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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이 돌아왔다-44화 (44/175)

44.

“허허! 쥐새끼들이 꼬리를 귀신같이 감춰 버렸군요. 하여간 다른 건 몰라도 숨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놈들이니…….”

특무대에 도착한 윤수호는 박여진과 볼일을 마친 후, 천호진을 만나 얘기를 나누었다.

“위원장님께서도 교토삼굴이란 말을 들어 보셨을 겁니다. 대부분의 길드가 그렇지만, 특히 이번 일과 관련된 대형 길드들은 안가를 하나만 두지 않습니다. 놈들이 작정하고 숨으면 정보부가 총력을 기울여도 찾아내기가 쉬운 일이 아니죠.”

“박 팀장도 그러더군요. 패명 길드는 정말로 운이 좋았다고. 한동진이 보신을 위해서 무리하게 전력을 끌어모은 탓에 경험이 미천한 신입 길드원들도 동행했고, 그 탓에 발각이 된 거라고 말입니다.”

“저도 박 팀장으로부터 보고 받았습니다. 보통 신입 길드원들은 나이가 어리고 치기 어린 친구들이 대부분이지요. 그런 녀석들이 숨어 지내다 보면 지루함과 불안을 이기지 못해 외부에 연락을 취하기 마련이고요. 그 작은 실수가 결국 자기 목숨을 조인 셈이지요.”

천호진은 윤수호의 앞에 녹차를 내려놓으며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나저나 가족분들께서는 괜찮으신 겁니까? 경호팀을 돌려보내신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이런 일이 벌어져 진심으로 걱정했습니다.”

“염려해 주신 덕분에 가족은 무사합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만……. 그런데 정말로 저택에 경호팀을 배치하실 생각은…….”

천호진이 넌지시 묻자 윤수호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가족이 불편해해서요. 총사령관님의 배려는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가요? 하면 어쩔 수 없지요. 하지만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특무대 최고의 요원들로 배치해 드릴 테니까.”

“그것참, 말씀만 들어도 든든하군요.”

윤수호는 녹차로 입술을 축인 뒤 천호진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였다.

“아, 참! 총사령관님. 교토삼굴이란 말이 나와서 말인데, 혹시 타초경사라는 고사성어를 아십니까?”

“물론입니다. 풀을 쳐서 뱀을 놀라게 한다는 뜻의 옛말이 아닙니까? 한데 그건 갑자기 왜…….”

“이번에 그거 한번 해 보죠, 우리.”

“예?”

이어진 윤수호의 자세한 설명에 천호진은 음흉한 미소를 그리며 들뜬 모습을 보였지만, 한 가지 걱정을 드러냈다.

“그렇게 된다면 저희야 마음껏 활개 칠 수 있지만, 위원장님의 부담이 너무 크지 않겠습니까?”

“저는 상관없습니다. 특무대에서 이번 작전을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다면 말이죠.”

“크흠! 이거 또 특무대의 진가를 증명해야 할 기회가 찾아왔군요. 위원장님의 기대를 결코 저버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 역시.”

두 사람은 힘 있게 서로의 손을 맞잡으며 악수를 나누었다.

* * *

“젠장!”

콰앙!

한 사내가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근처에 있던 책장 하나를 주먹으로 부숴 버렸다.

사내는 홍룡회의 조직원으로, 현재 몸을 숨기고 있는 금설령의 부하였다.

“대체 언제까지 이 냄새 나는 소국에 갇혀 눈치만 보고 숨어 지내야 하는 겁니까? 대주님! 이럴 게 아니라 기회를 봐서 본국으로 귀환하죠. 늦은 새벽을 틈타 조용히 움직이면, 제아무리 특무대라도 절대로 우리를 발견하지 못할 겁니다!”

“다륜, 가까이 와라.”

답답한 마음에 금설령에게 제안을 건넨 다륜은 그의 부름에 성큼성큼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 순간.

으드득! 털썩.

놀랍게도 금설령은 다륜의 머리를 잡아 그대로 비틀어 버렸다. 목뼈가 부러진 다륜은 즉사하여 바닥에 힘없이 허물어졌다.

금설령은 죽은 부하를 무정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다, 다른 부하들을 차갑게 쳐다보며 물었다.

“답답한 녀석이 또 있나?”

“어, 없습니다…….”

꿀꺽……!

부하들이 식은땀을 흘리며 죽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하자, 금설령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소파에 몸을 파묻고 진득하니 눈을 감았다.

기다리고 인내하는 것은 익숙했다. 괜히 홍룡회에서 그를 ‘금강권왕’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다. 그의 인내심은 그의 육체보다 단단하고 굳건했다.

