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돌아왔다-43화 (43/175)

43.

“크윽……!”

침대에 누워 있던 조춘영은 익숙한 알코올 냄새에 눈을 조금씩 눈을 뜨며 시야를 되찾아 갔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많이 본 적 있는 천장과 전등이었고, 옆에서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정신이 들었나.”

“혀, 형님?”

목소리를 쫓아 고개를 돌린 조춘영은, 침대 옆에 앉아 자신을 간호해 주고 있는 윤수호를 발견하고 눈을 부릅떴다.

“으윽……!”

“무리해서 일어나려고 하지 마라. 수술 부위 벌어진다.”

상체를 일으키려다 갈비뼈를 감싸 쥐며 다시 쓰러진 조춘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여긴 특무대 병원입니까?”

“그래.”

“꿈은…… 아니죠? 죽기 전에 꾸는 주마등 같은 거 말입니다.”

“넌 살아 있다. 너희 팀원들 역시 많이 다치긴 했지만 생명에 지장은 없다.”

“……!”

자신의 부하들까지도 무사히 구출되었다는 소식에 눈을 크게 뜬 조춘영의 눈시울이 이윽고 붉어졌다.

그는 흐르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 소매로 눈가를 덮었지만, 코를 훌쩍거리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

“저와 제 부하들을 구해 주신 분이 혹시 형님이십니까?”

윤수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조춘영은 입술을 깨물며 무겁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능력이 부족해서……. 제가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형님이나 형님의 가족분들을 그런 위험에 노출하지 않았을 텐데…….”

“그래, 조금 화가 나긴 하더군.”

“…….”

조춘영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윤수호에게는 항상 도움만 받고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빚을 갚기는커녕 오히려 발목만 잡고, 그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족마저 위험에 빠트렸다는 사실이 분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 사실을 윤수호가 책망한다고 해도 달게 받을 참이었다.

그런데…….

“너를 고문했던 녀석에게 들었다. 그 지경이 될 때까지 나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더군. 왜 그랬지?”

“그, 그야 당연히…….”

“네가 나와 우리 가족에 관해서 얘기하면 나와 가족이 위험해질 거라고 생각했나? 착각하지 마라, 춘영아. 네가 나에 대해 어떤 얘기를 털어놓건, 어떤 약점을 발설하건 간에 그딴 건 나와 내 가족에게 어떤 해도 끼칠 수 없다.”

윤수호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조춘영의 가슴에 손을 올리며 담담히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나와 내 가족은 전혀 걱정하지 말고 네 안위를 가장 먼저 생각해. 말했다시피 너와 선호 또한 내 소중한 가족이고 동생이다. 이렇게 다칠 때까지 네가 스스로를 살피지 않았다는 것, 내가 화난 건 그것뿐이다.”

“……!”

“푹 쉬어라. 또 찾아오마.”

말을 마친 윤수호는 등을 돌려 병실을 나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춘영의 병실에서는 흐느끼는 그의 울음소리만이 조용히 새어 나왔다.

* * *

병원을 나선 윤수호는 차를 타고 이동하며 박여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 팀장, 놈들에 대한 정보는 아직인가?”

-죄송합니다, 위원장님. 조 선배를 납치한 놈들이 위원장님의 손에 전멸한 이후, 본래 위원장님을 노리기 위해 함정을 팠던 놈들이 눈치를 채고 잠수를 제대로 탄 것 같아요. 다만 곧장 항구와 공항부터 철저하게 검문검색을 강화한 덕분에, 놈들이 외국으로 빠져나갔을 가능성은 현재로선 희박합니다.

“선호는?”

-그게…… 아시잖아요. 조 선배가 저렇게 구출되고 난 후, 놈들을 잡겠다고 거의 사흘째 쉬지도, 자지도 않고 수색하러 다닌 거. 아닌 말로 눈이 완전히 돌아서 제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니까요. 위원장님께서 설득해 주시면 안 될까요?

“알았다.”

-아, 참! 그리고 희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희소식?”

-위원장님의 암살 계획에 가담한 길드 중 패명 길드 말입니다. 녀석들로 추정되는 무리의 현재 위치를 파악한 것 같습니다.

현재 윤수호 암살 계획에 가담한 일곱 길드는 작전이 실패하자 모두 거점을 버리고 잠수를 탄 상황이었다.

