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윤수호는 금설령에게서 알아낸 정보를 토대로, 특무대 국외팀이 홍룡회에 대해서 조사할 동안 가족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수호랑 지한이 왔니? 어서 밥 먹자.”
“오늘은 청국장인가 봐요?”
“너희 아빠가 또 청국장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시잖니. 한번 맛볼래?”
오혜연의 권유에 냉큼 부엌으로 향한 윤수호는 엄마가 푹 떠주는 청국장 한 숟가락을 신중하게 음미하였다.
“어때? 괜찮아?”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돈 받고 팔아도 되겠는데요?”
“오빠도 그렇게 생각하지? 가족이라서 이러는 게 아니라, 정말로 우리 엄마 손맛은 보통이 아니라니까. 아, 참! 오빠 온 김에 내가 만든 고등어조림도 한번 먹어볼래?”
윤수호는 동생의 권유에 그녀가 만든 고등어조림을 한 점 젓가락으로 집어 먹으며 신중하게 맛을 음미했다.
“어때? 맛있어?”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동생의 모습에 윤수호는 강하게 한 번 고개를 끄덕이고는 동생의 어깨를 다독였다.
“확실히…… 이건 돈 주고 팔아도 안 팔리겠다.”
“뭐? 진짜? 이상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상심하며 고등어조림을 맛보는 동생의 모습에 그는 피식 웃으며 장난을 멈췄다.
“농담이야, 농담. 근데 이거, 정말로 네가 한 거 맞아? 어머니가 한 걸 네가 했다고 사기 치는 게 아니라?”
“이번에 엄마가 가르쳐 준 레시피로 한 번 도전해 봤는데, 엄마가 해 준 거랑 똑같은 맛이 나더라고. 나도 깜짝 놀랐다니까?”
“수호, 너도 씻고 어서 아침 먹을 준비 해라. 수아, 너는 2층 올라가서 지연이 데려오고.”
그렇게 윤수호가 욕실에서 가볍게 씻고 나오자, 때마침 텃밭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와 함께 온 가족이 모여 아침 식사를 함께했다.
그렇게 같은 식탁에 둘러앉아 함께 식사하며 오손도손 얘기를 나누던 중, 윤지석이 먼저 화두를 꺼냈다.
“그래, 이 집에 정착하고 우리 가족도 안정되기 시작했으니, 이참에 하나만 물어보자. 지연이랑 지한이는 혹시 학교에 다닐 생각은 없니?”
“학교요?”
할아버지의 물음에 남매는 깜짝 놀라 가족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가족의 표정을 보아하니, 어느 정도 생각은 해 두고 있었던 것 같았다.
“지금처럼 인터넷 강의로 자율 학습을 하는 것도 물론 나쁘지 않아. 다만 또래 아이들과 함께 학교에 다니는 것도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단다, 물론 너희가 원한다면.”
오혜연에 이어 윤수아도 자신의 경험을 빗대어 아이들에게 조언해 주었다.
“엄마도 똑같은 생각이야. 학교가 꼭 공부만 하는 곳은 아니거든. 엄마한테 가장 소중한 친구도 어릴 적 학교에서 사귀었는데, 엄마가 힘들고 외로울 때 그 친구가 얼마나 힘이 되어 줬는지 몰라. 지금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도 모르고 있지만, 분명 잘 살고…….”
“잘살고 있어, 보름이.”
“응? 오빠가 그걸 어떻게 알아?”
“만났거든, 널 찾다가. 내가 얘기 안 했던가?”
윤수호가 자신의 실수를 감추기 위해 의뭉을 떨자 윤수아는 허탈함에 도끼눈을 뜨며 대꾸했다.
“한 번도 말씀 안 하셨는데요? 왜 그런 중요한 얘길 이제 하는 거야?”
“그동안 꽤 바빴으니까. 난 얘기한 줄 알았지.”
“하기야 오빠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바쁘기는 했지. 그래서, 보름이는 어디 사는데? 정말로 잘살고 있는 거 맞아?”
“나중에 주소 알려 줄 테니까 찾아가 봐. 결혼도 하고 애도 있더라.”
“보름이라면 수아 소꿉친구 임보름 말이니? 걔가 벌써 결혼해서 애까지 있어?”
“우리도 언제 한번 볼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임보름이란 이름이 나오자 윤수아는 물론이고 부모님까지 반가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윤수아의 절친인 그녀는 두 사람에게 있어 딸과 같은 아이였기 때문이다.
