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이건…….”

“위원장님을 위해 특별히 가공한 ‘검’입니다. 소재는 위원장님께서 쓰러트리신 8급 재앙종의 껍질을 활용했지요. 그 검 하나를 제작하기 위해서 공방의 장인들이 몇 날 며칠을 고생하며 진땀을 흘렸는지…….”

윤수호는 검을 보며 뿌듯해하는 장인들에게 먼저 감사를 담아 고개를 숙였다.

“값진 선물,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만 확인하겠습니다. 이 검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예? 목적이라 하시면…….”

“전시를 위한 무기인지, 실전을 위한 무기인지를 알고 싶군요.”

“그야 당연히 위원장님께서 실전에 사용하시라고 만든 무기지요. 그런데 무슨 문제라도…….”

“…….”

윤수호는 공방 장인들이 몇 날 며칠 피땀 흘려 만들었다는 검을 직접 들어 올렸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하셨죠? 따라오시겠습니까? 괜찮으시면 장인분들도 함께 오셔도 상관없습니다.”

“예? 아, 예…….”

그렇게 밖으로 나간 윤수호는 천호진과 장인들이 보는 앞에서 아무도 없는 야산을 향해 검을 진심으로 휘둘렀다.

그 순간!

번쩍!

“세상에…….”

“이런 미친…….”

장인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한순간 눈이 멀 것 같은 빛이 사라지자, 멀쩡하던 산이 어느새 반으로 쪼개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신의 기적과도 같은 광경에 넋이 나간 것도 잠시, 윤수호는 천호진과 장인들에게 자신이 한 번 휘둘렀던 검을 보여 주었다.

장인들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했다는 검조차 그가 갈라 버린 산처럼 반으로 쪼개진 상태였다.

“장식용으로 주신 검이라면 검을 지키며 싸울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제게 이 검을 선물하신 목적이 제가 믿고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검이라면, 아쉽게도 이건 힘들 것 같습니다.”

“세상에…… 설마 검이 위원장님의 힘을 버티지 못한 겁니까?”

“장인분들께는 정말로 죄송합니다. 기껏 고생해서 만들어 주신 무기를 이렇게 만들어 버려서…….”

윤수호가 고개 숙여 사과하자 장인들이 기겁하며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닙니다! 오히려 저희가 죄송하지요. 부끄럽게도 이 검을 완성하고 나서 위원장님께 어울리는 검을 제조했다고 내심 뿌듯해하고 있었거든요.”

농담이 아니라, 윤수호가 지금 부러트린 이 검의 성능 테스트는 상상을 초월했다.

평범한 알터가 사용해도 10cm 두께의 티타늄을 두부처럼 자를 수 있고, 수십 톤 압력의 프레스로 몇 번이나 충격을 가해도 깨지거나 구부러지기는커녕 흠집조차 나지 않았던 것이다.

당연히 장인들이 뿌듯해할 만도 했지만, 처참히 드러난 결과에 그들은 부끄러움과 경이로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부끄럽지만 되레 저희는 사실 뿌듯한 심정입니다. 그만한 검조차 그 능력을 전부 담아 내지 못하는 분께서 우리나라와 우리 가족을 지켜 주신다는 사실에 조금 감격하고 있었거든요.”

“맞습니다. 검성이라 칭송받는 영국의 톱 텐도 이런 일은 불가능할 테니까요.”

장인들은 자신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걸작이 부서졌는데도 실망하긴커녕 기뻐하며 윤수호에 대한 존경심이 더욱 상승하였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이내 아쉬움으로 물들었다.

“그런데 이를 어쩌죠? 현재의 기술력과 저희가 가공할 수 있는 소재로는 저 정도의 검이 한계라서 말입니다.”

“음……. 그건 좀 문제가 되는군요. 다른 방법이 없겠습니까?”

연구소장의 걱정에 천호진까지 표정이 무거워졌다.

윤수호에게 줄 선물이 있다고 자신 있게 여기까지 데려왔는데, 이런 결말로 끝나 버린다면 조금 창피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이 검은 제가 쓰러트린 8급 종의 껍질을 소재로 사용했다고 하셨죠?”

“아, 예! 그렇습니다만…….”

“혹시 이게 가장 단단한 소재였습니까?”

“그게…….”

윤수호의 질문에 연구소장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저희도 처음에는 껍질이 가장 단단한 소재인 줄 알았는데, 정밀 분석을 해 보니 재앙종에서 가장 단단한 소재는 따로 있더군요.”

