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아무래도 제대로 찾아온 것 같군.”
“……!”
굳게 잠긴 철문을 통째로 뜯어 버리고 안으로 들어선 윤수호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담담히 말했다.
그러나 그를 확인한 상대방의 기분은 전혀 달랐다. 황당함과 혼란, 짜증, 분노가 섞인 감정이 고스란히 웅란의 표정에 드러났다.
“네가 어떻게 여길…….”
웅란은 눈살을 찌푸리며 조춘영을 곁눈질로 노려보았다.
‘가지고 있던 GPS 칩은 확실히 제거했을 텐데, 놈이 어떻게 여길 알고 찾아온 거지?’
특무대는 비상시를 대비해서, 가지고 다니는 GPS 신호기 말고도 보통은 엉덩잇살 안에 수술로 GPS 칩을 박아 넣어 자신의 위치를 전송한다.
매사에 철두철미한 웅란은 GPS 칩 감지기를 사용해 조춘영의 엉덩이에 박혀 있던 칩을 제거하였고, 그 밖에도 위치를 탐지할 수 있을 만한 물건은 모두 처분한 지 오래였다.
그런데 상대는 어떻게 한 시간은커녕 20분도 안 돼서 이곳을 바로 찾아올 수 있었던 것일까?
그 이유는 과거에 한 번 윤수호가 조춘영의 몸속에 자신의 기운을 슬쩍 심어 두었기 때문이었다. 아주 미약한 기운이었기 때문에, 기운 자체가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0%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기운을 가지고 있음으로써, 윤수호는 조춘영이 세계 어디에 있건 그를 찾아낼 수 있었다. 참고로 가족과 이선호 역시 당연히 이 기운이 심겨 있다.
뚜벅뚜벅…….
윤수호는 기절한 조춘영을 향해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에 정신을 차린 웅란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치며 윤수호를 가리켰다.
“뭣들 하는 거야? 놈을 막아!”
대주의 명령에 그의 친위대는 곧바로 기세를 끌어 올리며 윤수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잘 갈무리된 기운과 상반되는 날카로운 기세. 단숨에 거리를 지우며 접근하는 보법과 동시에 무기를 급소에 정확히 찔러 넣는 실력까지!
어지간한 특무대 대원들은 상대조차 되지 못할 발군의 실력을 갖춘 친위대 여섯이 사방에서 윤수호를 습격…….
촤아악!
“……!”
……했으나 결과는 처참했다.
윤수호는 그저 검결지를 짧게 휘둘렀을 뿐인데, 사혈검의 검기가 그의 주변을 휘몰아치더니 마치 믹서기처럼 친위대를 토막토막 썰어 버린 것이다.
남들의 배는 뛰어넘는 오러로 보호한 육신도, 강화된 무기도 의미가 없었다.
윤수호는 끔찍한 몰골로 쏟아진 육편과 내장들, 질펀하게 흘러내린 핏물을 무덤덤하게 밟으며 걸어 나갔다.
흠칫!
윤수호와 조춘영의 사이에 끼어 있던 웅란은 그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자 저도 모르게 흠칫하며 길을 터 주었다.
“이, 이……!”
수치심과 모멸감에 몸을 부들부들 떠는 웅란이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살고 싶어 하는 몸뚱이는 윤수호의 뒤를 차마 기습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윤수호는 그런 웅란을 그대로 지나치며 기절한 조춘영의 앞에 섰다.
“으으으……!”
“사, 살려…….”
촤악!
조춘영을 무자비하게 고문했던 고문관 두 사람 역시 결말은 마찬가지였다.
윤수호가 손가락을 움직이자, 조춘영을 구속하고 있던 쇠사슬과 함께 두 녀석의 몸뚱이도 잘게 썰려 쏟아져 내린 것이다.
결국 이 자리의 생존자는 윤수호와 조춘영, 그리고 웅란만이 남게 되었다.
‘맥박이 약하다. 외상보다 내상이 더 심각하군.’
빠르게 진맥을 마친 윤수호는 곧장 자신의 진기를 맥을 통해 불어 넣어 급한 내상부터 다스리기 시작했다.
‘설마 여기서 진맥을 하는 건가?’
한편 윤수호가 조춘영의 치료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에 웅란이 눈을 반짝였다.
‘기회다!’
