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종철아, 우리 성하 좀 일단 다른 곳으로 데려가서 진정 좀 시켜 줄래? 씻겨서 옷도 좀 갈아입히고. 지금부터 일어날 상황을 우리 조카한테 보여 주고 싶지 않거든.”
“예, 알겠습니다, 팀장님.”
“자, 잠깐만요! 이게 대체 무슨…….”
“괜찮으니까 따라와도 돼.”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권성하의 귀에 부하가 뭔가를 속삭이자, 눈을 부릅뜬 권성하가 이내 진정하더니 그의 지시를 따랐다.
그렇게 부하가 잔뜩 긴장한 권성하를 안심시켜 다른 곳으로 데려가자, 류한국이 박민철을 쳐다보며 물었다.
“반갑다, 친구들. 성하 삼촌이다. 형이 잠시 외화벌이에 힘쓰는 사이에 성하가 재미있는 친구들을 사귄 모양이구나. 그런데 웃은 새끼들은 왜 아직 손 안 드냐? 어디 보자. 팔에 문제가 있나?”
“뭐, 뭐야! 당신들! 씨발! 다가오지 마!”
후욱!
류한국이 자신에게 다가오자 위협을 느낀 박민철이 반사적으로 류한국의 얼굴로 주먹을 뻗었다.
그러나…….
슥, 빠각.
고개를 틀어 박민철의 주먹을 간단히 피해 버린 류한국은 박민철의 손목을 잡아채더니 먼저 그의 손목을 꺾고…….
으득!
관절을 비틀어 팔꿈치를 부수고…….
뿌드득!
주먹을 내질러 어깨를 박살 냈다.
“끄아아아아아악!”
마치 낙지 다리처럼 흐물거리는 오른팔을 끌어안고 자리에 쓰러진 박민철이 목이 쉬도록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쓰러진 박민철을 내려다보는 류한국의 시선은 마치 벌레를 보는 듯 얼음장처럼 차갑기 그지없었다.
“맞네. 팔이 고장 나서 못 들었던 거. 또 팔이 고장 나서 손 못 든 사람?”
번쩍! 번쩍!
류한국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지도 못했는데,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박민철은 오른팔이 박살 난 채 게거품을 물며 비명을 질러 댔다. 이런 상황에서 강짜를 부릴 수 있는 녀석은 패거리 중에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패거리 전원이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전혀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말이다.
“그래. 우리 성하를 협박한 것도 모자라 실금한 걸 놀린 녀석들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아, 씨발! 맞다! 그것 때문에 손들라고 한 거였지?’
‘× 됐다!’
“얘들아.”
“예, 팀장님.”
“이 새끼들, 팔 한 짝씩 뽑아 버려.”
류한국의 명령이 떨어지자 경호팀이 패거리를 향해 접근하기 시작했다.
“자, 잠시만요!”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성하를 괴롭히지…….”
우드득! 빠각!
그러나 자비는 없었다. 경호팀은 패거리의 팔을 잡아 박철민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그들의 팔을 분질러 버린 것이다.
치료를 받아도 다시는 팔을 쓸 수 없을 만큼…….
그러자 쓰러져 있던 박민철이 오른팔을 끌어안고 독기 가득한 눈빛으로 류한국을 노려보며 말을 씹어 뱉었다.
“이, 이러고도 당신들이 무사할 거 같아? 우리 미성년자야! 어른이 함부로 애들을 이렇게 괴롭혀도 되는 거냐고! 당신들…… 내가 경찰에 신고할 거야! 알아?”
“…….”
류한국은 어벙해진 표정으로 박민철을 쳐다보다가 팀원들을 둘러보았다.
그런 행동이 그가 당황한 증거라고 생각한 박민철은 자신감을 얻었는지 점점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잘하면 이 상황을 뒤집어 오히려 저들을 협박할…….
“푸하하하하!”
“아! 배 아파…….”
“얼마 만에 이렇게 웃어 보냐.”
“……?”
팀원들이 박장대소하자 오히려 놀란 사람은 박민철이었다.
그런 녀석에게, 류한국은 피식 웃으며 직접 폰을 꺼내 들었다.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들이 협박은!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그 팔로는 무리니까 형이 도와줄게. 어디 보자…… 여기서 가장 가까운 경찰서가 어디였지?”
“수서경찰서입니다, 팀장님.”
“수서면 지금은 서길준 총경님이 서장님이셨던가?”
