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시간을 조금 돌려서, 은지연이 감금당한 곳의 위치를 파악한 윤수호 일행은 경기도 개상시 등선구의 한적한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몇 차례에 걸친 재앙종의 출현 때문에 이 도시에 남은 사람의 숫자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기껏 해 봐야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이나 임종을 기다리는 노인이 전부인 도시.
그런데 이런 곳을 일부러 찾아와 거점으로 활용하는 무리가 있었다.
“겉보기에는 그냥 버려진 도시 같은데…….”
이선호가 주변을 훑어보며 감상을 표현하자, 운전대를 잡고 있던 조춘영이 피식 웃으며 설명했다.
“그러니까 영악한 놈들이지. 길드 중에는 사업체로 위장해서 아예 도심지에 자리를 잡은 쥐새끼 놈들도 있지만, 이놈들처럼 버려진 도시에 굴을 파고 숨어 사는 바퀴벌레 같은 놈들도 많거든. 그리고 보통 이런 곳에 숨어 사는 놈들일수록 더럽고 위험한 일을 하는 족속들일 가능성이 크고.”
“요는 위험한 곳이란 뜻이네?”
“원래는 그렇지.”
“원래는 말이지.”
이선호는 피식 웃으며 뒷자리에 앉아 있는 윤수호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는 창가에 턱을 괴고 눈을 감은 채 바람을 즐기던 중이었다.
“형님, 목적지에 도착한 것 같습니다.”
“그런 모양이네.”
“네?”
슈웅!
그 순간, 차의 정면을 향해서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그것은 다름 아닌 RPG의 포탄이었다.
콰앙!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큰 폭발이 일어나고, 사방에서 총알이 폭우처럼 빗발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수류탄도 간간이 날아와 폭발하고, 바주카포도 몇 번이나 날아와 폭음을 더했는지 모른다.
“사격 중지! 사격 중지!”
기습에 성공한 무리의 리더, 김전기가 사격 중지 명령을 내리자 빗발치던 총알이 순식간에 그쳤다.
“그러길래 약속도 없이 이런 위험한 곳에 찾아오면 안 되지.”
“특무대일까요?”
“십중팔구 뻔하지. 여길 어떻게 찾아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로 화력을 쏟아 부어 줬으면 팀장급이라도 오러가 상당히 소모됐을 거다. 오러가 바닥난 특무대야 그냥 싸움 좀 잘하는 특전사에 불과하니까, 모습이 보이면 쫄지 말고 전부 담가 버려. 알겠냐?”
“예! 형님!”
김전기는 씨익 웃으며 먼지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촤촤촤촤촤!
“……!”
“뭐, 뭐야 이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숨어서 총을 쏘던 부하 몇 명이 순식간에 반으로 잘려 나가더니 피와 내장을 뿌리며 죽어 버렸다.
문제는 그게 시작에 불과했다는 것이었다.
촤악! 촤악! 촤악! 촤악!
은폐물 뒤에 숨으면 은폐물과 함께 잘리고, 건물 뒤에 숨으면 건물과 함께 몸뚱이도 반으로 날아갔다.
“대체 무슨 일이야?”
“모, 모르겠습니다!”
“이런 씨발!”
서걱!
당황하고 겁먹은 부하들이 다시 사격을 시작하려던 순간, 그들이 들고 있던 무기와 함께 목이 잘려 떨어졌다.
대충 2/3 이상의 전력이 순식간에 절명했을 무렵, 바람에 의해 먼지구름이 걷히며 그 속에서 윤수호, 이선호, 조춘영이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아이고! 먼지 봐라, 먼지. 하여간 대한민국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아주 개나 소나 총질이네. 형님, 괜찮으십니까?”
“어디 다치신 곳은…….”
동생들의 걱정에 윤수호는 가볍게 고개를 젓더니 입을 열었다.
“대충 귀찮은 녀석들은 정리해 두었다. 나머지는 맡긴다.”
그 순간, 이선호와 조춘영의 두 눈이 커졌다.
적들을 자신들에게 맡겨 준다. 윤수호가 한 이 말의 의미를 모를 그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를 말씀입니까. 어서 가 보시죠. 지연 양이 삼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여기는 저희가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슉.
고개를 끄덕인 윤수호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뭐, 뭐야? 한 명 어디 갔어? 당장 놈을 찾아!”
윤수호가 사라지자 김전기가 당황해 소리쳤다.
그러자 조춘영과 이선호가 그들을 향해 외치며 이죽거렸다.
“어이! 이,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바퀴벌레 새끼들아, 우리를 눈앞에 두고 한눈팔 여유가 있냐?”
“섬멸팀 소속이라고 너무 무시당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군. 어차피 네놈들이나 재앙종이나 내 눈엔 똑같은 괴물들인데 말이야.”
슉, 슉!
