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돌아왔다-31화 (31/175)

31.

윤수호는 차를 운전하면서 블루투스를 이용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지나고, 전화를 받은 상대는 다름 아닌 그의 여동생 윤수아였다.

-어, 오빠. 무슨 일이야?

“데이트는 잘하고 있어?”

-데, 데이트는 무슨……. 그냥 같이 밥 한 끼 먹고 영화 보고, 차나 한잔 마시는 거지…….

“사람들은 그런 걸 데이트라 부른다지, 아마?”

-아, 진짜! 혹시 나 놀리려고 전화한 거야? 그럼 정말 끊는다.

살짝 쀼루퉁해진 여동생의 목소리에, 윤수호는 피식 웃으며 다시금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조금 얘기가 길어질 것 같은데……. 혹시 탁준 씨랑 함께 있어?”

-응, 그런데 중요한 얘기야? 가서 들으면 안 될까?

“중요한 얘기다, 특히 너에게는 더더욱.”

-알았어. 잠깐만……. 탁준 씨한테 얘기하니까 자리를 비켜 줬어. 도대체 무슨 일인데?

“네가 반드시 알아야 할 이야기다.”

그 뒤로 윤수호는 자신이 박여진을 만나 전해 들은 정보와 지금까지의 상황을 고스란히 그녀에게 전해 주었다.

다름 아닌 그녀의 아이들에 관한 소식을 말이다.

-세, 세상에……! 난 그런 것도 모르고……!

스피커 너머에서도 동생의 표정이 보일 정도로 그녀의 목소리는 심하게 울먹이고 있었다.

왜 안 그렇겠는가? 아이들을 위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던 게 실상은 아이들을 팔아 치우는 행위에 가담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는데…….

아무리 몰랐다고 해도 그 충격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너에게 이 사실을 말해 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몇 번을 고민했다. 하지만 역시 네가 아는 게 맞는 것 같더라. 그 아이들이 입었을 상처, 지난 시간의 아픔들, 그 모든 걸 품고 치료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엄마인 너뿐이니까.”

-나, 난 정말로 구제 불능의 엄마인가 봐. 어떻게 이래? 난 아이들이 더 행복하기를 바랐을 뿐인데……. 역시 나도 우리 부모님처럼 끝까지 그 아이들을 지켰어야 했던 걸까? 나는 왜 그 아이들을 버린 거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난 그냥 아이들이랑 같이……!

“윤수아!”

-……!

혼란스러운 마음에 점점 더 나쁜 쪽으로 생각이 기울어 가는 동생의 정신을 일갈로 깨운 윤수호가 나직하게 여동생을 타일렀다.

“내가 말했지. 너는 그저 남들보다 열심히 살았을 뿐이라고, 그저 아이들을 최우선으로 생각했을 뿐이라고. 네가 나쁜 게 아니야. 너를 이용하고, 그 아이들을 이용하고, 지금도 죄를 짓고 있는 그자들이 악인일 뿐이지. 그러니까 너 자신을 더 이상 몰아붙이지 마. 너는 그저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그만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

“그래, 아이들이 돌아왔을 때, 엄마인 네가 아이들을 보듬어 주지 않으면 누가 그 일을 할 수 있겠어? 그러니까 네가 정신을 다잡고 있어야지. 아이들을 웃는 얼굴로 맞이해 줘야지. 안 그래?”

-나한테 그럴 자격이 있을까? 몰랐다고 해도 난 그 아이들을 판 거나 마찬가지야. 그 아이들이 날 지금도 원망하고 있다면…….

“그래서, 아이들이 널 원망하고 있을까 봐 겁이 나? 그래서 보고 싶지 않은 거야? 만나고 싶지 않아? 만약 그런 거라면 지금 얘기해. 그 아이들을 구하고 나서도 너와 만나지 못하게 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 순간. 스피커 너머에서 단호한 의지가 엿보이는 윤수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동생 윤수아가 아니라, 엄마 윤수아로서의 대답이었다.

-아니, 평생 속죄해도 좋아. 평생 그 아이들에게 원망을 받는다고 해도 상관없어. 그러니까 오빠…… 부탁이야. 제발 지은이, 지한이를 구해 줘! 나, 그 아이들이 잘못되면 정말로 살 자신이 없어……. 이제 와서 뻔뻔한 부탁이라 욕해도 할 말도 없어. 하지만 오빠, 나……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어!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아!

윤수아는 결국 터져 나오는 눈물과 함께 자신의 진심을 숨김없이 토해 냈다.

끼이익.

목적지에 도착한 윤수호는 차에서 내리기 직전,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그녀의 진심에 대꾸했다.

“걱정 마. 아직 얼굴도 못 본 조카들을 이대로 잃어버릴 생각은 없으니까.”

윤수호는 통화를 끝내고 차에서 내렸다.

그가 차를 세운 곳은 서울 외곽에 자리한 허름한 빌딩 앞이었다. 본래라면 주인 없이 비어 있는 건물이어야 하지만, 빌딩에는 버젓이 불이 들어와 있었고 빌딩 근처에도 인기척이 꽤나 많았다.