“얘기가 딴 데로 새긴 했는데, 아무튼 학교에서 얻을 수 있는 건 공부와 지식만이 아니야. 너희가 살면서 지금 아니면 배울 수 없는 다양한 경험들도 그곳에서 배울 수 있으니까. 물론 학교가 마냥 좋기만 한 건 아니지만, 나는 너희가 하고 싶은 걸 했으면 좋겠어.”
“삼촌은요? 삼촌은 어떻게 생각해요?”
윤수아의 말을 듣고 은지연은 윤수호에게 시선을 던지며 물었다.
그에 윤수호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간단하게 대답했다.
“너희가 하고 싶은 걸 해라.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너희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윤수호의 조언에 결심을 마친 은지연이 대답했다.
“사실 저도 학교에 가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가서 친구들도 사귀고 싶고, 같이 쇼핑도 하고 놀러 가기도 하고, 수학여행도 하고, 공부도 하고……. 하고 싶은 걸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거든요.”
“그렇게 학교에 가고 싶으면서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
“그게…… 헤헤.”
끝내 대답하지 못하고 웃음으로 어물쩍 넘어가려는 은지연의 모습에 가족들의 마음이 미어졌다.
“하여간, 가족끼리 눈치 볼 필요 없다고 그렇게 말을 했는데도…….”
“미안. 노력하고 있는데, 그게 잘 안 되네…….”
꼬옥.
윤수아는 씁쓸함에 은지연을 꼭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남매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가지고 싶은 걸 가지고 싶다고 말한 적이 없고, 하고 싶은 걸 하고 싶다고 말한 적도 없었다.
어릴 때는 버려지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엄마와 헤어진 이후에는 살기 위해서, 자신의 본심을 감추고 타인의 눈치를 살피는 게 당연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습관이 아니라 아이들의 생존 전략이었다. 그렇게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으니까.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 마음이 너무 아팠던 윤수아는 결국 눈물을 보이고야 말았다.
“지한이, 너는? 너도 학교에 가고 싶으면 얼마든지 얘기해. 괜히 가족 눈치 볼 거 없다. 만약 네가 학교에 가고 싶은데 눈치 주는 사람이 있으면 이 할머니가 아주 혼쭐을 내 주마. 삼촌도 할머니한테는 꼼짝 못 하는 거 알지?”
“그건 인정.”
윤수호는 마지막 한 숟가락을 뜨면서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고, 그 모습에 은지한은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조금만 더 생각해 볼게요.”
* * *
그날 밤.
…….
도악산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아무런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어둠 속에 홀로 서 있는 사람은 윤수호뿐이었는데, 윤수호의 기감은 신중하게 산 전체를 탐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식후 운동 삼아 적당히 하고 있다지만 내 기감을 피해? 그것도 귀살(鬼殺)의 무공을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녀석이?’
윤수호의 입꼬리가 피식 말려 올라갔다.
그 순간.
윤수호가 느닷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무언가와 공방을 주고받는 듯한 모습인데,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주변의 어둠보다 더 칠흑 같은 그림자가 윤수호를 향해 맹공을 퍼붓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물론 그 모습을 알아볼 수 있는 자라면 그자도 결코 평범한 사람은 아니겠지만.
쿵!
이내 둔중한 소리와 함께 어둠이 사그라들며 그 속에서 은지한의 모습이 드러났다.
“하아, 하아……!”
바닥에 쓰러진 은지한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호흡을 다스렸고, 윤수호는 물병 하나를 가져와 그에게 던져 주었다.
“아무리 지치고 힘들어도 호흡법은 집중해서 이어 가라. 잠을 자면서도 호흡법을 지키는 건 기본. 네가 숨이 넘어가는 그 순간까지 호흡법을 유지할 수 있어야 비로소 네 것이라 할 수 있다.”
“네! 근데 이걸 열심히 배우면 삼촌한테 한 방 먹일 수 있는 거 맞죠?”
“흐음…… 한 방 먹이는 건 모르겠고, 그림자 정도는 밟을 수 있지 않을까?”
“삼촌의 그림자라……. 상상만 해도 짜릿하네요.”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은지한은 윤수호가 앉아 있는 벤치로 다가와 그의 옆에 앉았다.
두 사람의 눈 아래로 마치 보석을 뿌려 놓은 듯 눈부신 서울의 야경이 반짝이고 있었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정말 예쁘네요. 여기서 보는 서울의 야경은…….”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니까.”
