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허, 참 세상에…….”
천호진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특무대 연구소를 향해 들어오는 트레일러들을 보고는 할 말을 잃었다.
저 모든 게 오늘 아침까지만 하더라도 계륵 같았던 8급 재앙종의 사체라고 하니 그야말로 기가 찰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오셨습니까, 위원장님.”
차에서 내린 윤수호에게 천호진이 직접 다가가 그를 환영했다.
“소재들은 잘 도착했습니까?”
“지금도 들어오는 중인데, 소재들이 모두 말끔하고 상태도 좋습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무기의 성능 테스트를 겸해서 한 일이니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무기의 성능 테스트요? 설마 무기를 직접 가서 만드셨다는 말씀이십니까?”
천호진이 놀라서 묻자, 윤수호는 말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검을 그에게 건네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이건……!”
“재앙종의 갈비뼈로 만든 검입니다. 당분간은 쓸 만하겠더군요.”
검을 받아 든 천호진은 세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는 검의 아름다움이었다. 잡티 하나 없이 손잡이 끝부터 검극까지 새하얀 검은 무기가 아니라 예술품에 가까웠다.
두 번째는 검의 무게였다.
‘보기보다 굉장히 무겁다.’
같은 부피의 철보다 족히 두세 배는 더 무거운 검의 무게에 적잖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무인검(無刃劍)?”
천호진은 뭉툭한 칼날을 보고 깜짝 놀라 칼날에 손을 조심스럽게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보이는 것처럼 뭉툭한 감촉만 느껴질 뿐, 예기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무기로서는 날이 서 있는 검이 당연히 더 위협적일 텐데……. 날이 없는 검을 만드신 이유라도 있으신 겁니까?”
“그만한 검에 예기까지 서려 있으면 검을 품을 칼집을 구하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서요. 게다가 검의 날카로움은 제겐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아…….”
천호진은 작은 탄성을 터트리며, 다시 한번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어오는 트레일러로 향했다.
무인검에 놀라 잠시 망각하고 있었지만, 분해가 불가능하다고 판정 난 8급 재앙종을 썰어서 가져온 사람은 다름 아닌 눈앞의 인물이었다.
“아, 참! 그리고 연구소장에게는 미리 얘기해 뒀으니, 재앙종의 소재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찾아오셔서 사용하시면 됩니다. 연구소 직원들의 도움이 필요하면 부담 없이 말씀하시고요. 무엇보다 재앙종의 뼈는 위원장님이 아니면 아직 우리 기술로는 가공조차 불가능하니 말입니다.”
“그러도록 하죠. 배려 감사합니다.”
‘말이 나온 김에 예비용 검을 몇 개 만들어 놓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그렇게 윤수호는 운반된 갈비뼈를 사용하여 자신의 검과 같은 검 스무 자루를 예비용으로 만들어 놓고 귀가하였다.
* * *
며칠 후.
“바이탈도 문제없고, 차트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네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두 분 모두 이제 퇴원하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두 분께서 열심히 치료도 받으시고 노력하신 덕분이죠. 그럼 편히 쉬십쇼.”
의사가 퇴원을 허락하자 윤지석, 오혜연 부부가 의사에게 감사를 전했다.
회진을 마친 의사와 간호사들이 병실을 나서자, 곁에서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던 가족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두 사람을 축하했다.
“축하해요! 두 분 모두 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요.”
“할아버지, 할머니, 축하드려요!”
“고맙다, 우리 강아지들. 이게 어디 우리 둘만 노력한다고 될 일이니. 선생님들도 그렇고, 너희가 옆에서 열심히 도와주지 않았다면 어림도 없었지.”
윤수아와 두 아이가 달려가 부모님을 끌어안으며 기뻐하자, 윤지석이 딸의 등을 토닥이며 대답했다.
한편 오혜연도 아들의 손을 두 손으로 꼬옥 쥐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네가 제일 고생이 많았다, 수호야. 돌아오자마자 쉬지도 못하고 가족 찾고 나랏일 한다고 네가 너무 고생했어. 그게 너무 미안하고 고맙구나.”
“제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이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저는 두 분께서 완쾌하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보상받았으니까요. 저는 가서 퇴원 수속하고 오겠습니다.”
윤수호는 조카들에게 엄마를 맡기고 퇴원 수속을 밟기 위해 병실을 나섰다.
“윤지석 씨와 오혜연 씨의 보호자입니다. 퇴원 수속을 하려는데, 병원비는 얼마죠?”