“저 새끼는 뭐야?”

“길드장님한테 오늘 손님 온다는 얘기 들은 사람?”

무리의 리더로 보이는 남자가 부하들에게 묻자, 부하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저었다.

“즉, 불청객이라는 소린데…….”

남자가 무기를 챙겨 들고 일어나자, 무리가 분분히 그를 따라서 무기를 챙겨 남자의 뒤를 따랐다.

그는 흉흉한 기세를 피워 올리며 윤수호의 앞을 가로막고는 인상을 최대한 찌푸리며 윤수호의 어깨를 잡고 그를 막아 세웠다.

“실례지만 어디 사는 누구…….”

서걱!

“……어?”

화끈한 통증 뒤에, 그의 어깨를 잡고 막아 세웠던 오른팔의 감각이 사라졌다. 대신 피 분수가 잘린 팔의 단면에서 뿜어져 나오자 남자는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악! 내 팔! 내 팔이……!”

“야, 뭐 해? 저 새끼 죽여!”

“막아!”

빌런들은 필사적으로 윤수호의 앞을 가로막으며 무기를 휘둘렀다.

알터가 아닌 자들도 있지만, 대부분이 알터로 각성한 빌런들에게는 평범한 쇠 파이프조차 장갑차도 때려잡을 무기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너무 안 좋았다.

그들이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치건 뭘 하건 윤수호에게는 한낱 미물이나 마찬가지였다.

윤수호의 검결지가 지휘자의 지휘봉처럼 움직였다. 그때마다 흩뿌려지는 핏물은 오선지가 되었고, 그 위에 잘려 나간 사지와 내장 조각들은 음표가 되어 죽음의 악보를 그렸다.

“끄아아아악!”

“사, 살려 줘…….”

푸확!

마지막으로 비명과 신음에 찬 악몽의 오케스트라까지 연주를 마치자, 지휘자가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싸늘하게 식어 가는 시신들뿐이었다.

* * *

“뭐, 뭐야? 밖에 무슨 일이…….”

갈수록 밖에서 흘러 들어오는 비명과 파육음이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자, 승량 길드의 길드장 심섭은 자신을 지키는 친위대와 함께 무기를 챙겨 들고 침입자를 기다렸다.

쾅!

그렇게 윤수호가 문을 부수며 등장하자, 친위대가 먼저 윤수호를 향해 기습을 감행했고…….

푸확!

그와 동시에 친위대의 몸뚱이가 공중에서 분해되며 피와 내장 찌꺼기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히익……!”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심섭은 저도 모르게 무기를 떨구더니 파랗게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너, 너 뭐야? 대체 원하는 게 뭔데!”

“7년 전, 네가 새희망 보육원과 짜고 돈으로 산 아이 중에 은지연, 은지한이란 아이들이 있다. 그 애들 지금 어디 있어?”

“여기 계셨네! 형님, 벌써 시작하셨습니까? 저희 몫은 좀 남겨…….”

때마침 도착한 조춘영과 이선호가 길드장실까지 뛰어 올라와 호흡을 고르기 무섭게 심섭이 소리쳤다.

“다짜고짜 쳐들어와서 7년 전에 뭐가 어쩌고 어째? 야, 이 새끼야! 내가 그딴 걸 어떻게 알아? 너, 좋은 말로 할 때 이대로 돌아가라. 내가 이번 일을 우리 형님께 보고하면 넌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라고. 알아?”

“그러니까…… 기억이 안 난다는 뜻인가?”

“자, 전원 철수! 철수! 저 빡대가리께서도 기억이 안 나신단다!”

조춘영의 외침에, 계단을 따라 뛰어 올라오고 있던 대원들이 사색이 되어 곧바로 계단을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선호와 조춘영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저희는 잠시 밖에 나가 있겠습니다, 형님.”

“하아, 저 불쌍한 새끼…….”

조춘영은 마지막까지 심섭을 불쌍하게 바라보다 이선호와 함께 밖으로 뛰어나갔다. 심섭은 불안함을 느끼면서도 끝까지 허세를 잃지 않았다.

“뭐, 뭐야? 진짜로 기억이 안 난다니까! 너, 내 의형제가 혈풍 길드 길드장 조범식인 건 알고 이러는 거지, 지금?”

잠시 후…….

예상했던 대로 지옥의 밑바닥에서 폐부를 긁어 대는 듯한 비명이 한동안 터져 나오다 잠잠해진 후, 윤수호가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뭐 좀 건지셨습니까, 형님?”

“혈풍 길드로 간다. 당시 새희망 보육원과 관련된 장부와 기록들은 전부 그쪽이 가지고 있다더군.”

“예, 알겠습니다.”

이선호는 뒷정리를 위해 대원 몇 명을 남겨 두고 윤수호와 함께 혈풍 길드로 향했다.

그날 밤.

세 개의 대형 길드가 하룻밤 사이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 *

“야, 이거 놔! 어딜 만져, 이 개자식들아! 이거 안 놔! 꺄악!”

털썩!

한 떡대가 억센 팔로 자신의 어깨에 은지연을 짐작처럼 걸쳐 메고 와서는 침대 위에 거칠게 내동댕이쳤다.