적어도 지금 이 분위기가 잠잠해질 때까지는 서울 밖으로 벗어나 쥐 죽은 듯이 때를 기다리려는 속셈이었다.

“추정이라면 정확한 건 아니라는 뜻이군.”

-예, 일단 이 선배에게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혹시라도 지금 상태에서 무리했다가 잘못될까 봐요.

“잘했어, 박 팀장. 녀석들의 위치를 알려 줄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윤수호는 박여진이 보내 준 위치를 내비에 찍었다. 차는 빠르게 내비를 따라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 * *

“씨발! 술 가져와, 술! 술이 모자라잖아!”

와장창!

바닥난 술병을 벽에 던져 깨트린 패명 길드의 길드장 한동진이 부하들을 향해 성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딴 개쓰레기 같은 짱개 새끼들을 믿었다가 내가 대체 이게 무슨 꼴이냐? 천하의 병신 같은 새끼……. 크크큭!”

한동진은 자조 섞인 웃음을 흘리며 새 술을 목구멍에 들이부었다.

평소 같으면 몇 잔만 마셔도 취할 텐데, 지금은 몇 병을 비워도 취하기는커녕 오히려 정신이 또렷해지는 기분이었다.

죽었으면 죽었지, 절대로 사업장을 버리고 떠날 일은 없을 거라고 호언장담했었건만…….

정작 계획이 실패하고 목숨이 위험해지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런 곳에 쥐새끼처럼 숨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모멸감이, 그 수치심이, 분노가, 짜증이 한동진을 매 순간 괴롭혔다.

“길드장님, 고정하십쇼. 아무리 특무대라도 이곳은 쉽게 찾기 힘들 겁니다. 여기서 한 1~2년 조용히 지내다 보면 금방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릴 테니, 그때 다시 세상 밖으로 나서도 절대로 늦지 않을 겁니다.”

한동진의 비서가 나서서 그를 타일렀지만, 말처럼 쉽지 않았다.

“그사이에 우리 사업들은 전부 어떻게 하고? 다른 놈들이 군침을 흘리며 달려들 텐데, 그 새끼들한테 눈 뜨고 이런 식으로 내가 평생을 바쳐 일군 사업들을 뺏겨야 한단 말이야?”

“형님이 재기하시면 금방 되찾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지금은 무엇보다 안위를 챙기시는 게…….”

그때였다. 부하 하나가 다급하게 찾아와 불안한 표정으로 보고한 것은.

“형님! 밖에 침입자가 쳐들어왔습니다!”

* * *

“정문이다!”

“정문으로 집결해! 어서!”

윤수호가 안가로 접근하자, 안가 인근을 감시하고 있던 패명 길드 병력이 결집하여 윤수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 숫자만 무려 1천! 심지어 이것도 도피에 급급한 상황에서 서둘러 긁어모은 숫자였으니, 패명 길드의 전력을 쉽게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이 새끼가…… 여기가 어디라고 혼자서 기어들어 왔냐? 어?”

“이런 미친놈이……!”

“닥치고 있어, 인마!”

아군의 숫자에 용기를 얻은 것일까? 아니면 신입 길드원의 패기인 것일까?

윤수호의 정체를 알아본 선배들이 쫄아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을 때, 이제 겨우 스무 살을 넘겼을 듯한 어린 길드원 하나가 윤수호를 향해 거침없이 소리쳤다.

그런데 어린 길드원의 패기에 놀란 것일까?

윤수호는 그의 외침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리에 섰다. 그러자 당연히 다른 길드원들도 눈을 부릅뜨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 이내 그들의 입꼬리가 슬며시 말려 올라갔다. 상대가 아무리 몬스터라도 천 명의 알터들을 상대로는 역시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들의 생각이고 착각이었다.

윤수호가 그들 앞에 멈춰선 이유. 그건 그들을 지나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작전은 섬멸전으로 결정했다. 너희 같은 놈들을 살려서 낭비할 식량으로, 더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게 낫겠지.”

윤수호는 검결지를 쥐었다가 이내 자연스럽게 손가락을 풀었다.

윤수호에게도 가끔 그런 날이 있었다. 검이 아니라 주먹을 쓰고 싶은 날 말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오늘이 그런 날이었던 모양이다.

