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돌아왔다-59화 (59/175)

59.

그들이 있던 곳에서 가장 가까운 중국집을 찾은 윤수호와 아이들.

우걱우걱!

“아, 씨발! 그거, 내가 마지막에 먹으려고 아껴 둔 군만둔데!”

“병신아, 아끼긴 뭘 아껴? 먼저 먹는 새끼가 임자지.”

녀석들은 마치 걸신들린 사람처럼 벌써 각자 두 그릇째 짜장면 곱빼기를 싹 비운 것도 모자라, 함께 먹을 탕수육 특대 짜리 세 개도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윤수호는 그런 녀석들의 먹성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잘 먹는 건 좋은데, 내가 너희보고 돈 내라고 하면 어쩌려고?”

“그때는 뭐, 여기서 접시 닦기든 배달이든 뭐든 해야죠. 경찰서에 끌려가는 거나 집으로 돌아가는 것만 아니면 뭐든 할 수 있어요. 아니, 솔직히 경찰서 끌려가는 것도 상관은 없어요. 부모님한테 연락만 안 한다면.”

대답한 사람은 술을 훔치자 윤수호에게 걸려 뒤통수를 얻어맞고 쫓겨난 바로 그 녀석이었다.

“넌 이름이 뭐냐?”

“저요? 한동수요.”

“네가 이 녀석들 대장이야?”

“대장같이 거창하고 그런 건 아닌데……. 그냥 어쩌다 보니 같이 다니게 됐어요.”

“몇 살인데?”

“열아홉요.”

“다른 애들은?”

“저보다 다들 한두 살 정도 어려요. 제일 어린 주환이는 저보다 세 살 어리고요.”

한동수가 가리킨 아이는 은지한과도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아 보였다.

“너희 전부 가출한 거야?”

민감한 문제를 정면으로 물어보는 윤수호의 질문에 아이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러나 한동수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사실을 인정했다.

“네, 하지만 저희도 가출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에요. 살고 싶었으니까…… 살고 싶어서 도망친 것뿐이에요…….”

그러면서 한동수는 아이들을 둘러보았고, 녀석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실제로 아이들이 겪은 끔찍한 경험담을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옆에 인석이는 아빠가 술만 취하면 엄마랑 자기를 때려죽이려고 해서 도망쳤어요. 병재는 아빠가 도망치고 엄마랑 단둘이 살았는데, 엄마가 병재한테 집착이 심했다더라고요. 성적이 1점만 떨어져도 자기 목에 칼을 들고 협박하는 통에 살 수가 없었대요. 수혁이는 입양된 녀석인데, 동생이 태어나고부터는 밥도 잘 안 주고 학교도 잘 안 보냈대요. 그러면서 맨날 때리고, 담뱃불로 지지고…….”

“너는?”

“저요?”

“그래, 너. 너는 왜 가출한 거지?”

윤수호가 끄덕이자 한동수가 씁쓸한 미소를 삼키며 대답했다.

“굳이 따지면 저는 가출이 아니라 버려졌어요. 엄마랑 아빠가 빚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매일같이 빚쟁이들을 피해 도망 다녀야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일어나 보니까 부모님이 사라지고 없었어요. 저만 버리고 도망친 거죠. 저는 두 사람한테 걸림돌밖에 안 되니까…….”

“…….”

“에잉! 천인공노할 새끼들! 그것들은 사람 새끼도 아니야! 다른 사람 자식도 그렇게 못 할 건데 어떻게 제 새끼들을……. 쯧쯧!”

윤수호가 담담하게 듣고 있으려니, 되레 건너편에서 TV를 보고 있던 주인어른이 대로하며 혀를 찼다.

가게 규모가 작다 보니 아이들의 사연이 그에게도 들렸던 것이다.

“그래서 술은 왜 훔친 건데? 배고파서 훔칠 거면 술보다는 차라리 과자나 라면 같은 게 더 낫지 않나?”

“그게…… 사실 술은 저희가 마시려고 훔친 게 아니었어요. 그걸 다른 가출팸에 팔면 원래 술값보다 몇 배는 더 비싸게 받을 수 있거든요.”

“가출팸?”

“네, 저희 같은 가출한 애들이 모여서 만든 일종의 그룹이에요. 저희 같은 애들은 혼자서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요. 애초에 부모님의 허락 없이는 제대로 일도 못 하고, 집도 못 구하는 애들이 혼자서 뭘 할 수 있겠어요? 그걸 팔아서 돈을 모은 다음 상위 가출팸 애들한테 상납하는 거예요. 그럼 당분간은 그 애들이 지켜 주니까…….”

윤수호는 한동수의 말이 너무나도 크게 와닿았다.

이 녀석들과 사정은 다르지만, 동생 수아 역시 미성년자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와 어른들에게 끔찍한 경험을 당하지 않았던가?