그는 자신에게 찾아온 기적적인 기회를 잡기 위해 전력을 다해서 윤수호를 향해 부채를 날렸다.
촤아악!
그의 무기인 칼날 달린 부채가 춤을 추며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빠르게 윤수호를 향해서 날아갔다. 그 속도와 위력은 총알 따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됐어! 죽였…….’
까앙!
그러나!
“뭐, 뭐야, 저건 또?”
웅란은 자신의 눈앞에 일어난 일을 믿을 수 없었다. 놀랍게도 윤수호가 옆구리에 차고 있던 순백의 검이 혼자 떠올라 자신이 날린 부채를 막아 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검이 어찌나 단단했던지, 오버 알터의 오러로 무장된 부채가 박살 나 바닥에 흩어졌음에도 검은 흠집 하나 없이 멀쩡한 모습이었다.
“서두르지 마라. 발악하지 않아도 어차피 죽은 목숨이니까.”
“……!”
윤수호의 담담한 경고에 식은땀을 흘리며 주춤거리던 웅란이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그에게 소리쳤다.
“흥! 죽는 건 네놈이겠지. 지금 네놈이 여기서 이러고 있는 동안, 네 가족은 어떻게 됐을지 생각해 본 적 있어?”
“…….”
‘무, 무슨 놈의 눈빛이…….’
웅란은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윤수호의 평온한 눈빛에 오히려 압도당한 것인지 두 걸음이나 뒤로 물러섰다.
“가, 가족을 지키고 싶다면 순순히 구는 게 좋을 거야. 네놈이 반항한 만큼 네가 보는 앞에서 가족의 팔다리를 하나씩 짓이겨 줄 테니까!”
“전화해 봐.”
“뭐?”
“내 가족의 팔다리를 짓이기는 모습을 보여 준다고 하지 않았나? 그럼 영상 통화를 걸어야지.”
“…….”
웅란은 심히 당황스러웠다. 도대체 윤수호가 뭘 믿고 저렇게 당당한 것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무대 경호팀이 철수한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 분명 허세가 확실한데 어째서…….’
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흔들리는 손으로 자신의 폰을 들었다.
* * *
“저곳이 타깃의 집이다.”
한편, 웅란의 말대로 윤수호가 집을 비운 사이 홍룡회의 특급 살수부대 오십 명이 무리 지어 윤수호의 집을 찾아왔다.
“타깃의 가족을 신속하게 확보한다. 놈을 협박하기 위해서 최대한 상처 없이…….”
“누가 누굴 협박한다고?”
“……!”
살수들은 자신들의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눈을 부릅뜨며 긴장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들이 설마 뒤를 빼앗길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하나 놀라는 것도 잠시.
곧바로 이성을 되찾은 그들은 후방에 있던 살수들이 목소리의 주인을 향해 달려들었고, 전방에 있던 살수들이 윤수호의 집 담장을 빠르게 넘어갔다.
그런데…….
촤촤촤촤촤!
은지한에게 덤벼들었던 살수들은 순식간에 피를 뿌리며 목숨을 잃고 차가운 바닥에 누워 싸늘히 식어 갔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스스스슥…… 촤촤촤!
‘기척이 전혀 파악되질 않는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괴물이……?’
검은 운무의 오러와 함께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은지한의 기척을 파악할 수 있는 살수는 없었다.
그에 반해 검은 운무가 은밀하게 그들 사이를 지나갈 때마다 살수들의 시신은 빠르게 늘어 가기만 할 뿐이었다.
결국 이들을 이끄는 대장이 은지한의 심중을 어지럽혀 기척을 잡아내기 위해 그를 협박했다.
“그만 모습을 드러내라! 저 집에서 사는 인간들이 산 채로 찢겨 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면!”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도 없었고, 검은 운무 역시 멈추지 않았다.
결국…….
서걱!
‘이건 말도 안 돼…….’
털썩.
마지막 남은 살수 대장을 끝으로, 밖에 있던 살수부대는 모두 은지한의 손에 전멸당했다.
그렇다면 집 안으로 뛰어든 살수들은 어떻게 됐을까?
“진짜 가관이네.”
담벼락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은지한은 피식 실소를 터트렸다.
집 안으로 침입한 살수들이 전원 담장을 넘자마자 동상처럼 몸이 굳어 널브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금혼재앙진에 멸문마령진, 야차혼돈옥쇄진이라고 하셨나?’
