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그렇게 쉼터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 윤수호는, 떠나기 전 쉼터 앞에서 자신이 데리고 온 아이들과 작별의 시간을 가졌다.
“말썽부리지 말고 잘 지내. 여기서도 사고 치면 정말로 갈 곳 없는 거 알지? 틈틈이 와서 확인할 거니까 긴장 풀지 말고.”
“물론이죠, 형. 애들이랑 같이 약속도 했어요. 공부도 열심히 하고, 그동안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를 준 만큼 봉사 활동도 열심히 하기로요.”
“그래? 잘 생각했네.”
윤수호가 한동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한동수가 멋쩍게 미소를 그렸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윤수호의 주변으로 몰려들어 푹 고개를 숙이거나 눈물을 글썽거렸다. 하기야 녀석들로서는 삥을 뜯으려고 했던 자신들을 이렇게까지 도와준 윤수호가 거의 신처럼 느껴졌을지도 몰랐다.
“성민아, 공부 열심히 해라. 하율이 너는 운동 쪽에 관심이 있다면서? 기죽지 말고 도전해 봐. 주환이 너는 편식 안 하고 골고루 먹어야 형들처럼 키 크는 거 알지?”
“네…….”
윤수호는 어느새 정이 붙어 버린 아이들의 이름을 개별적으로 불러 주며 그들과 인사를 나눴다.
보면 볼수록 착하고 밝은 아이들인데 어쩌다 그런 부모 밑에서 태어나 이런 고생을 한 것인지, 그저 마음이 짠하고 안타까울 뿐이었다.
“형, 그냥 우리랑 같이 지내면 안 돼요? 여기 방도 되게 많은데…….”
“주환아, 뚝! 수호 형도 집으로 돌아가야지. 가족들이 기다리고 계시잖아.”
“으아앙!”
결국 이별의 아쉬움을 끝내 참을 수 없었던 성주환이 한동수의 품에 쏙 안겨 울음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성주환의 신체 나이는 열여섯이지만, 어릴 때부터 자행된 부모의 학대와 방치로 정신연령은 거의 예닐곱 살 수준에 정체되어 있었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 어른들이나 심지어 같은 아이들조차 주환이를 배척하며 꺼렸지만, 한동수는 그런 주환이를 지금까지 챙겼다.
“주환아, 다음에 올 때는 형이 주환이가 좋아하는 선물 사 올게.”
“정말? 약속할 수 있어?”
“그럼!”
그렇게 웃으며 주환이를 달랜 윤수호는, 마지막으로 차순옥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 주시고요.”
“네, 형제님. 살펴 들어가세요. 그리고 아이들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지원. 정말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별말씀을. 이제부터 정말로 수고하실 분은 원장 수녀님이신걸요. 그럼 힘내십쇼. 언제나 응원하겠습니다.”
인사를 마친 윤수호는 아이들과 차순옥의 배웅을 받으며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 * *
“다들 언제 돌아왔대?”
“어? 삼촌!”
“뭐야, 오빠? 말도 없이 설마 지금 돌아온 거야?”
“수호 왔니?”
다시 돌아온 집에는 사람들의 온기로 가득했다.
외출을 마치고 돌아온 부모님과 수아, 그리고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조카들까지 모두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뭐야, 오빠. 온다면 온다고 말이라도 하고 오지. 그랬으면 오늘 아주 제대로 상다리 부러지게 준비했을 텐데.”
“그럴까 봐 일부러 얘기 안 한 거야. 나 없는 동안 별일 없었지?”
“그럼!”
“정말?”
윤수호가 못 미더워 다시 묻자,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던 오혜연이 소리쳐 대답했다.
“네가 그런 거 숨기는 거 제일 싫어하는 걸 아는데 미쳤다고 숨길까 봐? 괜한 걱정은 접어 두시고 밥이나 드십시다. 수호, 너도 아직 저녁은 안 먹었지?”
“메뉴가 뭔데요?”
“오늘 시장에 갔는데 갈치가 신선하더라. 그래서 오랜만에 갈치조림이라도 해 보려고.”
“오혜연표 갈치조림이면 저녁을 먹고 왔어도 또 먹어야죠. 김치찌개도 그대로 남아 있죠?”
