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8급 재앙종의 후처리 지시를 마친 공승환이 오랜만에 정복을 입고 특무대로 출근했다.
평소 출근한 그가 가장 먼저 향하는 곳은 단련실이지만, 오늘 그의 출근지는 다름 아닌 총사령부였다.
똑똑똑.
“총사령관님, 치우팀 팀장 공승환 대령입니다. 용무 있어 찾아왔습니다.”
“그래, 들어와.”
천호진이 허락하자 문이 열렸다.
공승환이 천호진의 집무실 안으로 들어와 거수경례를 올렸다.
“최강!”
“그래, 앉게.”
천호진은 경례를 받은 뒤 그에게 자리를 권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다용도실로 향했다.
“커피, 녹차. 뭐로 하겠는가?”
“총사령관님. 차라면 제가…….”
“이럴 때라도 좀 앉아서 쉬라는 배려일세. 밥이나 축낼 줄 아는 월급 도둑이 이런 일이라도 해야 눈칫밥은 덜 먹을 게 아닌가. 하하하!”
너스레를 떨며 호탕하게 웃는 천호진의 모습에 공승환은 빙그레 미소를 그리며 대답했다.
“그럼 녹차로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공승환의 앞에 녹차를, 자신의 앞에는 커피를 내려놓은 천호진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렇지 않아도 지옥 훈련으로 몸이 고단한 상황에서 무리한 호출을 하게 되어 미안하네. 사안이 사안인 만큼 자네들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을 거라고 판단했네.”
“상관없습니다. 애초에 지옥 훈련 자체가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한 훈련이니까요. 이 정도로 우는소리를 할 나약한 대원은 제 부하 중엔 없습니다.”
“하하하! 그것참, 총사령관 이전에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 뿌듯한 대답이로구먼그래.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네. 이번에 현장에서 요주의 인물을 만났다지?”
“윤수호 씨 말씀이십니까?”
천호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자네 생각은 어떠한가?”
“전부 보고서로 작성해 올렸습니다만…….”
“형식적인 보고서가 아니라 자네 개인의 솔직한 심정을 묻는 것일세. 내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자네가 짐작하지 못할 리가 없을 텐데?”
천호진의 끈질긴 질문에 공승환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단호하게 대답했다.
“윤수호 씨의 치우팀 추천 건 때문이라면 저는 반대입니다.”
“그래?”
천호진은 놀람을 금치 못했다.
“조금 뜻밖이구먼. 윤수호 씨를 치우 팀에 소속시킨다면 가장 좋아할 사람은 자네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치우 팀 인력 충원 좀 해 달라고 칭얼거리던 사람은 자네가 아니었는가?”
“물론 치우팀의 팀장으로서, 윤수호 씨가 같은 식구가 된다면 저는 두 팔 벌려 환영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치우팀의 팀장이 아니라 저 공승환 개인에게 물으신 질문이라면, 우물에 바다를 담으려는 우를 범하지 마시라고 조언해 드리고 싶은 겁니다.”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할 정도인가?”
“알면서 물어보신 거 아닙니까?”
“나야, 뭐…….”
능청스럽게 너스레를 떠는 천호진의 모습에 공승환은 피식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아무리 상대가 총사령관이라고는 하나 치우팀은 그의 직속이었고, 공승환은 치우팀의 리더이다 보니 둘 사이가 상대적으로 허물이 없을 수밖에.
“그럼 방법은 하나뿐이겠군. 일어나게. 같이 갈 곳이 있네.”
“예? 지금요? 이렇게 급하게 어딜…….”
“청와대.”
* * *
특무대 부속 종합의료센터. 통칭 리커버리 센터.
대한민국 최첨단 의료시설과 최고의 의료진을 갖춘 이곳의 VVIP 병실에는 얼마 전까지 다리 밑 텐트촌에서 생활하고 있었던 윤수호의 부모님이 회복 중이었다.
“어, 엄마, 아빠…….”
오빠와 함께 이곳을 찾은 윤수아는 누워서 산소호흡기를 끼고 깊이 잠든 부모님의 모습에 눈물을 글썽이며 갈피를 잡지 못했다.
“가서 손이라도 잡아 드려.”
“그, 그치만…….”
“네가 무사히 돌아와 준 것만으로도 기뻐하실 분들이야. 너도 알잖아.”
“…….”
윤수아는 의도야 어찌 되었건, 자신이 부모님의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죄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윤수호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을 만큼, 자신을 포함한 가족들은 윤수아를 사랑한다.
그렇기에 그녀의 등을 떠밀어 줄 수 있었다.
“아빠……. 엄마…….”
윤수아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힘겹게 떼어 어렵게 다가가더니, 깡말라 버린 부모님의 손을 감싸 쥐고 고개를 파묻은 채 눈물을 흘렸다.
