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돌아왔다-33화 (33/175)

33.

“뭐? 누굴 뺏겼다고?”

“그게…… 리퍼의 누나를…….”

퍽!

비사 길드의 길드장 구중택은 부하의 보고를 듣고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다시 돌아온 부하의 대답에 이성의 끈은 끊어졌다. 다시 정신을 차려 보니 보고를 올렸던 부하는 자신의 발에 밟혀 목숨을 잃은 상황이었다.

“으아아아아! 이런 개병신 같은 새끼들! 일을 이딴 식으로 처리하면 어쩌자는 거야! 어? 도대체 그 새끼들이 거길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냐고!”

쾅!

그러나 부하의 목숨을 빼앗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그는 죽은 부하의 시신을 발로 힘껏 후려 찼고, 시신이 부서지면서 피와 내장, 뼛조각 등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후두둑, 후둑!

“죄송합니다. 놈들의 행동이 생각 이상으로 빨라서 미처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와 동맹이거나 산하에 있던 길드 대부분이 불과 하룻밤 만에 전멸했습니다. 특무대 전력이 나서지 않는 이상 이런 일을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기에…….”

뜨겁고 기분 나쁜 시신 파편과 핏물을 뒤집어썼음에도, 집결해 있던 간부들은 싫은 내색 한번 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조아릴 뿐이었다.

그만큼 구중택의 기분이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그놈의 변명! 변명! 누가 그딴 변명이나 듣고 싶다 했나? 그깟 계집애 하나 간수를 못 해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은지연, 그년의 감시 책임자가 누구야?”

“박훈이었습니다. 저희가 현장에 도착했을 땐, 그는 침입자에게 당해 죽은 상태였고요.”

“리퍼와의 정기 연락은?”

“이미 세 시간이 지났습니다. 예상대로 리퍼는 모든 임무를 거부하고 움직이지 않는 상황입니다.”

간부들의 보고에 구중택의 심기가 매우 불편해졌다.

리퍼 덕분에 자신이 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통제되지 않는 날카로운 칼은 불안 요소일 뿐이다.

그리고 그 불안은 이내 현실이 되었다.

“범인은? 설마 흔적도 못 찾았으면서 내 앞에 얼굴들 들이밀고 있는 건 아니겠지?”

“걱정 마십쇼. 감시 카메라 영상을 확보했습니다. 확인해 보시죠.”

간부 중 한 명이 현장에서 입수한 CCTV의 영상을 재생하였다. 그러자 기지에 침입한 이후부터 윤수호의 모습과 행적이 고스란히 영상에 나타났다.

특히 윤수호가 박훈을 고문하는 장면은 잔인함에 이골이 난 간부들조차 구역질할 만큼 잔인함의 정도가 지나쳐 보였다.

영상은 윤수호가 잠든 은지연을 안아 들고 아지트를 빠져나가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녀석의 목적지는?”

“침입자들이 타고 온 차량이 완파되는 바람에 저희가 가지고 있던 차량을 사용한 것 같습니다. 우리 쪽 차량은 전부 길드에서 GPS 역탐지가 가능한 만큼, 곧바로 놈들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간부들의 보고에 구중택은 고심하다 결정을 내렸다.

“이 영상을 리퍼에게 보내. 그리고 녀석에게 마지막 임무를 하달한다. 자신의 누나가 저런 잔인한 새끼한테 납치당했다는 사실을 알면 그놈 성격에 눈이 뒤집혀 달려들겠지. 내가 보기에 계집애를 납치한 저 친구…… 십중팔구 ‘몬스터’가 확실하거든.”

“몬스터라면……!”

간부들이 놀람을 금치 못했다.

비사 길드처럼 정보력에 뛰어난 대형 길드들은 최근 특무대에 미지의 전력이 가담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만 그 전력의 정체까지는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

서의찬의 혈창이나, 그 밖에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길드들이 그의 손에 무너졌다는 사실은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길드들은 특무대에 가담한 미지의 전력을 임의로 ‘몬스터’라 부르고 있었다.

구중택은 살기 가득한 미소를 그렸다.

“몬스터와 리퍼의 전투라……. 직접 관전하지 못하는 게 아쉬울 따름이군. 그래도 뭐, 사신의 최후를 장식하기에 그만한 상대가 없겠지. 정완아.”