“윤지석 씨와 오혜연 씨요? 잠깐만요. 납부하실 병원비는 없으시네요. 담당 선생님의 허가도 떨어졌으니 퇴원 준비가 되는 대로 퇴원하시면 됩니다.”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과연 국빈급 대우라고 해야 할까.
윤지석과 오혜연을 치료하기 위해 들어간 약과 수술비, 그리고 병실비만 하더라도 수천만 원은 우습게 넘어갈 것이다.
게다가 윤지석과 오혜연에게는 비밀로 해 뒀지만, 은지한의 심장에 남아 있던 고장 난 폭탄 역시 수술로 제거한 상태였다.
그 비용 역시 만만치 않았을 텐데도 그 모든 돈을 국가에서 대신 지불한 것이다.
그렇게 퇴원 준비를 마치고 부모님과 함께 퇴원하자, 윤수호는 미리 준비해 둔 승합차에 가족들을 태우고 어딘가로 향했다.
“그런데 오빠, 우리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보조석에 앉아 있던 윤수아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질문을 던지자 윤수호가 미소를 머금었다.
“우리 집.”
“우리 집? 설마 우리가 살 집까지 미리 구해 놓은 거야?”
윤수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윤수아가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오빠를 쳐다보며 말했다.
“미안해. 언제나 힘든 일은 오빠한테만 맡겨서.”
“딱히 힘들 것도 없었어. 어차피 난 부탁만 했을 뿐이고, 실무는 전부 아는 사람들이 해 줬거든.”
“오빠가 아는 사람들이라면…… 오빠랑 항상 같이 다니던 그 특무대분들 말하는 거지? 이선호 대위님이랑 조춘영 대위님이라고 했나?”
“맞아. 기억하고 있었네?”
윤수호가 살짝 놀라자 윤수아는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당연하지. 나한테는 오빠만큼이나 감사한 은인분들인걸. 언제 그분들도 우리 집으로 초대해서 같이 식사했으면 좋겠다. 팀원분들도 다 함께.”
“한 번 물어볼게.”
그렇게 이선호와 조춘영이 알려 준 집 주소를 찾아간 윤수호.
차에서 내린 가족은 자신들이 앞으로 살게 될 집을 확인하고선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수, 수호야, 정말로 여기가 확실하니? 아무래도 잘못 온 거 같은데…….”
윤지석이 말까지 더듬거리며 집을 가리키자, 윤수호는 다시 주소를 확인하고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주소는 여기가 맞습니다. 잠깐만요. 확인 좀 해 볼게요.”
윤수호는 곧바로 이선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호야, 나다. 네가 가르쳐 준 우리 집 주소 말이야. 정말 여기가 확실해?”
-예, 형님. 집 주소는 거기가 맞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혹시 집이 생각하셨던 것보다 작아서 그러십니까?
‘집이 작다라…….’
윤수호는 시선을 돌려 집 담벼락을 둘러보았다.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시선이 돌아가는 데 한참이 걸리는 집을 작다고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런 건 아닌데, 가족들이 믿지 못하는 눈치라……. 솔직히 나도 보고 좀 놀랐다.”
-하하하! 형님께서 놀라셨다니, 발품 팔고 다닌 보람이 있네요. 명색이 대한민국 No.1…… 아니, 잠정 세계 No.1께서 가족과 함께 지내실 보금자리인데, 그 정도 구색은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VIP와 총사령관님께서도 신경 써 달라고 직접 부탁하셨을 정도라니까요?
VIP는 대통령의 은어였다. 즉, 윤수호의 거주지를 정하는 문제에 한 국가의 원수와 특무대 최고 권력자까지 나서서 신경을 쓴 것이다.
“그래, 알았다. 수고하고.”
-예, 형님! 그럼 편하게 쉬십쇼! 아, 참! 대문과 현관 비밀번호는 일단 형님 생일로 설정해 두었습니다.
전화를 끊은 윤수호는 가족들에게 담담하게 얘기했다.
“우리 집 맞다네요.”
“그, 그래?”
아직도 얼떨떨해하는 가족을 이끌고 윤수호는 대문으로 향했다.
대문 앞에는 특무대 경호팀에서 파견된 대원들이 검은 양복을 입고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었는데, 윤수호와 가족이 다가오자 절도 있게 경례를 올렸다.
“수호야, 이분들은…….”
경호팀을 보고 놀란 오혜연이 조심스럽게 그들의 정체를 묻자, 윤수호가 간단하게 설명했다.