그 순간, 두 사람의 신형이 순식간에 거리를 지우며 무리를 파고들었다.
“이런……!”
“왜? 생각보다 빨라서 깜짝 놀랐냐?”
쩌엉!
김전기는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조춘영의 모습에 눈을 부릅뜨며 가드를 올렸지만 소용없었다.
오러로 강화된 그의 펀치는 김전기의 오러 따위 가볍게 무시하며 가드를 박살 냈기 때문이다.
퍼억!
결국 안면이 개박살 나며 피떡이 되어 허무하게 쓰러지는 김전기와 빌런들을 눈앞에 두고, 두 사람이 빌런들을 자신 있게 도발했다.
“형님 덕분에 오러도 체력도 짱짱하거든? 그러니까 살고 싶은 새끼는 무기 버리고 땅에 대가리 박아라. 뒈지고 싶은 놈들은 덤비고!”
“환영 인사가 요란해서 기대 좀 걸어 봤더니, 이건 너무 싱거운데?”
“뭐 해, 저 두 새끼 조져!”
그동안 윤수호의 그림자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명실상부 특무대의 섬멸팀, 대태러팀의 팀장들이었다.
단둘뿐이라고 해도 윤수호가 정리하고 남은 잔당을 정리하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닌 두 사람이었다.
* * *
그렇게 두 사람이 바깥에서 빌런들을 소탕하는 동안, 아지트 정면으로 당당히 침입한 윤수호도 마찬가지로 빌런들을 개박살 내는 중이었다.
서걱! 촤악!
“마, 막아! 얼른!”
“씨발! 저런 괴물을 어떻게 막냐고!”
“반항하냐? 아무튼 막으라고, 이 쓸모없는 새끼들아! 이가 없으면 잇몸이다! 가서 몸으로라도 막아!”
몸을 던져 막을 수 있었으면 진즉에 그렇게 했을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겁 없이 윤수호의 앞을 가로막은 자도 있었다. 그에게 오러가 담긴 검을 휘두르고, 총질을 한 자도 있었다.
그러나 그게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는 금세 몸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은 그저 평범하게 다가오는 윤수호의 모습이 저승사자처럼 보일 뿐이었다. 전력을 다해서 덤빈 놈들도, 실수로 접근한 놈들도 하나같이 결말은 평등했다.
사지가 잘려 나가는 것…….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저 그가 손가락을 휙휙 저으면 정말 거짓말처럼 사람의 사지가 찰흙처럼 잘려 나갔다. 그렇게 사지가 잘린 빌런들은 피를 흘리며 비명을 지르다 추하게 숨을 거두었다.
그들의 주검과 비릿한 피 냄새는 이 상황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사실을 강하게 증명해 주었다.
“은지연은 어디 있지?”
“저, 저기…….”
서걱!
결국 막다른 길에 가로막힌 빌런 하나가 오줌을 지리며 손가락으로 은지연이 감금된 장소를 가르쳐 주었다.
윤수호는 순순히 대답해 준 빌런에게 최대한의 자비로 고통 없이 머리만 뎅겅 베어 준 뒤, 그가 가르쳐 준 방향을 향해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 뒤로 빌런들은 윤수호의 질문에 비교적 협조적으로 대답했다. 비협조적인 동료들의 추하고 괴로운 최후를 목격한 이들은, 목이 잘려서 한 번에 죽는다는 것이 얼마나 자비롭고 행복한 최후인지를 깨닫게 된 것이다.
“웬 소란이야?”
결국 소란은 부하들을 재교육시키고 있던 박훈의 귀까지 전해졌다.
그는 방을 직접 소란의 원인을 확인하기 위해 방을 나섰다. 그와 동시에 은지연도 갑작스러운 소란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콰앙!
“커헉!”
“혀, 형님?”
“형님!”
문을 부수며 날아온 사람은 놀랍게도 박훈이었다.
우당탕!
“끄윽!”
튕겨 날아온 박훈은 테이블과 서랍장에 거칠게 충돌하더니 꼴사나운 모습으로 쓰러져 신음을 흘렸다.
그 모습에 감시조 두 사람도 충격을 받긴 했지만,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다름 아닌 은지연이었다.
“가, 갑자기 왜……?”
‘도대체 누가…….’
두 감시조가 박훈을 부축하러 뛰어간 사이, 박살 난 문 너머에서 한 사람이 방 안으로 들어와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 순간, 윤수호와 은지연의 눈이 마주쳤다.
윤수호는 미소를 그리며 은지연에게 물었다.
“네가 지연이니?”
“그, 그런데요? 누구……세요?”
“다친 곳은 없고?”
“아, 네…….”
은지연은 정말로 신기한 기분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 낯설지가 않아. 내가 아는 누굴 닮은 것 같은데…….’
“엄마?”