“예, 길드장님.”

구중택이 간부의 이름을 부르자, 한 사내가 앞으로 나서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그 남자의 모습이 어딘가 익숙했다. 그는 다름 아닌, 은지한과 항상 함께 다니는 그의 감시자 중년인이었다.

구중택은 서정완에게 한 가지 명령을 내렸다.

“만약 리퍼가 수상한 행동을 한다 싶으면 그 즉시 내게 보고해라. 그때는 녀석의 심장에 설치된 폭탄을 주저 없이 터트려 버릴 테니까. 알겠나?”

“예, 길드장님.”

“하여간 멍청한 애새끼 같으니. 그깟 혈육 따위 버리면 그만인 것을, 필요도 없는 누이를 지키려고 제 심장에 폭탄까지 달다니…… 뭐, 덕분에 나야 편하게 됐지만.”

은지한을 비웃는 구중택 앞에서 고개 숙여 대답하는 서정완의 표정이 어쩐지 무거워 보였다.

* * *

“으음…….”

옅은 신음을 흘리며 눈을 뜬 은지연이 처음 본 것은 낯선 방의 천장이었다.

“여긴…….”

그녀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주위를 둘러보았다. 생전 처음 보는 방이었으며, 자신은 침대 위에 누워 있었고 구속은 전혀 되지 않았다.

그때였다.

퉁!

“……!”

둔탁하고 무거운 것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에 깜짝 놀란 은지연이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소리의 정체는 물이 가득 찬 대야가 떨어지면서 난 소리였다. 바닥은 대야에서 흘러나온 물이 주변으로 퍼져 있었고, 함께 떨어진 수건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하지만 은지연의 시선은 곧 대야에서, 그것을 들고 온 사람에게로 향했다.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얼굴……. 너무 고생한 탓에 얼굴이 많이 상했지만 절대로 못 알아볼 수 없는 사람이 눈물을 글썽거리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

“아아……!”

윤수아는 정신을 차린 딸을 보고 얼굴을 가리며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런 엄마의 모습에 은지연도 똑같이 눈시울이 붉어졌다.

“저, 정말 엄마야……? 엄마 맞아?”

윤수아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내가 엄마라고 대답하기에는 아이한테 너무 미안해서,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안아 주고 싶은데 죄책감 때문에 한 발자국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순간.

와락!

놀랍게도 먼저 달려가 안긴 쪽은 은지연이었다. 그녀는 어린아이처럼 엄마를 꼭 끌어안고 펑펑 울며 소리쳤다.

“왜 이제 왔어! 내가 엄마를 얼마나 다렸는지 알아? 죽을 만큼 보고 싶었다고!”

“미안해……. 엄마가 전부 미안해…….”

윤수아는 그래도 자신을 안아 주는 딸을, 이런 자신이라도 엄마라고 불러주는 딸을 꼭 끌어안고서 오열했다.

“엄마가 왜 미안해! 나랑 지한이 지키려고, 더 잘 살게 해 주려고 그런 거잖아. 그러니까 울지 마. 응?”

“엄마가…… 너희를 끝까지 지켰어야 했는데……. 그랬다면 너희가 그런 위험한 일은 안 당했을 텐데……. 엄마가 너무 미안해……. 그리고 무사해서 정말 고마워. 정말 고맙다. 지연아. 어디 아프거나 다친 데는 없지?”

“엄마야말로 왜 이렇게 늙었어……. 손도 엄청 거칠어졌잖아. 혹시 아픈 곳은 없어? 정말 괜찮은 거 맞아?”

오랜만에 상봉한 모녀는 서로의 몸을 누구보다 더 생각하며 걱정했다.

두 사람은 그렇게 한참 동안 서로의 얼굴을 더듬으며 지난날의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 놓았다.

그 와중에 엄마가 잃어버린 오빠와 재회했다는 얘기를 듣자, 은지연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엄마가 전에 얘기했던 우리 외삼촌 말이야?”

“오빠는 너랑 만났다고 얘기하던데. 혹시 기억 안 나?”

“내가 외삼촌을? 그럴 리가…….”

“크흠!”

