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촤악!
“푸하……!”
양동이 가득 들어 있던 찬물이 얼굴을 강타하자 조춘영이 거친 숨을 토해 내며 눈을 떴다.
두꺼운 쇠사슬에 양팔이 구속되어 매달린 그의 몸은 끔찍한 상처들로 가득했고, 아직 식지 않은 핏물로 전신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러나 정신을 차린 조춘영의 눈빛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는 이내 피식 실소를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휴식 시간 끝났냐? 고문을 할 거면 기합 좀 넣어서 제대로 하든가. 하도 지루하니까 잠들어 버렸잖아, 이 새끼들아.”
“얼굴만 사내다운 줄 알았더니 주둥이 또한 호걸이구나. 이대로 죽이기엔 아까운걸.”
조춘영의 이죽거림을 통역으로 전달받은 웅란이 자리에서 일어나 조춘영에게 다가왔다.
조춘영은 그런 웅란을 힐끔 쳐다보며 물었다.
“어이 변태, 우리 애들은 잘 있냐?”
“그 지경이 되고서도 부하들을 먼저 걱정하는 거야? 보면 볼수록 괜찮은 남자구나, 너?”
카악~ 퉤!
웅란이 피에 젖은 조춘영의 뺨을 손바닥으로 훑으며 얼굴을 가까이하자, 조춘영은 망설임 없이 그의 얼굴에 피가 섞인 가래침을 뱉었다.
“휴! 이제야 좀 숨이 제대로 쉬어지네. 아까부터 목이 근질근질하던데, 왕건이가 목에 끼어 있었구먼.”
“이런 상황에서 쓸데없는 배짱을 부리는 것도 마음에 들고.”
“이거, 변태가 아니라 미친놈이었네. 크크큭!”
“보아하니 기운이 좀 돌아온 것 같은데, 그럼 우리 다시 시작해 볼까?”
웅란은 자신의 얼굴에 묻은 가래침을 닦으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자 조춘영의 양쪽에 있던 떡대들이, 가지고 있던 몽둥이로 다시금 조춘영을 구타하기 시작했다.
퍽퍽퍽퍽퍽퍽퍽퍽!
살이 짓무르고, 근육이 뒤틀리고, 뼈가 부러지는 소성이 쉬지 않고 이어져 나왔다.
조춘영을 구속하고 있는 수갑에는 오러를 강제로 억압하는 빌런용 특제 수갑이 채워져 있어, 오러로 몸을 강화하거나 보호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즉, 지금 그의 상태는 일반인과 다를 바 없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패고 또 팼을까? 한 덩치를 자랑하는 떡대들이 오히려 구슬땀을 흘리며 지쳐 헉헉거리자, 웅란이 손을 들어 그들의 행동을 멈춰 세웠다.
축 늘어진 조춘영은 거의 죽기 일보 직전이었지만, 웅란을 노려보는 눈빛은 마치 피에 굶주린 짐승과도 같았다.
“참 질리게 만드는 남자야. 기가 죽기는커녕 수갑을 풀어 주면 당장이라도 달려와 내 목을 물어뜯을 기세라니.”
“그래서…… 풀어 주려고?”
“재미없는 농담은 그쯤하고, 이제 그만 슬슬 협조하는 게 어때? 네놈이 알고 있는 몬스터에 대한 정보를 넘겨 준다면 너와 네 부하들의 안전은 보장할게. 정말이야.”
“꼴을 보아하니 우리 애들도 아무 말 없었던 거 같은데, 대장이 그렇게 쉽게 입을 열어서야 쓰나. 그냥 죽여. 서로 그게 편할 거야.”
히죽.
“이 새끼가 누구 앞에서 건방지게!”
퍽!
고문관이 히죽 웃으며 웅란을 조롱하던 조춘영의 머리통을 후려갈기자 결국 조춘영은 또다시 기절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나 웅란은 그가 입을 열지 않아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대주님, 전화 왔습니다. 흑산 길드의 정태수입니다.”
“줘 봐.”
전화를 받은 웅란의 얼굴에는 얼마 안 가 미소가 맺혔다.
“그렇군요. 특무대 정보부에 심은 흑산의 새싹이 이번에 참으로 큰일을 했습니다. 나머지는 저희에게 맡겨 두시고, 정 대인께서는 일이 끝난 뒤에 함께 마실 샴페인이라도 준비해 주세요. 그럼 이만.”
