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돌아왔다-30화 (30/175)

30.

“그게 사실인가?”

윤수호는 박여진의 사무실에서 그녀를 만나, 부탁했던 정보에 대한 대답을 듣고 당황을 금치 못했다.

본래라면 사적인 이유를 위해서 특무대의 정보부를 활용하는 건 금지된 일이었다. 하지만 대통령과 총사령관의 위세를 등에 업은 윤수호는, 막말로 정보부의 1/4까지도 자신의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서 인력을 활용할 수 있었다.

물론 윤수호 전담 정보부 팀장 역할은 이제 엄연히 박여진의 몫이었고.

“네, 몇 번이고 확인해 봤는데……. 위원장님의 조카분들요. 은지연 양과 은지한 군요. 두 아이를 입양해 갔다고 하는 분들은 실존하는 분들이고 직업도 경찰과 교사가 맞지만, 부부관계는 아니었어요. 확인해 보니 두 분 다 서로를 전혀 모르는 사이더라고요. 당연히 입양 기록도 거짓이었고요.”

“수아는 보육원을 통해서 입양을 보냈다고 하던데?”

“말씀하신 새희망 보육원도 알아보니까 두 아이가 입양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닫았더라고요. 아이들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요. 위원장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이때 당시에는 그렇게 드문 일도 아니었어요.”

“드문 일이 아니었다?”

박여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소 무거워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세상은 미쳐 돌아가는데 사람들의 인심은 더욱 팍팍해지고, 정부도 재앙종에 대한 대책을 짜느라 정신이 없는 상황이었어요. 누가 자기 아이도 아닌 아이들이 사는 보육원에 관심을 주고 지원을 하겠어요. 당연히 보육원의 재정은 악화할 수밖에 없었고, 몇몇 보육원들은 합치거나 폐원할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그런 경우라면 차라리 나아요.”

“아이들을 매매한 건가?”

“네, 보육원이라는 신뢰를 미끼로 버려질 아이들을 모아서 판 거죠. 당시 빌런들은 자금 조달과 인력 충원을 위해 남아, 여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끌어모았거든요. 그런 쓰레기들에게 고아들과 버려지는 아이들은 좋은 자금줄이었죠. 여자아이는 불법 성매매로, 남자아이들은 훈련시켜서 길드의 전투원으로 키웠으니까요.”

“…….”

“그런데 생각보다 크게 당황하거나 놀라지는 않으시네요?”

박여진이 오히려 놀라서 묻자, 윤수호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사람 사는 세상은 그쪽이나 여기나 다를 게 없다. 내가 있던 곳에서도 갈 곳 없는 애들을 데려가 사람 죽이는 거 가르치고 몸 파는 거 강요하는 건 비슷했거든.”

무림은 관의 간섭이 덜했기 때문에 사실상 무법천지였다지만, 현대 사회에서 무림과 비슷한 일들이 일어났다는 건 솔직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재앙종이 나타나면서 현대 사회의 정의와 질서 같은 건 의미가 퇴색되어 버렸을 테니까.

강자존.

결국 약자는 빼앗기고 강자가 착취하는 건 그쪽이나 이쪽이나 똑같은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을 찾으려면 그 보육원의 흔적부터 쫓아야 하는 건가?”

“네, 이 팀장님과 조 팀장님께는…….”

“그 녀석들은 부르지 마. 자기 일도 바쁜 녀석들을 뭐 하러…….”

덜컥!

“네? 누구를 부르지 말라고요? 허억! 허억!”

“형님! 저희 왔습니다!”

“…….”

윤수호는 멍하니 두 사람을 쳐다보다가 박여진에게 슬쩍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박여진이 어색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이, 이 팀장님과 조 팀장님께서는 미리 말씀드렸다고……. 그래서 지금 여기로 오시는 중이라고…….”

“하아…….”

윤수호는 한숨을 내쉬더니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너희는 일도 없냐?”

“저희 업무도 업무지만, 형님을 서포트하라는 것이 위에서 내려온 저희의 최우선 임무입니다!”

“그렇습니다! 한번 수호팀은 영원한 수호팀 아니겠습니까? 으하하하!”

“맞습니다! 한번 수호팀은 영원한 수호팀! 저희야말로 수호 팬클럽 1기생이 아니겠습니까! 함께하게 해 주십쇼!”

윤수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처음에는 안 그런 것 같았는데, 너무 같이 어울려 다닌 탓인지 어느 순간부터 이선호와 조춘영의 구분이 애매해졌다.

