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임수현! 너, 여기 있…….”
임수현의 행방을 물어물어 도착한 곳은 학교 옥상이었다.
옥상 난간은 펜스로 막혀 있어 다행히 나쁜 생각을 실천할 수는 없었다. 대신 임수현은 벤치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간다면 간다고 말이라고 하든가, 이 ×아.”
“아…….”
임수현에게 다가간 은지연은, 그녀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뺏더니 바닥에 던져 밟아 버렸다.
그녀의 황당한 행동에 잠깐 눈살을 찌푸리던 임수현은 다시 품속에서 담배를 꺼내 피우려 했고, 이내 은지연은 그녀가 가진 담배 한 갑을 순식간에 뺏어 버렸다.
“뭐 하는 짓이야?”
“내 앞에서 담배 피우지 마라. 뒈진다.”
“네가 뭔 상관인데!”
“나도 힘들게 끊었는데, 네가 피우면 나도 피우고 싶어지잖아!”
“…….”
임수현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은지연을 쳐다보았다. 하고 싶은 말이 정말로 많았는데, 너무 어이없어 머릿속에서 전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풉!”
하지만 정말로 진지해 보이는 은지연의 표정을 보자, 임수현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뭐야, 그게. 너,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야, 지금?”
“금연이 얼마나 힘든지 몰라서 하는 소리지. 지금도 밥 먹을 때랑 화장실에서 똥 쌀 때면 얼마나 땅기는지 넌 상상도 못 할 거다.”
은지연은 자연스럽게 임수현의 옆자리에 앉으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렇게 피우고 싶으면 몰래 숨어서 피우면 되지. 왜, 꼰대들이 지랄해서? 아니면 ×나 패기라고 하나?”
“걱정하시니까. 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삼촌……. 그리고 동생이 나 때문에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거든.”
“…….”
“왜 그런 표정으로 봐?”
“아니, 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해서.”
“내가 어디가 어때서?”
“싸움 잘하는 미친×? 아니면 나 같은 ×한테 진짜로 관심을 보여 주는 별종?”
임수현의 대답에 은지현은 인상을 팍 구겼고, 임수현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나랑 다르게 진짜로 가족을 좋아하는 건 사실인가 보네. 가족들이 걱정할까 봐 이 좋은 걸 끊을 정도면. 그러니까 진심으로 충고할게. 더 이상 나한테 신경 쓰지 마. 가족들이 슬퍼하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면.”
“왜?”
은지연이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묻자, 임수현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아까 급식실에서 그 새끼들이 나한테 한 얘기 못 들었어? 나, 이미 그런 쪽으로 이 학교에서 소문난 년이야. 그런 년이랑 이렇게 같이 있는 게 알려지면 너희 가족도 꽤 걱정할걸.”
“그러니까 내가 오해하지 않도록 똑바로 대답해 줘. 그 녀석들이 한 얘기가 사실이야?”
“…….”
임수현은 자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은지연의 올곧은 눈빛에 피식 실소를 터트렸다.
“사실이면 어쩔 거고, 아니면 어쩔 건데. 그냥 남의 일에 관심 꺼. 괜히 오지랖 부리다가 너만 상처 입지 말고.”
자리에서 일어난 임수현은 차갑게 은지연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은지연은 그녀가 사라질 때까지 임수현의 뒷모습을 빤히 지켜보다가, 그녀가 사라지자 한숨을 내쉬며 투덜거렸다.
“나도 그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아. 우리 삼촌이 그러더라. 불쌍한 사람만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쓸데없는 오지랖이 우리 집안 내력이라고.”
혼자서 힘들어 죽을 것 같은데도 그걸 꾹 참고 타인에게는 강한 척 허세를 부리는 모습이나, 주위 사람들의 핍박에도 기죽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는 모습 등…….
지금의 임수현은 자신이 어릴 적 봤던 엄마의 모습과 너무나도 겹쳐 보였다. 그래서 신경을 쓰지 않으려야 안 쓸 수가 없었다.
그때 너무나도 어려서 엄마를 도와주지 못한 게 지금도 한이 되어 남아 있는 은지연이었으니까.
‘물론 성격은 우리 엄마가 저 녀석보다 수만 배는 더 낫지만.’