그때였다. 헛기침과 함께 윤수호가 방 안으로 들어선 것은…….

“아앗! 그때 그 오빠! 날 구해 준 오빠 맞죠?”

윤수호를 목격한 은지연이 깜짝 놀라며 반사적으로 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두 사람의 외견을 고려했을 때, 은지연이 윤수호를 오빠라고 부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다만 옆에 있던 윤수아가 당황하며 쓰게 웃었다.

“널 구해 준 오빠가 바로 엄마 오빠야, 지연아.”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엄마는 이런 상황에서 농담이 나와? 장난치지 말고, 정말 누구냐니까?”

은지연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자, 결국 보다 못한 윤수호가 나서서 조카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그때는 경황이 없어서 인사를 제대로 못 했구나. 반가워. 윤수호라고 한다. 족보를 따지면 내가 네 엄마의 오빠니까 외삼촌이 되려나?”

“지, 지금 저 가지고 장난치시는 거죠? 죄송하지만 그만해 주실래요? 저, 정말 당황스럽고 재미없으니까…….”

“뭐, 대충 이렇게 될 줄은 알았지만…….”

“하아…….”

그 뒤로도 윤수호와 윤수아는 은지연에게 상황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그렇게 여러 증거와 사정을 설명한 후에야, 은지연은 비로소 두 사람이 장난이 아니라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저, 정말 오빠가……. 아니, 삼촌이 엄마가 얘기했던 그 수호 외삼촌이에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실종됐다던?”

“그래, 맞아.”

“아니, 어떻게 실종된 사람이 그런 만화 같은 일을……. 외삼촌도 팔자가 진짜 기구하네요. 혹시 기구한 팔자가 우리 외가 쪽 내력 같은 거 아니에요?”

“뭐, 부정은 못 하겠네. 하하하…….”

윤수호는 씁쓸하게 웃었다.

자신은 물론이고 부모님부터 시작해 여동생과 조카들까지……. 은지연의 말처럼 기구한 팔자가 내력이라 해도 딱히 부정할 수가 없었다.

“와! 근데, 진짜 신기하다. 아무리 봐도 나랑 몇 살 차이 안 나 보이는데…….”

“그래, 엄마만 늙어서 미안하다!”

“근데 왜 날 째려봐? 네가 늙은 게 내 탓은 아닐 텐데?”

윤수아가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며 윤수호를 째려보자, 윤수호가지지 않고 째려보았다.

그 모습에 은지연이 풋, 웃음을 터트렸다.

“이렇게 보니까 정말 남매 맞으시네. 그런데 지한이는 어떡해요, 삼촌?”

“오빠…….”

윤수호는 조카와 동생의 간절한 눈빛에 옅은 미소를 그리며 두 사람을 안심시켰다.

“걱정 마. 지한이도 반드시 구해 낼 테니까. 내 예상이 틀리지 않다면 아마 지한이가 나를 먼저 찾아오겠지.”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지한이가 삼촌을 찾아올 거라고요?”

은지연이 놀라서 묻자 윤수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를 데리고 나올 때, 일부러 흔적들을 어느 정도 남겨 뒀거든. 그쪽에서는 지한이를 서둘러 처리하고 싶어 하고, 나도 나름 그쪽 세상에서는 악명이 자자한지라……. 이럴 때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이 독으로 독을 제거하는 방법이지.”

윤수호는 자신이 길드들 사이에서 ‘몬스터’라는 이명으로 불린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조카들을 찾아다니면서, 박훈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에게 은지한에 대한 정보도 충분히 수집할 수 있었다.

‘잘 들지만 통제가 되지 않는 칼……. 성장 중인 길드라면 피를 감수하고 휘두를 수도 있겠지만, 자리를 잡은 대형 길드라면 오히려 처분을 고민하기에 적당한 시기일 수 있지.’

즉, CCTV의 존재를 알면서도 일부러 눈감아 준 것과, 그들 소유의 차량을 일부러 타고 여기까지 흔적을 남긴 것. 모두 윤수호가 일부러 의도한 계획이란 뜻이었다.

모든 것은 은지한을 자신에게로 유인하기 위해서…….

한편 윤수호의 예상대로 정체를 숨긴 침입자가 이들이 머무는 별장을 향해서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검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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