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
공기가 무겁다. 그리고 그 공기 속에 떠다니는 보이지 않는 칼은 더욱더 날카롭고 위험해서,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숨쉬기가 무척이나 괴로웠다.
이유는 하나였다.
홍룡회주 공손승이 내려다보고 있는, 소금에 절여진 손자의 머리 때문이었다.
“어째서 양자간의 칠순을 축하하러 갔던 아이가 이런 모습으로 돌아왔는지, 내게 설명해 줄 사람이 있는가?”
공손승의 목소리는 나직했다.
하지만 그 속에 숨어 있는 활화산 같은 분노를 느끼지 못할 간부들이 아니기에,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도련님의 수급은 홍룡회의 지부로 전달된 것을 저희가 가져온 것입니다. 당시 도련님의 수급 외에도 USB 하나가 함께 첨부되어 있었는데, 도련님께서 변을 당하신 이유가 그것 때문인 듯싶습니다.”
“한번 보자꾸나.”
간부 중 한 명이 고개를 끄덕이자, 부하가 준비된 USB와 노트북을 가져오더니 정면 스크린에 영상을 재생하였다.
영상을 재생하자 가우창으로 분한 윤수호가 각 길드의 후계자들을 찾아다니면서 끔찍하게 고문하고 살해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만.”
영상이 끝나기도 전에 대충 내용을 이해한 공손승이 영상을 중지시킨 뒤, 간부들에게 물었다.
“그래서, 저놈이 누구길래 우리 사윤이가 이런 꼴로 돌아왔단 게냐?”
“알아본바, 영상에서 죽임당한 자들은 모두 십회의 회주 후계자들이었고, 그들을 죽인 범인은 가우창이라는 자였습니다.”
“가우창?”
“도련님의 신변을 경호하던, 저희 측 정예병 중 한 명이었습니다.”
“…….”
사건의 발단을 이해한 공손승의 표정이 단번에 굳어졌다.
그러자 간부들이 첨언했다.
“다만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저희가 파악하고 있는 가우창의 현재 실력은 알터 상급을 겨우 넘어서는 수준이었습니다. 한데 그에게 피살당한 후계자 중에는 오버 알터로 각성한 녀석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가 어떤 명령을 내렸건, 가우창이 미쳐서 혼자 그런 일을 계획했건 간에, 현실적으로 가우창 혼자 그런 일이 가능할 수가 없습니다!”
“이건 분명 누군가 의도적으로 계획한 함정입니다, 회주님!”
“당장 다른 십회에 이 사실을 알리고 진상을 규명해야…….”
간부들의 의견에 공손승은 고개를 저었다.
“소용없을 게야.”
“그게 무슨…….”
“놈들은 굶주린 아귀다. 혈육의 죽음보다, 그걸 빌미로 무엇을 더 뜯어먹을 수 있을지, 그것만 생각하고 있을 놈들이란 말이다. 놈들에게 있어 지금보다 좋은 빌미는 없을 터. 지금은 놈들 눈에 띄어서 좋을 게 없다. 각 지부에 명령을 하달해라. 당분간 사업은 모두 철수하고 철저하게 숨어 있으라고.”
콰직!
공손승은 죽은 손자의 머리를 한참 내려다보다, 가지고 있던 지팡이로 있는 힘껏 그것을 내려쳤다.
그러자 부서진 머리통에서 흘러나온 뇌수와 빠져나온 눈알이 방 안을 굴러다니며 간부들의 심장을 덜컥 내려앉게 만들었다.
“멍청한 놈! 거기서 사태를 해결했으면 일이 이 지경으로 커질 일도 없지 않으냐. 한심한 놈 같으니…….”
간부들은 그제야 깨달았다.
공손승이 느낀 분노는 손자가 당한 것에 대한 아픔이 아니라, 제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해 길드에 피해를 끼친 공사윤에 대한 분노라는 것을.
그리고 그런 공손승 또한 충분히 악마이자 괴물이란 사실을 말이다.
* * *
적토룡 사냥.
붉은 지렁이를 사냥한다는 뜻으로, 홍룡회를 제외한 나머지 십회가 힘을 모아 홍룡회를 색출, 섬멸하기 위한 작전의 이름이었다.
“여기 숨어 있었구나. 지렁이 새끼들아!”
“어, 어떻게 여길…….”
“어떻게 알긴. 십회 전부를 적으로 돌려놓고, 정말 우리 눈을 피해서 숨을 수 있을 거라고 진심으로 믿었어? 뭐 해, 다 끌고 나가서 죽여 버려!”
중국의 뒷세계를 장악한 십회가 움직이자, 아무리 홍룡회라 하더라도 부처님 손바닥 안이었다.
통신이 닿지도 않는 시골 깡촌에 숨어들어도, 그들은 귀신같이 홍룡회와 관련된 자들을 찾아내 그들의 식구까지 모조리 도륙하였다.
