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돌아왔다-39화 (39/175)

39.

인천의 한 부둣가.

어둠을 틈타 조용히 접안에 성공한 배 한 척이 있었다.

‘뭐지, 저건? 혹시 밀항선인가?’

한편, 항구를 순찰하다 밀항선을 발견한 순찰 대원이 근처 컨테이너에 몸을 숨기며, 한 손에는 무전기를 들고 조심스럽게 밀항선을 관찰했다.

배에서 내린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불법 이민자들이 아니었다. 모두 멀끔하게 차려입은 양복에, 어딘지 모르게 불길하고 섬뜩한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평범한 밀항선이 아니야. 일단은 상부에 보고해야…….’

촤악!

“커헉……!”

배를 쳐다보면서 무전기를 들어 올리던 대원은 목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통증에 목을 감싸 쥐며 무전기를 떨어트렸다.

푸슉, 푸확!

“사, 살려…….”

대원은 손으로 아무리 감싸 쥐어도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오는 뜨거운 핏물에 시야가 점점 어두워지고 몸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털썩.

결국 자신을 무심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흉수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그는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렇게 순찰 대원을 처리한 흉수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어느새 배에서 내린 마지막 사람들 앞에서 절도 있게 고개를 숙였다.

“쥐새끼들은 잘 처리했고?”

“예, 대주님.”

“하여간 이놈의 소국은 어딜 가나 쥐새끼들이 넘쳐 난다니까. 잘생긴 아이돌이 많다는 것 빼고는 하등 쓸모없는 역겨운 나라 같으니…….”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대한민국을 폄하하는 사내의 행색이 다소 특이했다.

얼굴과 몸은 분명 남자인데 입고 있는 옷은 여성용 치파오였고, 말투나 화장도 여자처럼 꾸몄다.

그러나 사내에게 고개 숙인 빌런들 중, 그 누구도 사내의 행색이나 행동거지를 보고 비웃는 사람은 없었다. 목숨이 아깝다면 그 누구라도 홍룡회의 오대주 중 한 명인 웅란의 심기를 건드리지 못할 테니까.

웅란은 자신과 함께 온 다른 대주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금 대주는 이 나라가 처음이라지?”

“그렇소.”

“어때? 기분 전환이라도 할 겸, 이 나라의 밤 문화를 즐겨 보지 않을래? 다른 건 몰라도 밤에 놀기 좋은 나라거든, 여기는.”

그렇게 말하면서 금강역사가 현신한 듯한 금설령의 몸을 훑는 웅란의 시선이 불쾌하게 찐득거렸다.

“밤 문화에는 관심 없소. 나에게는 회에서 내린 명령을 완수하는 것이 제일 목표요.”

하지만 금설령은 웅란의 시선 따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그의 육체만큼이나 단단하고 다부진 눈빛으로 담담히 대꾸할 뿐이었다.

“재미없는 남자. 흥!”

금설령의 대답에 토라진 웅란이 앞장서서 걸어가자, 금설령이 뒤를 따르고 마지막으로 부하들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하늘로 솟은 것일까? 땅으로 꺼진 것일까? 물경 오백이 넘는 그들의 모습이, 어느 순간 인천항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 * *

서울 외곽에 한 폐공장.

겉보기에는 인적이 끊긴 버려진 공장이었고 실제로도 그러했지만, 오늘따라 많은 차량이 은밀하게 이곳을 찾았다.

폐공장 입구에는 검은 슈트를 말끔하게 차려입은 보초들이 서 있었는데, 차에서 내린 중년의 사내가 입구 앞에 서더니 그에게 물었다.

“몇이나 도착했지?”

“모두 와 계십니다. 정태수 길드장님이 마지막이십니다.”

“그런가.”

함께 있던 보초가 정태수에게 문을 열어 주자 그가 폐공장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폐공장 내부의 모습이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필요 없는 자재들은 전부 치우고, 그 중앙에 거대한 원형 테이블과 일곱 개의 의자들이 둘러 놓여 있었다.

의자마다 주인이 있었는데, 마지막 남은 자리를 정태수가 채웠다.

“이렇게 함께 모여 얼굴을 마주 보는 것도 오랜만이구먼. 재작년 전쟁 이후로 처음이던가?”

“전쟁 얘기는 그쯤 하지. 그때만 생각하면 저 개자식에게 뺏긴 내 구역 때문에 지금도 속이 뒤집히는 것 같으니까.”

“꼬우면 다시 붙든가. 안 그래도 아성구의 입지가 제법 좋아졌다던데, 나야 손해 볼 거 없지.”

“뭐라고? 이 새끼가 근데!”