“그게 뭐죠?”

“뼈입니다. 뼈의 내구도와 강도, 경도는 껍질의 수십 배를 자랑하더군요. 특히 그중에서도 최근 연구를 마친 갈비뼈는, 그 이전에 뼈 중에서도 최고 강도라고 알려진 다리뼈의 몇 배나 되는 내구력을 가진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하아! 사실 그것 때문에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재앙종의 갈비뼈 얘기가 나오자 천호진이 결국 참았던 한숨을 터트렸다.

“고민요?”

“예, 재앙종의 핵은 특수한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보통 심장 옆, 가슴에 있는 게 대부분이거든요. 이번 경우도 그렇고요. 문제는 갈비뼈가 워낙 단단하다 보니, 팀장들의 오러는 물론이고, 치우팀의 오러조차 씨알도 먹히지 않습니다. 덕분에 핵 회수에도 난항을 겪는 중이지요.”

“…….”

해체팀은 요새 초상집 분위기다.

그들이 재앙종의 사체를 해체해서 핵과 재료들을 회수해야 필요한 무구들을 생산할 텐데, 해체부터 막히다 보니 모든 작업이 전부 중단된 것이다.

그렇다 보니 현재는 수십조의 가치를 가진 8급 재앙종의 핵조차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생각을 마친 윤수호는 천호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럼 제가 한번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가서 도울 일이 있으면 돕도록 하죠.”

“위원장님께서요?”

“예.”

결정을 내리자마자 윤수호는 가족들에게 연락을 남긴 뒤, 곧장 하흥시로 향했다.

* * *

“단결! 위원장님 오셨습니까.”

“수고 많으십니다.”

해수욕장이 사라지고 대신 생겨난 섬 근처에는 차들이 바글바글했다. 특히 대포 카메라나 전문 촬영 장비까지 갖추고 찾아온 사람들도 매우 많았다.

“뭡니까, 저 사람들은……?”

윤수호가 대원이 아닌 사람들에 대해 현장 책임자인 장준우 대령에게 물었다. 아무리 봐도 현지인처럼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에 장준우가 난처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그게…… 관광객들입니다.”

“관광객요?”

“예, 어디서부터 소문이 퍼진 건지, 여기에 8급 재앙종의 사체가 있다는 정보가 퍼지자마자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주변 통제는 철저히 하고 있지만, 통제선 근처에서 구경하는 건 저희가 막을 권한이 없어서…….”

“…….”

장준우의 대답에 윤수호는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연구가 끝나지 않은 재앙종의 사체는 그 자체로 위험 요소가 가득했다. 특히 핵이 제거되지 않은 재앙종의 사체는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그 사실을 모를 사람들이 아닌데, 이런 식으로 꾸역꾸역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여전한 것이다.

“현재 통제선은 어디까지죠?”

“현장을 중심으로 반경 2km까지입니다.”

“지금부터 현장 통제선을 사체를 중심으로 반경 10km로 설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예? 하지만 그건 법률상 불가능한…….”

“제가 책임집니다. 지시에 불응하는 자들은 전원 체포해도 좋습니다.”

“단결!”

윤수호의 단호한 지시에 장준우는 칼같이 거수경례를 올리더니 특무대 대원들과 군인들을 동원하여 곧바로 명령을 이행하기 시작했다.

“아, 이거 놔요! 특무대면 다야? 이거, 국민의 알 권리 침해야! 자유권 침해라고!”

“알겠으니까 통제선 밖으로 물러납니다. 더 이상 저항하시면 군 통제 지시 불이행으로 은팔찌 예쁘게 채워 드립니다.”

일반 관광객들은 순순히 물러나는 편이었지만, 이익을 목적으로 개인 방송을 촬영하러 온 BJ들이나 방송국들 사람들은 당연히 거세게 저항하며 항의했다.

철컥!

“말했잖습니까. 계속 반항하면 은팔찌 예쁘게 채워 드린다고.”

하지만 그런 사람들조차 정말 눈앞에서 수갑을 차고 체포당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결국 백기를 들고 물러서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불안 요소이자 골칫거리였던 관광객들이 싹 다 정리되자, 장준우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깊게 내쉴 수 있었다.

“어휴! 진짜 저 관광객들 때문에 징글징글했는데……. 위원장님께서 오시니까 한 번에 정리가 되는군요.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사체를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채집하고 싶은 소재가 있어서요.”

