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또래 일반인한테는 큰 문제없겠네.’
“뭐 하냐, 너희 지금? 그깟 쌍×한테…….”
서걱!
“우읍……!”
그 순간, 송문수는 자신의 입을 가리며 눈을 부릅뜨더니 답답한 신음을 토해 냈다.
입을 꽉 틀어막은 그의 손가락 사이로 붉은 선혈이 흘러나왔고, 어느새 그의 앞에 서 있던 은지한의 손에는 그의 잘린 혀가 들려 있었던 것이다.
꺄아악!
그에 송문수의 곁에 있던 여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자, 은지한은 웃으며 송문수에게 감사를 전했다.
“고맙다. 일부러 인적이 없는 곳으로 데려와 줘서.”
“……!”
“이 새끼가……!”
“덮쳐!”
부상을 당한 송문수가 서둘러 뒤로 빠지고, 그의 곁을 지키던 일진들이 은지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은 송문수가 직접 스카우트했을 만큼 싸움에 일가견이 있는 알터들이었다. 또한 졸업 후에 송문수와 함께 길드에 가입될 예정인 상비군이기도 했다.
하지만…….
턱, 빠각! 쉭, 쩌엉!
“커헉!”
“크아아악!”
상대가 안 좋아도 너무 안 좋았다.
은지한은 달려드는 일진들의 공격을 가볍게 피해 내며 녀석들이 내지른 팔을 잡아 분지르고, 공격을 흘리면서 갈비뼈나 턱에 주먹을 날려 뼈와 근육을 완전히 박살 내 버렸다.
‘오러의 유형화는 불가능한 것 같고, 신체 강화도 불안정한 수준인가?’
은지한은 그들을 상대하면서 시큰둥한 얼굴로 그들의 전력을 분석했다.
이제 겨우 오러를 각성한 지 3년도 되지 않은 이들은, 오러를 유형화시키긴커녕 아직 오러를 이용해 제대로 몸을 강화하는 기술도 익히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송문수의 측근들을 상대하면서도 은지한은 삼촌에게 배운 지풍을 틈틈이 날려 은지연을 백업하였다.
푹푹푹푹푹푹푹푹푹푹!
그녀 역시 윤수호가 체조로 둔갑시킨 무공을 열심히 수련하고 있지만, 아직은 어설픈 초짜이기에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퍽퍽퍽퍽퍽퍽퍽!
“커헉!”
“뭐, 뭐야?”
“뭐가 날아오는 건데?”
은지연의 부족한 부분을 은지한의 지풍이 차고 넘치게 채워 주고 있었다. 덕분에 은지연은 다른 것에 신경 쓸 필요 없이 눈앞의 상대만 집중할 수 있었고…….
“이 미친×이……!”
스륵! 콰앙!
“끄윽!”
결과적으로 또래 일반인 중에서는 남녀 구분 없이 그녀의 적수를 찾기가 어려웠다.
윤수호가 그녀에게 가르쳐 준 무공은 선녀문의 ‘선녀이십사수’라는 무공으로, 부드러움의 정점이라 불리는 무당의 ‘태극산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무공이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큰 힘과 내공을 들이지 않고도 정면에서 달려오는 적들 정도는 가볍게 넘겨 바닥에 매칠 수 있었고, 본인의 힘과 은지연의 힘까지 더해진 상황에서 바닥에 메쳐진 상대들은 기절하거나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니까 그 미친×한테 누가 까불래? 안 그래도 오늘 짜증 나는 일이 많았었는데 속이 다 시원하네!”
실전만 한 연습은 없다고 했던가?
은지연의 무공은 실전을 거듭할수록 점점 더 완성되어 갔다. 이제는 은지한의 지풍이 없어도 물 흐르듯이 일진들을 날려 버릴 수 있는 수준까지 성장한 것이다.
덕분에 은지한은 송문수의 측근들을 처리하고 그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다.
“서둘러 병원에 가면 목숨은 구할 수 있을 거다.”
그러나 송문수는 물러설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쾅!
분노를 잔뜩 실은 그의 주먹이 콘크리트 기둥을 후려갈겼다. 그러자 놀랍게도 콘크리트 기둥이 찰흙처럼 부서져 나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자세히 보니 그의 주먹에는 미세하게 유형화된 오러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신체 강화도 제대로 못 하는 그의 측근들과는 확실히 수준이 다른 실력이었다.
