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돌아왔다-62화 (62/175)

62.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조심히 다녀와!”

아침 식사를 마친 후, 가까운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등교를 마친 은지연의 주변으로 순식간에 여학생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지연아, 오늘 학교 끝나고 코노 갈 건데, 너도 갈 거지?”

“2, 3학년 팬클럽 선배들한테 너 데리고 간다고 말하니까, 자기들이 코노랑 음료수랑 분식까지 다 쏜다고 했단 말이야. 제발 딱 한 번만 같이 가 주라. 응?”

“멋대로 팬클럽을 만든 건 그렇다 치자. 나 몰래 그런 약속은 언제 잡았대? 너희는 양심도 없냐?”

은지연이 도끼눈을 뜨고 친구들을 질책하자, 몇몇이 움찔하며 어설프게 웃었다.

“그, 그게……. 이번에 팬클럽에 새로 가입한 남자 선배들 환영회도 겸사겸사해서……. 너도 2학년에 민준 선배는 알지?”

“2학년 민준 선배라면 도민준? 그, 탈 지구인급으로 잘 생겼다는 그 선배?”

“응. 그 선배도 이번에 네 팬클럽에 들어온다는 소식이 은근히 들리는 것…….”

“가자, 코노.”

“진짜? 구라 아니고 진짜로 가는 거지?”

“나, 시간 많아. 근데 민준 선배도 같이 오는 건 확실한 정보인 거지? 만약 나 유인하려고 만들어 낸 지라시라면, 그땐 다 같이……. 흐흐흐…….”

은지연이 친구들을 쳐다보며 살벌하게 웃음을 흘리자, 친구들이 식은땀을 흘리며 그녀를 진정시켰다.

그때였다.

“응? 쟤는…….”

“어? 임수현? 쟤가 학교에 다 오고 별일이네.”

“출석 일수가 간당간당하니까 온 거겠지. 내버려 둬. 어차피 쥐 죽은 듯이 있다가 아무도 모르게 사라질 텐데, 뭐.”

친구들은 조용히 등교한 한 여학생을 쳐다보며 고개를 젓다가, 익숙한 듯 금세 관심을 꺼 버렸다.

하지만 은지연은 달랐다.

“저기, 빈자리 아니었어?”

“응? 아, 지연이 너는 처음 보는 거구나. 저 자리, 주인 있어. 학교에 잘 안 나오는 게 문제지.”

“보다시피 가끔씩 한 번 등교해서 출석 일수만 조용히 채우고, 다음 날엔 거짓말처럼 사라져. 학교에 있을 때도 수업 끝날 때까지 거의 잠만 자니까 아무도 신경을 안 쓰고.”

“그보다 새연동에 코노 새로 생긴 거 앎? 시설 대박 개쩐다던데, 가 본 사람?”

여학생들의 대화 주제는 금세 임수현에서 다른 쪽으로 넘어갔지만, 은지연의 눈은 이따금씩 임수현에게로 향했다.

‘닮았어…….’

자리에 앉자마자 책상 위에 엎드려 누운 임수현의 모습과 분위기는 자신이 잘 아는 누군가와 똑 닮아 있었다.

마치 그 모습을 재현이라도 한 것처럼…….

아침 일찍 눈을 떠 보면 밤새워 일하고 돌아온 엄마가 거실 탁자에 저런 식으로 엎드려 누워 곤히 잠들어 있었다.

술에 취해 퍼질러 자는 아빠와 자신, 그리고 은지한이 누운 곳을 제외하고 나면 엄마가 편하게 누워서 잘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은지연의 느낌이 틀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엎드려 자는 여학생들을 보고 모두 엄마와 같은 느낌을 받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느낌을 받은 게 이번이 처음이라, 은지연 본인도 많이 놀라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4교시 종이 울리고 점심시간이 찾아왔다.

언제나 그렇듯 본인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은지연은 많은 여학생을 거느린 채 급식실로 향했다.

“오늘 점심 반찬은……. 응? 조기튀김이잖아?”

“아, 개짜증. 대체 조기튀김은 왜 만드는 거임? ×나 맛대가리도 없는 거.”

“어쩐지 아까 전부터 매점이 붐비더라. 지연아, 우리도 매점으로 쨀래?”

“……아니. 나는 그냥 여기서 밥 먹을게.”

한편, 누군가를 빤히 쳐다보고 있던 은지연은 친구들의 제안을 거절하더니, 급식을 받아 누군가의 앞자리로 찾아가서 앉았다.

