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폭발과 함께 뒤로 튕겨 날아간 서의찬은 입가에 묻은 검댕을 닦으며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치솟아 오르는 불길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람들이 다름 아닌 한 때 같은 식구였던 치우팀의 오수영, 김세민이었기 때문이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특무대의 일반 대원들은 후퇴, 알터 대원들은 현장을 포위 및 대기하여 주세요. 지금부터 배신자는 우리가 맡습니다.”
-라져. 무운을 빕니다.
무선 통신을 통해 명령을 하달하자 도주로를 틀어막고 있던 군인들이 일사불란하게 후퇴하기 시작했다.
윤수호는 이근우에게서 알아낸 서의찬의 은신처를 곧바로 천호진에게 보고하였다. 그에 천호진은 일차적으로 특무대와 군 병력을 파견하여 서의찬의 감시 및 도주로를 은밀히 확보하여 틀어막았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감이 좋은 서의찬은 특무대의 포위망이 형성되기도 전에 이들의 움직임을 눈치채고 도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군 병력과 특무대가 나서서 최대한 시간을 끌며 서의찬의 발을 묶기 위해 나섰다. 여기서 서의찬을 놓치면 다시 그를 잡을 가능성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의찬의 움직임에 맞춰 최대한 병력을 온존하며 그의 발을 묶기 위해 특무대와 군인들은 최선을 다했다.
그사이, 정말로 오랜만에 휴일을 즐기고 있던 치우팀 소속 오수영과 김세민이 곧바로 천호진의 호출을 받아 현장에 출동한 것이다.
오수영은 주변을 스윽 훑어보았다.
그의 발을 막느라 순직한 특무대원과 군인들의 시신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그녀는 속으로 그들에 대한 짧은 묵념을 마친 뒤 서의찬을 노려보았다.
“선배가 짜증 나고 속이 시커먼 사람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개 쓰레기 같은 인간일 줄은 몰랐네요. 형식상 딱 한 번만 권유합니다. 순순히 투항하세요. 그럼 목숨만은 보장해 드릴 테니까.”
오수영의 항복 권유에 서의찬은 피식 실소를 터트리며 이죽거렸다.
“지금 그 말, 누구한테 하는지 자각은 하고 지껄이는 거지, 애송이?”
그와 동시에 서의찬의 시선이 비어 있는 공간으로 향했다.
‘다른 녀석들이 오기 전에 이 자리를 뜬다!’
콰콰콰콰콰!
서의찬은 공세를 취하며 잔뜩 기세를 끌어 올렸다. 그의 몸에서 날카로운 살기와 폭풍 같은 기세가 한데 어우러지며 무시무시한 흉기를 뿜어냈다.
쾅!
그와 동시에 땅을 박차며 거칠게 신형을 쏘아붙인 서의찬.
그런데 서의찬이 향한 곳은 오수영과 김세민이 있는 곳이 아니었다. 불길이 가장 거세기에 가장 신경이 덜 쓰이는 곳을 향해 몸을 날려 도주를 계획한 것이다.
하지만!
콰앙!
놀랍게도 서의찬의 의도를 한발 앞서 눈치채고 그의 앞을 가로막은 사람은 다름 아닌 김세민이었다.
김세민은 서의찬의 창과 힘겨루기를 하면서도 지지 않고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이죽거렸다.
“에이! 섭섭하게 이거 왜 이러십니까. 우리가 하루 이틀 보는 사이도 아니고, 선배의 시커먼 속을 저희가 모를 줄 알았습니까?”
자신의 속셈이 간파당하자 서의찬은 악귀 같은 표정으로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을 씹어 뱉었다.
“김세민! 확실히 주둥이는 1인분을 하는구나. 그럼 실력도 주둥이만큼 쓸 만한지 한번 확인해 볼까?”
“얼마든지.”
촤촤촤촤! 콰콰콰콰쾅!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의찬의 창이 폭풍처럼 사납게 휘몰아치고, 그에 대응하여 김세민의 쌍부가 광풍을 휘감고서 무서운 속도로 서의찬에게 쇄도했다.
두 사람의 오러가 부딪칠 때마다 일대에 강력한 폭발과 충격파가 터졌다. 그 여파로 아름드리나무가 부러지고 바위가 깨지며, 땅에 조금씩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경천동지의 싸움!
“거리를 벌려라! 저들의 전투에 휘말리지 마! 여기도 사정권이다! 더 뒤로 물러나서 포위한다!”
“저게 치우팀 간의 진심을 다한 싸움인가…….”
“우리가 도울 수 있는 게 고작 싸움의 여파를 피해 주는 게 전부라니…….”