희끗희끗한 머리, 주름진 얼굴, 여기저기에 세월을 잔뜩 머금은 부모님의 모습을 보니 윤수아는 가슴이 더 미어지는 것 같았다.
“죄송해요…… 말없이 사라져서…… 이제야 돌아와서……. 오히려 걱정만 끼쳐서 너무 죄송해요……. 용서해 주세요…….”
“…….”
윤수호는 부모님의 손을 붙잡고 흐느껴 울며 사과하는 동생의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부모님의 수술은 다행히 잘 끝났고, 이제 회복기에 접어들었다. 최소한의 기력을 회복하고 나서부터는 틈이 나는 대로 기공 치료까지 병행하는 중이었다.
덕분에 회복 속도는 눈에 띄게 빨랐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직 정신을 차릴 정도는…….
“……니?”
“……?”
“수아니? 우리 수아…… 거기 있어?”
“아, 아빠! 아빠, 내 말 들려요? 정신이 들어요? 네?”
아버지가 윤수아의 목소리에 반응하자 윤수아는 물론이고 윤수호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진맥했을 때도 아직 정신을 차리기엔 이른 단계였기 때문이다.
“수아야. 아버지를 계속 불러. 어서.”
“아빠. 저, 수아예요! 제 목소리 들리시죠?”
윤수호는 동생이 아버지를 애타게 부르는 사이 서둘러 아버지의 손목을 잡고 진맥했다. 그러자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크게 변화가 없던 맥박이 동생의 목소리에 자극을 받으면서 서서히 활성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비단 아버지 윤지석만이 아니라 엄마 오혜연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아, 수아야…….”
“엄마! 나, 여기 있어. 제발 눈 좀 떠봐요. 응?”
마치 잠꼬대하듯이 방향을 잃은 수아의 이름이 엄마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러자 윤수아는 자신이 여기 있다는 사실을 엄마에게 각인시킬 기세로 그녀의 손을 움켜쥐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그사이, 윤수호는 요동치는 두 사람의 기를 차분하게 다스렸다. 그러면서 기껏 살아난 기가 다시 가라앉지 않도록 전신을 순환시키며 인도해 주었다.
그는 자신의 기도 조금씩 흘려 넣어, 몸에 쌓인 노폐물 중에서 기의 흐름을 완전히 틀어막는 것들만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조심스럽게 허물었다.
그러자 부모님의 기가 빠르게 안정되기 시작하면서, 마침내 두 사람의 눈꺼풀이 살짝 들렸다.
“엄마! 아빠!”
“수아니? 너, 정말 우리 수아 맞아?”
“엄마! 나 수아야! 나 수아 맞다고!”
와락!
그렇게 윤수아는 엄마의 품에 와락 안겨 눈물이 마를 때까지 오열하였다. 그리고 오혜연 역시 딸의 등을 조심스럽게 다독여 주면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런 아내와 딸을 바라보면서, 윤지석은 가만히 아들의 손을 잡아 주었다.
“정신을 잃은 사이에 문득문득 네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더구나. 그때는 꿈인 줄 알았는데…… 지금은 그저 이게 꿈이 아니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꿈이 아니에요. 한숨 푹 주무시고 일어나셔도 저랑 수아는 두 분 곁에 있을 겁니다. 그러니 마음 놓고 쉬세요, 아버지.”
“그래, 고맙다. 수호야. 그리고 다시 만나서 정말 기쁘구나……. 돌아와 줘서 고맙다, 아들아.”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
아버지…….
그동안 그 단어를 얼마나 부르고 싶던지, 다시 볼 수 있었던 아버지의 미소는 여전히 인자하고 따스했다.
그렇게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시 휴식을 위해 잠들자 윤수아는 부모님의 곁을 지켰고, 윤수호는 조용히 누군가의 연락을 받더니 병실을 나섰다.
“윤수호 씨 되십니까?”
“예, 제가 윤수호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청와대 비서실의 안칠국이라고 합니다. 윤수호 씨를 청와대까지 모시러 왔습니다.”
안칠국은 차의 뒷좌석 문을 열어 주고는, 윤수호가 탑승하자 문을 닫고 자신도 보조석에 탑승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그렇게 윤수호를 태운 차량은 막힘없이 청와대로 향했다.
* * *
청와대에 도착한 윤수호는 자연스럽게 주변을 훑어보았다.
TV 뉴스나 신문에서 자주 보긴 했지만 실제로 이렇게 와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만큼 신기하기도, 생소하기도 한 윤수호였다.
‘TV로 봤던 것보다 검소한 편이군. 경비는 특무대 사령부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인가?’
똑똑똑.
“각하. 윤수호 씨를 모셔왔습니다.”
“안으로 모시게.”
한눈에 봐도 위엄이 느껴지는 대통령 집무실을 안칠국이 노크하자 안쪽에서 허락이 떨어졌다.
