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다음 날.
비사 그룹이 무너지고 그 실체가 세상에 드러나자 대한민국이 들썩였다.
윤수호가 은지한과 함께 비사 그룹의 핵심 전력들을 쓸어버린 뒤, 이 사실을 천호진에게 알리자 천호진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지금 당장 운용 가능한 정보팀, 정찰팀, 조사팀, 대태러팀 인력을 전부 동원해서 비사 그룹을 수색해. 놈들이 꼬리를 말고 도망치기 전에 놈들을 전부 잡아들인다!”
천호진의 빠른 결단과 신속한 움직임 덕분에, 비사 길드는 검은 장부와 문서들을 처분하기 전에 특무대에게 모든 자료를 압수당했다.
그 덕분에 비사 길드에서 대기업의 탈을 쓰고 행하던 모든 부정부패와 악행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특히 고아나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 가출 청소년 등을 모아 살인 병기로 만들어 버린 그들의 악독한 행위에 대해서는 국민조차 분개를 금할 수가 없었다.
한편 전 국민이 비사 길드의 악행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과 다르게, 전혀 다른 일에 집중하고 긴장한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은지연과 은지한 남매였다.
“후우, 후우……. 왜 이렇게 긴장되지? 청심환 한 알 더 먹어야 하나? 넌 안 떨려?”
“딱히?”
태연한 척 무심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것과 다르게 실시간으로 떨고 있는 동생의 다리를 발견한 은지연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하여간 구라는…….”
“그렇게 긴장되니?”
잔뜩 긴장한 자식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윤수아는 따스하게 미소를 그리며 두 아이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괜찮아. 두 분 다 자상하고 멋진 분들이시니까. 분명 우리 지연이랑 지한이도 환영해 주실 거야.”
엄마의 조언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긴장되는 마음은 감출 수 없었다. 윤수아는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 공감하며 가슴 한편이 아릿하게 아파 오는 것을 느꼈다.
아이들도 안다. 자신들이 축복받은 가정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는 사실을…….
그런 자신들을 과연 할아버지 할머니가 반갑게 맞아 주실까? 환영해 주실까? 자신들을 손주로 인정해 주실까?
이런 생각을 하면 자신감이 떨어지고 의기소침해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윤수호는 이런 부분에 대해 아무런 조언도 해 줄 수가 없었다.
‘어차피 만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지.’
그렇게 차는 윤수호의 부모님이 입원해 계신 특무대 부속 병원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자 그럼 들어간다.”
“자, 잠깐만. 엄마! 나, 아직 준비가……!”
똑똑똑.
“들어오세요.”
부모님의 병실에 도착한 윤수아는 딸의 만류에도 주저 없이 노크했고, 안에서 허락이 떨어지자 그녀는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너희는…….”
문이 열리고, 처음으로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난 은지연, 은지한 남매가 돌처럼 굳어 어색함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쭈뼛거렸다.
그와 동시에 마음속을 휘몰아치는 수많은 걱정이 불시에 떠올랐다.
‘만약 여기서 꼴도 보기 싫다고 내치신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이대로 엄마랑 헤어져야 하는 건…….’
다시 엄마와 헤어지는 건 죽기보다 싫은 남매였기에, 만약 그렇게 된다면 손이 발이 되도록 할아버지 할머니께 빌어야겠다고 다짐하던 그 순간!
“아이고, 내 새끼들! 우리 강아지들 왔구나! 애들 밥은? 밥은 먹였어?”
“아직…… 오면 같이 먹으려고 했거든.”
“어휴! 같이 밥 먹는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애들 배고프면 먼저 먹으면 되지. 수호야, 가서 외출증 좀 끊어 줄래? 나가서 애들 밥이라도 든든하게 먹여야겠다.”
“네, 그럼 잠시만 기다리고 계세요.”
윤수호가 외출증을 끊기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뒤에서 지켜보던 윤지석이 안절부절못하다가 결국 헛기침을 하면서 아내에게 주의를 주었다.
“크흠! 거참,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생각이에요.”