치우팀 간의 대결을 직접 눈으로 목격한 특무대 대원들은 아연실색하며 거리를 벌렸다.
어떤 지휘관의 말처럼, 그들이 오수영과 김세민을 도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의 방해가 되지 않는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주둥이만큼 실력은 없는 것 같구나. 세민아!”
서의찬과 김세민의 전투는 확실히 서의찬이 우세했다.
그의 인성과는 상관없이 서의찬의 공격력은 치우팀 내부에서도 톱클래스에 속했으니까.
막말로 그와 1 : 1 대결을 펼쳐 확실하게 우세를 점할 수 있는 사람은 공승환 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나 공승환은 임무 때문에 해외에 나가 있는 상황. 지금 당장은 돌아올 수 없었다.
하지만!
“선배, 혹시 나는 새까맣게 잊고 있는 거 아니죠?”
“……!”
이건 정정당당한 1 : 1 대결이 아니었고, 룰이 있는 대련 따위는 더더욱 아니었다.
개인적인 실력은 김세민이 서의찬보다 부족한 면이 많지만, 오수영까지 끼어서 김세민과 함께 싸우자 전황은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아무리 서의찬이라도 혼자서 치우팀 두 사람을 상대하는 건 무리였기 때문이다.
‘칫! 어차피 뒈질 거면 네놈들도 같이 죽는다!’
서의찬은 속으로 혀를 차며 공세에 더욱 독기를 불어 넣었다.
방어는 반쯤 포기한 채 적당히 위험한 공격은 감수하고, 대신 상대방의 목숨을 확실히 빼앗을 수 있는 공격 위주로 전개했다.
그에 반해 오수영과 김세민은 상황이 전혀 달랐다.
그들의 목적은 서의찬의 사살이 아니라 체포가 목적이었다. 게다가 옛 동료를 원수 보듯 하는 서의찬과 다르게 그들의 손속에는 아직 인정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서의찬이 목숨을 반쯤 버리고 동귀어진의 각오로 공격하다 보니, 그들로서는 아무래도 수비적으로 전투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세 사람의 전투는 쉽게 한쪽으로 승부가 기울지 않았다. 종합적인 실력은 오수영, 김세민 듀오가 더 강했지만, 독기와 필사적인 각오는 서의찬이 더 강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전투가 시작되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10분입니다.”
“미치겠군. 몇 시간은 지난 것 같은데 고작 10분이라니……. 지켜보는 내가 지쳐 죽을 것 같네.”
어느 특무대 팀장의 긴장감 섞인 푸념에, 다른 대원들과 팀장들도 그의 말을 크게 공감했다.
그들이 직접 도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마음만큼은 오수영, 김세민과 함께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후욱, 후욱……!”
“하아, 하아……!”
세 사람은 숨을 고르고 불안정한 오러를 진정시키기 위해 일단 떨어져 한 차례 호흡을 가다듬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오수영과 김세민의 시선은 서의찬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며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저 녀석들, 체력보다 정신력이 상당히 많이 깎여 나간 것 같군.’
두 사람과 서의찬의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경험한 전장의 숫자와 경험치일 것이다.
서의찬은 금세 두 사람의 상태를 알아보고 기회를 살폈다.
그리고 자신의 타고난 동물적인 감각과 경험을 살려, 두 사람의 집중력이 동시에 떨어지는 순간을 포착했다.
‘지금!’
파앗!
“이런……!”
“아……!”
탈출의 기회를 엿보고 있던 서의찬의 갑작스러운 도주에, 집중력이 흐트러져 있던 두 사람의 반응이 아주 미세하게 늦어졌다.
하나 그것만으로도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두 사람은 잘 알고 있었다.
오수영과 김세민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대로 자신들이 서의찬을 막지 못하면 특무대 동료들이 놈의 창에 얼마나 희생을 당할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됐다! 이대로 전력을 다해서 도망치면…….’
그런데!
쩌엉! 퉁퉁…… 콰앙!
별안간 탈출한 줄 알았던 서의찬의 몸뚱이가 거칠게 튕기며 뒤로 날아갔다. 당연히 서의찬의 뒤를 쫓으려던 오수영과 김세민은 깜짝 놀라며 상대의 정체를 확인했다.
“도대체 누가…….”
“헉! 위원장님?”
놀랍게도 서의찬을 날려 버리고 불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다름 아닌 윤수호였다.
윤수호는 주변을 훑어보았다.
서의찬에 손에 죽은 군인들과 특무대원들의 시신이 방치되어 불에 타고 있는 게 보였다.
그 순간.
주변의 대기가 그의 기운과 공명하기 시작하더니, 가슴 어림까지 올라온 그의 오른손 손바닥 위로 주변의 기가 블랙홀처럼 빨려들기 시작했다.