* * *
“다녀왔습니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임수현은 맥이 없는 목소리로 감정의 고저 없이 인사를 남기고는 집 안을 둘러보았다.
오래된 빌라는 아무리 청소를 열심히 해도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곰팡내와 케케묵은 먼지 냄새를 지워낼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좁고 좁은 쪽방이라도 자신과 아빠에게는 소중한 보금자리였다.
그러나…….
“너, 이 쌍×이 어딜 싸돌아다니다 이제 돌아와! 술…… 얼른 술 안 가져와?”
하나뿐인 딸에게 욕지거리를 뱉으며 술심부름을 시키는 그녀의 아버지, 임우택의 모습은 한눈에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얼마나 술에 찌들었는지 온몸에서 술 냄새가 코를 찔렀고, 머리는 기름으로 떡이 져 있었으며, 유일하게 입고 있는 트렁크 팬티는 각종 오물과 얼룩으로 가득했다.
“잠깐만요. 청소 좀 하고…….”
쨍그랑!
“꺄악!”
그 순간, 방구석에서 케케묵은 빨래 거리를 집어 드는 임수현의 지척으로 빈 술병이 날아와 벽에 부딪혀 깨졌다.
임수현은 머리를 감싸 쥐고 쓰러져 오들오들 떨었다. 하지만 임우택은 그런 딸에게 되레 역정을 내며 소리를 질렀다.
“씨발! 치워 봤자 그게 그거구만, 청소는 뭔 놈의 청소야? 애비가 술 가져오란 소리 안 들려? 아니면 이제 네 엄마도 모자라서 너까지 날 무시하는 거냐? 어!”
자리에서 일어난 임우택은 비틀거리며 임수현에게 다가가더니, 맨손으로 딸을 폭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밥도 안 먹고 술로만 연명하는 탓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던 것일까?
투닥, 투닥…….
‘…….’
아버지의 폭행은 폭행이라기보다 투정에 더 가까웠다. 그래서 멍이 들거나 상처가 나진 않았지만, 이미 임수현의 마음은 곪을 대로 곪은 상태였다.
그렇게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진 임우택이 잠들자, 임수현은 조용히 아빠에게 이불을 덮어 준 뒤 조금이나마 집 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 늦었다!’
시간을 확인한 임수현은 서둘러 알바를 하는 카페로 향했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눈물을 머금고 택시까지 탔지만 결국 지각을 피할 순 없었다.
“너, 자꾸 이렇게 늦으면 다음에는 시급부터 깔 테니까 그렇게 알아! 알았어?”
“네, 죄송합니다…….”
임수현은 점장에게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잘리지만 않으면 욕이야 얼마든지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수고하셨습니다.”
알바를 마친 임수현이 향한 곳은 카페에서 버스를 타고 여덟 정거장을 지나 도착한 편의점이었다.
그저 편의점을 찾아간 거라기엔 너무나도 먼 거리를 이동한 임수현은 능숙하게 편의점 직원복으로 옷을 갈아입더니 또다시 알바를 시작했다.
그렇게 편의점 알바가 끝난 뒤에도 몇 개의 알바를 마친 임수현은 늦은 새벽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녀가 이렇게 수많은 알바를 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처럼 이 시간에 일어나 다시 술을 먹기 시작하는 아빠, 임우택의 동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소녀 가장이란 것이었다.
“다녀왔습니다…….”
다녀왔다고 인사하는 임수현의 목소리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물론 인사를 받아 주는 사람 또한 없었다.
딸이 늦게까지 일을 하다 돌아왔는데도, 아버지란 작자는 TV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그저 술만 퍼마시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마저 임수현은 익숙했다.
이런 지옥 같은 나날들은 내일도, 그다음 날도, 어쩌면 앞으로 영원히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꾸역꾸역 버틸 수 있었던 건 역설적으로 아빠가 있어 준 덕분이었다.
엄마도 자신과 아빠를 버리고 도망쳐 버렸다. 남은 가족은 아빠뿐이지만, 다행히 아빠는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
술만 마셔도 좋다. 자신을 때리고 행패를 부려도 좋다. 돈을 벌어오라고 혹사해도 좋다.
그저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아빠가 자신을 버리지만 않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지옥 같은 삶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 먼저 씻고 잘게요.”
