 속옷도 누나 거겠네.”
“자기 딸의 교복이랑 속옷에다 자위를 했다고? 그게 말이 돼?”
“그것만 한 건 아닌 것 같아.”
“그건 또 무슨…….”
이제는 은지한의 입에서 어떤 얘기가 나올지 몰라 두려워진 은지연이지만, 은지한은 담담하게 자신이 알아낸 정보를 바탕으로 어제 일어난 일을 추측했다.
“저기 이부자리 옆에 떨어진 폰 말이야. 켜 보니까 아무래도 수현이 누나의 폰인 것 같더라고. 근데 누나는 집에 없잖아.”
“그 말은…….”
“집 앞에 편의점을 갈 때도 폰을 가져가는 세상이야. 특히 이런 동네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신고를 위해서라도 폰은 필수고. 그걸 여기 사람인 수현이 누나가 모를 리 없을 텐데도 폰을 두고 나갔어. 바꿔 말하면 폰을 챙길 정신조차 없었다는 뜻이겠지.”
“하,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저 아저씨가 그런 나쁜 짓을 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는 거잖아? 아무리 그래도 자기 딸인데!”
이제는 거의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한 가닥 실낱같은 희망을 잡아 보려는 은지연.
임우택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은지한의 말이 사실이라면 임수현이 너무 불쌍해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은지한은 냉담하게 고개를 저었다.
“저 아저씨의 골반 부근에 생긴 멍 보이지? 저건 아무리 봐도 하루가 채 안 된 멍이야. 저 부위에 저만한 멍이 생기려면 둔기로 강하게 후려치거나, 사람이 있는 힘껏 발로 차는 정도의 충격이 필요해. 그것도 멍이 든 위치를 고려하면, 서 있는 것보다 앉아 있는 상태에서 발로 차인 거겠지.”
“야, 너! 지금 뭐 하는……!”
“아마 이런 식이지 않았을까?”
은지한은 누나를 강제로 벽에 밀어붙이더니, 누나의 발을 들어 임우택의 멍과 똑같은 위치에 가져다 댔다.
“아빠한테서 벗어나려고, 있는 힘껏 지금 발을 댄 부위를 걷어찬 거야. 저만한 체격에 술로 몸이 망가진 상태라면 쉽게 일어나서 쫓을 순 없었겠지.”
“……!”
은지연은 왈칵 눈물이 났다.
상대는 세상 누구보다 믿을 수 있는 동생이고, 단지 재연이었을 뿐인데도 순간적으로 살짝 겁이 났다.
자신이 그럴진대 임수현은 오죽했을까? 그녀가 당시 느꼈을 공포와 두려움이 조금이나마 체감이 되는 은지연이었다.
은지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말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방이 어지럽긴 하지만 외부의 침입 흔적은 전혀 보이질 않아. 내부에서 외부로 다급하게 뛰쳐나간 흔적은 보이지만.”
“이런 미친 개새끼가!”
은지연이 임우택을 향해 달려들었다. 조금 전까지는 그를 지키고 간호하기 위해서라면, 지금은 그야말로 그에 대한 분노 때문에 정신이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네가 그러고도 사람 새끼야? 어? 어떻게 자기 딸을…….”
“술…… 술 좀 가져와 줘…….”
은지연은 임우택의 멱살을 잡고 흔들며 눈물을 흘렸다.
하나 임우택은 초점이 완전히 나가 버린 눈으로 그저 흐리멍텅하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이런 짐승만도 못한 새끼가……!”
그런 임우택의 어처구니없는 모습에 은지연이 손을 들어올린 순간, 은지한이 누나의 손목을 잡았다.
“뭐야? 왜 말리는데! 이 새끼는 내 손으로 죽여 버릴 거야! 이런 짐승만도 못한 새끼는 살아 있을 가치도 없다고!”
신경질적으로 소리치는 은지연의 감정은 은지한도 충분히 이해했다.
바로 그래서 은지한은 더욱 냉정하고 침착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누나에게 지시했다.
“죽여도 내가 죽이고, 살려도 내가 살려. 그리고 우선순위를 잊지 마.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이 사람을 단죄하는 게 아니야. 수현이 누나를 찾아내는 거지. 누나가 더 위험해지거나 잘못된 길로 들어서기 전에.”
“하지만 어떻게…….”
“삼촌한테 연락해야지, 뭐. 학교 문제로 신경 쓰게 만들어 드리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번 일만큼은 별수 없잖아. 누가 뭐래도 지금은 수현이 누나의 안전이 최우선이니까. 안 그래?”
