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프스스스.
윤수호의 눈앞에서 한 사내가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그에게 혈을 자극당하고 복통 신호 때문에 부리나케 화장실을 찾아왔던 바로 그 사내였다.
화장실 칸막이 안에서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목격자는 0명. 당연히 CCTV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걸 쓰는 건 오랜만인데?’
윤수호가 어느 축골공의 무리에 따라 내공을 운기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의 몸이 삐걱거리기 시작하더니 점점 변하는 게 아니겠는가?
180cm가 넘었던 장신이 순식간에 160cm의 단신이 되고, 얼굴의 형태도 변하더니 이내 눈에 흉터까지 재현해 버린 윤수호.
이것은 ‘만변천화’라는 절세의 축골공을 사용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보통의 축골공이 약간의 체격과 얼굴 형태만 조금 변화시킬 뿐이라면 만변천화는 키와 흉터, 그 사람의 특징까지 거의 완벽하게 재현 가능했다.
덕분에 그가 죽은 사내의 옷으로 갈아입고 칸을 나와 거울 앞에 서자, 놀랍게도 영락없이 죽은 사내가 거울 앞에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머리모양까지 만져 주자 가족이 아니라면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사내와 비슷해진 윤수호는, 미리 준비해 둔 검은 복면으로 코와 입을 가려 묶은 뒤 조용히 화장실을 나섰다.
* * *
“자, 정신 줄 놓고 신나게 놀아 보자고!”
“꺄악!”
심장이 날뛸 것 같은 DJ들의 비트와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춤을 추고 즐기던 제갈우문은 쌍룡회의 차기 후계자였다.
30대 초반에 오버 알터로 각성한 그는, 쌍룡회의 회주이자 친할아버지의 비호를 받으며 그야말로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는, 성공한 후계자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주변에는 남자든 여자든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넘쳐흘렀다.
쓸모 있는 남자라면 거두어 유용하게 써먹고, 예쁜 여자라면 취해서 질릴 때까지 가지고 논다. 그게 그의 인생이었고, 그런 삶이 허락되는 인간이기도 하였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여자들과 알몸으로 관계를 가져도 누구도 그를 나무라거나 눈치 주지 못했다. 그 역시도 그게 창피하다거나 부끄러운 일이라는 자각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와장창!
“아, 죄송합니다! 금방 닦아 드리…….”
한 남자 승무원이 제갈우문의 친구가 일부러 내민 발에 걸려 넘어졌다. 문제는 그가 쟁반 위에 들고 있던 와인 잔이 깨지며 와인의 일부가 제갈우문의 발에 튀었다는 것이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비켜.”
으드득!
제갈우문은 관계를 가지던 여자를 옆으로 거칠게 옆으로 치워 버리더니, 자신의 발을 닦으려던 승무원의 목을 그대로 꺾어 버렸다.
“씨발! 이 새끼 때문에 흥이 식었잖아! 뭐 하냐? 자리 옮기자.”
“도련님, 적당히 놀고 쉬시죠? 이러다 내일 뻗어서 흑천회 영감탱이 연회에 참석 못 하면 회주님께 엄청 깨질 텐데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닥쳐. 한 번만 더 잔소리하면 그 주둥이 찢어 버린다?”
단지 그 이유 때문이었다.
와인이 발에 튀어 흥이 식었다. 단지 그것 때문에 친구의 장난으로 발에 걸려 넘어진 승무원 한 명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것이었다.
하나 그 누구도 그를 탓하지 않았고, 그런 짓을 따져 묻지도 않았다. 승무원 하나의 목숨을 따지기엔, 쌍룡회의 후계자라는 간판은 너무 크고 위험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제갈우문은 정신없이 놀고 마셨다. 술에 취해 여자들을 취하며 미친 듯이 놀다 보니 어느새 새벽이 가까워졌다.
‘더 놀고 싶지만 미친 영감탱이 잔소리를 피하려면 어쩔 수 없지.’
결국 할아버지의 잔소리를 피하기 위해 쉬려고 자신의 객실로 향한 제갈우문.
그런데…….
‘이건…….’
문을 열려던 제갈우문은 방안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눈살을 찌푸리며, 문 앞을 지키고 있던 부하들에게 물었다.