“물론 저희는 배짱도 없고, 애들도 여기 있는 애들이 전부라 그냥 좀도둑질 하는 게 전부지만, 정말로 큰 가출팸은 조직이나 길드랑 같이 일하는 애들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너희, 여기 잠깐만 있어 봐. 사장님, 여기 계산요.”

윤수호는 아이들을 놔두고 계산을 마친 뒤, 밖으로 나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선호야, 나다. 물어볼 게 있어서 전화했다. 혹시 가출 청소년들을 맡아서 돌봐 줄 믿을 만한 곳이 있을까? 되도록이면 경찰이나 가족에게 연락을 안 하는 곳으로.”

-음…… 형님, 그런 거라면 저보다 여진이한테 물어보는 게 더 좋을 거 같습니다.

“박 팀장?”

-네, 여진이가 평소 유기견이나 가출 청소년에 관심이 많아서, 시간이 나면 봉사 활동도 자주 하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그래, 고맙다.”

이선호와 전화를 끊은 윤수호는 곧바로 박여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위원장님. 무슨 일이세요?

“방금 선호와 통화했는데, 박 팀장이 가출 청소년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사실인가?”

-네? 이 선배가요? 그 선배가 그런 것까지 알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아무튼 사실입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갑자기 가출 청소년을…….

“그게, 어쩌다 보니 좀 신경 쓰이는 애들을 줍게 돼서. 혹시 애들을 믿고 맡길 만한 청소년 보호 시설이 있을까?”

-무슨 이유로 가출했는지 혹시 알 수 있을까요?

“자기들 말로는 부모님을 피해서 도망쳤다더군. 살고 싶어서. 내가 보기에 거짓말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위원장님께서 그렇게 보셨다면 그게 사실이겠죠. 그런 이유라면 적당한 곳이 한 곳 있어요. 서울 진성동에 있는 나무그늘 청소년쉼터라고 해서, 저도 자주 봉사 가는 곳이거든요. 이곳은 입소할 때 경찰이나 부모님의 허가가 없어도 되기 때문에 그런 사정의 아이들이 지내기에 적합하죠. 물론 원장님이나 직원분들도 충분히 믿고 아이들을 맡길 만한 분들이시고요. 다만…….

“왜? 무슨 문제라도 있나?”

박여진이 말끝을 흐리자 윤수호가 조금 걱정을 담아 물었다.

-예전부터 나무그늘 쉼터의 재정 상황이 별로 좋지 않아서요. 기존 부채도 감당이 안 되는데 최근 들어 사정이 더욱 심하게 나빠지는 바람에,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르는 상황이라 추천을 드려도 될지…….

“뭔가 싶었더니 큰 문제는 아니군.”

-네?

“쉼터의 후원 계좌번호를 보내 줘. 재정이 문제라면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감사합니다, 위원장님!

대답하는 박여진의 목소리가 단번에 밝아졌다.

자주 봉사를 갈 정도로 애착이 깊은 곳인데 재정 상황이 나빠져서 문을 닫는다는 건 그녀에게도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윤수호 같은 든든한 후원자가 쉼터를 지원한다고 하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윤수호는 박여진이 보낸 쉼터의 후원 계좌로 소소하게 10억 원 정도를 후원하고는,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와 아이들에게 물었다.

“하나만 물어보자. 여기서 나가면 갈 곳은 있나?”

“네? 그게…….”

아이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윤수호 덕분에 배는 채웠지만, 막상 가게를 나가면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든든하게 먹었어도 배는 하루면 꺼질 것이고, 추위와 배고픔은 오래지 않아 닥쳐온다.

“만약 마음 놓고 지낼 곳이 있다면, 다시는 도둑질이나 범죄를 저지르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 있어?”

“다, 당연하죠! 저희도 좋아서 한 게 아니니까요. 하지만 그런 곳이 있을 리가……”

“그거라면 걱정 마라.”

잠시 후.

윤수호가 특무대에 연락하자, 대원 한 명이 승합차를 이끌고 순식간에 윤수호의 앞으로 도착했다.

윤수호는 불안해하는 아이들을 태우고, 박여진이 보내 준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찍었다.

“그, 그런데 저희 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 형?”

“너희가 마음 놓고 지낼 수 있는 곳.”

“네?”

대략 30분 정도를 달린 끝에 나무그늘 청소년쉼터에 도착한 승합차.

차에서 내린 아이들은 쉼터를 보고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재정 적자 때문인지, 쉼터는 여기저기서 노후의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도 보수할 돈이 없어서 방치하고 있다 보니, 쉼터 전체의 분위기는 허름하다 못해 폐원과도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와…….”

“진짜 우리, 여기서 살 수 있는 거야? 정말로?”

“더 이상 도망치면서 지내지 않아도 되는 거야, 형?”

그런 허름한 쉼터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두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더 이상 비바람을 피해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이들의 가슴은 한껏 벅차오른 것이다.

“어서 오거라, 얘들아. 그동안 고생 많았어. 나는 여기 나무그늘 쉼터의 차순옥 원장 수녀야. 만나서 반갑구나. 나를 따라올래? 너희 방으로 안내해 줄게.”