보일러도 작동하지 않는 화장실에서 찬물로 간단하게 샤워를 마친 임수현은 후줄근한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러고는 방 한구석에 이부자리를 깐 뒤, 그냥 그렇게 누워 잠을 청했다. 내일은 아침 일찍부터 행사 알바가 있어서 일찍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평소라면 혼자 술을 먹다 취해 잠들었을 임우택이 별안간 뒤돌아 누운 임수현을 빤히 쳐다보더니, 슬금슬금 딸에게 다가갔다.
“아빠?”
난데없는 인기척에 놀란 임수현이 고개를 돌리자, 아빠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느낌이 이상했다.
평소와 다르게 호흡도 거칠고 눈도 살짝 풀린 것이, 아무리 봐도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 수현이…… 옛날보다 많이 컸구나. 아빠 때문에 힘들었지? 아빠가 미안해. 앞으로는 아빠가 열심히 돈도 벌고 아빠 노릇 잘할 테니까…….”
기분 나쁘게 달라붙어 오는 임우택을, 사색이 된 임수현이 밀어내며 경기를 일으켰다.
“아, 아빠? 이러지 마요! 왜 이래요? 지금 아빠, 너무 이상해요! 제발 정신 좀 차려요!”
“뭐? 아빠가 이상해? 이 쌍×이 지금 머리 좀 컸다고 아빠를 무시하는 거야? 너도 네 엄마랑 똑같아! 툭하면 날 무시하고 욕하고! 내가 너희 두 사람 때문에 얼마나 고생하면서 살았는데! 근데 네깟 년이 감히 날 무시해?”
“꺄악!”
방금까지 애원하던 모습은 어디 가고, 이제는 불같이 화를 내며 추한 욕망을 서슴없이 드러내는 임우택.
그러나 이전에도 그랬듯, 술에 찌들대로 찌든 임우택의 완력은 초등학생과 비슷하거나 그 이하였다.
임수현은 아빠에서 추한 짐승이 되어 버린 임우택을 밀어 넘어트리고는 부리나케 집 밖으로 뛰쳐나와 그대로 도망쳤다.
“흐윽!”
고단한 삶의 유일한 안식처가 순식간에 지옥이 되어 버리고, 유일하게 믿었던 가족이 악마가 되어 버린 현실 속에서 주저앉은 임수현의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때였다.
“언니, 혹시 가출했어?”
“응? 너흰…….”
자신보다 한두 살 정도 어릴까?
“가출했는데 지낼 곳 없으면 우리랑 같이 갈래? 좋은 집은 아니지만 누워서 잘만 해. 어른들도 없고 우리끼리만 있어서 눈치 볼 필요도 없어. 어때?”
또래로 보이는 여자애 서넛이 임수현을 찾아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 * *
다음 날.
“거봐, 내 말이 맞지? 임수현 걔, 이틀 연속 등교한 꼴을 본 적이 없다니까.”
“담임 쌤도 포기한 애야. 너도 신경 써 봤자 피곤하기만 할걸. 그냥 포기해.”
“그나저나 동성여고 앞에 새로 디저트 가게 오픈한 거 앎? 듣기로는 YH에서 아이돌 연습생 하던 애가 회사 나와서 차린 거라던데, 대박 잘생겼대!”
“진짜? ×북 주소 공유 좀.”
은지연의 주변에 몰려든 여학생들은 아이돌 연습생이 차렸다던 화제의 디저트 가게로 정신이 없었지만, 은지연의 관심은 오로지 텅 비어 있는 임수현의 자리였다.
“지연아, 어때? 학교 끝나고 가 볼래? 너, 존잘 킬러잖아.”
“그런 것 치고는 커트 라인 되게 높던데? 어제 민준이도 코노에서 지연이한테 작업 걸다 결국 까였잖아.”
“야, 은지연. 내 말 듣고 있어?”
친구들 말처럼 평소와 다름없는 일이니 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그럴수록 어제 봤던 임수현의 처량한 미소가 떠오르는 건 집안 내력일까?
‘하여간 윤씨 집안의 오지랖! 아이 씨, 나도 몰라!’
“미안! 나, 학교 끝나고 약속 있어서 먼저 가 볼게. 가서 사장님 사진 찍어서 단톡방에 올려 주는 거 잊지 말고.”
결국 은지연은 임수현의 집을 찾아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