“그야 당연한 말씀을! 애초에 이 녀석을 쓰러트리신 분이 위원장님 아니십니까? 마음껏 살펴보시다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배려 감사드립니다.”

윤수호는 특무대 대원들의 존경과 선망이 가득 담긴 경례를 받으며 재앙종의 사체로 향했다.

그들은 이곳에서 직접 재앙종의 사체를 연구하고 분석하는 대원들이기에, 이 괴물을 혼자서 사냥한 윤수호에 대해서 아무래도 남들보다 존경심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런 걸 설치해 놨을 줄이야…….’

입구에 선 윤수호는 살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재앙종의 내부로 통하는 유일한 입구인 재앙종의 아가리는 크레이터의 아래, 즉, 바닷속에 잠겨 있었다. 그래서 특무대는 물 밖에서 직통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와 전등을 설치해 둔 것이었다.

통로를 통해서 재앙종의 안으로 들어가자, 재앙종의 체온은 차게 식었지만 대신 역한 냄새와 비릿한 냄새가 섞여 오묘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도착한 모양이군.’

윤수호는 자신이 쓰러트린 8급 재앙종의 핵을 처음으로 보았다.

일단 먼저 든 생각은 크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어지간히 큰 게 아니라 정말 오지게 컸다. 어지간한 집 한 채는 꿀꺽 삼켜도 충분할 정도로 핵의 크기는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윤수호의 목적은 바로 그 핵을 갑옷처럼 감싸고 있는 갈비뼈였다.

톡톡.

‘단단하군. 이건 평범한 강기로는 어림도 없겠어.’

갈비뼈를 가볍게 두들겨 확인한 윤수호는 검결지가 아니라 수도를 들어 올렸다.

“스읍…… 후우…….”

그리고 조심스럽게 내공을 운용하여 손에 강기를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강기가 평소 보았던 것과 사뭇 달라 보였다.

윤수호의 눈에도 신중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것은 지금 자신이 사용하는 강기가 다름 아닌 천부강기(天夫剛氣)였기 때문이다.

천부강기는 그가 익힌 선술(仙術), 천부공에서도 극의를 깨우친 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매우 위력적이고 위험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까딱 잘못했다간 윤수호 자신의 손이 날아가 버릴 위험이 있기에, 이 녀석과의 전투 중에도 이 힘을 사용하지 못했다. 이 힘을 맨손으로 다룰 때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도 모자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위력은 확실했다.

스윽, 스윽…….

천부강기가 스쳐 지나갈 때마다 놀랍게도 갈비뼈가 매끄럽게 잘려 나가며 그가 원하는 형태로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완성된 무기는 한 자루의 검(劍)이었다.

길이는 손잡이부터 검극까지 120cm에 폭은 4cm. 손잡이에서 검신으로 이어지는 매끄러운 라인,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한 순백의 검은 그야말로 무기가 아니라 예술품에 더 가까운 검이었다.

완성된 검을 가지고 밖으로 나온 윤수호는 만에 하나의 상황을 대비해서 장준우에게 부탁해 특무대 대원들을 멀리 대피시켰다.

“군까지 대피시키라는 말씀이십니까?”

“예, 조금 시험해 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원들이 서둘러 대피를 마치자, 죽은 재앙종의 사체 앞에 선 그는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

스핏.

그러자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쿠구구구구구궁……!

공간에 하얀 실선이 검의 궤적을 따라 생겨났다가 사라지면서, 실선에 걸려 있던 재앙종의 사체가 반으로 쪼개진 것이다.

반으로 쪼개진 사체가 바닷속으로 침몰하는 모습은, 마치 섬이 쪼개져 침몰하는 것 같은 엄청난 박력이었다.

“이런 미친!”

“세상에……!”

그 광경을 멀리서 전자 망원경으로 지켜보던 특무대 대원들은 윤수호의 행동과 드러난 결과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정말로 놀랄 일은 지금부터였다.

피피피피핏.

수많은 실선이 허공에 얽히고설킨 순간, 실선이 사라지면서 반으로 쪼개졌던 재앙종의 사체가 적당한 크기로 분해되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 와중에도 핵은 일절 건드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세한 충격에도 자칫 큰 폭발로 이어질 수 있었기에, 윤수호는 재앙종의 핵을 분리하자마자 허공섭물로 당겨 허공에 둥둥 띄웠다.

할 일을 모두 마친 윤수호는 작업을 마치고도 멀쩡한 순백의 검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렸다.

‘이 정도면 당분간은 쓸 만하겠군.’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