미리 연락을 받고 기다리고 있던 차순옥은 한동수와 아이들을 이끌고 보육원으로 향했다.

윤수호 역시 그런 아이들을 따라 보육원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박 팀장이 추천해 줄 만한 곳이군. 소홀히 지나갈 수 있는 부분도 아이들을 위해 신경 쓴 흔적이 많이 보인다.’

보수가 덜 된 바깥과는 달리 내부는 원장님의 손길이 골고루 미친 듯, 구석구석 정성이 가득하단 사실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렇게 아이들이 새로 생긴 집과 자신들의 방에 기뻐 어쩔 줄 몰라할 무렵, 윤수호는 차순옥과 자리를 가졌다.

“박여진 자매님께 연락을 받고 알게 됐습니다. 저희를 후원해 주신다는 분이 나라에서도 매우 높은 일을 하시는 훌륭한 분이시라고…….”

“힘들고 고통받는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봐 주시는 원장 수녀님께서도 정말 높은 일을 하는 훌륭한 분이십니다.”

“호호호! 별말씀을. 그렇게 띄워 주셔도 이미 받은 후원금은 환불해 드리지 못한답니다.”

차순옥의 농담에 윤수호는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렇다고 해도, 후원 계좌를 확인했을 때는 깜짝 놀랐습니다. 갑자기 그런 거금을 덜컥 후원해 주실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으니까요.”

“별문제 없다면 앞으로도 정기적으로 후원할 예정이니, 부담 갖지 마시고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 사용하시면 됩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이 쉼터를 유지하는 건 물론이고, 그동안 적자 때문에 아쉽게 떠나보내야 했던 선생님들도 다시 함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보다 훨씬 훌륭하고 아이들께도 가족 같은 분들이셨는데, 그놈의 돈이 뭔지……. 어휴, 주책이야. 제가 은인 앞에서 무슨 푸념을…….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주세요.”

“괜찮습니다. 돈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지만, 세상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요소인 것도 사실이니까요.”

윤수호의 대답에 차순옥은 기분 좋게 웃으며 차를 음미했다.

“그런데 저 아이들은 어떻게 만나 언제부터 보호하고 계셨던 건가요?”

“사실대로 말씀드려도 안 믿으실 텐데요.”

“괜찮습니다. 보기에는 이래도 진실과 농담을 구분할 만큼의 센스는 아직 있답니다.”

그에 윤수호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얘기했고, 차순옥은 놀라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니까…… 형제님을 갈취하려 했던 아이들을 되레 보살펴 주시려고 이곳으로 데려온 것도 모자라, 그 큰돈까지 후원해 주셨다는 말씀입니까?”

“요약이 이상하긴 한데, 틀린 말은 아니네요. 저도 제가 왜 그랬는지, 지금 생각해도 의문입니다.”

윤수호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저도 형제님께서 왜 그런 결심을 하신 건지 솔직히 궁금하긴 하군요. 오래 알고 지낸 아이들도 아니고, 심지어 악연으로 시작된 아이들에게 이렇게까지 베풀어 주시는 이유 말입니다.”

“이유라…….”

윤수호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그럴수록 자신이 지켜 주지 못해 큰 상처를 입은 동생과 조카들의 얼굴이 떠오를 뿐이었다.

“그냥 대리만족일지도 모르겠군요. 저도 지키고 싶었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지켜 주지 못했던 소중한 사람들이 있었으니까요. 지금 저 아이들을 모른 척 외면해 버리는 게, 그때 제 동생과 조카들을 외면하는 것 같아 차마 그럴 수가 없더라고요. 원장 수녀님께서 거창한 이유나 대의명분을 바라셨다면 맥이 빠질 만한 대답이지만요.”

윤수호의 대답에 차순옥은 부드럽게 미소를 그리며 대답을 저었다.

“아이들이 길에 버려진 강아지나 새끼고양이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거두어 기르는 건 거창한 대의명분이 있어서가 아니에요. 그저 불쌍하니까, 단지 그 순수하고 작은 호의만으로 버려진 강아지나 고양이가 구원을 받기도 하죠.”

그녀는 차로 입술을 적시며 말을 이었다.

“삐뚤어진 사람들은 그런 작고 소중한 호의를 오지랖이라며, 오지랖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고 폄하하곤 하지요.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그들이 오지랖이라 부르는 그 작은 호의가 세상은 바꾸지 못할지라도 한 생명, 한 사람의 세상은 확실히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죠.”

“그런가요.”

“그런 거예요. 형제님은 그 작은 호의 하나로 저 아이들의 세상을 바꾼 거랍니다.”

알고 있는 말이라도 혼자 스스로 생각하는 것과 타인이 따뜻하게 건네주는 말은 그 가치와 힘이 전혀 다른 법이다.

그래서일까?

차순옥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윤수호는 큰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검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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