그러자 다른 감시조 동료 한 명이 그에게 심드렁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번엔 또 어디서?”

“화장실 환풍구. 하도 안 나와서 들어가 봤더니, 숟가락을 숨겨 놨다가 그걸로 나사 풀어서 도망치려 하더라고.”

“뭐? 푸하하하하! 무슨 ×리즌 브레이크도 아니고. 지난번에는 음식 옮기는 카트 밑에 숨어서 도망치려고 하지 않았가? 하여간 똑똑한 건지, 멍청한 건지…… 쯧쯧!”

은지연을 걸쳐 메고 왔던 사내는 그녀를 노려보며 협박했다.

“야, 이 ×년아. 너, 그렇게 백날 도망치려고 노력해 봤자 헛수고라니까. 여긴 우리 아지트고,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전부 우리 사람이라고. 그래, 만에 하나 탈출했다고 치자. 네가 도망치면 네 동생은 무사할 수 있을 거 같아? 너 없어지면 그 새끼도 끝이야. 죽은 목숨이라고 알아?”

“까고 있네. 어차피 얌전히 있어도 풀어 줄 생각은 1도 없으면서. 날 이용해서 내 동생만 실컷 부려 먹다가 쓸모없어지면 죽이려는 거, 누가 모를 줄 알고? 두고 봐. 반드시 여길 탈출해서 동생이랑 같이 보란 듯이 도망쳐 줄 테니까.”

“아, 나. 이 미친년이 진짜……!”

그 순간!

“가까이 오지 마!”

그녀는 침대 밑에 숨겨 두었던 식사용 나이프를 꺼내 들고 감시조 두 사람을 위협하였다.

그러자 두 사람이 피식 웃으며 그녀를 조롱했다.

“왜? 그걸로 찔러 보려고? 자신 있으면 해 보든지.”

그들은 직접 목까지 들이밀며 은지연을 조롱했다. 알터인 자신들에게 한낱 여고생이 휘두르는 식사용 나이프가 통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럼 이건 어때?”

은지연은 씨익 웃더니 나이프의 방향을 바꿔 자신의 목을 겨눴다. 그러자 감시조 두 사람의 표정이 대번에 굳어 버렸다.

“표정 좋네. 그대로 가만히 움직이지 마.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면 바로 내 목을 그어 버릴 테니까.”

“이 미친년이……! 그런 협박이 우리한테 먹힐 것 같냐?”

“자신 있으면 움직여 보든가. 나도 지금처럼 동생 약점으로 이용만 당하다가 죽을 바에야 여기서 깔끔하게 죽어 버리는 게 나아. 그럼 지한이도 그곳을 탈출할 수 있겠지.”

씨익 웃는 은지연의 미소 아래로 칼날이 닿은 그녀의 목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그 모습에 감시조 두 사람은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동생을 제 목숨보다 아끼는 저 미친년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아!’

‘만약 정기 연락 시간에 저년이 없으면 리퍼를 통제할 수단이 사라진다! 그럼 우리는 어차피 죽은 목숨이라고!’

세 사람 사이에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흘러넘쳤다.

은지연은 천천히 입구를 향해 조금씩 이동했고, 은지연이 움직일 때마다 움찔움찔하면서도 감시조 두 사람은 쉽게 그녀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그 순간!

벌컥.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냐?”

“혀, 형님!”

감시조의 대장 박훈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감시조 두 사람은 반색했고, 은지연의 얼굴에는 절망이 엿보였다.

‘지한아, 미안해! 너라도 꼭 살아서 탈출해야 해……!’

은지연은 눈을 질끈 감으며 칼을 목에 찌르는 순간!

턱!

“아…….”

“귀찮게 하지 말고 얌전히 있어. 네 동생을 조금이라도 오래 살려 두고 싶으면.”

“꺄악!”

챙그랑.

어느새 그녀의 앞에 나타난 박훈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힘을 주었다.

그러자 은지연은 쥐고 있던 나이프를 떨어트렸고, 결국 그녀의 눈가에 맺혀 있던 눈물도 함께 흘러내렸다.

박훈은 그녀가 떨어트린 나이프를 품에 잘 갈무리한 뒤 부하들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이 병신 같은 새끼들아. 고작 이 정도도 해결을 못 해서 계집애한테 놀아나냐?”

짝! 짝! 짝! 짝! 짝! 짝!

“죄, 죄송합니다, 형님……!”

볼이 터져 피가 흐르는데도 박훈은 두 사람의 뺨을 사정없이 갈겼다.

그 모습을 보며 은지연은 저도 모르게 허물어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정말로 아무런 방법도 없는 거야? 그냥 이대로 나도, 동생도…… 이렇게 이용만 당하다가 죽는 거냐고…….’

“엄마, 흐흑……!”

결국 은지연은 쪼그려 앉아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울기 시작했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자신들에게 남은 건 절망뿐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넌 누구…….”

서걱!

“치, 침입자다!”

서걱! 촤악!

절대로 있을 리 없는 소란이 밖에서부터 터져 나오자 은지연의 고개가 올라왔다.

검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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