그렇게 문이 열리고 안칠국이 옆으로 비켜서자, 윤수호가 안으로 입장하였다.
가장 먼저 그의 눈에 띈 사람은 당연히 현 대한민국의 국군 통수권자이자 지도자인 대통령이었다.
나이는 50대 초중반이나 되었을까? 상당히 젊고 패기가 넘쳐 보이는 사람이었다.
‘대통령을 경호하는 두 사람은 치우팀인가?’
대통령을 양쪽에서 지키고 있는 두 명의 경호원은 일전에 만났던 치우팀과 비슷한 수준의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먼저 대한민국 국민을 대표해, 하흥시에서 있었던 국가 재난급 재앙종을 물리쳐 주신 윤수호의 씨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대통령, 선우진이라고 합니다.”
“윤수호입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마십쇼.”
“해야 할 일을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 상대가 국가 재난이라 불리는 8급 재앙종이라면 더더욱요. 보상은 물론이고, 감사의 말을 아무리 드려도 부족할 지경입니다.”
“그럼 사양 않고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저를 이 자리에 부르신 이유가…….”
윤수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자리에는 자신과 대통령 외에도 특무대 총사령관 천호진과 치우팀 팀장 공승환 역시 함께 있었다.
윤수호와 시선이 마주치자 미리 일어서 있던 두 사람이 가볍게 목례로 윤수호에게 인사를 건넸다.
“일단 앉아서 얘기하시죠.”
그렇게 윤수호와 대통령까지 자리에 앉자, 비서실에서 준비한 차를 사람들 앞에 내려놓았다.
먼저 말문을 연 사람은 대통령 선우진이었다.
“이번 사건에 대한 보고서와 함께, 윤수호 씨에 대한 인적 사항과 그간의 사정들도 총사령관께 함께 보고를 받았습니다. 사실 보고를 받으면서도 믿기지가 않더군요. 윤수호 씨가 총사령관에게 했던 얘기가 모두 사실이 맞습니까?”
“맞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호칭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일단은 오백 살이 넘은 어른이시니…….”
대통령은 생각보다 윤수호의 사정을 쉽게 받아들인 모양이다.
그것은 선우진이 보기보다 현실주의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믿기 힘든 일이라도 검증이 끝나 사실로 판명됐다면, 그 사실을 의심하고 부정하기보다 그 사실을 기반으로 유리한 정책이나 계획을 수립하는 것에 더 신경 쓰는 타입인 것이다.
“그곳에서 나이를 생각하며 살아오진 않았습니다. 이곳에서도 그걸로 괜한 취급을 받을 생각은 없고요. 그냥 편하게 대해 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하면 지금까지처럼 편하게 부르도록 하죠.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군요. 편하게 말씀하시는데도 단어 하나하나에 힘이 느껴지고 위엄과 품격이 존재하니 말입니다. 오늘 귀하를 처음 만난 저도 귀하에게 믿음이 느껴지는 것이 그저 신기할 따름입니다. 현재 이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로서 그런 부분은 꼭 좀 배우고 싶은 심정이랄까요.”
그 부분에 대해서 윤수호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오랜 세월 수많은 인간 군상을 만나고 경험했습니다. 이건 그저 그 과정에서 말에 진심을 담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했을 뿐이지요.”
“그런가요? 이거 바쁜 분을 불러놓고 괜한 얘기로 시간을 빼앗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그럼 본론으로 넘어가도록 하죠. 윤수호 씨.”
“예.”
“특무대 입대를 희망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 이유를 직접 본인께서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선우진의 질문에 윤수호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솔직담백하게 대답했다.
“제게는 지키고 싶은 가족이 있습니다. 그들이 이 땅에서 평화롭게 지내며 부족함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그게 제가 바라는 모든 것입니다. 하지만 이 땅에는 평화가 없고, 제게는 풍족함이 없습니다. 서로 필요한 것을 보완해 채워 줄 수 있다면 저는 제 능력을 기쁘게 사용할 겁니다.”
“그렇군요. 이것 참……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이렇듯 사람의 심장을 울릴 수 있다니, 윤수호 씨에게는 거짓말탐지기 같은 건 의미가 없겠군요. 진심이 사람의 마음을 이토록 감동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하지만…….”
선우진은 다소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강한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법. 현재 특무대에서는 그 어느 부대에서도 윤수호 씨를 책임질 만한 부대가 없는 게 사실이지요. 그 치우팀을 포함해도 말입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대통령은 비서실장에게서 귀금속을 품고 있을 만한, 작지만 고급스러운 파란 상자 하나를 건네받았다.
“혹시 특무대 최고위원장 자리는 관심이 없으십니까?”
그가 상자를 열어 윤수호의 앞에 내려놓았다. 상자 안에는 봉황이 무궁화를 감싸고 있는 듯한 멋들어진 모양새의 금장 배지가 들어 있었다.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