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으아앙!”
“엄마!”
“그래그래, 엄마 여기 있어. 지한아, 지연아. 엄마 여기 있어.”
엄마와 아이들이 주저앉아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감동의 상봉을 나누는 사이,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윤수호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곳은 은지한과 함께 온 비사 길드의 무리가 대기하고 있는 곳이었다.
슉.
가족들의 상봉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조용히 사라진 윤수호의 신형이 다시 나타난 곳은 그들의 눈앞이었다.
“갑자기 뭐야?”
“모, 몬스터……!”
촤악!
윤수호의 접근을 눈치채지 못한 그들은, 그가 눈앞에 나타나자 당연히 눈을 부릅뜨며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서둘러 무기를 꺼내 들며 대항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들이 대항하건 투항하건, 그들의 운명은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촤악! 서걱, 스악…… 스핏!
윤수호가 검결지를 휘두를 때마다 사람들의 신체가 장난감 찰흙처럼 잘려 나갔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은 장난이 아니었다. 잘려 나간 몸뚱이에서 흘러나오는 내장들도, 끊어진 근육과 흩뿌려지는 뜨거운 핏물 역시 모두 진짜였다.
“으아아아! 죽어!”
서걱!
결국 정신이 반쯤 나간 생존자들이 필사적으로 대항했지만. 그런 녀석들은 사지가 전부 잘려 나간 뒤에 마지막으로 목이 잘려 처참하게 죽어 갈 뿐이었다.
그렇게 대기 중이던 모든 비사 길드의 빌런들이 죽임을 당하고,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은 무전기를 들고 있던 서정완뿐이었다.
윤수호는 서정완 앞에 멈춰 서더니, 무심한 눈빛으로 그가 들고 있는 무전기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아직도 그걸 쓸 마음이 없는 건가?”
“쓰면 뭐가 달라지나?”
“처음부터 쓸 마음이 없었군.”
윤수호의 정확한 추측에 서정완은 무전기를 뒤로 휙 던져 버리고는 씨익 웃으며 대꾸했다.
“그냥…… 변덕이우. 왜, 가끔 사람이 그럴 때가 있잖수. 오늘 내가 그런 날이었나 보네.”
윤수호는 그의 눈빛을 직시하였다.
이미 그의 눈은 삶은 완전히 포기한 인간의 눈빛이었다.
자신을 마주해서가 아니었다. 이미 텅 빈 그의 눈빛은 하루 이틀만으로 보일 수 있는 눈이 아니었으니까.
“……하고 싶은 말은 그게 끝인가?”
“꼬맹이를 지켜 주는 걸 봤수다. 무슨 목적으로 그러는 건진 모르겠지만, 잘해 줘요. 엄청 불쌍한 녀석이거든.”
“네 부탁이 아니더라도 그럴 생각이었다.”
“아, 참! 한 가지만 더 부탁합시다. 아프지 않게 보내 주쇼. 아픈 건 딱 질색이거든.”
서걱!
윤수호는 고개를 끄덕인 후에 손가락을 횡으로 그었다. 그러자 서정완의 목이 몸통과 분리되어 허공을 유영했다.
‘이렇게 끝나는 것도 나쁘진 않네.’
고통 없이 목이 날아간 탓에 아직 의식이 남아 있던 서정완의 두 눈에 밤하늘이 들어왔다.
‘죽어도 애 엄마랑 주환이는 만날 수 없겠지?’
자신은 지옥에 떨어지겠지만 상관없다. 그래도 가족과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가게 될 테니까.
툭.
땅에 떨어진 서정완의 눈이 감겼다. 그런데 죽은 그의 얼굴은 어째서인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아주 슬픈 미소를…….
잠시 후.
짧은 해후를 마친 은지한이 현장으로 달려왔다.
현장은 이미 출동한 특무대 대원들이 수습하고 있었는데, 그중에서 서정완의 시신을 발견하자 은지한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저자와 아는 사이였니?”
어느새 그의 곁으로 다가온 윤수호가 서정완에 관해 묻자, 은지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 감시역을 담당하던 아저씨였어요. 그래서 자주 붙어 다녔죠. 딱히 친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밉지 않은 아저씨였어요.”
“마지막까지 네 걱정을 하더구나.”