“예, 팀장님.”
잠시 후.
몇 대의 경찰차와 한 대의 검은 세단이 이들 앞에 도착했다.
세단 뒷좌석에서 내린 사람은 어깨에 무궁화 네 개를 달고 있는 서길준 총경이었다.
“이게 누구십니까? 류 팀장님이 아니십니까?”
“이것 참, 오랜만에 뵙습니다, 서 서장님. 서장 되신 걸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미리 찾아뵙고 인사드렸어야 하는데…….”
“아이고! 무슨 말씀이십니까. 류 팀장님 바쁜 거야 세상이 다 아는 일인데…….”
경찰들이 빠르게 주변에 배치되고 한눈에 봐도 엄청 높아 보이는 경찰이 류한국과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자, 박민철과 그 패거리의 안색이 점점 더 사색으로 물들었다.
“그러니까 이 아이들이 류 팀장님을 협박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니까요? 어휴! 요새는 애들 무서워서 함부로 눈도 못 마주치겠다니까요. 하하하!”
“이런 싹수없는 것들을 봤나? 뭣들하고 있어? 이 새끼들 당장 연행해!”
서길준의 명령에 경찰들은 그 즉시 아이들을 연행하기 시작했다.
“자, 잠깐만요! 당한 건 우린데, 왜 우리가 잡혀 가냐고요!”
“닥치고 조용히 가자. 여기서 너희 팬다고 뭐라 할 사람 아무도 없으니까.”
“잘못했어요! 제발 부모님한테만큼은 말하지 말아 주세요, 네?”
아이들이 차례차례 경찰차로 연행되고, 마지막 남은 박민철이 경찰의 손에 끌려가던 도중이었다.
“원하는 대로 경찰 불러 줬더니, 왜 이렇게 똥 씹은 표정이야?”
류한국이 다가와 이죽거려도 박민철은 무서워서 차마 그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그저 이만 갈았다.
그 모습에 류한국이 그의 뒤통수를 갈겼다.
빡!
“새끼가 성깔은 남아 있어 가지고. 잘 들어, 지금부터 성하가 누구한테 괴롭힘을 당하건, 맞고 돌아오건, 난 너부터 찾아가 조질 거다. 네가 한 짓이건 아니건 그건 상관없어. 그냥 넌 내 손에 죽는 거야. 형이 너 같은 고삐리 하나 조용히 처리하는 게 일도 아니라는 건, 너도 봐서 잘 알겠지?”
박민철은 몸을 부르르 떨다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박민철까지 경찰차를 타고 사라지자, 류한국도 서길준과 인사를 나눈 뒤 상황을 마무리했다.
“이 정도면 지한의 부탁을 제대로 들어준 게 맞겠죠?”
“할 만큼은 했다.”
“그런데 과연 지한이도 약속을 지켜 줄까요? 나중에 위원장님한테, 밖에서 그분 가족들을 몰래 경호하다가 걸렸을 때 커버 쳐 주기로 한 거 말입니다.”
팀원의 걱정에 류한국은 피식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되물었다.
“커버 안 쳐 주면? 그 녀석한테 가서 따지기라도 하려고? 하려면 너 혼자 해라. 난 벽에 ×칠 할 때까지 오래 살고 싶으니까.”
꿀꺽…….
“저, 저도 딱히 따질 생각은…….”
“지한이 부탁도 있지만 내가 좀 오버해서 나선 건, 그냥 저 애새끼들 하는 짓이 마음에 안 들어서야. 미성년자는 특권이 아냐. 그저 어른들이 아이들을 보호하고 잘 가르치기로 사회적으로 약속한 거지. 그걸 무기로 쓰는 새끼들은 이미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단죄해야 할 악당…… 빌런이다. 우린 특무대로서 그 소임을 다한 거고. 근데 내 말 누가 듣고 있긴 한 거냐? 오랜만에 멋있는 말을 한 거 같은데.”
류한국의 멋진 연설 도중에 무전을 받은 부하 한 명이 그에게 다가와 난감한 표정으로 보고했다.
“그런데 팀장님, 좀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요.”
“또 무슨 문제?”
“아까 들어온 보고인데 말입니다. 어떤 겁 없는 새끼들이 지한이랑 지연이를 끌고 갔답니다.”
“……뭐?”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보고에 류한국의 등줄기를 타고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다, 이내 식은땀이 되어 줄줄 흘러내렸다.