“그럼. 얼른 씻고 와서 밥 먹을 준비 해라.”
윤수호가 씻고 오는 사이, 조카들은 방에서 내려왔고 부엌에서는 오혜연과 윤수아의 저녁상 차리기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저녁 식사 합시다.”
다 차려진 상을 보고 윤수호는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도 상이 부러질 것 같은데, 나 온다고 얘기했으면 대체 얼마나 더 준비할 생각이었어요?”
“얘가 뭐래? 딱 봐도 두 배는 더 차릴 수 있겠구먼. 너 미리 온다고 얘기만 했어 봐. 나랏일하고 온 아들내미한테 이렇게 초라하게 상 차려 주지는 않았지.”
‘이게…… 초라해?’
가운데 놓인 두 종류의 찌개와 메인 요리인 갈치조림 외에도 두부김치와 계란찜, 12첩이 넘는 각종 반찬 등, 모녀는 식탁 바닥이 보이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어쩐지. 돌아와 보니 아버지께서 살이 찌신 이유가 있었네요.”
“수, 수호 네가 보기에도 그래 보이냐? 크흠!”
자신의 몸을 위아래로 스캔하는 아들의 눈빛에 윤지석이 불안함을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윤수호는 인정사정없이 곧바로 아침 체조의 매뉴얼을 수정해 버렸다.
“아버지는 아침 체조 메뉴를 약간 더 상향 조정하겠습니다.”
“지, 지금보다 더? 하아……!”
시무룩한 표정으로 현실을 받아들이는 윤지석.
하나 그럼에도 그의 수저는 잠시도 쉬질 않았다.
윤수호는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오랜만에 먹는 집 밥이었지만, 그런 거 전부 거르더라도 어머니의 손맛은 정말로 기가 막혔던 것이다.
“어머니. 정말로 식당 한번 해 보실 생각 없으세요? 이윤 같은 건 생각 안 하셔도 되니까 취미 생활처럼요.”
“오빠도 그렇게 생각하지? 나도 우리 엄마 손맛은 국보급이라고 생각하는데, 영 관심이 없으니…….”
그러자 오혜연은 겸연쩍게 웃으며 대꾸했다.
“아니, 뭐…… 딱히 관심이 없는 건 아니고……. 나보다 음식 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뭐라고 밥집을 차리니. 게다가 수호 덕 보는 것도 한두 번이지, 밥집 차렸다가 적자라도 나면 미안해서 수호 얼굴 못 봐, 난.”
“그런 거 신경 쓰지 마시고, 하고 싶은 거 하세요, 어머니. 저, 진짜 돈 많아요. 이번에 출장 가서도 꽤 벌어 왔고요.”
“정말? 얼마나 벌었는데?”
돈을 꽤 많이 벌어 왔다는 윤수호의 말에 윤수아가 눈을 반짝이며 묻자, 윤수호가 어깨를 으쓱하며 두루뭉술하게 대답했다.
“음, 꽤 많이? 아마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을걸.”
실제 액수를 얘기하면 괜히 가족들만 놀라게 할 것 같아 일부러 얘기하지 않았지만, 중요한 건 가족들도 자신이 부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걱정 말고 하고 싶은 일 있으면 참지 말고 해도 돼요. 지금까지 가족을 위해서 참고 사신 것만 하더라도 충분하니까.”
“그래…… 생각해 보마.”
대답하는 오혜연의 눈시울이 어느새 붉어져 있었다.
“아버지는 뭐, 하시고 싶으신 일 없으세요? 집에만 계시는 것도 적적하실 것 같은데.”
“나야 뭐, 시간 남으면 정원이랑 텃밭 가꾸는 게 재밌긴 한데……. 글쎄다. 하고 싶었던 일이라…….”
윤지석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주름진 아버지의 입가에 맺힌 미소는 마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듯한 즐거움마저 엿보였다.
“그러고 보니 어릴 때는 그게 꿈이었지.”
“꿈요?”
“아빠가 꿈이 있었다고? 그건 나도 처음 듣는데?”
가족의 시선이 모두 자신에게 집중되자, 윤지석은 부담스러웠는지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하! 아빠도 어린 시절이 있었는데 설마 꿈이 없었겠니. 다만 남들이 들으면 좀 의아해할 꿈이긴 했지.”