“특무대에서 파견 나온 경호팀분들이십니다. 중요 인사의 가족은 이런 식으로 경호를 붙여 준다고 하더군요. 너무 부담스러우시다면 위에 말씀드려 돌려보내도록 할게요.”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간 대문 안쪽은 더더욱 장관이었다.
일단 고풍스러운 돌계단을 밟아 올라가면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으리으리한 대저택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저택 건물부터 너른 정원 한쪽에 우뚝 서 있는 정원수까지 모두 깔끔하게 손질되어 있었는데, 이곳저곳에 경호팀이 배치되어 철통 경비를 서고 있었다.
“이건 무슨 집이라기보다 거의 궁전이잖아……?”
“어휴! 병원 특실도 불편해서 자기 힘들었는데, 엄마는 이런 집에서 편하게 두 발 뻗고 잘 수 있을지 모르겠다.”
윤수아와 오혜연뿐만이 아니었다. 가족 모두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호화롭고 거대한 대저택에 적잖이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
윤수호는 그런 가족의 반응에 놀라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물었다.
“이곳이 부담스러우시면 다른 집을 알아볼까요? 적당한 곳이라면 금방 구할 수 있을 겁니다.”
윤수호의 질문을 듣고서야 부담감에 미처 깨닫지 못한 자신들의 실수를 깨달은 가족.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집이 너무 부담스러워서 이 집을 수호가 어떻게 구했는지 전혀 생각을 못 했네. 아들이 노력해서 이런 좋은 집을 구해 왔는데, 칭찬은 못 해 줄망정 부담스럽다고 퇴짜를 놓는 건 말이 안 되지! 암!’
‘정신 차려, 윤수아! 오빠가 가족을 위해 구한 집이잖아. 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오빠가 나라를 위해 훌륭한 일을 하고 번 돈으로 구한 집이라고. 그런데 정작 오빠가 나 때문에 미안해하고 눈치를 살핀다는 게 말이 돼?’
가족은 손사래를 치며 윤수호의 제안을 곧바로 거절했다.
“응? 아, 아니다! 우리 아들이 애써서 장만한 집인데 싫을 리가 있겠니? 아빠는 대찬성이다. 집도 넓고 우리 가족이 다 함께 살기에 좋구먼! 마당도 넓어서 나중에 강아지도 키우고, 고기 구워 먹기도 좋고. 안 그래요, 여보?”
“그, 그렇죠! 내 정신 좀 봐. 어차피 가족끼리 살 부대끼면서 살다 보면 거기가 우리 집이지, 집의 외관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수아, 너는 어떠니?”
“나야 당연히 좋지! 오빠가 힘들게 노력해서 구한 집인데 판잣집이면 어떻고, 궁전이면 또 어때? 진짜 정말 고마워, 오빠. 사실 이럴 때 오빠 덕을 안 보면 언제 우리 가족이 이런 궁전 같은 곳에서 살아 보겠어. 지은아, 지한아. 너희는 어때? 집이 마음에 들어?”
엄마의 질문에 은지연은 눈빛을 초롱초롱 빛내며 대답했다.
“완전 대박이지! 삼촌 최고! 완전 최고!”
은지연은 윤수호를 꼭 끌어안고 방방 뛰었다. 그렇게 가족이 애써 노력하는 모습이 괜히 짠해진 윤수호가 진심으로 얘기했다.
“집이 부담스러우면 옮겨도 정말로 상관없는데…….”
“진짜 아니라니까? 이 아빠는 벌써 이 집이 우리 집 같고 딱 좋다!”
“여보. 여기서 이러지 말고 집 안도 좀 구경해 봅시다.”
“엄마, 나도! 지연아, 가자.”
“응. 나도 내 방 찍어둘래!”
그렇게 부모님과 수아, 지연이까지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가자, 윤수호의 시선이 은지한에게 향했다.
‘저 녀석……!’
아니나 다를까, 은지한은 매의 눈으로 벌써부터 저택의 이곳저곳을 탐색하는 중이었다.
윤수호가 은지한에게 다가가 넌지시 물었다.
“넌 여기서 뭐 하고 있어?”
“침입로와 대피로를 체크 중입니다. 다행히 주변에 주택가도 없고 여기보다 지대가 높은 건물이 없어서 외부의 저격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포인트는 체크해 두겠습니다.”
“……그래, 열심히 해라.”
그렇게 외부의 침입로와 가족들의 대피로를 체크하는 올해 열다섯 살 조카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윤수호도 집 안으로 들어갔다.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