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팀장님, 트럭들이 전부 물자 운반용이라 아무래도 연로하신 어르신들을 태우고 먼 길을 이동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럼 카트째로 어르신들을 싣고 근처 후방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대피한다. 거기서 재앙종의 이동 경로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다가, 놈의 이동 경로를 피해 움직이도록.”
“섬멸!”
이선호의 명령에 대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화물 운반용 트럭들이 대다수라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싣고 장거리 대피를 하기는 불가능했지만, 이런 트럭이라도 있는 게 천만다행인 상황이었다.
그렇게 대원들과 지원팀은 보호소 직원들과 함께 보호소 환자 및 하흥 시내 사람들의 긴급 대피를 돕기 시작했다.
그들이 가장 처음 대피소로 점찍은 곳은 인근 후방에서 가장 높은 하흥산이었다.
보호소 직원들과 노인들이 먼저 차로 도착할 수 있는 하흥산 중턱에 도착하고, 뒤이어 하흥시에서 올라오는 피난민들이 속속 당도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사람들의 시선을 단숨에 잡아끄는 무언가가 출현하여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어머머머, 저게 뭔 일이래?”
“세상에나, 마상에나…….”
“지금 내가 꿈을 꾸는 건가?”
“저, 저게 섬이여? 산이여? 어떻게 저런 게 움직일 수 있는겨?”
흡사 거북이를 닮은 8급 재앙종이 등장하자, 직선거리로 대략 6~7km가 떨어진 하흥산 자락으로 대피한 사람들조차 재앙종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습을 드러낸 재앙종의 정체를 확인한 이선호의 얼굴에서는 핏기가 가셨다.
“저게 대체 무슨……!”
재앙종은 보통 몸집과 급수가 비례하는 편이다. 즉, 덩치가 클수록 강한 개체일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그런데 특무대에 입대한 이후로 많은 재앙종을 섬멸했지만 저만한 몸집을 가진 재앙종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자신이 봤던 가장 강력한 개체인 6급 재앙종조차 녀석에 비하면 갓난아기 수준이었다.
“팀장님!”
“저건 진짜 말도 안 되는 크기입니다! 저 정도면 아무리 못해도 8급은 될 거라고요!”
“여기도 위험하지 않을까요? 지금 당장 이동하는 게…….”
녀석의 실체를 확인한 대원들이 사색이 된 얼굴로 이선호를 찾아와 건의하자, 이선호는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지금 이 근처 도로는 지난날에 재앙종들이 난리 친 탓에 많이 망가졌고, 보수도 되지 않았어. 그런 상황에서 이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움직인다면 분명 차가 막힐 거다. 만약 피난이 막힌 상황에서 저런 터무니없는 괴물이 접근한다면 그날로 우린 전부 죽은 목숨이야. 아니, 까놓고 말하지.”
이선호는 쓴웃음을 지으며 재앙종을 가리켰다.
“저걸 피해 대한민국 어디로 가야 안전할 수 있다는 거지?”
“…….”
이선호의 물음에 대원들은 그야말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팀장님!”
그때였다. 윤수아가 누구보다 심각한 표정으로 다급하게 이선호를 찾아온 것은.
“수아 씨…….”
“오, 오빠는요? 설마 아직도 저런 괴물을 막겠다고 저기 있는 건 아니겠죠?”
“……입이 열 개라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저도 달려가 형님을 돕고 싶지만, 분하게도 제가 가 봤자 형님의 방해만 될 뿐입니다.”
으드득!
부들부들 떨리는 이선호의 주먹을 보면서, 윤수아는 그가 자신만큼이나 윤수호를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오빠…….”
그녀는 간절히 기도했다.
‘하느님, 제 남은 인생 전부를 가져가신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제발 우리 오빠를 지켜 주세요. 제발…….’
* * *
눈앞에 나타난 거대 거북이는 윤수호에게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혹시 이 녀석한테 이게 통하려나?’
이런 녀석이 본격적으로 날뛰기 시작하면 그 피해는 걷잡을 수 없다. 되도록이면 간단하고 빠르게 처리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었다.
거기에 대해서 가장 높은 효율을 자랑하는 무공이라면 단연 한 가지.
심검(心劍)이 있었다.
팟.