“놈들 딴에는 인적이 없는 곳에서 지한이를 어떻게 해 볼 생각인 것 같습니다.”
“지한이랑 지연이는 순순히 따라갔고? 그 인적 없는 곳을?”
“네…….”
결국 폭발하는 류한국.
“이런 미친 새끼들이! 자살하고 싶으면 접싯물에 코라도 박고 뒈지든가! 왜 하필이면 건드려도 은지한을 건드리냐고, 은지한을! 젠장, 거기가 어디야? 지한이가 일 벌이기 전에 당장 이동한다!”
류한국과 경호팀이 빠르게 움직였다.
* * *
한편 시간을 조금 돌려 권성하와 헤어진 은지한, 은지연 남매가 집으로 돌아가려던 길이었다.
“잠깐만. 거기 두 사람. 잠깐 시간 좀 내줄 수 있을까?”
굉장히 위협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어느새 두 사람을 포위한 무리.
하나 은지연은 그들을 보고도 겁을 집어먹기는커녕 되레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저기, 이유는 모르겠지만 뭔가 불순한 목적으로 우릴 찾아온 것 같은데, 좋은 말로 할 때 가라. 진심으로 너희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뭐래. 이, 미친…….”
빠각!
은지연의 당부를 무시하며 그녀를 욕하려던 녀석의 턱이 부서져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어억!”
턱이 부서진 녀석은 눈물을 흘리며 주저앉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그가 어째서 턱이 부서졌는지는 알지 못했다.
단 한 사람, 은지연을 제외하고는…….
“가자. 우리한테 무슨 볼일이 있는지 나도 궁금하네.”
“하아! 저녁 먹기 전에 햄버거 먹고 돌아가고 싶었는데…….”
그때쯤, 무리도 뭔가 이상함을 눈치챘는지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들에는 눈앞의 은지한보다 명령을 내린 송문수가 더 두려웠다.
그렇게 남매가 무리를 따라 이동하기 시작하자, 멀리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경호팀도 당연히 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젠장, 어떡하지? 가서 말려야 하나?”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면 사생활에 개입하는 건 엄금이잖아!”
“위험한 상황 맞잖아. 지한이, 지연이가 아니라 저 새끼들이!”
“아무튼 계속 따라가 보자. 일단 본대에 보고는 해두고.”
판단을 마친 경호팀은 조심스럽게 남매의 뒤를 미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남매가 무리를 따라 도착한 곳은 학교에서 제법 거리가 떨어진 어느 건설 현장이었다.
건설이 중단된 것인지 채 완성되지 못한 빌딩이 흉물스럽게 서 있었고, 주변에는 버려진 건설 자재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곳이었다.
“사람들이 많네. 다 우리 또래인 것 같은데?”
은지연은 주변을 둘러보며 마치 구경하듯이 감상을 뱉었다.
수십 명의 아이가 흉흉한 분위기를 피우며 두 사람을 노려보는 탓에 긴장될 법도 하건만, 은지연은 그들을 의식조차 하지 않았다.
“데려왔습니다, 문수 형님.”
원래부터 버려져 있던 소파는 아닌 것처럼 보이는 푹신한 소파 위에서 여자와 진한 애정 행각을 벌이던 송문수.
그는 은지한이 도착했다는 말에 행위를 멈추고 시선을 돌려 은지한과 은지연을 쳐다보았다.
“네가 은지한이란 놈이구나? 옆에는?”
“은지연이라고, 친누나랍니다.”
은지연의 전신을 끈적한 시선으로 훑던 송문수가 입맛을 다시며 그녀를 가리켰다.
“먹음직스럽게 생겼네. 너, 잠깐만 와 봐.”
“싫은데?”
“휘유! 거절은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닐 텐데.”
이런 상황에서 설마 단칼에 거절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송문수는, 휘파람을 불며 주변에 있던 자신의 부하들에게 눈짓으로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부하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은지연을 향해 다가갔고, 그에 맞춰 은지한이 움직이려던 순간!
휘릭, 쿵!
“……!”
은지연의 어깨에 손을 올렸던 떡대 한 명이, 덩치가 무색할 만큼 가볍게 떠올랐다가 한 바퀴 회전하더니 그대로 땅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역시 삼촌! 체조 효과 확실하네.”
피식~!
그 모습에 은지한은 피식 웃으며 누나에 대한 걱정을 접었다.
다음 권으로 이어집니다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