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돌아왔다-40화 (40/175)

40.

윤수호가 가족과 함께 새집에서 지낸 지도 어느덧 한 달이란 시간이 지났다.

“전원 기상. 어서 일어납니다.”

“하암~!”

“5분만 더 주지…….”

트레이닝복에 운동화를 신고 먼저 마당으로 나선 윤수호의 외침에, 은지한을 제외한 가족이 하나둘 졸린 눈을 비비며 마당으로 나왔다.

은지한은 윤수호와 함께 가장 먼저 나와서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 모두 윤수호처럼 편한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있었는데, 잠이 덜 깬 상태에서도 간격을 맞춰 자리를 잡는 것이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닌 듯 보였다.

윤수호는 아직 잠이 덜 깬 사람들을 향해 장남이 아닌, 선생님으로서 엄하게 그들을 타일렀다.

“여러분의 요구대로 경호팀 여러분을 돌려보내는 대신, 제가 가르쳐 드리는 체조를 열심히 배우기로 하셨으니까 군말 없이 열심히 배우십니다. 그럼 제가 하는 동작을 그대로 따라 하십니다.”

윤수호는 조교처럼 가족들에게 체조를 빙자한 무공을 열심히 가르쳐 주었다.

사실 경호팀을 돌려보내지 않았더라도 윤수호는 가족에게 무공을 전수할 생각이었다.

‘위험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찾아올지 아무도 모른다. 그때마다 경호팀이 지켜 줄 거란 생각은 버리는 게 좋아. 결국 최후에 자신을 지키는 건 자기 자신뿐이니까.’

토대가 되는 기본 초식은 모두 같았지만, 기본 초식 훈련이 끝나면 그는 각자의 성향과 육체에 가장 잘 맞는 무공을 전수해 주었다.

“이렇게 하는 게 맞니?”

“아뇨, 어머니. 조금 더 팔을 부드럽게 펴 주세요. 제가 시범을 보여 드릴게요.”

윤수호는 직접 시범까지 보이며 각자에게 맞는 무공 초식을 가르쳐 주었고, 심법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호야, 네가 가르쳐 준 호흡법 덕분에 요새는 산책을 해도 숨이 차질 않더구나.”

“잘됐네요. 꾸준히 연습하시다 보면 체력도 점점 더 좋아지실 거예요, 아버지.”

개개인에게 맞춤형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무공과 심법을 흡수하는 속도는 경이로울 정도였다.

그렇게 대략 한 시간 정도 진행한 수업이 끝나고…….

“체조는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해 주세요. 호흡법은 일상생활 중에도 의식해서 해 주시고요. 습관이 되면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될 겁니다.”

“고맙다, 수호야.”

“수아야, 아침 식사 준비 좀 도와줄래?”

“당연하지. 지연이 너는?”

“난 좀만 더 잘래. 하암!”

체조가 끝나자 윤지석은 마당 한쪽에 지정해 둔 자신의 텃밭을 가꾸고, 오혜연과 윤수아 모녀는 아침 준비를, 은지연은 밀린 아침잠을 청했다.

한편 체조가 시작될 때부터 지금까지 홀로 몸을 풀고 있던 은지한.

그는 체조에 참여하지 않고 한 시간 동안 몸을 풀고 있었는데, 이는 윤수호가 그를 따로 챙기기 위함이었다.

“그럼 갈까?”

“네, 삼촌.”

윤수호의 집 뒤편에는 도악산이라는 이름의 야산이 존재했다.

최근까지 주인 없는 산이었던 이곳에 얼마 전 주인이 생겼는데, 그 주인이 다름 아닌 윤수호였다.

스스슥…… 팟! 파팟!

이제는 사유지가 된 도악산에 두 개의 그림자가 정신없이 사방팔방을 휘몰아쳤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림자 하나는 가만히 있고, 다른 하나가 바람보다 빠르게 움직이며 서 있는 그림자를 노리고 있었다.

‘지금!’

윤수호의 뒤를 잡은 은지한이 최대한 기척을 죽이며 그의 뒤로 빠르고 은밀하게 접근했다.

정말로 마치 형체도 없는 그림자가 접근하는 듯한 그의 기술은 완벽을 넘어서서 대상이 죽기 직전에야 자신의 처지를 인식한다는 암살법이었다.

그런데…….

챙!

놀랍게도 은지한의 단검은 윤수호가 들고 있던 나뭇가지에 막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

비록 단검에 오러가 서리지는 않았지만 암살 자체가 실패한 이상, 오러가 무장되어 있든 없든 큰 차이는 없었다.

그러나 은지한도 보통내기는 아니었다.