윤수호는 시선만 슬쩍 돌려 은지한의 눈을 쳐다보았다.
야경을 내려다보는 쓸쓸한 그의 눈빛은 절대로 열다섯 소년이 가져선 안 될 눈빛이었다.
“아직도 결정하지 못한 거야?”
“결정이라면…… 학교 얘기요?”
“그래.”
윤수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은지한은 씁쓸하게 미소를 그렸다.
“그러게요. 그들 손에 붙잡혀 있을 때도 누나는 종종 얘기했거든요. 여기서 빠져나가면 평범하게 또래 아이들처럼 살고 싶다고. 학교에 다니는 게 누나의 꿈이라고. 저는 누나가 꿈을 이뤄서 진심으로 기쁩니다.”
“나는 지연이가 아니라 네 얘기를 하는 거다. 은지한, 너는 어떻게 하고 싶지?”
“글쎄요. 하고 싶다거나 싫다는 식의 문제 이전에, 다른 세상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으니까요. 솔직히 좀 두려워요.”
“…….”
은지한은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고, 윤수호는 그런 조카의 얘기를 묵묵히 들어 주었다.
“엄마와 헤어지고 나서, 정신을 차려 보니 저는 훈련을 받고 있었어요. 죽을 만큼 힘들었고, 실제로 제 또래 아이들이 무수하게 죽어 나갔지만, 죽고 싶지는 않았어요. 엄마와 누나가 너무 보고 싶었으니까. 그렇게 훈련에서 살아남는 것만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전 암살자가 되어 있었죠.”
은지한은 자신의 첫 암살 임무를 떠올렸다.
“제 첫 암살 임무는 비사 길드의 하위 조직과 분쟁 중인 적대 조직의 보스를 암살하는 의뢰였어요. 아무런 지원 없이 저 혼자 임무를 수행해야 했고, 실패하면 개죽음으로 끝나는 거였죠. 이후로 임무의 난이도는 계속 올라갔어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제가 죽인 놈들은 전부 제가 생각해도 죽어 마땅한 악당뿐이었지만…….”
“손에 묻은 피는 전부 붉은 법이지.”
“그런가 봐요. 마약 밀매를 일삼던 길드의 간부, 인신매매로 떼돈을 벌어들이던 길드의 길드장, 집단 사이비 종교를 통솔하던 길드의 교주까지……. 분명 죽어 마땅한 놈들이고 후회도 하지 않는데…… 그 사람들의 죽기 전 얼굴이 잊히지 않더라고요.”
은지한의 주 임무는 비사 길드의 정적 암살이었다.
비사 길드가 정면으로 부딪치기에 버거운 길드나 조직의 장 및 간부들을 암살하여 근간을 흔들고 혼란을 유발하는 것이 그의 주 임무였던 것이다.
그렇게 경쟁 길드들이 흔들리면 기다렸다는 듯이 비사 길드가 그들을 공격하여 흡수한다. 이런 방식으로 비사 길드는 대형 길드가 될 수 있었다.
“잊지 마라.”
“네?”
“아무리 괴로워도, 아무리 힘들어도. 그 사람들의 얼굴을 잊지 마라. 죽어 마땅한 인간일지언정 생명의 무게는 절대 가볍지 않다. 네가 그 사람들의 얼굴을 잊는 순간, 너는 살육이 주는 쾌락에 미친 살인귀가 되겠지.”
“삼촌…….”
“지금 네가 이토록 괴로운 건 악인일지언정, 죄인일지언정 그들의 목숨이 무엇보다 무겁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마음을 잊지 마라. 안고 나아가라. 너라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다.”
윤수호는 은지한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조언해 주었다.
그제야 은지한은 다른 눈으로 자신의 삼촌을 바라볼 수 있었다.
‘이런 얘기를 해 줄 수 있는 삼촌은 도대체 그 손에 얼마나 많은 피를 묻힌 걸까? 아마 나 따위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겠지.’
그럼에도 윤수호는 흔들리지 않는다. 항상 앞을 바라보고 꼿꼿하게 서서 당당하게 세상을 마주한다.
그가 세상에 겸손하고 악인들에게 단호할 수 있는 건, 그 누구보다 생명의 가치와 무게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도 언젠가 삼촌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아니.”
윤수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확신했다.
“너는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될 거다. 내가 보증하지.”
“그랬으면 좋겠네요.”
툭.
피식 웃은 두 사람은 말없이 주먹을 가볍게 부딪쳤다.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