윤수호는 녀석의 정면으로 날아가 마치 검을 쥐듯 손을 동그랗게 말아 쥐었다. 누가 봤다면 정말로 윤수호가 들고 있는 한 자루의 검이 머릿속에 그려졌을 터였다.
윤수호는 거북이를 향해 그것을 망설임 없이 내질렀다.
쿵! 쿵!
그러나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놈은 여전히 해안가를 향해 빠른 속도로 접근 중이었고, 놈의 걸음에 밀려든 파도가 해안 마을을 덮치기 시작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나…….’
윤수호는 크게 아쉬워하지 않았다.
심검은 물리력을 가진 무공이 아니다. 검의 극의를 초월한 심득을 얻었을 때만이 깨달을 수 있는 무공이었다.
그 원리는 일종의 절대 암시.
심검을 휘두르는 순간, 상대의 모든 감각이 자신이 검에 베였다고 믿어 의심치 않게 만드는 것이다.
검에 심장이 관통당하면 죽는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일반적인 상식이다.
그러나 눈앞의 거북이는 검이 뭔지도 모르고, 그게 심장을 관통한다고 해서 죽는다는 개념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마치 독과 초콜릿을 모르는 아이에게 독이 든 초콜릿을 먹으면 죽는다는 사실을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것을 경험하기 전까지는 암시 자체가 통하질 않는 것이다.
‘결국 녀석을 멈출 방법은 물리력밖에 없다는 뜻인데…….’
“응?”
윤수호는 검지와 중지를 뻗고 나머지 손가락을 말아 쥐어 검결지를 쥐었다가, 곧바로 나머지 손가락을 모두 편 수도로 형태를 전환했다.
거북이의 벌어진 아가리 속에서 어마어마한 마기가 압축되는 것을 느낀 것이다.
“이런……!”
그 순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거북이의 목구멍에서 엄청난 마기가 압축된 에너지포가 미친 기세로 쏟아져 나왔다.
‘피하면 끝이다!’
자신이 피하는 순간, 녀석의 에너지포는 피난민들을 한순간에 먼지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물론 자신의 동생도 포함해서!
그 순간, 새하얀 강기가 윤수호의 수도를 감싸며 마치 도(刀)와 같은 형태로 압축되었다. 그는 강기를 휘둘러 하늘과 땅 사이의 공간을 수직으로 베어 버렸다.
뇌력천지참.
강기에서 발출된 거대한 참격이 거북이의 에너지포를 정면으로 베어 가르며 거북이에게 쇄도했다.
콰아아앙!
에너지포를 베어 가른 참격은 거북이의 주둥이와 충돌하며 폭발을 일으켰다.
다만 에너지포를 베어 내느라 참격의 기운도 많이 소비된 탓인지, 먼지 구름이 걷힌 거북이의 안면은 멀쩡한 모습이었다.
‘지금 상태로는 이 정도가 한계인가.’
윤수호가 무기 없이 맨손으로 발휘할 수 있는 참격은 이 정도가 한계였다.
문제는 그의 내력을 감당할 수 있는 검이 없는 이상, 어떤 검이나 무기를 사용한들 맨손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참격으로 거북이의 이목을 잡아끈 것만큼은 확실한 모양이었다. 녀석은 이번엔 확실히 윤수호를 겨냥하여 다시 아가리를 벌렸다.
“그렇게는 안 되지.”
촤촤촤촤촤촤촤!
질을 높일 수 없다면 양을 늘일 수밖에.
윤수호는 다른 손에도 도강을 형성하더니, 두 손을 빠르게 휘둘러 참격을 날리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콰콰콰콰……!
하나하나가 집채보다 더 큰 크기를 자랑하는 초승달 형태의 참격들이 거북이의 정면에서 빗발쳤다.
하나 녀석의 걸음은 느려졌을지언정 멈추지 않았다. 에너지포를 가른 참격이 몸에 적중했지만, 딱히 눈에 띄는 부상을 당하지도 않았다.
녀석은 그저 묵묵히 윤수호의 공격을 견디며 돌진할 뿐.
하나 그것이 이 재앙종의 가장 무서운 점이었다.
자신만큼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을 가진 것도 아닌데 사자가 코끼리를 피하는 이유는 단 하나. 압도적인 덩치와 내구력, 그리고 무게 때문이다.
그저 뿌리치는 것, 그저 돌진하는 것, 그저 들이받는 것 하나하나가 강력한 무기가 되는 탓이다.