단검이 막히자마자 주저 없이 체술을 섞어 윤수호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수십 개의 주먹과 발의 그림자가 쏟아지며, 매끄럽게 연계를 이어 나가는 은지한.

체술도 보통이 아닌 은지한이기에, 그의 주먹과 발끝은 눈으로 좇을 수도 없는 수준이었고…….

거기에 단검도 섞어 권각의 충격파뿐만 아니라 날카로운 검풍까지 어우러져 굉장히 위력적인 공세가 되었다.

콰콰콰콰콰콰콰!

그러다 보니 마치 묵직한 돌풍이 칼바람을 휘감고서 적을 향해 쇄도하고 있는 것 같은 아찔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위력에 집중한 나머지 흐름이 끊어졌다. 상대가 나보다 강하다고 판단했다면, 일격의 위력에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흐름을 이어 나가라. 흐름이 이어지면 거대한 물결이 되고, 물결은 그 어떤 일격보다 강해질 수 있다.”

“예!”

윤수호는 치우팀조차 기겁할 만한 공세를 손가락 하나로 상대하면서 동시에 은지한에게 부족한 가르침까지 이어 나갔다.

그러다 빈틈이 보이면…….

퍼퍼퍼퍽!

“커헉!”

여지없이 윤수호의 주먹이 은지한의 전신을 두들겼다.

급소는 피했다지만 살과 근육을 넘어 뼈까지 울리는 주먹의 위력은, 고통에 익숙한 은지한조차 절로 답답한 비명이 터져 나올 정도였다.

“다시.”

“예!”

그러나 윤수호의 한마디에 은지한은 아무런 불평불만 없이 일어나 다시 윤수호에게 도전했다.

처음보다 더 매서운 공세가 이어졌지만, 윤수호는 그것을 우습게 파훼하며 가르침과 동시에 역습까지 보여 주었다.

그렇게 얼마나 도전하고 얻어맞아 뻗기를 반복했을까?

“하아, 하아……!”

완전히 대(大)자로 뻗어 버린 은지한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호흡을 정리하자, 어느새 다가온 윤수호가 조카에게 물병을 내밀었다.

“마실래?”

꿀꺽꿀꺽.

“후우! 이제야 살 것 같네요.”

은지한은 앉은 자리에서 1.5L짜리 물병 하나를 숨도 안 쉬고 마셨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윤수호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그에게 물었다.

“후회 안 해?”

“후회요?”

“나한테 강해지고 싶다고 말한 거 말이다. 넌 내가 보기에도 이미 충분히 강해. 그런데도 이런 고생을 하는 게 억울하진 않아? 네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편하게 살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삼촌은 못 이기잖아요.”

“그거야…….”

윤수호가 쉽게 대답하지 못하자, 은지한이 씨익 웃었다.

“딱히 삼촌을 이기고 싶어서 강해지고 싶은 건 아니에요. 하지만 그때도 말씀드렸다시피, 만약 삼촌 정도의 악당이 나타난다고 한다면……. 저는 그런 악당에게서도 제 가족을 지키고 싶어요. 더 이상 빼앗기는 건 싫거든요.”

“그런 각오라면 더 이상 말리진 않으마. 하지만 수련은 지금보다 훨씬 힘들어질 거다.”

“바라던 바입니다.”

“좋아. 그럼 오전 수련은 이걸로 끝! 아침 먹고 쉬다가 다시 수련을 시작한다. 오후에는 너한테도 쓸 만한 기술을 하나 가르쳐 주마.”

“정말요?”

‘다른 선물엔 눈 하나 깜짝 안 하던 녀석이 이런 건 어린애처럼 좋아하네. 아니, 열다섯이면 애 맞구나.’

“정리하고 아침이나 먹으러 가자. 더 늦으면 아침도 못 먹겠네.”

“네, 삼촌!”

은지한은 자신이 배울 무공이 중원 최고 살수인 귀살(鬼殺)의 무공이라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삼촌과 함께 산에서 내려왔다.

* * *

그날은 하늘에 뜬 반달도 구름에 먹혀, 달빛 대신 어둠이 세상을 감싸 안은 밤이었다.

슥, 슥슥…….

대태러부대 G팀은 팀장인 조춘영을 필두로 팀원들과 함께 어느 상가에 은밀히 잠입하여 작전을 진행하고 있었다.

조춘영의 G팀이 담당하고 있는 구역 몇 곳에, 오작 길드의 마약 제조 시설이 숨겨져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제보자의 정체는 파악되지 않았으며, 보통 이러한 제보는 내부 고발이 많기 때문에 신원이 불분명한 것도 사실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제보가 들어오면 특무대에서는 반드시 확인한다는 사실이었다. 길드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경찰이 아닌 특무대에서 직접 조사를 나서는 것이다.