“혹시 내가 노는 사이에 내 방으로 심부름꾼을 보낸 적이 있었나?”
“예? 아뇨. 도련님이 방에 사람을 보낸 적은 없으셨는데, 무슨 문제라도…….”
퍼억! 퍼억!
오러로 취기를 날려 버린 제갈우문은 문 앞을 지키던 부하들의 머리를 사정없이 터트려 버리고는, 쓰러진 부하들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침을 뱉었다.
“이런 쓸모없는 새끼들. 뭐 해? 이 더러운 것들 치워 버리지 않고.”
“예!”
부하 몇 명이 시체 두 구를 치우는 사이, 제갈우문의 지시로 그의 신병을 경호하는 경호원들이 먼저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빠르게 들어서 사방을 경계했다.
하나 그럴 필요도 없었다.
침입자는 보란 듯이 의자에 앉아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던 게 여자라면 기쁘게 안아 줬을 텐데…… 뭐냐, 너는?”
“네가 제갈우문인가?”
“말이 짧네? 저 새끼 잡아. 정체를 묻기 전에 일단 예절 교육부터 다시 해야 할 것 같으니까.”
제갈우문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의 경호원들이 빠른 속도로 윤수호를 향해 쇄도하였다.
모두 알터 중에서는 상급에 속한 실력자들인 만큼, 그들의 행동은 신속했으며 군더더기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리고 한두 번 합을 맞춰본 게 아닌 듯, 순식간에 윤수호를 포위하여 제압하는 그들의 움직임은 깔끔하게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촤촤촤!
윤수호는 옷의 주인이 가지고 있던 잭나이프를 가볍게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주변에 스산한 빛의 실선들이 거미줄처럼 공간을 복잡하게 가로질렀고…….
후드드득.
이내 실선을 따라 분해된 경호원의 육편과 내장 조각, 핏물 등이 바닥으로 쏟아지면서 카펫을 붉게 물들였다.
“……너, 뭐 하는 새끼야?”
제갈우문의 표정에서 장난기가 사라졌다. 지금 그가 보여 준 움직임만으로도 상대가 결코 자신의 아래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네게 몇 가지 물어볼 게 있다. 순순히 답한다면 고통 없이 보내 주마.”
“×까, 이 새끼야!”
거칠게 욕을 지껄인 제갈우문은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태세를 취하더니, 순식간에 방향을 전환하며 밖으로 뛰쳐나가려 했다.
‘내가 미쳤냐? 저런 정체도 모를 이상한 녀석이랑 목숨 걸고 싸우게?’
오버 알터인 자신이 전력을 다해 도망친다면 아무리 놈이라도 잡을 수 없으리라.
제갈우문은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고…….
“어딜 가려는 거지?”
“……!”
그게 얼마나 헛된 바람인지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대체 언제…….’
눈앞의 현실을 믿지 못하는 제갈우문의 구레나룻을 타고 식은땀 한 방울이 흘러 내렸다.
등을 돌리는 순간까지도 놈은 분명 자신의 뒤에 있었다. 그런데 몸을 돌린 순간, 어느새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게 아닌가?
문제는 그가 어떻게 움직였는지 반응조차 못 했다는 사실이었다.
그 말인즉…….
‘나보다 강하다고? 저 정체도 모를 이상한 개자식이?’
자존심은 있는 대로 구겨지고, 도망칠 수단도 마땅히 없는 상황.
결국 제갈우문은 최악의 선택지를 고르고야 말았다.
“좋아. 이렇게 된 거 네놈을 죽여 버리고 그 뻔뻔한 낯짝을 보도록 하지.”
팟!
제갈우문은 오러를 전력으로 끌어 올리며 윤수호에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둘 사이의 거리를 지운 제갈우문의 오른손이 그의 얼굴로 향했다.
‘잡았다!’
쌍룡회에서 익힌 그의 조권이라면 강철을 휴지처럼 잡아 찢는 것도 손쉬운 일이었다.
그런데…….
턱, 우드득!
윤수호의 얼굴 근처까지 다다랐던 자신의 팔목이 그의 손에 잡혀, 듣기 싫은 소성과 함께 꺾여 버렸다.