금성 길드의 길드장, 오병주가 발끈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작년 길드 전쟁 때 금성 길드가 패명 길드에 구역을 빼앗긴 적이 있었는데, 패명 길드의 길드장 한동진이 되레 도발까지 걸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길드장들이 서둘러 두 사람을 말렸다. 딱히 두 사람을 걱정한다거나 신경 써서가 아니라, 단순히 본론이 늦어지기 때문이었다.

“꼴값 그만 떨고 앉지? 우리가 너희 둘 지랄하는 거 보려고 귀한 시간 쪼개서 여기 모인 줄 알아?”

“너희 둘이 전쟁을 뜨든 ×구리를 뜨든 나중에 알아서들 하시고, 지금은 본론에 집중 좀 하자고.”

“크흠!”

“칫!”

자신들 때문에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오병주와 한동진은 어쩔 수 없이 한 발짝 물러나며 분을 삭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분위기가 정리되자 정태수는 좌중을 스윽 훑어보더니 곧바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이 자리에 모인 이유는 다들 알고 있겠지만, 최근에 나타난 특무대의 괴물…… 몬스터! 그 녀석을 처리하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혈창, 금강패, 한굴, 척결, 등등……. 이름만 대도 알 만한 대형 길드들이 전부 놈의 손에 무너졌다. 최근에는 비사까지 당했고.”

“이대로라면 서울 내의 길드들은 놈의 손에 씨가 마를 테지.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권은 두 개다. 서울을 포기하고 지방으로 내려가 비굴하게 숨어 사느냐, 아니면…….”

“놈을 먼저 제거하느냐. 물론 숨어 살 생각인 녀석이 이 자리에 나오진 않았겠지만.”

오작 길드의 길드장 소영준의 말에 다른 길드장들도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이 자리에 오기 위해 치른 희생과 걸었던 목숨이 몇 갠데. 이걸 전부 포기하고 도망치느니 그냥 뒈지는 게 백 배 나아.”

“문제는 놈을 어떻게 죽이냐는 건데…….”

“듣자하니 비사의 리퍼도 놈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더군. 그런 녀석을 죽일 전력이라면 여기 있는 길드 중에 최소 다섯 곳, 가능하다면 전부가 놈을 치는 게 옳겠지만…….”

“미친! 차라리 지나가는 거지새끼를 믿지. 툭 까놓고 말하지. 너희는 나를 믿고 너희의 병력을 전부 투입할 수 있겠냐?”

오병주가 비웃으며 묻자 당연히 다른 길드장들도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결국 외주를 맡기는 수밖에 없는 건가.”

“외주라고 한다면…… 중국이나 러시아, 일본 쪽에서 킬러를 고용하잔 말인가?”

“그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러시아나 일본은 그렇다 치더라도 중국은 논외일세. 특히 우리 시장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홍룡회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되면…….”

* * *

그러나 그들이 상상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너희 뭐야? 어디서 왔어?”

폐공장 주위를 철통같이 호위하던 일곱 길드의 길드원들은 이곳에 나타난 홍룡회 무리를 발견하고 경계하며 소리쳤다.

“주인을 지키는 개들이 영 형편이 없네. 이래서야 사내구실이나 똑바로 하겠어? 가서 처리해.”

그러나 길드원들을 눈으로 훑던 웅란이 혀를 차며 가지고 있던 부채로 슬쩍 그들을 가리키자, 그의 뒤에서 부하들이 튀어나와 길드원들과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하나 그건 전투라기보다 일방적인 학살에 더 가까웠다.

“커헉!”

“크아악!”

“보, 보통 놈들이 아니다! 함부로 접근하지 마!”

홍룡회의 조직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마치 무리 사냥을 하는 늑대처럼 조직적으로 길드원들을 도륙했다.

한편, 정태수는 불현듯 등줄기를 스치고 지나가는 불안함을 느끼며 소리쳤다.

“무슨 일이야?”

“침입자입니다! 특무대는 아니고, 중국말을 쓰는 것으로 보아 중국에서 온 놈들인 것 같습니다!”

“중국?”

콰앙!

중국이란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이 박살나며 침입자들이 안으로 들어섰다.

“하여간 쥐새끼들의 나라 아니라고 할까 봐, 길드의 대가리란 것들조차 이런 시커먼 곳에 모여서 쑥덕거리는 것 좀 봐. 어휴! 먼지 냄새. 진짜 비즈니스만 아니면 싹 다 죽여 버리는건데. 아, 이건 통역하지 마라. 알았지?”

“예, 대주님.”

길드장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똥 씹은 표정으로 침입자들을 노려보았다.

그러다 슬쩍 그들의 뒤로 시선이 향했다.