“참고 기다려라. 우리는 특무대가 무서워 이곳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니다. 특무대의 눈에 발각되는 순간, 놈도 우리의 위치를 알게 된다. 놈의 약점을 잡은 상황에서 놈이 혼자 나선다면 모를까, 특무대와 녀석을 함께 상대한다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작전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직감한 금설령은 곧바로 흑산 길드, 정태수의 도움을 받아 그의 안가 중 한 곳에 몸을 숨겼다. 이곳에서 쥐 죽은 듯이 지내다 보면 탈출의 기회는 반드시 찾아온다.

그렇게 믿고 인내하는 와중에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대, 대주님! 큰일 났습니다.”

“웬 호들갑이냐.”

“지금 바로 뉴스를 확인해 보십쇼!”

부하 한 명이 다급하게 찾아와서 하는 말에, 금설령은 폰을 꺼내서 대한민국 뉴스를 재생하였다.

다행히 자막은 중국어 자막도 지원하고 있었기에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지만, 정작 뉴스의 내용은 농담으로라도 다행이라 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방금 들어온 속보입니다. 현재 특수임무부대와 검찰이 함께 KS 그룹의 본사에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하고 수사에 착수했다는 소식입니다. 합동 감찰팀에서는 그동안 KS 그룹이 금성 길드의 위장 기업으로 의심되는 정황을 다수 포착했고, 증거 수집과 증인 확보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 공표하였습니다. 현재 KS 그룹 외에도 추산 그룹이나 YD 그룹, 그리고 명산 그룹까지 수사 범위를 확대할 예정이라는 발표도 공식적으로 전했습니다.

“……!”

금설령은 뉴스의 내용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설마하니 특무대가 현재 비어 있는 대형 길드들의 본진을 직접 털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다.

금설령은 눈살을 찌푸리며 현 상황에 대해 분석했다.

‘물론 이 방법은 현재 특무대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잘만 성공한다면 그동안 손도 대지 못했던 대형 길드 여러 곳을 한꺼번에 일망타진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지. 하지만 동시에 리스크가 너무 크다. 이러면 숨어 있던 놈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 터.’

어째서 지금까지 특무대는 대형 길드를 쉽게 건드리지 못한 것일까?

그것은 정보력의 부족도 있지만, 무엇보다 대형 길드의 저력이 결코 무시 못 할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 알터 능력자에게 현대 화기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즉, 지방에 흩어져 있는 길드원들까지 긁어모으면 족히 1만 이상의 알터를 모을 수 있는 대형 길드의 전력은 특무대에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막말로 1만의 능력자들이 작정하고 도심지에서 날뛴다면, 설령 검거한다 하더라도 그 피해는 이루 말할 수가 없을 테니까.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 이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시소게임이 아직도 유지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시소가 윤수호의 등장으로 대번에 균형이 무너진 것이다.

‘한 곳도 아닌 일곱 개의 길드를 동시에 들쑤시고 있다. 이걸 길드장 놈들이 보고만 있지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금설령이 눈을 부릅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젠장! 그게 목적이었나!”

“크, 큰일 났습니다, 대주님! 우리를 숨겨 준 흑산의 정태수가 서울로 올라간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이번에 특무대에서 그들의 본진을 급습한 일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예상했던 최악의 시나리오에 금설령은 주먹을 틀어쥐었다.

이 사태를 감당할 수단이 없으면, 특무대는 성과에 눈이 멀어 최악의 자폭 수단을 쓰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감당할 수단이 있다면 얘기는 다르다.

최악의 자폭 수단이 한순간에 최고의 유인책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카드가 저들에게는 있었다.

그러한 금설령의 예상대로, 현재 서울 시티 가드 밖에서는 그야말로 대학살의 징조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 * *

-현재 고속도로 진입로를 따라 길드들의 차량이 빠르게 합류 중! 숫자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고속도로 통제 확실하게 해 주시고,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먼저 교전하거나 도발에 응하는 일은 피해 주십시오. 어디까지나 정찰을 최우선 목표로 부탁드립니다.”

-라져.

서울로 진입하는 고속도로 한복판에 선 윤수호는 무선통신을 통해 몰려드는 적들의 동선을 파악하고, 민간인들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부지런히 상황을 확인하고 있었다.

“통제에 잘 따라 주십시오!”

“피난로는 이쪽입니다! 잠시만 피해 계시면 됩니다. 협조 감사합니다!”

서울의 방호벽인 시티 가드 밖에서는 군경이 합동으로, 시티 가드 밖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고 있었다.

한편, 특무대 대태러팀 대부분이 시티 가드 정문 앞에 2중 방어선을 구축하고는, 긴장이 가득한 표정으로 빌런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진짜 이게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뭐가?”