* * *

“새희망 보육원의 원장은 사고로 7년 전에 사망했어요. 하지만 다행히 당시 함께 보육원을 운영하던 부원장 장휘순은 살아 있더라고요. 소재 파악해 뒀으니까 바로 찾으러 가시면 돼요. 다만 만나기가 그렇게 쉽지만은 않을 거예요.”

박여진의 경고처럼 장휘순을 만나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새끼, 아주 중증 도박 중독잔데? 도박 때문에 정신병원에서 탈출했을 정도면 예사 놈은 아니란 말인데…….”

“일단 난 이 새끼 집 주변에 잠복하고 있을 테니까, 너는 경찰들이랑 같이 주변 하우스랑 도박장 싹 다 훑는 거로.”

“OK.”

언제나처럼 윤수호는 박여진과 함께 상황실을 지키며,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체크하며 지시를 내렸다.

현장은 이선호와 조춘영이 임무를 분담해서 활동했다. 아무래도 수색과 조사에 익숙한 조춘영의 G팀이 도박장을 털고, 이선호와 101팀이 잠복하는 게 최선이다.

게다가 그들만 동원된 것도 아니다.

현재 복역 중인 프로 도박꾼들에게도 감형을 미끼로 조언을 구해서, 장휘순의 동선을 한 발 앞질러 읽어 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장휘순이 아무리 날고 기는 도박 중독자라고 해도 경찰과 G팀의 합동 수사망을 빠져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요기 있었네? 우리 부원장님.’

어느 하우스에서 도박에 집중하고 있는 장휘순을 발견한 조춘영이 입꼬리를 씨익 말아 올리며 그에게 접근했다.

굳이 기척을 숨길 필요도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어깨동무할 때까지도 그는 조춘영의 접근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야! 우리 부원장님, 족보가 아주 그냥 개족보네. 근데 뭘 그렇게 열심히 고민해요? 왜? 한 끗으로 혼신의 구라라도 쳐 보려고?”

“너, 너, 뭐…….”

쾅!

조춘영은 그대로 장휘순의 뒤통수를 잡아 테이블에 그의 이마를 박아 버렸다. 어찌나 이마를 세게 박았는지, 시장 통보다 시끄러운 도박장이 한순간에 조용해질 정도였다.

차자작, 처척!

그러자 순식간에 손님으로 위장하고 있던 몇몇 빌런들이 책상 밑에 숨겨 두고 있던 총을 꺼내 들며 조춘영을 위협했다.

“너 뭐야? 짭새야? 어디서 왔어?”

수많은 총구가 자신을 겨누고 있는데도 조춘영은 피식 웃으며 자신의 정체를 묻는 상대에게 이죽거렸다.

“세상이 흉흉하다 보니 대한민국에서 개나 소나 총질이네. 야, 인마. 형이 좋은 말로 할 때 그거 치워라. 안 그럼 평생 죽도 못 먹는다.”

“이 새끼가 지금 이게 장난인 줄 아나? 한 번만 더 개소리 씨부리면 이마에 바람구멍 날 줄 알아. 마지막으로 묻는다. 너, 어느 길드에서 왔어? 짭새는 아닌 것 같은데…….”

“자신 있으면 방아쇠 당겨 보든가. 총알이 내 심장을 먼저 관통할지, 내 주먹이 네 면상을 먼저 박살 낼지 바로 알 수 있을걸.”

“이 미친 새끼가……!”

탕!

조춘영의 도발에 그를 협박하던 빌런이 참지 못하고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그랬더니…….

콰작!

정말 조춘영의 말대로 총알을 피하며 어느새 접근한 그의 주먹이 틀어박힌 빌런의 면상만 개박살이 났을 뿐이었다.

“그러게, 형 말 좀 듣지 그랬냐.”

털썩.

“이런 미친 새끼가!”

“쏴!”

면상이 개박살 난 빌런이 대(大)자로 축 늘어져 푸들거리고 있으려니, 다른 빌런들이 조춘영을 향해서 사격을 시작하려 했다.

여기에는 그들 외에도 도박꾼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는데, 그런 건 신경 쓰지 않고 방아쇠를 당기려던 것이다.

하지만!

“동작 금지!”

“1절만 해라. 1절만.”

콰직! 빠드득! 뻐억! 콰작!

어느새 등장한 G팀 대원들이 순식간에 상황을 종료했다. 알터들만 상대하던 그들이었기에, 총을 들고 있다고는 하나 일반인 정도는 위협조차 되지 못한 것이다.