전화를 끊은 웅란은 정태수가 보낸 윤수호의 집 주소와 그의 핸드폰 번호를 보며 스산하게 미소를 그렸다.
“자, 그럼 우리 고명하신 인간 괴물께서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한번 구경해 볼까?”
* * *
늦은 밤.
윤수호와 가족은 저녁을 먹고 상을 치운 후, 거실에 모여 다 함께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사과랑 배가 엄청 실하네. 이거 어디서 샀어, 엄마?”
“이번에 총사령관님 사모님께서 보내 주신 과일이야. 맛이 괜찮니? 지연이랑 지한이는 어때?”
윤수아의 질문에 오혜연이 답하면서 은지연과 은지한에게 감상을 물었다.
“엄청 달고 맛있어요. 할아버지도 하나 드셔 보세요. 여기.”
“그래, 고맙구나.”
엄마와 여동생은 과일을 깎아 쟁반 위에 예쁘게 진열하고, 은지연은 사과 하나를 포크에 찍어 할아버지에게 건네주었다.
“삼촌은 이 프로 재미없어요?”
“아니, 재미있는데. 왜?”
“아니, 표정이 이렇게 무표정이길래. 재미없으면 다른 거 틀까 싶어서요. 지한이도 똑같고. 가만 보면 둘이 삼촌이랑 조카가 아니라 부자지간 같다니까.”
은지연의 말에 윤수호와 은지한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다 고개를 갸웃했다.
그 모습에 빵 터진 가족.
이내 웃음바다가 된 그들을 보며 윤수호는 피식 미소를 머금었다. 남들이 보기엔 별거 아닌 평범한 가족들의 일상일 수도 있지만, 윤수호에게는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 별거 아닌 시간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목숨을 내놓는다고 해도 아깝지 않을 만큼 말이다.
♫♪♩~
‘…….’
마침 주머니에서 벨 소리가 울리자 윤수호는 폰을 확인했다가 눈을 반개했다. 모르는 번호로 영상 통화가 걸려 왔기 때문이다.
“저, 잠시 전화 좀 받고 올게요.”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오더니, 그때까지도 꺼지지 않는 벨 소리에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처음 보는 여장남자가 자신을 쳐다보며 징그럽게 웃는 모습이 보였다.
-안녕? 그쪽이 윤수호? 괴물이라길래 우락부락한 근육 괴물을 상상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반반한 녀석이네. 반가워. 나는 홍룡회의 대주 웅란이라고 해. 이렇게 설명해도 못 알아들으려나? 거기 통역…….
“홍룡회의 대주가 이 시간에 나한테 무슨 볼일이지?”
-어머! 너, 대국의 말을 할 줄 아는구나? 그럼 얘기가 더 편해지지.
윤수호가 중국말을 능숙하게 사용하자 웅란이 살짝 놀랐다.
윤수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중국어는 물론이고 영어와 일본어, 불어 등 닥치는 대로 언어 공부를 하고 있었다.
깨어난 두뇌와 확장된 오성 덕분에 아무리 어려운 언어라도 스펀지처럼 흡수할 수 있었고, 덕분에 얼마 배우지 않은 중국어도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게다가 중국어 자체가 이전 무림에 있을 때의 언어와 비슷했다는 것도 큰 이점이었다.
-잠시 이것 좀 봐줄래?
웅란은 스마트폰 카메라의 각도를 옆으로 틀더니 누군가의 모습을 비춰 주었다.
그는 다름 아닌, 쇠사슬에 꽁꽁 묶여 매달려 있는 조춘영이었다. 고개를 떨구고 있는 조춘영의 모습은 절로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엉망이었다.
하지만 윤수호의 표정은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이 녀석이 누군지는 네가 더 잘 알고 있겠지? 걱정 마. 지금 당장은 죽일 생각이 없으니까. 하지만 네가 지금 말해 주는 장소로 혼자 오지 않으면…… 그때도 살아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어.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장소는?”
-역시 이해가 빨라. 주소는 폰으로 보내 줄게. 한 시간 안으로 도착하면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만약 조금이라도 늦으면 이 친구가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지는 솔직히 나도 장담하기 어려워. 그러니까 서두르는 게 좋을 거야. 그럼 가서 또 보자고.
웅란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버리자, 윤수호의 뒤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납치입니까?”
어느새 자신의 뒤에 은밀히 나타나 묻는 은지한의 질문에, 윤수호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뒤 그에게 지시를 내렸다.