곧이어 끔찍한 통증이 머리를 강타했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이런 썅!”
제갈우문은 어떻게든 반격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윤수호를 공격했지만 소용없었다.
윤수호는 제갈우문을 손쉽게 제압한 뒤, 그의 오른손을 잡아 단단히 고정한 다음 담담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사람은 말이야. 손 하나로도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지만, 반대로 다양한 고통을 당할 수도 있지. 보통은 손가락을 한마디만 부러트려도 입을 열기 마련이지만, 고집스러운 녀석들은 그것도 미련스럽게 참아 내더군.”
으득!
얘기를 하면서 윤수호는 제갈우문의 검지 첫 번째 마디를 꺾어 버렸다.
“크윽……!”
“하지만 걱정 마라. 엄지를 제외하면 한 손가락에는 세 개의 마디가 있으니까. 이걸 전부 꺾고 나면 손톱 밑에 바늘을 찔러 넣고, 손톱을 뽑고, 살가죽을 벗기고, 소금을 뿌리고, 불로 태울 생각이다. 어때, 즐길 수 있는 고통이 정말 다양하지 않나?”
“미, 미친 새끼! 네놈이 나에게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그런데 더 즐거운 게 뭔 줄 아나? 사람의 손가락은 열 개라는 사실이다. 그런 끔찍한 고통을 무려 열 번이나 경험할 수 있다는 뜻이지. 아, 참! 발가락까지 더하면 스무 번이던가?”
“……!”
제갈우문은 뼛속까지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협박은 신경조차 쓰지 않고 끔찍한 고문을 말하며 즐거워하는 윤수호의 모습에서 광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이코패스 변태라고 불리는 자신조차도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진정한 광기 그 자체였다.
“너는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궁금하군.”
“자, 잠시만……!”
으득!
“크아악!”
그렇게 윤수호의 고문이 시작되자 제갈우문은 비명을 지르며 발악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원래 방음 효과가 뛰어난 객실인 데다 윤수호가 강기막을 펼쳐놨기 때문에, 설령 여기서 폭탄이 터진다 한들 누구도 그 소리를 듣지 못할 테니까.
하지만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제갈우문이 윤수호가 원하는 정보를 뱉을 때마다 그 시간만큼은 고문이 멈췄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제갈우문은 머리를 필사적으로 굴려 자신이 알고 있는 쌍룡회에 관한 정보를 모두 그에게 알려 주었다.
하지만 제갈우문의 운명은 결코 해피엔드로 끝나지 않았다.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실토하자 결국 윤수호의 고문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은 사라졌고, 그렇게 제갈우문은 끔찍한 몰골로 죽음을 맞이했던 것이다.
‘후계자라서 그런지 상당히 쓸 만한 정보들이 많군.’
윤수호는 제갈우문에게 얻은 정보들을 모두 폰에 저장해 두었다.
그리고 조용히 객실을 나섰다. 이때 일부러 복도 CCTV에 눈의 흉터가 슬쩍 비치도록 찍히는 걸 잊지 않았다.
‘다음은…….’
그렇게 윤수호는 십회의 후계자들을 찾아다니면서 암살하고, 고문을 통해 해당 길드의 정보들을 취득하였다.
그리고 일부러 젊은 회주가 참가한 길드는 건드리지 않았다.
‘이제 막 길드를 이어받은 젊은 회주가 사망하면 공석이 된 회주의 자리를 두고 내분이 일어나는 탓에 바깥일에는 신경을 쓰기 힘든 법이거든.’
그렇게 각 길드의 젊은 후계자들이 죽어 나가다 보니, 이 사실이 발각되는 것도 결국 시간문제였다.
“꺄악!”
“여, 여기 쌍룡회의 후계자가 사망했다!”
“문평회의 후계자도 죽었잖아?”
“미친! 멸마회의 후계자도 당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공포와 두려움에 떨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축제 분위기였던 유람선이 대혼돈의 아수라장이 되는 건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지금부터는 너희들끼리 물고 뜯을 차례다, 아귀들아.’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윤수호는 조용히 그림자 속에 숨어들어 그들을 지켜보았다.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