“아 참, 내 정신 좀 보게. 미안하다, 아가들. 많이 답답했지?”
“아, 아니요! 저흰 괜찮……!”
와락!
그렇게 오혜연이 아이들을 놓아주기 무섭게, 기회만 엿보고 있던 윤지석이 냉큼 아이들을 끌어안았다.
그 모습에 어이가 없었던지 오혜연은 기가 찬다는 표정을 지었고, 윤수아는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애들 답답해서 놔주라는 소리 아니었어요?”
“그, 그거야 당신이 하도 애들을 안 놔주니까……. 나도 우리 손주들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다고요. 크흠!”
조부모님의 과격한 애정 표현에 방금까지 했던 걱정은 씻은 듯이 사라졌고, 지금은 그저 당황스러움만 남은 두 사람.
“저, 저기…… 할아버지, 할머니…….”
“응? 왜 아가? 이제 그만 애들 좀 놔줘요. 눈치 없이.”
“그, 그럴까?”
아내의 타박에 윤지석이 아쉬움을 뒤로하고 물러섰다.
그러자 오혜연이 자상한 표정으로 은지연에게 물었다.
“왜 그러니, 아가? 무슨 할 얘기가 있니?”
“그게…… 두 분은 저희가 안 미우세요?”
“뭐?”
예상치 못한 질문에 윤지석과 오혜연이 깜짝 놀라며 두 아이를 쳐다보았다.
은지연은 울음을 가까스로 참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고, 함께 있는 은지한도 어두운 얼굴을 하고서 두 사람의 눈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에 오혜연이 침착하고 따뜻한 목소리로 은지연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했니, 아가?”
“그야 저희는 엄마가 제대로 결혼해서 낳은 아이들도 아니고…… 아빠란 사람도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었고…… 저희 둘 때문에 항상 엄마만 힘들었는데……. 그래서 당연히 두 분께서는 저희를 미워할 거라고…….”
꼬옥.
오혜연은 끝내 눈물을 흘리며 대답하는 손녀를 애틋하게 바라보다 소중히 안아 주었다.
“어째서 그런 걸로 할머니가 우리 강아지들을 미워할 거라고 생각했을까? 너희는 내 딸이 배 아파 낳은 소중한 아이들이고, 네 엄마는 너희가 있어 행복했다고 입이 닳도록 얘기했단다. 그렇게 고맙고 소중한 너희가 이렇게 고생하는 줄도 몰랐던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히려 미안하지.”
“……!”
“이렇게 무사히 돌아와 줘서 고맙다. 너희는 누가 뭐래도 소중한 우리 손주들이고, 내 딸의 아이들이고, 우리 가족이란다. 그러니까 다시는 그런 소리 하지 마렴. 알았지?”
“으아앙!”
결국 은지연은 할머니의 품속에 얼굴을 파묻고 마음껏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은지한은 할머니를 한 번 쳐다보더니 시선을 돌려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할아버지는 미소를 그리며 자신을 향해 두 팔을 벌려 주었다.
그에 은지한은 저도 모르게 다가가 할아버지의 품에 안겼다. 다시 안긴 할아버지의 품은 너무나도 포근하고 아늑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역시 걱정할 필요가 없었군.’
한편 외출증을 받아 온 윤수호는 진정한 의미로 가족이 된 아이들과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기분 좋은 미소를 그렸다.
* * *
“이것 참, 정말로 오랜만에 뵙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는 마지막으로 만난 게 일주일도 되지 않았는데 몇 달은 지난 것 같으니…….”
“서로 바쁜 일이 많았으니까요.”
“바쁘긴 해도 행복한 나날들이었지요. 하하하!”
윤수호는 천호진의 연락을 받고 특무대 총사령부를 찾아온 상황이었다.
천호진은 본론에 앞서 윤수호의 앞에 녹차를 내려놓으며 자리에 앉았다.
“비사 길드는 어떻게 됐습니까? 후처리가 만만치 않다고 들었습니다만…….”
