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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이 돌아왔다-23화 (23/175)

23.

거리가 상당히 멀었음에도 충격파에 휩쓸린 헬기는 순식간에 박살 나며 덩달아 조종사들마저 기절해 버렸다.

하지만 헬기에 탑승자들은 일반 특무대원도 아닌 치우 팀 대원들이다. 그들은 부서진 헬기가 추락하기 전에 기절한 조종사들을 데리고 빠르게 헬기를 벗어났다.

그렇게 무사히 헬기를 벗어난 순간.

콰아앙!

헬기가 폭발하며 공중에서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모두 무사하냐?”

“예, 팀장님.”

“파일럿들도 기절했을 뿐,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원이, 너는 본부에 연락하고 기절한 파일럿들을 이곳에서 보호하고 있도록. 나머지는 현장을 확인한다.”

“최강.”

공승환의 지시에 복명한 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바밧!

바람보다 빠르게 달려 현장에 도착한 순간, 그들은 눈앞에 드러난 진풍경에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와…….”

“대박…….”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거냐?”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해수욕장과 인근 바다, 마을의 절반이 사라지고 생겨난 직경 십여 km짜리 거대 크레이터였다.

그 한가운데에는 방금까지 멀쩡했던 재앙종이 뻗어 있었다. 안광은 사라지고 미동조차 하지 않는 것이, 아무래도 숨을 거둔 듯싶었다.

콰아아아아아.

서해의 바닷물은 강렬한 폭포 소리와 함께 크레이터를 빠르게 빠르게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이 광경을 만든 당사자, 윤수호는 섬의 봉우리…… 아니, 재앙종의 등껍질 중 가장 높은 곳에 앉아 쉬고 있었다.

“그걸 맞고도 형체가 거의 온전하게 남아 있을 줄은…….”

윤수호는 죽은 재앙종을 내려다보며 혀를 내둘렀다. 아마 녀석의 사인은 충격파로 인해 내장이 진탕된 탓일 터였다.

‘만일 녀석의 외골격이 충격을 흡수하는 특성이 있었다면 음양대멸뢰를 맞고도 멀쩡하게 살아 있었단 뜻이겠지.’

물론 음양대멸뢰를 견뎠다고 해서 윤수호에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방법은 차고 넘쳤다.

문제는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지금의 크레이터가 귀여워 보일 정도의 피해가 발생했을 것이다.

윤수호는 다가오는 인기척을 느끼며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왔구먼.”

“윤수호 씨! 제 말 들리십니까?”

윤수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폴짝 뛰더니, 자신을 외쳐 부르는 공승환 앞에 가볍게 내려섰다.

“혹시 윤수호 씨가 맞으십니까?”

“그렇습니다만, 누구시죠?”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치우 팀의 리더, 공승환 대령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위명이 높은 분을 실제로 만나 뵙게 되어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반갑습니다, 공승환 대령님. 어쩐지 특별히 강한 기운을 자연스럽게 갈무리하고 계신 것이 평범한 분은 아닐 거라 생각했습니다.”

윤수호는 공승환과 가볍게 악수를 나누었다.

“그런데…….”

악수를 나눈 공승환은 윤수호의 어깨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시선 끝에는 쓰러져 있는 8급 재앙종이 있었다.

“좀 크죠? 처리하기 좀 까다롭겠군요.”

“아, 아니, 이건 처리가 문제가 아니라…….”

“혹시 제가 모르는 다른 문제가 있습니까?”

“…….”

공승환은 할 말을 잃었다.

솔직히 공승환은 자신이 특무대에서도 나름 목에 힘주고 다닐 만한 강자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어지간한 재앙종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으며, 6급 재앙종까지는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서도 상대할 수 있다.

하지만 8급?

공승환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실제로 보는 것조차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보자마자 깨달았다. 이건 쓰러트리고 자시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을 포함해 치우 팀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그게 관건이었다.