“아마 죽은 아저씨의 아들 때문일 거예요. 딱 한 번, 아저씨의 펜던트를 우연히 본 적이 있는데, 그때 지나가듯이 얘기해 준 적이 있거든요. 아내와 아이가 있었다고, 그런데 당시 경쟁 길드의 빌런들 때문에 가족들을 잃게 됐다고. 그 아들이 저랑 비슷한 또래였다고 하더군요.”
윤수호는 은지한의 얘기를 듣고도 서정완에게 아무런 동정심도 들지 않았다.
어쨌거나 서정완이 자식과 같은 또래의 은지한을 감시하며 그를 구속했던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은지한은 달랐다. 그가 서정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느끼는지는 그의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그자를 죽인 나를 원망하니?”
윤수호가 넌지시 묻자, 은지한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저씨는 항상 죽고 싶어 했어요. 매사에 의욕도 없고……. 어쩌면 그래서 길드가 제 감시역을 맡긴 걸지도 모르죠. 죽는 걸 두려워하지도 않고 쓸모도 없지만, 어쨌거나 길드에 대한 충성심은 남아 있었으니까.”
은지한은 죽은 서정완을 향해 조용히 묵념했다.
그 지옥 같은 곳에서 유일하게 바늘구멍만큼이라도 마음을 터놓을 수 있었던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감시하던 서정완뿐이었기 때문이다.
묵념을 마친 은지한은 윤수호를 쳐다보며 나직하게 물었다.
“그런데 누나를 감금하고 저를 이용하던 길드가 어디였나요?”
“비사 길드라는 곳이다.”
“복수하러 가겠다고 하면 말리실 건가요, 삼촌?”
삼촌이라는 말에 피식 웃으며 윤수호는 담담하게 고개를 저었다.
“지금부터 네 인생은 네가 선택해라. 나는 그저 그 선택을 존중하고 도와줄 뿐이다. 물론 옳지 않은 일이라면 당연히 말리겠지만.”
“그럼 복수는 옳지 않은 일이 아닌 건가요?”
은지한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윤수호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히 옳지 않은 일이지. 그러니까 네 엄마한테는 비밀이다.”
비밀이라고 말하는 것 치고는 너무나도 당당한 윤수호의 대답에, 은지한은 그만 할 말을 잃고 피식 웃을 뿐이었다.
“그럼 언제 출발할까요?”
“지금.”
* * *
부아앙! 부앙!
격렬한 배기 음을 터트리며 바이크 한 대가 시원하게 도로를 질주했다.
바이크가 도착한 곳은 서울 도심지에서도 눈에 띄게 거대한 빌딩 앞. 바로 BS 그룹의 본 건물 앞이었다.
BS 그룹의 사회적인 위세는 어마어마했다.
정·재계 고위 인사 중에서 연이 닿지 않은 사람이 없었고, 매스컴과 미디어 장악력도 뛰어나서 이미지 세탁도 꾸준히 이어온 굴지의 대기업이었으니까.
게다가 경제력으로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 역시 어마어마해서, 특무대도 BS 그룹의 실체를 알고 있었지만 이들을 체포하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실질적으로 네가 이 빌딩을 세운 셈이네?”
“에이, 삼촌도! 설마하니 이 빌딩만 세웠겠어요?”
바이크에서 내린 윤수호와 은지한은 비사 건물의 본사를 올려다보면서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럼 그동안 쌓인 원한에 밀린 이자까지 쳐서 받으러 가 볼까?”
“좋죠.”
두 사람은 성큼성큼 본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본사 입구에 도착하자 윤수호는 가볍게 발을 굴렀다.
쩌엉!
쿠구구구구구구구궁!
그가 오른발을 들어 가볍게 진각을 밟자, 파생된 충격파가 주변 일대와 빌딩을 크게 뒤흔들었다.
“꺄아악!”
“무, 무슨 일이야?”
“지진이다!”
당연히 지진이 난 줄 알았던 빌딩 직원들은 머리를 가리며 건물 밖으로 뛰쳐나오기 시작했고, 빌딩 앞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에 은지한이 놀라서 윤수호를 쳐다보며 물었다.
“지금 뭐 하신 거예요?”
“노크.”
“…….”
쩌엉!
다시 한번 오른발을 들어 올린 윤수호가 이번에도 진각을 밟아 빌딩을 뒤흔들자,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비사 길드의 길드원들이 무장을 마치고 건물 입구로 뛰어나왔다.
“이 정도면 일반인들은 충분히 솎아 낸 것 같고…….”
“저 녀석들은 제가…….”