F팀의 팀원 중 한 명이 뻥 뚫린 도로를 바라보면서 긴장이 가득한 표정으로 걱정하자 그의 동료가 물었다.

“뭐긴 뭐야. 당연히 빌런들이지. 자그마치 대형 길드를 일곱 군데나 건드렸다면서? 대형 길드 한 곳만 해도 대충 알터 전력이 1만이 훌쩍 넘어. 일곱 곳이면 그 전력만 최소 7만이 넘어간다고, 7만! 그 말도 안 되는 숫자를 위원장님 혼자 감당이 가능할 것 같아? 아무리 강해도 사람은 정도라는 게 있다고.”

“그러니까 치우팀에서도 지원을 나왔겠지. 위에서도 이번 작전에 사활을 건 모양이고. 우리 같은 군바리들이야 까라면 까야지, 별수 있나?”

“뭐냐? 넌 크게 걱정이 안 되는 모양이다?”

“걱정해 봤자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이곳에 모인 특무대 대원들 및 군인들과 경찰들 또한 불안에 가득한 눈빛으로 윤수호의 등을 쳐다보고 있었다.

한편 이번 작전에 참여한 공승환과 치우팀은 조금 다른 눈빛으로 윤수호의 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원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네요. 아무리 위원장님이라도 7만 명의 빌런은 위험할 거라는 생각이 지배적인데요?”

오수영의 의견에 공승환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러게. 나도 걱정이네.”

“걱정요?”

“그래, 녀석들이 최선을 다해서 분발해야 위원장님의 활약을 조금이라도 더 지켜보고 배울 수 있을 테니까. 안 그래?”

“아, 하하하…….”

오수영이 김빠졌다는 듯이 허탈하게 웃자, 공승환이 먼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마침 저기 오네.”

그가 가리킨 곳에서는 수많은 트레일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도로를 가득 채운 채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차량은 멈출 생각이 없었고, 오히려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더욱 속력을 붙여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광경을 지켜보던 오수영이 눈을 부릅뜨며 불안감에 외쳤다.

“저건 설마……!”

“트레일러는 원격으로 조종하는 거야. 저건 폭탄 테러다! 전원 폭발에 대비해!”

공승환의 외침에 대원들이 오러를 끌어 올려 방비를 다졌을 무렵, 무서운 속도로 질주한 트레일러들은 어느새 윤수호의 코앞까지 다가온 상태였다.

“지금이다!”

콰콰콰콰콰콰콰콰쾅!

윤수호의 곁을 스쳐 지나가기 직전, 컨테이너에 가득 실은 폭탄들이 일제히 폭발하면서 엄청난 폭발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그것도 윤수호를 목표로 한 자리에만.

빌런들 역시 지금과 같은 상황을 예상하고 대비했다는 뜻이다. 자신들에게 유인책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 역시 모르지 않았을 테니까.

그 결과, 다량의 폭탄 컨테이너들이 연쇄적으로 폭발하면서, 주변 일대의 대지가 흔들리고 화마가 하늘 끝까지 충천할 정도로 엄청난 폭발이 윤수호를 집어삼켰다.

방금 어느 대원의 말처럼 아무리 능력자라고 해도 한계라는 게 있는 법이다. 이 정도 폭발이라면 오러와 함께 영혼까지 날려 버리기 충분한 위력이었다.

빌런들은 윤수호가 피하지도 않고 그것에 직격당하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죽은 건가?”

“죽진 않았어도 치명상은 확실해! 설령 톱 텐이라고 해도 저 정도 폭발 속에서 무사하다는 건 말도 안 되지.”

그렇게 계획을 성공한 빌런들이 의기양양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치우팀 측에서도 신속하게 적들의 규모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빌런들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현재 추정 인원은 대략 10만! 예상했던 숫자보다 훨씬 많습니다!”

“저 정도면 비능력자 빌런들까지 모조리 긁어모았다는 얘긴데…… 이 새끼들, 완전 작정을 했는데요?”

“이번 기회에 특무대를 밀어 버리고 자기들 세상으로 만들 작정인가 보지. 애초에 사리사욕을 목적으로 하는 길드끼리 자신들을 희생해서 연합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참, 꿈도 야무지네요.”

오수영이 그들을 비웃으며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윤수호의 모습 때문이었다.

화르륵! 화륵!

“저, 저게 뭐야…….”

적아를 가리지 않고 경악한 이유는 하나.

하늘까지 충천했던 화마가 이내 형체를 가지고 압축되기 시작하더니, 어떤 형태로 완성되며 윤수호를 보호하듯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엄청난 폭발 속에서도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그는, 이곳에 모여든 10만의 빌런들을 담담히 쳐다보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선물 고맙다. 답례로 재미있는 걸 보여 주지.”

검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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