은지연은 윤수호의 닮은 꼴을 찾다가 저도 모르게 생각한 이름을 입에 올리고는 깜짝 놀라서 입을 막았다.
윤수호는 그런 조카가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다, 문득 입을 가린 그녀의 손목을 보았다.
“이건…….”
“아, 이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은지연은 서둘러 손목을 뒤로 감추었다.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었다. 확실히 멍 자국이었으니까. 그것도 손에 피멍이 들 정도로 강하게 움켜쥐었다면 고통이 상당했을 터였다.
그때였다.
“너, 이 새끼……. 정체가 뭐야? 어디서 찾아온 놈이야?”
박훈이 자리에서 일어나 윤수호를 향해 거침없이 다가갔다. 그의 손에는 날 벼려진 날카로운 단검이 시퍼런 오러를 흩뿌리고 있었다.
“아니, 그냥 대답하지 마라. 네가 입을 다물고 있어야 내가 즐길 수 있을 테니까.”
팟!
“조심해요!”
은지연의 다급한 경고가 끝나기도 전에, 박훈의 신형이 먼저 윤수호의 품을 빠르게 파고들었다.
그와 동시에 먹이를 노리는 뱀처럼 그의 단검 끝이 요사스럽게 윤수호의 옆구리를 노렸다. 찔리면 흉막이 찢어져 숨을 쉴 수 없는 극한의 고통이 찾아오는 부위였다.
그런데…….
톡.
“……!”
“이, 이게 무슨…….”
박훈도, 감시조 두 사람도, 은지연도 눈앞에서 일어난 일을 믿을 수 없었다.
윤수호가 은지연과 마주 보고 있는 상태에서, 보지도 않고 검지 끝으로 박훈의 단검 끝을 막아 낸 것이다.
“지연아, 잠깐만 자고 있어. 금방 끝날 테니까.”
푹.
“아…….”
윤수호는 가볍게 은지연의 수혈을 점했다. 그러자 은지연이 기절하듯 모로 쓰러지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쉬익! 촤아악! 촤촤촤촤촤!
그사이에도 박훈은 쉬지 않고 윤수호를 공격했지만, 그 어느 것도 윤수호의 검지 끝을 넘어서지 못했다.
결국 박훈이 질렸다는 듯이 윤수호를 노려보며 그의 정체를 물었다.
“너, 너…… 대체 뭐 하는 새끼야? 정체가 뭐야?”
“내 정체라……. 지연이가 내 여동생의 딸이니까, 내가 이 아이의 외삼촌이 되겠군. 이제는 내가 물을 차례지?”
“지랄!”
박훈은 욕지거리를 뱉으며 전력을 다해 윤수호를 공격했다. 이제는 정체를 알아내는 것도 상관없다는 듯이 급소도 가리지 않고 공격했지만…….
휘릭!
“헉!”
오히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의 단검은 어느새 윤수호의 손에 들려 있었다.
촤아악!
“크윽!”
털썩.
윤수호가 가볍게 단검을 휘두르자 거짓말처럼 박훈의 손과 발목의 힘줄이 모두 끊기면서 그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원래는 은지한에 관해서 물어볼 생각이었는데, 마음이 바뀌었다. 그냥 대답하지 마라. 그래야 내가 즐길 수 있을 테니까.”
“그, 그게 무슨…….”
윤수호는 그 이후로 정말 아무런 질문도 없이 박훈의 살을 저미기 시작했다.
“우웩!”
“흐어어억!”
그 광경을 지켜보던 감시조 두 사람은 속에 든 모든 것을 게워내고도 헛구역질을 멈추지 못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두 가지 몰랐던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나는 사람의 목숨이 꽤 질기다는 것, 다른 하나는 너무 큰 충격을 받으면 오히려 정신이 말똥말똥해진다는 사실이었다.
어떻게 사람의 살점을 발라내는데 피 한 방울이 나지 않을 수 있는 것인지, 살점을 모두 도려내고, 근육을 회 쳐 내고, 뼈를 드러내고, 내장마저 드러났는데도 죽지 않을 수 있는 건지…….
이해할 수는 없지만, 박훈은 죽지 않았다는 점.
그저 목이 쉬어라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며, 자신이 알고 있는 은지한에 대한 모든 정보를 남김없이 토할 뿐이었다.
그렇게 알아낼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얻어 낸 윤수호는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잠이 든 은지연을 안아 들고 등을 돌렸다.
그러자 박훈이 비명을 지르다 성대가 나간 바람 빠지는 목소리로 울면서 윤수호에게 부탁했다.
“죽여 주세요……. 제발…… 죽여 주세요…….”
그러나 윤수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복도를 걸어 나갔다.
볼일이 끝난 빌런의 생사 따위 더 이상 자신이 신경 쓸 가치조차 없었으니까.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