“놈들이 보내 준 주소까지는 여기서 차를 타고 아슬아슬하게 한 시간이 걸린다. 즉, 놈들은 내 전화번호뿐만 아니라 우리 집의 위치까지 알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커.”
“걱정 마세요. 가족은 제가 지킬게요. 게다가 삼촌이 집에 설치해 둔 진법도 있잖아요. 절대로 문제없을 겁니다.”
“그래, 부탁하마. 가족에게는 비밀로 하고. 지금은 집이 가장 안전한 곳일 테니까.”
“네, 다녀오세요.”
끄덕.
슉.
고개를 끄덕인 순간 윤수호의 모습이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졌다.
* * *
슈우웅!
윤수호의 신형이 무서운 속도로 밤하늘을 비행했다. 그런데 그가 향하는 방향은 웅란이 알려 준 주소와 전혀 달랐다.
혹시 조춘영의 목숨을 포기하고 다른 계획이라도 세운 것일까?
얼마 후, 허공에 멈춰선 윤수호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그곳은 강원도 어느 산골짜기에 숨겨진 별장이었다. 지금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곳으로, 이곳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조차 극히 드물었다.
한데 그가 어떻게 이곳을 알고 찾아온 것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이곳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모든 것이 의문 속에 감춰져 있을 때, 윤수호의 신형이 별안간 아래로 자유낙하를 시작했다.
톡.
그렇게 가볍게 별장 앞에 내려선 윤수호.
주변을 둘러봐도 짙게 깔린 어둠과 적막뿐, 산새조차 숨을 죽인 어둠 속에서 인기척 같은 건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윤수호는 망설임 없이 오두막으로 접근했다.
그 순간!
스스슥!
어둠 속에서 난데없이 모습을 드러낸 검은 그림자들!
윤수호의 지척에 접근할 때까지…… 아니, 접근하고 나서도 그들의 인기척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눈으로 보지 않으면 근처에 접근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그만한 그림자의 숫자가 물경 서른이 넘었다. 놈들은 검면에 검은 칠을 해서 빛이 반사되지 않는 날카로운 단검을 꺼내 휘둘렀다.
촤촤촤촤촤촤촤촤!
오러의 빛조차 흡수한 검은 날카롭고 빠르게 윤수호의 몸을 찢어발겼다.
놈들이 휘두른 검풍이 모여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그 여파로 근처의 나무와 풀잎들이 베어 허공에 흩어지고 잘린 나무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런데…….
‘없다!’
‘대체 어디로……?’
“나를 찾나?”
‘……!’
암습에 실패한 암살자들은 그 즉시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겨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희망 사항일 뿐이었다.
스윽.
윤수호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의 검결지가 움직였을 때 마른침을 삼키며 두 눈을 감았을 것이다. 그의 손가락이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충분히 알고 있을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서걱! 촤아악! 촤촤촤촤촤……!
검결지 끝에서 뿜어져 나온 검기가 굶주린 뱀처럼 먹잇감을 찾아 쇄도하였다.
검기는 먹이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먹잇감의 팔다리를 휘감거나 몸통을 휘감았다. 그러면 여지없이 팔다리가 썰려 피가 쏟아졌고, 몸통을 휘감으면 피 분수와 함께 썰려 나간 내장이 후드득 쏟아졌다.
혈사검이라 이름 붙인 초식답게, 먹이를 먹어 치우면 먹어 치울수록 검기는 암살자들의 피로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간의 혈기를 머금어 붉게 물든 혈사검은 처음의 투명한 혈사검과는 위력과 속도 면에서 비교가 불가능했다.
“허억!”
“크아악!”
“이런 미친!”
반항해도 소용없었다.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했고, 맞서 싸우는 것 역시 부질없었다.
홍룡회 특급 살수부대라는 자긍심마저 빛바랜 지 오래다.
“저건 괴물 따위가 아니야. 그야말로 마왕…….”
촤악! 후드득!
미쳐 날뛰는 붉은 뱀 앞에서는 그저 하염없이 죽음을 기다릴 뿐인 망자에 지나지 않았다.
후드득, 후득.
결국 홍룡회가 자랑하는 특급 살수부대 서른 명은 불과 1분도 안 돼서 전멸하고 말았다.
흔적이라도 찾을 수 있으면 다행이다. 대부분은 인간의 원형도 남기지 못하고 처참한 주검이 되었을 뿐이니까.
그렇게 살수부대를 식전 애피타이저처럼 가볍게 처리한 윤수호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펜션의 지하실로 발을 들였다.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