은지한은 세 가지 진에 대응하는 기운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윤수호가 집에 설치한 저 세 가지의 진을 피할 수 없다고 그에게 전해 들었다.
물론 처음에는 그게 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가족은 모두 윤수호에게 대응하는 기운을 주입받아 집 안에서 자유롭게 행동해도 아무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수들은 아니었다.
한 가지만 하더라도 천마 정도의 무인이 아니면 힘으로 부수는 것이 불가능한 진을 세 개나 돌파해서 가족들에게 접근한다는 건 처음부터 무리였던 것이다.
그렇게 뭍으로 올라온 물고기를 줍는 것인 양 석상처럼 굳은 살수들을 처리하여 하나씩 집 밖으로 옮기는데…….
‘응? 전화가 왔네?’
미리 챙겨 두었던 살수 대장이 가지고 있던 폰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그에 은지한은 망설임 없이 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 *
털썩.
‘마, 말도 안 돼……!’
스피커 너머에서 들려오는 앳되고 낯선 소년의 한국어에 저도 모르게 폰을 떨어트린 웅란이 엉덩방아를 찧었다.
‘지, 지금이라도 금설령을……. 하지만 녀석을 불러 봤자 거기서 여기까지 오는 데는 빨라도 두 시간 이상은 걸릴 텐데…… 젠장!’
금설령을 비롯한 주전력은 모두 윤수호를 치기 위해, 본래 그가 갔어야 할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아낸 것인지 윤수호가 곧장 이곳으로 쳐들어오면서 계획이 전부 틀어진 것이다.
그사이…….
‘대충 큰 고비는 넘겼군.’
윤수호는 어느새 호흡이 안정된 조춘영을 바닥에 조심스럽게 눕혀 둔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머지 대원들은 어디 있지?”
“크크큭! 웃기는 새끼네. 내가 그걸 순순히 얘기해 줄 것 같아? 나한테 손가락 하나라도 대기만 해 봐. 그 새끼들 차례대로 살가죽을 벗겨 버릴 테니까!”
콰앙!
웅란은 윤수호를 협박하며 눈치를 살피다, 폰을 챙기며 순식간에 문을 부수며 밖으로 도망쳤다.
‘일단은 금 대주에게 연락하자.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도망치지만, 기회는 분명 다시…….’
우뚝!
“……!”
웅란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분명 전력을 다해서 산길을 내달렸고, 자신의 스피드를 따라잡을 수 있는 사람은 회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런데 윤수호가 언제 자신을 앞질러 길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칫!”
그는 곧장 윤수호를 피해 다른 곳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마치 자신의 앞길에 가져다 놓은 것처럼, 바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은 채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 괴물 새끼가…….”
결국 윤수호를 따돌릴 수 없다고 직감한 웅란이 비명에 가까운 괴성을 지르며, 가지고 있던 예비용 칼부채를 꺼내 들었다.
콰우우우우우우우!
오버 알터답게 그의 몸에서 나온 폭풍 같은 기세만으로 주변의 나무들이 잘려 나가 쓰러지고, 돌멩이와 풀잎들이 어지럽게 휘몰아쳤다.
“죽어라!”
웅란은 영혼까지 끌어모은 기세를 부채에 담아 휘둘렀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오러를 버티지 못한 부채가 부러지긴 했지만, 그 덕분에 폭풍만큼 거칠고 흉흉한 칼바람이 나무와 바위를 닥치는 대로 분쇄하며 윤수호를 향해 쇄도하였다.
거기에 대항해서 윤수호는…….
푹.
푸화하학!
고작 검지 하나.
그것을 마치 찌르듯이 폭풍의 중심에 박아 넣자, 칼바람이 순식간에 와해되었다.
“이런 미친…….”
털썩…….
넋이 나간 표정으로 자리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은 웅란의 앞에 선 윤수호.
그가 웅란을 담담하게 내려다보며 말했다.
“얘기하기 싫어도 얘기하게 될 거야. 하지만 기대는 하지 마라. 얘기한다고 해도 중간에 멈출 생각은 없으니까.”
“……!”
그날 밤, 이름 모를 강원도의 야산에 한 인간의 처절한 비명이 한동안 울려 퍼졌다.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