그 광경에 은지연을 따르던 친구들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헐! 지연이 왜 저래?”

“몰라. 그냥 불쌍해서 챙겨 주려는 거 아니야?”

“아무리 불쌍해도 그렇지, 다른 년도 아니고 임수현을…….”

그랬다.

은지연이 앉은 자리는 임수현의 앞자리였다. 임수현의 주변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는데, 은지연이 덜컥 앉아 버린 것이다.

결국 그녀들은 뒤에서 수군거리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포기하고는 매점으로 떠나 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임수현은 그들이 자신에 대해 수군거리건, 누가 자기 앞에 앉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무덤덤하게 식사만 할 뿐이었다.

은지연은 그런 임수현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하루 종일 엎드려 있어서 몰랐는데, 이 녀석……. 얼굴도 예쁘잖아? 물론 나만큼은 아니지만.’

자아도취가 심한 자신이 봐도 임수현은 상당히 예쁜 축에 속하는 여자애였다.

저렇게 작은 얼굴에 어쩜 자기주장이 확실한 이목구비가 오밀조밀하게 꾸며져 있는지…….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인데도 미인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게다가 허리까지 기른 검은 생머리와 도시적인 생김새는 어둡고 차가운 그녀의 분위기와 꽤 매칭이 잘되는 편이었다.

“혹시 조기튀김 안 좋아해? 그럼 내가…….”

탁.

“아껴 먹는 거야. 손대지 마.”

조기튀김에는 손도 대지 않길래 은지연이 젓가락을 가져가자, 임수현이 자신의 젓가락으로 빠르게 막았다.

“뭐야, 하루 내내 입 다물고 있길래 말 못 하는 줄 알았더니. 반가워, 난 은지연. 너랑 같은 반인데, 혹시 나 알아?”

“모를 수가 없지. 쉬는 시간만 되면 네 주변이 제일 시끄러웠으니까. 덕분에 잠도 못 잤고.”

“헐! 설마 내가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 거임? 수업 시간에는 잘 자는 것처럼 보였는데.”

“남이 자는 거 구경하는 취미라도 있어?”

태도부터 말투까지 까칠까칠한 임수현이지만, 은지연은 어쩐지 그런 그녀에게 더욱 정감이 갔다.

“그냥…… 네가 엎드려서 자는 모습이 내가 아는 사람이랑 많이 닮아 보여서 자꾸 눈이 가네?”

“아는 사람?”

“우리 엄마.”

엄마라는 말에 임수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늙어 보인다는 말을 꽤나 정성스럽게 돌려 까는구나, 너.”

“내가 기억하는 그때 엄마는 지금 우리랑 나이 차이도 크게 안 나. 그리고 내가 엄마를 쏙 빼다 박았거든. 어때? 이래도 돌려 까는 것처럼 들려?”

“대체 무슨 얘길 하는 건지…….”

자신 있게 웃으며 대답하는 은지연의 밝은 모습에, 임수현은 적응하지 못하고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때였다. 불청객들이 찾아온 것은…….

“어? 혹시나 했는데 맞네, 임수현!”

“임수현? 그게 누군데?”

“그 있잖아. 1학년에 소문난 대걸레. 몰라?”

“아, 아…… 돈에 미쳐서 몸 팔고 다닌다는 희대의 걸레×?”

“원조 뛴다고 바빠서 학교도 안 나오시는 귀한 몸이 오늘은 어쩐 일이래? 꼴에 학생이라고 출석 일수는 마음에 걸렸나 보지?”

명찰의 색깔로 보아 2학년 선배들이 분명해 보이는 남학생들 열댓 명이 무리 지어 몰려와 임수현의 주변을 둘러쌌다.

그러면서 모르는 척 그녀를 조롱하고 떠드는데, 목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급식실에 있는 사람 중 녀석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사람이 없었다.

임수현은 최대한 무표정을 유지하며 침착하려 애썼지만, 은지연의 눈에는 빤히 보였다. 그녀의 손이 겁에 질려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

“혹시 냄새나는 아재들 말고 우리는 어때? 어차피 돈만 주면 다리 벌리는 거야 똑같…….”

철푸덕!

그 순간.

은지연이 던진 식판이 임수현을 조롱하던 녀석의 얼굴에 정확히 명중하였다.

문제는 거의 손도 대지 않은 식판이라, 음식물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식판이 바닥으로 떨어지자 음식물로 얼굴과 상의가 엉망이 된 녀석이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어떤 ×새끼가……!”

“아, 미안. 선배 아가리 똥내가 너무 심해서 짬통인 줄.”