‘죽여 버린다!’
이미 눈이 돌아 버린 송문수는 오러가 깃든 주먹을 움켜쥐며 은지한을 향해 빠른 속도로 몸을 날렸다.
팟!
오러로 신체를 강화한 덕분에 십여 미터나 벌어져 있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들며 그의 주먹이 은지한의 얼굴로 향했다.
그런데…….
턱.
“이게 전부야?”
송문수는 너무 놀란 나머지 눈을 부릅떴다. 자신의 전력이 담긴 주먹을 은지한이 한 손으로 가볍게 잡아냈기 때문이었다.
“나를 보고 싶다길래 어떤 녀석인가 했는데, 꽤나 시시한 놈이었네.”
은지한은 오른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고, 그대로 수도를 내리그었다.
그러자…….
서걱!
“크아아아악!”
송문수는 피를 토하며 비명을 내질렀다. 오른팔이 어깨 어림에서 통째로 잘려 나갔는데 그 고통이 오죽했을까?
쿵…….
결국 끔찍한 고통이 주는 쇼크를 이기지 못하고 송문수가 눈을 까뒤집으며 기절했다.
“어, 어떻게 됐어? 설마 다 죽인 건 아니지?”
“오셨어요?”
그때 마침 류한국과 경호팀이 현장에 도착했고, 전멸하긴 했지만 다행히 숨은 붙어 있는 일진들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구급차랑 경찰차 부르고 상황부터 정리하자.”
다행히 목격자나 CCTV도 없는 곳이었기 때문에, 상황을 정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 * *
다음 날.
“안녕, 집에는 잘 들어갔어?”
“어, 지한아!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정말로 고마워.”
“야, 야, 이러지 마. 다른 녀석들이 다 쳐다보잖아.”
권성하는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이 은지한의 부탁으로 찾아왔다는 사실을 들어 알고 있었다. 만약 그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을 것이다.
학생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와중에도 신경 쓰지 않고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하는 권성하의 모습에 은지한은 마음 한구석이 짠했다.
자신에게야 별것도 아닌 녀석들이었지만, 권성하에게는 그만큼 힘들고 괴로운 시간이었을 테니 말이다.
“아무튼 더 이상 박민철 패거리가 널 괴롭히는 일은 없을 거야. 박민철뿐만 아니라 그 누구라도.”
“그게 무슨……?”
권성하가 은지한의 말뜻을 알 수 있었던 건 조례시간이었다.
“오늘 아침에 선생님한테 연락이 왔는데, 박민철과 주한울, 김성경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급하게 전학 가게 됐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친구들은 따로 연락해 보도록. 그리고 오늘 점심시간에…….”
권성하는 충격을 받은 듯 눈을 부릅떴다. 사실 박민철 패거리가 전학 갔다는 말 이후로는 잘 들리지도 않았다.
그는 놀란 눈으로 옆자리에 앉아 있던 은지한을 쳐다보았고, 은지한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엄지를 조용히 치켜세울 뿐이었다.
‘고마워, 지한아. 정말로 고마워…….’
한때는 자살까지 생각했던 권성하였기에 지금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은지한은 책상에 고개를 파묻고 숨죽여 우는 친구의 등을 조용히 다독여 주었다.
* * *
한편 조카들의 입학 준비를 도와주고 곧바로 중국 출장을 떠난 윤수호는 지금…….
“오늘은 여기가 좋겠군.”
……상해의 소문난 맛집들을 돌아다니며 맛집 탐방에 여념이 없었다.
그렇게 찾아간 음식점의 명물, 딤섬을 조용히 먹고 있으려니, 그의 앞에 어떤 남자가 자연스럽게 합석했다.
“어제는 화저육에 오늘은 딤섬입니까? 정말 잘 드시네요.”
“함께 드시죠. 시간상으로 아직 점심 전이실 텐데.”
“그래도 될까요? 사실 제가 어제저녁부터 아무것도 못 먹어서 말입니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윤수호의 권유에 사양 않고 젓가락을 집어 든 남자는 딤섬 몇 판을 게눈 감추듯이 그대로 흡입하였다.
이렇게 친화력 좋고 어딘가 수더분해 보이는 사내의 이름은 왕명.
중국 정보공작부대 309 출신의 엘리트 요원이었지만, 지금은 한국으로 귀화한 특무대 해외 정보부 소속 중국팀 3팀장이었다.