그들 뒤에는 수십 명의 부하들이 끔찍한 몰골로 쓰러져 있었다.

‘나름 쓸 만한 녀석들만 추려서 데려온 건데, 그런 녀석들이 전멸했다고?’

“이 새끼들! 너희 정체가 뭐야?”

“자, 잠깐!”

다소 충심이 과했던 것일까?

한동진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빌런이 소리치며 웅란에게 달려들었다.

알터 중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실력자답게 그의 움직임은 민첩했다. 그는 어느 새 웅란과의 거리를 좁히며 그의 목에 검을 휘둘렀다.

도저히 피할 시간도, 막을 여유도 없어 보였다.

그런데…….

서걱!

정작 목이 달아난 쪽은 한동진의 오른팔인 자였다.

언제, 어떻게 무슨 수를 썼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정신을 차려보니 몸과 분리된 머리 하나가 경악에 찬 표정으로 바닥을 구르고 있을 뿐이었다.

“어휴! 죽어서도 끝까지 못생긴 것 좀 봐. 진짜 불쾌해서 원……. 난 왜 이렇게 못생긴 남자만 보면 화가 날까?”

콰직!

웅란은 바닥에 떨어진 머리를 불쾌한 표정으로 쳐다보다가 그대로 밟아서 머리를 부숴 버렸다.

튀어나온 눈알과 폭발한 뇌수가 사방으로 튀며 끔찍한 모습을 연출했지만, 길드장들 중 그 누구도 섣불리 나서서 그를 성토하지 못했다.

‘저 변태 놈의 옷에 그려진 붉은 용은 설마…….’

중국말에 옷에 그려진 붉은 용을 보자마자 길드장 전원이 한 조직을 떠올렸다.

“나, 흑산 길드의 정태수요. 혹시 홍룡회에서 오신 분들이시오?”

정태수가 먼저 말을 건네자, 통역을 통해 말을 전달받은 웅란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

“흑산 길드의 정태수 길드장님이셨군요. 말씀은 많이 전해 들었습니다. 정 대인 외에도 저희가 알고 있는 면면들이 많은데……. 이런 음침한 곳에 큰 사내들이 모여 무슨 작당 모의를 하고 계셨던 것인지 몹시 궁금하군요. 혹시 물어본다면 실례가 될까요?”

“그게…….”

정태수가 말끝을 흐렸다.

‘하필이면 와도 홍룡회 같은 개새끼들이 오다니…….’

아무리 그래도 홍룡회와 연관이 되면 그 결말이 빤히 보였기 때문에 쉽게 얘기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포위당했나? 수틀리면 가차 없이 죽이겠단 뜻이로군.’

어디서 정보가 샜는지는 모르겠지만, 애초에 이곳에 길드장들이 모두 모여 있는 상황에서 놈들이 들이친 것만으로도 외통수였다.

즉, 선택권이 없다는 뜻이었다.

정태수가 다른 길드장들의 눈치를 살피자, 그들 역시 상황을 파악하고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에 큰 골칫거리가 생겨서 말입니다. 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그 부분에 대해서 의논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랬군요. 이해합니다. 저희 역시 최근 이 나라에서 몇 번이나 괘씸한 녀석에게 방해를 받은 탓에 회주님의 심기가 엄청 불편한 상황이라서요. 그런데 대주님이 말씀하신 골칫거리와 우리를 방해한 괘씸한 녀석의 정체가 같은 것 같은데……. 제 생각이 틀렸나요?”

“괘씸한 녀석이라 하심은…….”

“어머, 참! 정 대인도 능청스러운 분이셨군요. 호호호! 이미 다 알고 계시면서 시치미를 떼시네요. 여기서는 녀석을 몬스터라고 부른다던데…… 아닌가요?”

“……아무래도 같은 적을 쫓고 있는 듯하군요.”

정태수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자, 웅란이 웃으며 다가와 그의 자리를 자연스럽게 차지했다.

“잘됐네요. 그럼 우리, 이제부터 조금 더 생산적인 비즈니스를 해 볼까요?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장사를 말이죠.”

“방법이 있습니까?”

“동서고금 약자가 강자를 상대하는 방법은 정해져 있습니다. 바로 약점을 물어뜯어 서서히 숨통을 조여 가는 것이죠. 무슨 수를 써도 좋으니까, 몬스터에 관한 정보를 전부 긁어모아 오세요. 특히 가족이나 연인, 친구, 그밖에 친하게 지내는 인물들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뭐 해요? 꾸물거릴 시간 있어요?”

어느새 이 자리의 우두머리가 된 웅란만이 스산한 미소를 그렸다.

검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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