그 방식도 참으로 잔인하고 비참했다. 사람들이 보는 곳으로 끌고 나와 남자는 갖은 고문 끝에 죽여 버렸고, 여자들은 수없이 많은 겁탈 끝에 사망했으니까.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두려움에 질려 집 안으로 숨거나 신경조차 쓰지 않았지만, 더러는 공안에 신고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뭐야. 별문제 없네. 민간인이 당한 것도 아니고.”
“뒤처리나 깔끔하게 하고 가.”
“예, 물론입죠. 수고하십쇼!”
“사, 살려 주세요! 저는 괜찮으니까, 제발 제 아내와 아이들만이라도……!”
피해자가 보는 앞에서 가해자들에게 버젓이 뇌물을 수수한 특무 공안들은, 피에 젖어 울부짖는 사람들을 힐끔 쳐다보고는 그냥 몸을 돌려 돌아갔다.
아니, 그 정도면 차라리 다행이었다.
“크흠! 요새 몸보신을 못 했더니 몸이 영 뻐근하구먼.”
“어휴! 나랏일 하시는 분께서 몸이 안 좋으시면 되겠습니까? 편하게 즐기고 가시면 뒤처리는 저희가 알아서 잘해 놓겠습니다.”
“흐흠! 그럴까?”
사람들의 눈을 피해 여성들을 끌고 가 되레 겁탈하는 특무 공안들도 있을 정도였으니…….
다른 나라에서 봤다면 기겁을 하며 이해하지 못할 상황이지만, 알고 보면 얼마든지 그럴 만한 일들이었다.
이 나라에 공산당이 집권한 이후, 그들은 한 번도 권력을 놓친 적이 없었다.
변화가 없다는 말은 바꿔 말하면 썩어 가기 시작한다는 뜻과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중앙 정부가 부패하고 썩어 가기 시작하는데, 지역의 왕이라 불리는 지역 관료들이야 오죽할까?
그들은 십회에서 흘러들어 오는 어마어마한 뇌물에 눈과 귀를 닫았다. 민간인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최소한의 선만 지켜 주면, 언제 어디서 그들이 무슨 짓을 하건 신경조차 거의 쓰지 않는 실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범죄 집단인 길드들이 대놓고 활동하는데, 어떻게 민간인들의 희생이 없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지역 관료들은 민간인들의 희생을 신경 쓰지 않았고, 그러한 사실이 중앙 정부로 넘어가지 않도록 오히려 공작을 펼치기도 하였다.
왕명은 이미 오래전에 그런 사실을 알고 조국에 모든 정나미가 떨어진 상태였지만, 그들을 추적하면서 다시금 그들의 행태를 뼈저리게 알게 되자 혐오감만 더욱 커질 뿐이었다.
‘근본부터 뒤집어 고치지 않는 이상, 이 나라는 구제가 불가능하다. 중앙 정부부터 지역 관료들까지 썩을 대로 썩어서, 도저히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군.’
차라리 이런 나라라면 한 번쯤 망하고 다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과격한 생각까지 떠올릴 만큼 왕명은 치를 떨었다.
“멸마회가 하남성 쪽으로 움직였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방금 막 쌍룡회에서 사천성에 숨어 있던 홍룡회의 잔당을 토벌하고 산서 쪽으로 이동 중이라는 소식입니다.”
“좋아. 지금처럼 놈들의 움직임을 하나도 빠짐없이 수집하도록.”
왕명은 가용한 모든 인력과 자금을 투자해 십회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분석했다.
그것만으로도 왕명은 그동안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았던 각 길드의 거점과 전력, 동선 등에 대한 정보를 차고 넘치게 획득할 수 있었다.
* * *
한편, 은밀하게 국외로 피신한 공손승은 현재 네덜란드에 있는 자신의 안가에서 조용히 숨죽인 채 상황을 파악하고 정보를 긁어모으는 중이었다.
“진범의 정체는 아직인가?”
“죄송합니다! 신체적인 특징에 비추어 볼 때, 이만한 신체 조건에 오버 알터를 농락할 정도의 실력자로 추정되는 인물을 아직 특정하지 못했습니다.”
“어떻게든 반드시 놈을 우리가 먼저 찾아내야 한다. 진범을 찾아낸 뒤라면 아무리 놈들이 욕심에 눈이 멀었어도 더 이상 우리를 공격하는 무모한 짓은 하지 못할 테니까. 놈들의 명분은 복수다. 진범이 눈앞에 있는데 명분을 도외시하고 우리를 공격했다가는 오히려 좋은 먹잇감이 될 거라는 걸 놈들이 모르지 않을 터.”
“반드시 찾아내도록 하겠…….”
크아아악!
그때였다.
별안간 밖에서 터져 나온 비명에, 공손승도, 간부들도 놀라 밖으로 뛰쳐나왔다.
촤악! 서걱! 스핏! 푸화학!
그들이 밖으로 나왔을 땐 이미 학살이 한창 진행되는 도중이었다.
심지어 적이 여럿인 것도 아니었다. 단 한 명의 남자가 자신이 추리고 추린 최정예 길드원들을 말 그대로 도륙하고 있었던 것이다.