“씨, 씨발! 다 덤벼! 어차피 쪽수는 우리가 더 많아! 천 명이 한 놈을 상대로 쫄아서 도망치면 이 바닥에서는 고개도 못 들고 다니는 거 알지?”

“죽여 버려! 다구리에는 장사 없다!”

“들어가자!”

어차피 여기서 도망치면 더 이상 갈 곳도 없었다. 물러날 곳이 없는 패명 길드의 길드원들은 죽기 살기로 윤수호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윤수호는 정면으로 이내 수많은 권영을 흩뿌렸다.

그리고 드러난 결과는 가히 끔찍했다.

콰르릉! 콰쾅!

뇌력권왕이란 별호답게 권영이 뿌려질 때마다 주변으로 천둥 치는 소리가 웅혼하게 울려 퍼지며, 달려들던 길드원들의 몸뚱이가 찰흙처럼 부서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랬다. 정말로 찰흙과 같았다.

오러로 아무리 몸을 강화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부서진 뼈의 파편들이 흩어지고, 짓이겨진 근육이 터지고, 뭉개진 내장과 으깨진 살점이 뒤섞여 핏물과 함께 흩뿌려졌다.

그 지옥 같은 참상에 대기하고 있던 길드원들의 몸이 얼어붙었다. 마치 극지방에 데려다 놓은 것처럼 몸은 사시나무처럼 떨렸고 다리는 땅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수호는 자비가 없었다.

두려움과 후회에 점철된 빌런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면서 그의 머리통을 부쉈다. 이제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달려드는 놈들의 몸통을 잡아 꺾은 후, 그대로 던져 버리기도 했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빗발치는 총알도, 능력자의 오러로 강화된 무기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 무엇도 윤수호의 몸은커녕 의복조차 상하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존재 앞에서 그들의 숫자는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했다.

‘도, 도망쳐야 하는데……. 여길 벗어나야 하는데!’

마음은 간절한데 공포에 질린 빌런들의 다리는 사슬로 꽁꽁 묶어놓은 것처럼 움직이질 않았다.

결국 천 명의 패명 길드 길드원들은 그 자리에서 모두 목숨을 잃고 차디찬 시체가 되어 나뒹굴었다.

아니, 시체를 찾을 수 있는 녀석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어지간하면 윤수호의 주먹을 얻어맞고 몸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졌기 때문이었다.

쒜엑!

그렇게 시산혈해가 된 마당을 지나 집 안으로 들어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한동진이 윤수호를 습격했다.

하지만.

톡. 빠각!

“……!”

한동진이 전력을 다해서 휘두른 일검은 안가를 두 쪽으로 쪼갰을지언정, 윤수호의 손에는 가볍게 잡혀 부러지고 말았다.

오러로 무장된 검을 맨손으로 잡아 부러트린 것이다.

“네가 패명 길드의 한동진인가?”

“괴, 괴물……!”

그걸로 끝이었다.

한동진이 숨어 있던 안가에서는 지옥의 폐부를 긁어 대는 듯한 끔찍한 비명이 한동안 울려 퍼졌고, 대략 한 시간 뒤에 윤수호가 안가를 나섰다.

그렇게 패명 길드를 정리한 윤수호가 길가로 나와, 주차해 두었던 차에 탑승한 뒤 다시 박여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 팀장. 나다.”

-네, 위원장님. 일은 잘 마치셨어요?

“그래, 현장 정리는 맡기도록 하지. 그리고 한동진으로부터 정보를 얻긴 했지만, 다른 길드장들이 숨어 있는 안가에 대한 정보는 알아내지 못했다.”

-역시 그랬군요. 하기야 안가에 대한 정보는 가족조차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니까요. 경쟁 길드의 길드장이 다른 길드장의 안가에 대해서 알고 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죠. 어쩔 수 없는 일이랄까요.

“대신 패명 길드가 관리하던 사업과 범죄 내역을 전부 입수했다. 특무대에 도착하는 대로 자료 정리해서 곧바로 수사에 착수할 수 있었으면 좋겠군.”

-바로 준비해 놓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위원장님.

“박 팀장도 언제나 수고가 많아. 자세한 얘기는 가서 하도록 하지.”

그렇게 전화를 끊은 윤수호의 차는 빠르게 특무대로 향했다.

검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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