미국에서 핵을 쏴서 녀석을 쓰러트릴 때까지 버텨 준다면 그나마 다행. 그조차도 못 버틴다면 그 피해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만약 녀석이 이대로 북상하여 서울이라도 습격한다면? 대한민국은 그날로 종말이나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윤수호는 아무도 모르게 대한민국의 종말을 막은 셈이다.

그것도 혼자서.

‘그런데 한다는 말이 고작 뒤처리가 힘들겠다고?’

공승환은 혀를 내둘렀다.

허세 같은 게 아니었다. 정말로 이 사람에게는 8급 재앙종 정도의 괴물조차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아뇨,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그리고 감사드립니다, 제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셔서.”

공승환은 진심으로 감사를 담아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사실 자만하고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에 저와 비견되는 강자는 손에 꼽을 수준이니까요. 게다가 아무리 훈련해도 더 이상은 실력이 늘지 않아서…… 솔직히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알고 있던 세상은 우물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덕분에 말이죠.”

“그런가요.”

윤수호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그저 그의 말을 담담히 받아 주었다.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당신에게 가르침을 청하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습니다만…….”

“팀장님?”

“그거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이세요?”

공승환의 가식 없는 솔직한 발언에 팀원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물론 이 황당한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지만…….

솔직히 자신들은 윤수호가 존경스럽다기보다는 조금 더 다른 감정이 앞섰던 게 사실이다.

그것은 경외? 두려움? 사실 구분이 애매했지만 아마 신(神)을 대하는 감정 쪽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힘들까요?”

“예, 죄송하지만 그건 힘들 것 같습니다. 이미 팀장님께서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올바른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계십니다. 이제 와서 새로운 방식을 고집하는 것보다, 늦더라도 지금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 벽을 우직하게 깨고 나아가시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할 테죠.”

“쉬운 길을 찾지 말고 어렵더라도 제 길을 가라는 말씀이시군요. 조언 감사합니다. 하지만 가끔, 정말 가끔은 도움을 청해도 될까요?”

‘정말이지 순수하게 강함을 동경하는 사람이로군. 무인 중에서도 이런 자는 흔치 않은데 말이야.’

윤수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공승환처럼 우직하고 한결같은 사람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예,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지.”

“감사합니다!”

윤수호가 허락하자 공승환은 체면도 지위도 잊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 * *

“오빠!”

와락!

윤수호가 하흥산으로 돌아오자 윤수아가 득달같이 달려와 오빠의 품에 와락 뛰어들었다.

“걱정했잖아, 바보야! 죽는 죽 알았단 말이야! 위험할 것 같으면 바로 도망쳐야지, 왜 그런 괴물을 혼자 맞서냐고!”

“약속했잖아. 무사히 돌아오겠다고.”

눈물을 펑펑 쏟으며 서럽게 우는 윤수아.

그런 동생의 모습에 윤수호는 미소를 그리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몸은? 다친 데는 없고?”

“정말 괜찮아.”

“어디 봐 봐.”

“진짜라니까……. 야, 야, 거기는!”

콧물을 훌쩍이며 도끼눈을 뜨고 자신의 이곳저곳을 살펴보는 동생을 말리느라 윤수호는 오히려 재앙종을 상대할 때보다 진땀을 흘려야 했다.

“형님!”

동생과의 해후가 대충 정리된 듯 보이자, 옆에서 초조한 기색으로 기다리고 있던 이선호가 냉큼 윤수호에게 달려왔다.

“어, 선호야, 고생 많았다. 피난민들은?”

“모두 무사합니다. 이게 전부 형님 덕분입니다.”

“그래, 무사해서 다행이네. 그나저나 이걸 어쩌냐. 마을이 반쯤 날아가 버려서…….”

윤수호의 걱정에 이선호는 한순간 허탈해하다가 피식 웃으며 수긍했다.

상대는 윤수호. 자신의 상식으로는 측정 불가능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반파된 마을은 지금 당장 수복이 불가능하지만 걱정 마십쇼. 피난민들은 다른 피난민 거주 구역으로 안전하게 이송될 테니까요. 그리고 마을이 부서졌다고 형님을 탓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안 그런가요, 여러분?”