윤수호도 처음 중국으로 와서 그를 소개받았을 때는 적잖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중국 정보공작부대 엘리트 요원 출신이라니…….
머릿속에서 그가 중국 측의 스파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왕명도 그런 오해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웃으며 윤수호의 걱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제 정체를 의심하시는 것도 이해하고, 그걸 불쾌하게 생각하거나 따져 물을 생각은 더더욱 없습니다. 그런 의심들은 제 능력과 진심을 보여 드리면서 차차 풀어가는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왜 조국을 등지고 한국에 귀화한 것도 모자라 특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냐는 말씀이시죠?]
[그렇습니다.]
[사실 배운 게 공작, 첩보질이라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이 특무대밖에 없었다……는 건 반은 농담이고 반은 진심입니다. 하지만 한국으로 귀화한 이유는 확실합니다. 이 나라에 미래는 없기 때문이죠.]
[미래가 없다?]
[지금 중국은 패권주의에 찌들어, 쓴소리는 무시하고 감시와 통제를 더 악랄하게 이용하여 당의 위세를 키우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것이 나라를 지키고 부강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라 선동하고 있지만, 권력자들을 살찌우기 위한 변명일 뿐이란 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죠. 하지만 그 누구도 변하려 하지 않습니다. 변화시키기 위해 투쟁하려 하지 않습니다.]
왕명은 중국 정보부 소속이기에 가공되지 않은 조국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이 나라의 부조리함과 비합리에 누구보다 분개했다.
그래서 왕명은 싸웠다. 뜻과 의지가 있는 자들을 모았고, 나라를 바꾸기 위해 그들과 함께 권력에 대항했지만 소용없었다.
진정으로 나라를 위하려는 의지 있는 사람들은 전부 형장의 이슬이 되었다. 게다가 자신 역시 수배범이 되어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이다.
[그러다가 지금의 애 엄마를 만났죠. 지연이를 만난 건 제 생애 최고의 행운이었습니다. 그녀 덕분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고, 그녀 덕분에 가족의 따스함을 배울 수 있었고, 그녀 덕분에 세상 둘도 없는 보물이 태어났으니까요. 지금의 저는 제 아내와 제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웃으며 지옥불에라도 뛰어들 수 있습니다.]
[…….]
[왜 그렇게 보십니까? 제 얼굴에 뭐라도 묻은…….]
[아뇨. 아내분 성함이 제 조카와 같아서요.]
[그런가요? 분명 예쁘고 착하고 현명한 조카분이시겠네요.]
왕명이 진심으로 조국을 배신하고 한국에 귀화한 것인지 그 속내까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윤수호가 그와 함께 행동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단 한 가지. 그가 진심으로 가족을 사랑하고 아끼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아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고자 노력하는 남자를 믿지 못한다면 세상에 누굴 믿을 수 있을까?
만약 배신한다면 그때 가서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해 주면 그뿐. 윤수호는 그가 마음에 들었고 그렇기에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후우! 이제 좀 살 것 같네. 그럼 본론으로 넘어가서, 아무래도 조만간 홍룡회 간부들이 큰 행사에 모습을 드러낼 것 같습니다. 잘하면 회주 본인도 말이죠.”
중국에 입국한 뒤로 윤수호는 차분하게 때를 기다렸다. 그의 목적은 감히 가족을 노린 홍룡회를 뿌리까지 괴멸시켜 버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주급인 금설령조차 회주가 있는 곳은커녕 회주의 정체조차 제대로 알고 있지 않았다. 게다가 금설령과 웅란은 전투부대 소속이었기 때문에, 홍룡회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상업에 관련된 정보들은 거의 알지 못했다.
즉, 저번과 같은 타초경사의 전략을 써도, 뱀이 튀어나오기는커녕 되레 숨어 버릴 가능성이 더 크다는 뜻이었다.
“행사요?”
“예, 흑천회라고, 홍룡회에 견줄 만한 중국의 대형 범죄 길드가 있는데, 이번에 흑천회 회주가 칠순을 맞는다는군요. 그리고 그 칠순 잔치에서 회주가 다음 후계자를 지명할 수도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습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흑천회의 다음 회주와 눈도장을 찍고 연을 만들 수 있는 곳에 홍룡회가 참석하지 않을 리 없겠죠.”
“예.”
윤수호의 추측에 왕명이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