특히 화기(火氣)가 그의 기운과 반응하여 급속도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는데, 덕분에 주변의 산불이 꺼지면서 그 불길이 전부 윤수호의 손바닥 위로 압축되었다.
화르륵! 화륵!
그 결과, 윤수호의 손바닥 위에는 정면으로 쳐다볼 수도 없을 만큼 뜨거운 열량을 가진 불덩이가 타오르고 있었다.
“네놈은 누구냐!”
한편 정신을 차리고 다시 일어난 서의찬은 자신을 날려 버린 상대를 확인하고는 거칠게 소리치며 창을 꼬나 쥐었다.
아버지가 체포당한 이후 곧바로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에 그는 윤수호의 존재를 아직 몰랐던 것이다.
윤수호는 그런 서의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사람을 하찮게 보는 눈. 목숨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눈.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뭘 해도 상관없다는 탐욕의 눈. 네 녀석의 눈은 참으로 네 아비를 꼭 빼닮았구나.”
“넌 뭐야? 네가 뭔데 내 아버지를…….”
“네 아비의 탐욕과 죄를 끊은 것이 나다. 그리고 이젠 자식의 죄마저 끊어야겠구나.”
“……!”
윤수호의 대답에 서의찬은 눈을 부릅뜨며 큭큭거리더니, 지금까지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성난 기세를 끌어 올리며 광포하게 소리쳤다.
콰콰콰콰콰콰콰콰!
“그랬구나! 네놈이 내 인생을 시궁창 밑바닥에 처박은 범인이렷다! 오늘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네놈만큼은 길동무로 삼아야겠다! 이 빌어먹을 새끼야!”
콰아앙!
서의찬은 윤수호를 향해 욕지거리를 뱉으며 무서운 속도로 달려들었다. 그가 땅을 한 번 박차는 순간, 윤수호와 서의찬 사이에 벌어져 있던 거리는 의미를 잃어버렸다.
슈왁!
그렇게 서의찬이 창끝이 윤수호의 목을 관통하려던 순간!
콰앙!
서의찬의 창은 놀랍게도 윤수호의 손바닥 위에서 타고 있는 불덩이를 뚫지 못하고 그대로 막혀 버렸다.
“네가 오늘 죽인 숭고한 목숨이 여기 담겨 있다. 그 죗값을 너는 감당할 수 있을까?”
“그게 무슨 개소리…….”
그 순간, 서의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불덩이가 갑자기 거대한 뱀으로 변하더니 서의찬을 그대로 삼켜 버렸다.
그가 반응하거나, 피할 사이도 없이 말이다.
화르륵!
누가 그랬던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악의 고통은 불에 타 죽는 고통이라고.
절로 나오는 끔찍한 비명에 입을 벌렸더니, 화마가 목구멍을 타고 성대와 내장을 지지며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서의찬은 오러를 끌어 올려 최대한 저항했지만, 오히려 고통만 가중하는 꼴이었다.
“우읍!”
“…….”
오수영은 그 모습에 구역질을 삼키며 고개를 돌렸다. 김세민도 눈살을 찌푸렸지만 눈을 돌리지는 않았다.
한편, 윤수호는 발버둥을 치며 괴로워하는 서의찬의 모습을 담담하게 지켜보았다.
이윽고 끝까지 발버둥 치던 서의찬은 새까만 재가 되어 숨을 거두었고, 윤수호는 죽은 서의찬의 시신을 향해서 가볍게 묵념하였다. 죽은 서의찬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에게 당해 순직한 병사들을 위해서였다.
그렇게 묵념을 마친 윤수호는 고개를 돌려 오수영과 김세민에게 시선을 돌렸다.
“일찍 온다고 서둘렀음에도 피해가 컸군요. 죄송합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위원장님께서 사과하실 일이 전혀 아니십니다. 그보다 위원장님이 제때 와 주시지 않았다면 더 큰 피해가 발생했을 거예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오수영과 김세민이 특무대를 대표해서 고개를 숙이자 윤수호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아직 전투가 완전히 끝난 건 아닙니다. 지금부터 혈창 길드의 잔당과 밀수품도 모조리 압수해야 할 테니까요. 괜찮다면 끝까지 도와주시겠습니까?”
“물론이죠! 저야 영광입니다.”
“저는 순직하신 대원들과 군인들을 후속팀과 함께 수습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위원장님도 수고하십시오. 수영이 너도 위원장님 잘 모시고.”
그렇게 윤수호와 오수영은 잔당 토벌을 위해, 김세민은 유해를 수습하기 위해 각자 맡은 바 임무를 위해서 움직였다.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