그렇게 정찰팀에서 확인한 결과, 제보받은 열 군데 중에서 무려 네 군데나 기존에 사용 흔적이 있던 마약 제조 시설의 존재가 확인됐다.

결국 이 시설 관계자들을 일망타진하기 위해서 지역 담당인 G팀과 3개의 팀이 나뉘어 각각의 현장에 출동했다.

‘어째 예감이 불길한데…….’

현장에 도착한 조춘영은 평소와 다르게 속이 메스껍고 괜히 몸이 더 무거운 것처럼 느껴지는 것 같아 불길한 예감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임무는 임무. 자신은 특무대 군인이고, 상부에서 명령이 내려오면 그저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진입한다.

끄덕.

팀원들에게 수화로 지시를 내린 조춘영은 불안한 예감을 애써 뒤로하며 팀원들과 함께 은밀하게 건물로 진입했다.

그렇게 잠입에 성공한 건물의 분위기는 일단 아주 조용했다. 패배자들이 숨어 있는 은신처라서 그런 것일까?

‘그런 것치고도 너무 조용한데…….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 기색도 없고.’

그 순간!

슈슈슈슉!

갑자기 천장에서 떨어져 내리는 검은 그림자들을 확인함과 동시에 조춘영은 눈을 부릅떴다.

“함정이다! 전부 튀어!”

조춘영이 소리치기도 전에 천장에서 떨어진 그림자들이 입구와 통로를 모두 막아 버렸다. 동시에 G팀을 들이치며 공격을 시작했다.

자신을 포함한 G팀 대원들은 평소에도 독하기로 소문난 대태러부대의 훈련을 꾸준히 받으며 결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게다가 수십 차례를 넘는 실전은 그들을 괴물로 바꿔 놓기에 충분했다. 어지간한 조직이나 길드는 그들의 적수가 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등을 보이지 마라! 등을 맞대고 눈앞의 놈들만 집중해서 싸워! 길은 내가 뚫는다!”

“단결!”

‘보통 놈들이 아니야! 적어도 우리처럼 혹독한 훈련과 수많은 대인 실전을 경험한 놈들이다!’

조춘영은 단번에 암행복을 입은 놈들이 보통이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전투력 자체가 자신의 부하들과 비교해도 절대 꿇리지 않았던 것이다.

‘어디서 이런 놈들이……!’

게다가 숫자는 상대방이 훨씬 많다 보니, 이들을 전부 쓰러트리고 지나간다는 것도 불가능했다.

물론 조춘영이 앞장서서 그림자들을 박살 내긴 했지만, 그것보다 빠른 속도로 천장에서 그림자들이 떨어져 길을 막은 것이다.

“비켜라.”

그때였다.

낯선 중국어가 들리자 거짓말처럼 그림자들이 길을 텄다.

대원들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복도의 끝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곳에는 상당한 거구의 근육질 사내가 이쪽을 쳐다보며 서 있었다.

“네가 여기 라스트 보스냐? 보아하니 우리나라 사람은 아닌 것 같고…… 중국인?”

조춘영이 지친 대원들을 자신의 뒤로 물리며 앞장섰다.

그러나 금설령은 조춘영의 말을 못 알아듣는 것인지, 아니면 관심도 없는 것인지 성큼성큼 다가와 어느새 조춘영의 앞에 섰다.

‘이 녀석을 쓰러트리고 이대로 곧장 빠져나간다!’

조춘영은 텅 빈 녀석의 목을 향해 그대로 단검을 휘둘렀다. 일격에 끝장을 내고 뚫린 통로를 단숨에 주파하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깡!

‘깡?’

녀석은 자신의 단검을 피하기는커녕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러가 서린 단검에 목이 베었음에도, 불똥이 튀면서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성이 울려 퍼진 것이다.

그 순간!

쩌엉!

언제 움직였는지도 모른다. 그저 정신을 차리고 보니 금설령이 통나무 같은 주먹이 쭉 뻗어 있고, 조춘영의 몸이 정신없이 빙글빙글 돌아갔으니까.

“팀장님!”

“……장님!”

“……!”

‘젠장! 입술만 뻐끔거리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네. 근데 왜 이렇게 눈이 감기냐?’

쿵!

결국 허공에서 세 바퀴나 회전한 조춘영이 바닥에 떨어지며 기절했다. 팀원들의 애타는 절규가 터져 나왔지만, 조춘영은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녀석을 옮겨라. 나머지도 구속해서 가두도록. 반항하면 죽여도 좋다.”

“복명!”

금설령은 기절한 조춘영을 내려다보며 뭔가 부족하다는 듯이 고개를 젓더니, 이내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려 두고는 그길로 조용히 사라졌다.

검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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