이선호가 사람들에게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많은 주민이 모여 윤수호를 향해 거듭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구세주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젊은 친구가 엄청나구먼. 마치 내 젊은 시절을 보는 것 같어.”

“이 양반 쉰 소리는 걸러 들어요. 그리고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자, 우리 영웅분께 늙은이들이 드릴 것도 없는데 힘차게 박수라도 드립시다!”

“와아아아아아!”

짝짝짝짝짝짝짝!

사람들의 열렬한 환호와 박수 소리에 윤수아는 뿌듯한 미소를 그리며 오빠의 손을 꼬옥 잡았다.

“오빠.”

“응?”

“잘했어!”

피식.

“그래, 고맙다.”

* * *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크레이터는 바닷물로 완전히 채워졌고, 8급 재앙종의 사체는 반쯤 수면 위로 나와 있어서 정말로 섬 하나가 새로 생긴 듯한 모습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분석팀과 수거팀의 거의 모든 병력이 그 사체에 달라붙어 인양작업을 시작했지만…….

“아무래도 인양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애초에 섬 하나를 들어내는 것과 똑같은 작업이니…… 그냥 물속에서 해체 작업을 하는 게 더 빠를 것 같은데요?”

수거팀 팀장이 직접 공승환을 찾아와서 의견을 전달하자, 그는 분석팀 팀장을 쳐다보았다.

“분석팀의 작업은 어떻습니까?”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저걸 연구소로 끌고 가는 것도 불가능하고, 설령 끌고 간다 해도 저걸 처박아 둘 창고는 없으니까요. 그냥 여기에 임시 연구소를 만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의 의견을 종합한 공승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곳에 임시 해체 공방과 연구소를 세우고 경계 병력 배치를 총사령관님께 건의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상 작업 시간은 어느 정도가 되겠습니까?”

“글쎄요. 워낙 외피가 단단해서 일반적인 장비로는 씨알도 안 먹히고, 오러가 강력한 팀장급 인력을 이용해서 조금씩 해체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저건 뭐, 제가 살아 있는 동안 해체해도 반도 못 하지 않을까 싶네요.”

“그럼 핵을 꺼내는 것도 힘들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뇨, 핵 같은 경우는 체내로 침투해서 핵만 분리해 수거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 경우 빠르면 한 달, 아무리 늦어도 석 달 이내에는 작업이 가능합니다.”

공승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장 궁금했던 사실을 물었다.

“혹시 이 정도 재앙종의 핵이면 그 가치가 어느 정도나 될지 짐작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저도 직접 봐야 알겠지만, 아마 지금까지 발견됐던 핵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겁니다. 어쩌면 이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나라가 십수 년은 꽁으로 쓸 에너지를 얻을지도 모르고. 그 가치는 뭐, 수 조? 수십 조? 아무튼 판다고 하면 부르는 게 값이겠죠.”

“근데 그게 사실입니까? 이걸 사람이 혼자서 때려잡았다는 게?”

분석팀장이 못내 의심을 내려놓지 못하고 공승환에게 묻자, 공승환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가 제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솔직히 그러고도 제가 본 게 사실인가 싶지만요.”

“그럼 혹시 우리나라에도…….”

“톱 텐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톱 텐요. 혹시 우리나라에도 톱 텐이 생긴 겁니까?”

기대에 찬 두 사람의 눈빛을 받으며 공승환은 고개를 저었다.

그에 두 사람의 눈빛이 살짝 실망으로 기울 무렵, 그가 대답했다.

“톱 텐 따위가 아닙니다. 그들조차 범접하지 못할 새로운 강자니까요. 그분은…… 쑥스럽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온리 원이라고 해야 할까요?”

“오, 온리 원요?”

“크흠! 그건 좀 오그라들긴 하군요.”

“그러니까 ‘굳이’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크, 크흠!”

공승환은 얼굴을 붉힌 채 헛기침을 하며 괜히 목소리를 높였다.

검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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