자리에서 일어난 은지연이 가볍게 손을 들며 사과 같은 조롱을 건넸다.

“성적 맞춰서 왔더니 학교가 영 물이 안 좋네. 여기는 나이만 되면 똥이든 된장이든 다 받아 주는 곳인가 봐, 급식실에서 매너도 없이 입으로 똥 싸는 새끼들이 버젓이 돌아다니는 걸 보면?”

“이 미친×이 돌았나!”

결국 제대로 빡친 녀석이 손바닥도 아니고 주먹을 들어 은지연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하지만…….

휙.

녀석의 주먹을 고개만 틀어 간단히 피해 버린 은지연은, 녀석의 팔목을 낚아채더니 그대로 꺾어 눌러 찍어 버렸다.

콰직!

“크아악! 내 팔! 내 팔……!”

“뭐, 뭐야, 이 ×은?”

“뭘 보고 있어? 미친× 하나한테 쫄아서 도망칠 거야? 다 덮쳐!”

팔이 이상한 각도로 꺾인 채 주저앉은 녀석이 비명을 지르며 울부짖자, 녀석의 친구들이 은지연을 쪽수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그에 급식실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고, 어느새 UFC 경기장이 되어 버린 급식실은 은지연을 응원하는 열띤 함성으로 가득했다.

“지, 지한아!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거야? 가서 말려야 하지 않을까?”

“놔둬. 본인이 가장 즐기는 것 같은데. 그런데 조기튀김 안 먹을 거야?”

“아, 난 생선은 별로 안 좋아해서…….”

“그럼 내가 먹는다.”

다른 자리에서 은지한과 함께 밥을 먹던 권성하는 안절부절못했지만, 오히려 동생인 은지한은 누나를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송문수 패거리에게 불려갔을 때와 1학년 짱(?)을 먹는 과정에서 많은 실전을 겪었고, 윤수호가 가르쳐 준 선녀이십사수를 꾸준히 수련한 은지연.

이제는 또래뿐만 아니라 성인 무술가라 하더라도 그녀의 상대가 되기 힘들다.

‘관절기에 한해서는 주짓수 블랙 벨트라도 지금의 누나를 이기는 건 불가능하겠지.’

그래서일까? 무공의 특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타격음보다는 관절이 부러지거나 꺾이는 소성이 더 자주 들렸다.

그리고 임팩트 적인 면에서는 오히려 관절이 부러지는 소성이 사람들에게 더 섬뜩하게 들리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 와중에 은지한의 눈은 한 사람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패거리가 전부 나가떨어지는데도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는 한 녀석.

아마 은지연이 알터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려는 심산일 것이다.

하지만 은지연은 알터가 아니고, 무엇보다 알터가 보기에 은지연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무인인 것도 사실이다.

그걸 확인한 탓일까? 녀석이 어깨를 풀며 자신 있게 앞으로 나섰다.

팟!

“너, 너무 많이 까분다.”

‘알터!’

오러로 신체를 강화하며 한순간에 자신의 품으로 접근한 상대의 모습에 은지연이 눈을 부릅떴다.

평범하지 않은 움직임만으로도 상대가 신체를 강화한 알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하필이면 녀석은 다른 놈을 처리하는 와중에 절묘한 타이밍을 노려, 대처조차 불가능한 상황에 파고들었다.

‘아! 반응이 늦었…….’

은지연이 다가올 아픔에 대비해 이를 질끈 깨무는 순간.

철퍼덕!

주먹을 휘두르던 녀석은 어느새 급식실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기절해 버렸다. 녀석의 머리 위를 지그시 밟으며 등장한 은지한 때문이었다.

은지한은 녀석의 머리 위에 쪼그려 앉아 고개를 갸웃하더니, 누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팬클럽이라면 치를 떨더니, 이제는 하다 하다 전교생을 상대로 팬클럽 모집이라도 할 셈이야, 누나?”

“그럼 어떡해? 친구가 이 새끼들한테 입에 담지도 못할 모욕을 당했는데.”

“친구라면 조금 전에 고개 푹 숙이고 뛰쳐나간 그 누나?”

“응?”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던 은지연은 그제야 임수현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고 다급하게 물었다.

“어디로?”

“저쪽.”

은지한이 손가락으로 가리키기 무섭게 뛰쳐나간 은지연.

한편, 쓰러진 채로 곡소리를 흘리는 선배들을 스윽 훑어보던 은지한은 한숨을 내쉬며 전화를 들었다.

“이거, 류 팀장님께 빚만 늘어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검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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