“알았어.”
굳은 각오로 고개를 끄덕인 은지연이 밖으로 나가 윤수호에게 전화하는 사이, 은지한은 류한국과 짧은 통화를 마치고 임우택과 마주 앉았다.
“수현이니? 술…… 술 좀 가져와라. 빨리 술 좀 가져오라……. 끄아아악!”
으드득, 으득!
은지한은 깡말라 도드라진 임우택의 쇄골을 손으로 움켜쥐어 힘을 주었다. 그러자 임우택의 입에서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오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너, 넌 누구야? 수현이가 아니잖아? 우리 수현이 어디 있어?”
“그건 내가 듣고 싶은 말이야, 아저씨. 지금 아저씨 딸 어디 있어? 그리고 대체 자기 딸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넌 대체 뭐야! 우리 수현이 어디 있……. 끄아아아악!”
결국 쇄골이 하나 부러진 임우택의 입에서 다시 한번 피를 토하는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은지한의 눈빛에는 자비 한 점 생겨나지 않았다.
그저 묵묵하게 반대쪽 쇄골을 움켜쥐는 은지한.
잠시 후…….
“지한아. 무슨 일이야?”
류한국과 경찰들이 도착했을 땐, 이미 임우택의 몸은 완전히 망가져 있었고 정신은 반쯤 나간 상태였다.
“류 팀장님…….”
은지한은 류한국과 형사들에게 자신이 알아낸, 어제 있었던 사실을 담담히 전달해 주었다.
“뭐? 그게 사실이냐?”
“이런 미친! 당장 서로 연행해!”
그러자 처음에는 일말의 동정심을 가지고 임우택을 쳐다보던 형사들조차 악귀 나찰과 같은 눈빛으로 그를 구속해 끌고 갔다.
그리고 그의 체액이 묻은 임수현의 교복과 속옷 등도 증거물로 수거해서 국과수로 보내졌다.
* * *
“그래, 알았다. 수현이란 아이의 인상착의랑 사진 좀 가능한 한 많이 보내 주고. 이쪽에서도 최선을 다해 찾아보마.”
촤촤촤촤촤촤!
전화를 끊은 윤수호는 은지연이 보낸 사진들을 확인하면서 검결지를 휘둘렀다.
쿠구구구구궁.
그러자 경상북도 구평에 출현했던 6급 재앙종 세 마리가 비명조차 제대로 질러 보지 못하고 조각조각 쏟아져 내렸다.
“미친……. 섬멸대 열 팀이 모여서 발이나 묶는 게 최선이었던 6급 재앙종 세 마리가 무슨 두부도 아니고, 저렇게 허무하게…….”
“신삥, 그러고 보니 너는 위원장님을 보는 게 처음이구나?”
“하하하!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하지. 치우팀의 괴물들도 위원장님의 전투는 그냥 입만 벌리고 구경할 정도니까. 나도 처음 봤을 때는 저분이 나랑 같은 사람인가 싶더라.”
“아군이라 다행이지 적이었으면……. 어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다들 잡담 금지! 위원장님께 똥 치우는 것까지 부탁드릴 거 아니면, 서둘러 잔해부터 정리하자고!”
그렇게 섬멸팀이 일사분란하게 뒷정리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본래 뒷정리는 연구팀과 섬멸팀의 몫이지만, 이번에는 섬멸팀 자체의 활약이 거의 없다 보니 뒷정리라도 조금 해 두려는 것이었다.
“형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그때, 마침 이번 작전에 참전한 이선호는 전화를 받고 표정이 심각해진 윤수호가 걱정돼 그에게 달려왔다.
“지연이의 친구가 실종 됐다.”
“네?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어젯밤에 화를 피해서 집을 뛰쳐나간 뒤에 행방이 묘연하다더군. 지연이가 울면서 전화한 걸 보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이야.”
윤수호는 그 즉시 특무대 수색팀 사령관에게 직통으로 연락했다.
“아, 소장님. 접니다. 다름이 아니라, 하나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그러자 삽시간에 동원 가능한 수색팀 인력들이 총동원된 것도 모자라, 경찰 측에도 이 사실이 전달되어 대대적인 수색 작전이 이루어졌다.
“형님, 박 팀장에게도 한번 연락해 보는 게 어떨까요?”
“박 팀장?”
“네, 형님도 아시다시피 가출 청소년이나 유기견에 대해서는 빠삭한 녀석 아닙니까? 어쩌면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군. 고맙다, 선호야.”
윤수호는 그 즉시 박여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