“자! 그럼 이제 차분하게 얘기 좀 나눠 볼까, 우리 부원장님?”

장휘순의 맞은편 의자에 착석한 조춘영이 그와 시선을 맞추며 씨익 웃자, 장휘순이 벌벌 떨면서 사정했다.

“대, 대체 원하는 게 뭡니까? 난 돈 없습니다! 여기도 빚내서 온 거라고요!”

“당신이 어떤 쓰레기인지는 관심 없고, 내가 묻는 말에 정직하게 대답만 합니다. 구라 치다 걸리면 뒈지는 건 학교에서 잘 배웠죠? 그럼 묻겠습니다. 7년 전에 당신과 원장이 짜고 팔아치운 아이들. 누구한테 팔아치웠는지 신속하게 고백합니다.”

“7, 7년 전에 제가 아이들을요?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흐음.”

푹!

장휘순이 식은땀을 흘리며 눈치를 살살 살피자, 가벼운 침음성을 흘리던 조춘영이 난데없이 삼광 패를 집어 들더니 그대로 장휘순의 허벅지에 박아 넣었다.

“끄아아아아아악!”

“에헤이! 누가 들으면 사람 잡는 줄 알겠네. 엄살 피우지 마시고 사실대로 얘기합니다. 7년 전에 새희망 보육원 원장하고 부모들 속여가면서 팔아치운 불쌍한 애들, 지금 어디 있습니까? 누구한테 팔아넘겼습니까?”

“그, 그게…….”

“으음, 역시 삼광만 있으니까 뭔가 허전하네.”

푹!

“끄어어어억!”

“역시 광은 삼팔광땡이지.”

양쪽 허벅지에 각각 삼광과 팔광을 꽂은 상태로, 장휘순은 비명도 신음도 아닌 요상한 소리를 흘리며 온몸을 뒤틀었다.

“다음에는 장땡을 쇄골 쪽에 박아 드릴게. 거기가 뒈질 정도로 아픈데 뒈지지는 않는 부위거든. 어떻게? 아직도 생각이 안 나시나?”

“새, 생각났습니다! 중식이파! 중식이파한테 팔았을 겁니다!”

“진짜야? 확실해?”

“정말입니다! 중식이파라고, 당시에 애들만 전문적으로 매매하는 새끼들이 있었습니다! 그놈들이 우리 보육원의 주 고객층이었습니다! 그놈들 아니면 정말로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는 건 그게 전부입니다!”

“음, 사실인지 아닌지 일단 한번 확인해 보고.”

“네……?”

장휘순은 죽을 것같이 아프지만 죽지 않는 부위 세 군데에 더 화투패가 박힌 후에야 조춘영의 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이 새끼들은 싹 다 긁어모아서 경찰 쪽에 넘겨 버려. 반항하는 새끼들은 반 죽여! 아니, 반항 안 해도 그냥 반 죽여 버려. 쓰레기 같은 새끼들.”

“예! 팀장님.”

조춘영은 과잉 진압, 과잉 수사에 대해서는 눈곱만큼도 걱정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대통령과 특무대 총사령관의 무한한 비호를 받는 수호팀에서 일한다는 건 그런 것이었다.

“들었지, 박 팀장? 중식이파라고, 정보 남아 있는 게 있어?”

-잠깐만요, 선배님. 지금 경찰 쪽 데이터베이스에서 검색 중이에요……. 찾았어요, 중식이파. 재앙 전에는 경기도에서 활동하던 중소 조직이었는데, 재앙이 시작되고 나서 곧장 아동 인신매매 사업을 시작해 부를 축적했네요. 현재는 그 부를 이용해 알터 범죄자들을 영입……. 작은 길드까지 세운 상태고요.

“그 길드 이름이?”

-승량 길드요. 경기도에서 나름 악명 높은 길드라고는 하는데…… 지금 막 위원장님께서 그쪽으로 가셨습니다.

“아…….”

윤수호가 벌써 그쪽으로 움직였다는 보고에, 조춘영은 그들의 미래를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승량인지 승냥인지 오늘 자로 문 닫겠네. 아니지. 닫을 문도 박살 나려나?’

“알겠다. 그럼 우리도 그쪽으로 이동할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네. 그럼 계속해서 고생해 주세요, 선배님들.

“그래. 수고.”

그렇게 도박 현장까지 깔끔하게 정리한 조춘영과 대원들은 서둘러 승량 길드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검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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