“무슨 꿈이었는데요, 할아버지?”
은지연의 질문에 윤지석은 손녀를 쳐다보며 대답해 주었다.
“할아버지의 어릴 적 꿈은 숲을 가꾸는 거였단다.”
“숲요?”
“엄마는 알고 있었어?”
“아니, 나도 처음 듣는데? 당신, 그런 꿈이 있었어요?”
아내였던 오혜연도 놀라서 묻자, 윤지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쑥스러워했다.
“어릴 때 내가 살던 동네에 작은 뒷산이 있었거든. 그때는 뒷산이 나와 친구들의 놀이터나 다름없었으니까, 학교만 다녀오면 해가 질 때까지 뒷산에서 뛰어놀곤 했지. 그런데 어느 날, 뒷산에 산불이 난 거야. 근처를 지나가던 차에서 운전자가 무심하게 버린 담배꽁초 때문이었나? 다행히 제때 피난한 덕분에 가족은 화마를 피할 수 있었지만…….”
그때를 회상하는 윤지석의 미소가 처연해 보였다.
“다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산불이 모든 걸 뺏어 가고 황폐해진 후였단다. 나와 친구들이 뛰어놀던 그때 그 모습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지. 그래서 구청 직원들이 나와서 산에 묘목을 심기 시작했을 때, 나도 그들을 도와 묘목을 심는 데 최선을 다했어. 그때는 빨리 산이 예전으로 돌아와서 다시 친구들과 뛰어노는 게 목표였거든.”
하지만 나무가 자라는 데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필요했고, 결국 윤지석은 나무가 자라는 걸 보지 못한 채 다른 동네로 이사하게 되었다.
“그러다 10년이 지나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우연히 그 동네를 지나쳐 갈 일이 있었지. 그때는 내가 어릴 때 묘목을 심었다는 사실도 완전히 잊고 있었는데……. 우연히 그 뒷산을 보게 된 순간, 그때 기억이 살아나면서 뭔가 가슴 속이 벅차오르더라고. 황폐했던 산이 조금이나마 예전 모습을 되찾아가는 것 같아서……. 그때의 내 노력이 산을 다시 살리는 데 약간이라도 보탬이 된 것 같아서 말이야.”
“그런데 왜 포기하신 거예요?”
“몇 년 지나지 않아서 나에게 더 소중한 보물이 생겼거든. 아쉽지만 우리나라에서 정부의 지원 없이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로는 제대로 먹고살기가 힘들더구나. 물론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그 결정은 절대 후회하지 않는단다. 덕분에 내 소중한 아들딸은 물론이고, 이렇게 귀여운 강아지들도 만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윤지석은 웃으며 손주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은지연과 은지한은 그런 할아버지의 손길을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지금이라도 식목 일을 다시 하실 수만 있다면 하고 싶으신 거죠?”
“늘그막에 무슨 주책인가 싶기도 하지만……. 사실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것밖에 없긴 하지.”
윤지석이 쑥스러워하며 대답하자, 윤수호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럼 하면 되죠. 자세한 기획은 제가 따로 준비해서 말씀해 드릴게요. 그러고 보니 대통령께서도 저에게 지나가듯이 국토 복원 사업에 대해서 말씀하신 적이 있으니, 정부 지원을 받는 것도 그리 어렵지는 않을 거고요.”
“대, 대통령님께서?”
자신의 꿈에 대통령까지 언급되자 윤지석뿐만 아니라 가족들 역시 꽤 놀란 눈치였다.
“네, 재앙종의 출현으로 상처 입은 건 사람들만이 아니니까요.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동식물 또한 이 나라의 재산이고, 이 나라의 재산을 지키고 보존하는 건 자신의 역할이라고 하시더군요. 물론 만에 하나, 정부의 조력이 없더라도 제가 서포트할 테니까 염려 놓으시고요.”
“그래. 고맙구나, 수호야. 이거, 나무 심으러 다니려면 체조랑 운동도 열심히 해야겠는걸. 하하하!”
꿈을 다시 이룰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기뻐 자신을 바라보며 고맙다고 감사를 건네는 아버지의 미소.
윤수호는 그것이면 충분했다.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