입구로 몰려든 길드원들을 상대하기 위해 은지한이 나서려고 하자, 윤수호는 손을 뻗어 그를 제지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잔챙이들은 삼촌이 맡을게. 너는 빚을 받아 내야 할 녀석이 따로 있잖아. 안 그래?”
“그러네요.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삼촌.”
“조심해라.”
“네.”
고개를 끄덕인 은지한의 모습이 사라지자, 윤수호가 눈앞에 몰려든 수백 명의 길드원을 쳐다보며 손가락을 가리켰다.
“자, 누가 먼저 올래?”
* * *
그렇게 본사 입구에서 피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을 때, 은밀하게 건물 안으로 진입한 은지한은 현재 길드장이 기다리고 있을 회장실을 향해서 빠르게 이동하는 중이었다.
“너, 뭐야? 뒈지기 싫으면 멈춰!”
“여기는 43층 복도 끝! 침입자가 나타났……!”
촤악! 서걱!
은지한은 일부러 은신을 풀고 위로 올라가는 중이었다. 자신을 발견하고 달려드는 길드원들을 모조리 도륙하기 위해서였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복도를 가득 채운 비능력자 전투원들이 기관총을 난사하며 조금이라도 은지한의 오러를 소모하기 위해 애썼지만 소용없었다.
검은 운무 같은 오러를 로브처럼 휘감고 달려 나가자, 오러에 충돌한 총알들이 마치 블랙홀에 빨려든 것처럼 소리 없이 삼켜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번 접근하고 나면 상황은 끝.
은지한의 단검이 붉은빛을 뿌리면 전투원들의 목숨도 함께 사라질 뿐이었다.
“길드장님! 큰일 났습니다! 지금 침입자들이 본사를 쳐들어왔는데, 한 명은 몬스터로 추정되는 괴물이고 다른 한 명은 리퍼입니다!”
“뭐? 그게 무슨 개 같은 소리야? 누가 쳐들어왔다고?”
한편, 이 사실을 보고받은 길드장 구중택은 지금의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죽이라고 보낸 놈이랑 그놈 손에 죽을 놈이 왜 같이 오는 건데? 보고는? 서정완한테 연락은 없었나?”
“전부 당한 것 같습니다! 지금 이러실 때가 아닙니다! 서둘러 피하셔야…….”
“어디로 도망치려고?”
“……!”
간부는 뒤에서 들려오는 서늘한 목소리에 몸을 돌림과 동시에 빠르게 발검하여 은지한을 공격했다.
이래 봬도 대형 길드의 간부다. 몸의 회전과 발검에 이은 매끄러운 검격은 그야말로 발군의…….
서걱! 툭…….
하지만 의미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가 검을 미처 뽑기도 전에 달아난 머리가 바닥을 구르고 있었으니까.
“이런 젠장!”
“다 덤벼! 우리 간부들이 쪽수로 밀어붙이면 아무리 리퍼라고 해도……!”
서걱! 촤악! 스핏! 촤촤촤!
만용의 대가는 처참했다. 실력과 쪽수를 믿고 덤벼들었던 간부들은 전원이 분해되어 차가운 바닥에서 식어 가고 있을 뿐이었다.
“이, 이게 왜……!”
“뭐가 잘 안 되나 봐요?”
그사이 구중택은 열심히 폭탄의 스위치를 누르고 또 눌렀지만 폭탄은 작동하지 않았다. 은지한은 멀쩡한 표정으로 천천히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부탁인데, 쉽게 죽지 마요. 저도 최대한 노력할 테니까.”
“……!”
스핏.
구중택.
비사 길드의 길드장으로 깡과 실력 하나만큼은 누구나 인정하는 인물이었다.
게다가 운도 따라줬는지 리퍼라는 최강의 암살자를 손에 넣은 그의 앞길은 탄탄대로였다. 장밋빛 미래만 펼쳐질 것이라 본인 스스로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한데 그 찬란한 미래가 핏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목이 쉬어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데, 더 이상 느낄 수 있는 고통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비명 대신 피를 토하며 더 끔찍한 고통이 새롭게 찾아왔다.
구중택을 해체하는 은지한의 눈빛은 무심함 그 자체였다.
그렇게 훈련을 받았으니까. 구중택 스스로가 인정한 최강의 살인병기였으니까.
그렇게 구중택은 자신의 손으로 만든 최강의 살인 병기의 손에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