“아 그거요? 전혀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위원장님 덕분에 적의 핵심 전력은 괴멸했고, 그런 상황에서 뒤처리조차 못 한다면 특무대는 간판 내리고 해체해야죠. 잔당은 전부 검거 완료했고, 간부들이 숨겨 두었던 비자금과 유령 회사에 박아 둔 세탁 자금도 모두 국고로 회수하는 중입니다.”
천호진은 커피로 목을 축인 후에 말을 이었다.
“기업 자체는 정부에서 전문 경영인을 임명하여 경제적인 타격도 최소한으로 줄였습니다. 지금 하는 일은 비사 길드와 관련된 정·재계의 인사들을 수색하는 중인데…….”
“보아하니 당장 그들을 잡아들일 생각은 없으시군요.”
“역시 위원장님이십니다.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잡아 처넣는 것보다, 그들에게 목줄을 채워 우리에게 유용하게 써먹는 게 더 낫겠더군요. 어차피 그놈들을 치워봤자, 똑같은 똥 덩어리가 그 자리를 채울 게 뻔하니까요.”
천호진의 대답에 윤수호는 미소를 머금었다.
그에 천호진이 의문이 섞인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제가 무슨 실수라도…….”
“아뇨, 그저 총사령관님은 정치를 하셔도 잘하셨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어휴!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진짜 정·재계 능구렁이들에 비하면 저는 아직 햇병아리 수준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그런 능구렁이들조차 절로 입을 다물게 만드는 위원장님이야말로 진짜 능력자이시지요. 혹시 저번 청문회 보셨습니까?”
“아뇨, 제가 최근에 좀 바쁜 일이 많아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별거 아니었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능구렁이 놈들이 위원장님이 일하는 방식을 과격 진압이니 뭐니 트집 잡기에 제가 한마디 해 줬지요. 크흠! 그래서 어쩌라는 말입니까? 위원장님을 국외 추방이라도 할까요? 그분의 빈자리를 당신들이 감당할 수 있습니까?”
마치 배우처럼 당시 상황을 재현하는 천호진의 연기가 제법 그럴듯하고 생동감 넘쳤다.
“이 한마디에 날고 긴다는 국회의원 놈들이 벙어리가 되더군요. 위원장님이라는 존재가 이 나라에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그자들도 아는 거지요. 그 모습이 어찌나 통쾌하던지!”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천호진의 모습에 윤수호가 미소를 머금었다.
“그간 그 사람들에게 당하신 게 많은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이런 세상에서 이런 단체의 장을 맡다 보니 권력을 뜯어먹기 위해서, 혹은 견제하기 위해서 쓸데없이 달려드는 무리가 많을 수밖에 없지요. 문제는 그자들의 안중에 국민이 없다는 거지만요.”
천호진은 다시 한번 커피로 목을 축인 뒤에 윤수호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 참, 축하가 늦었습니다! 조카분들을 무사히 구출 하셨다지요?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가족이 전부 모였으니 위원장님이 진심으로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너무 많은 일이 있었고, 너무 많은 아픔을 겪지 않으셨습니까.”
“노력할 겁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최선을 다해서…….”
윤수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천호진의 축하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 주었다.
“크흠! 그리고 오늘 위원장님을 모신 이유는, 그동안 진행된 업무 보고와 사담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가 따로 있습니다.”
“중요한 이유요?”
“자그마한 선물이라고나 할까요? 백문이 불여일견! 따라오시죠. 보여 드릴 것이 있습니다.”
윤수호가 천호진과 함께 차를 타고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무기 개발 공장이었다.
“이곳은 재앙종의 사체를 이용해 특무대의 무기와 방어구를 개발 및 제조하는 공장입니다. 재앙종의 사체는 오러 흡수율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에 가공에 따라 훌륭한 무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군요. 그럼 대원들이 착용하는 슈트도…….”
“물론 재앙종의 가죽을 이용해서 만든 제품들입니다. 그 밖에도 실생활이나 비즈니스에 활용할 수 있는 가치를 가진 상품들을 개발하는 것 역시 이곳의 목적이기도 하지요. 자, 여기입니다.”
천호진이 윤수호를 이곳으로 안내한 이유가 눈앞에 드러났다.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