추풍낙엽이 이러할까?
윤수호가 손을 스윽 그을 때마다 사방으로 날카로운 검기가 휘날리며, 달려들던 길드원들이 오체 분시되어 흩뿌려졌다.
‘도대체 저 괴물은……. 설마?’
어느새 부하들을 모두 학살한 윤수호가 자신의 앞으로 다가오자, 공손승은 그를 노려보며 분노를 씹어 뱉었다.
“네놈이구나. 이번 일을 꾸민 배후가!”
“이제 와서 눈치챈다 한들 무엇이 달라질까.”
윤수호가 검결지를 들어 올리자, 공손승이 그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며 물었다.
“도대체 여긴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지? 미행은 수시로 체크했을 텐데?”
사실 공사윤의 머리통이 공손승에게 배달되기 전, 윤수호는 은밀하게 머리통에 자신의 기운을 남긴 적이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공사윤의 머리는 반드시 조부인 회주의 손으로 들어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홍룡회 역시 추적 장치를 의심하여 몇 번이나 공사윤의 머리를 조사했지만, 그런 것이 발견될 리 없었고…….
공사윤의 머리가 공손승의 수중에 들어간 순간부터 이미 윤수호는 그를 미행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딱히 대답의 필요성은 못 느끼겠군.”
촤아악!
“……!”
대답과 동시에 윤수호가 검결지를 휘두르자, 위기감을 느낀 그의 측근들이 몸을 날려 공손승을 보호했다.
전력으로 오러를 끌어 올린 그들의 육신은 강철보다 단단해서 탱크의 포탄도 간단히 막을 수준이었지만…….
촤촤촤촤!
윤수호의 검기 앞에서는 순두부처럼 썰려 나가 붉은 핏물을 사방으로 흩뿌릴 뿐이었다.
“유광호! 광호는 어디 있느냐!”
측근들의 피를 흠뻑 뒤집어쓴 공손승이 노기에 차 소리치는 순간.
파앗!
그의 앞으로 무언가가 섬전처럼 질주하더니, 순식간에 거리를 지우며 윤수호에게 달려들었다.
깡! 그그극! 그그그극……!
유광호.
흑천회주에게 전가라는 검이 있다면, 유광호는 공손승이 아끼고 아끼던 최후의 보루였다.
그 실력을 증명하듯 그의 검에서는 오버 알터 중에서도 일부만이 다룰 수 있다는 퍼펙트 오러가 눈부신 빛을 발하고 있었다.
‘네놈이 기고만장한 것도 지금뿐이다. 네놈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지금부터 천천히 알아내 주마.’
이미 공손승의 마음속에서 이 승부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유광호의 패배를 그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으니까.
그런데…….
“도망……가십쇼.”
“……뭐?”
“어서!”
콰앙!
믿을 수 없는 유광호의 외침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몸이 폭발하며 피와 육편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털썩.
공손승은 눈앞의 현실을 믿을 수 없었는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한편 온몸에 피를 흠뻑 적신 윤수호는 혼자 남은 공손승의 코앞까지 다가오더니 그를 차가운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도,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러는 것이오? 나는 당신을 알지 못하오! 도대체 내가 당신에게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이렇게 나를 지옥으로 몰아넣는 것이냔 말이오!”
공손승은 악다구니를 질렀고 윤수호를 담담하게 대답했다.
“너는 너와 똑같이 외치던 수많은 사람의 말에 단 한 번이라도 귀 기울인 적 있었나?”
“……!”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지. 강자에게 약자의 구걸은 벌레가 우는 소리만도 못한 법이니까.”
서걱!
“크아아아악!”
윤수호가 검결지를 휘두르자, 돌연 공손승의 왼팔이 날아가며 피가 쏟아져 나왔다.
공손승은 잘린 왼팔을 감싸 쥐며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윤수호는 그런 공손승을 차갑게 내려다보며 대답을 이어 나갔고, 그때마다 그의 사지가 조금씩 잘려 나갔다.
“그런데 말이다. 그 벌레가 나만 물었으면 그것만 밟아 죽이는 걸로 끝냈을 거다. 굳이 벌레 한 마리가 물었다고 둥지까지 찾아가 박살 내는 건 제법 귀찮은 일이니까. 하지만 그 벌레가 나뿐만 아니라 내 가족까지 물려고 했다면 얘기가 달라.”
“사, 살려 주시오! 원하는 건 뭐든 드리겠소! 제발 목숨만은…….”
사지가 잘려 나가 몸뚱이와 머리만 남았으면서도 목숨을 갈구하는 노인의 모습은 처량하고 역겹기 그지없었다.
“그럼 위험한 해충은 뿌리까지 제거해야지. 안 그런가?”
“제발 목숨만은…….”
“걱정 마라. 지금 당장 죽일 생각은 없으니까.”
윤수호는 그를 끌고 안가로 들어갔다.
그만이 알고 있는 홍룡회의 정보들, 특히 홍룡회주의 재산을 이대로 어둠 속에 묻어 버릴 생각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