그런데 눈앞의 재앙종은 그런 코끼리가 벼룩 정도로 보일 만큼 거대하다. 어지간한 섬이나 산도 놈보다 작을 것이다.
아니, 차라리 섬이나 산이었다면 지금 윤수호가 날린 참격들로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겠지. 놈의 내구력은 섬이나 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과연 국가 재난급이라 이건가. 오철민 국장이 난리 친 이유가 있었군.’
윤수호가 후방으로 기감을 넓혔다. 그러자 아직 미처 피난하지 못한 사람들의 인기척이 걸려들었다.
이대로라면 녀석이 상륙하고 적지 않은 인명 피해가 발생할 터였다.
“그렇게는 안 되지.”
윤수호는 양손에 이어 두 다리까지 휘둘렀다. 그러자 놀랍게도 두 발 끝에서도 손과 마찬가지로 강력한 참격이 날아가 거북이를 덮쳤다.
양손과 양발을 빠르게 회전하며 휘두르는 윤수호의 모습은 마치 ‘공’과 같았다. 초고속으로 회전하는 공 말이다.
그런데 공에서 뿜어져 나오는 참격들이 이제는 거의 폭풍이 되어 거북이를 미친듯이 몰아붙였다.
촤촤촤촤촤촤촤촤촤촤촤촤촤……!
결국 거북이도 그 자리에 멈춰서서 버티기 시작했다. 놈의 껍질이 빠르게 깎여 나가기 시작했지만, 덩치에 비하면 큰 피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아가리를 벌린 녀석이 고농축 에너지탄을 연발로 쏟아붓기 시작했다. 마치 기관총처럼…….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연발로 쏟아붓는 에너지탄과 참격의 폭풍이 허공에서 부딪히며 연쇄 폭발이 끊이지 않았다.
그사이, 치우 팀이 탑승한 특수 헬기가 현장에 도착했지만, 그들은 감히 착륙할 생각도 못 하고 그 광경을 헬기 안에서 지켜볼 뿐이었다.
“저게 무슨…….”
“재앙종도 말이 안 나오는 괴물이지만, 그걸 혼자서 막고 있는 저 인간은 진짜 차원이 다른 괴물이네요.”
“저자가 윗선을 떠들썩하게 만든 윤수호란 사람이겠죠?”
“…….”
치우팀은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상공, 헬기 안에서 두 사람의 전투를 관전하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중, 치우 팀의 현 팀장인 공승환 대령의 눈빛은 다른 팀원들보다 훨씬 무거웠다.
과연 자신들이 저 현장에 진입한다고 윤수호의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냉정하게 생각하면 발목을 붙잡진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군.’
공승환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틀어쥐었다. 그것은 대한민국 최강자 중 한 명이라는 자신의 자부심을 윤수호가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기 때문이었다.
한편, 마을에서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자 윤수호는 공세를 멈추고 거북이를 쳐다보았다.
“이제 헤어질 시간인 모양이다.”
윤수호는 두 주먹을 말아쥔 뒤 그것을 가슴 어림에서 마주 보게 두었다.
그러자 오른쪽 주먹에서는 어마어마한 양기가, 왼쪽 주먹에서는 무시무시한 음기가 흐르며 서로 순환하고 충돌하길 반복했다.
파지직, 파직! 쿠르르릉! 콰쾅!
그 과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증유의 거력이 급격하게 증폭하기 시작하자, 표정이 없는 거북이도 뭔가 다급해하는 것 같았다.
그 증거로 지금까지 중에서 아가리를 가장 크게 벌린 녀석이 에너지를 빠르게 압축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압축하는지, 녀석의 거대한 몸통 안쪽에서 붉은빛이 새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윤수호는 오히려 그 광경을 보며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외쳤다.
“이걸 사용하는 건 네가 두 번째다. 과연 네 녀석은 이걸 받고도 살아 있을지 궁금하구나.”
그 순간, 먼저 공격을 시작한 건 거북이였다.
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첫 포격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엄청난 크기의 에너지포가 윤수호를 향해 쇄도했다. 적어도 도시 한두 개 정도는 순식간에 증발시켜 버릴 에너지가 거기에 담겨 있었다.
“위험해!”
“도망치지 않고 뭐 하는 거야?”
“설마 공포 때문에 몸이 굳은 건가?”
지켜보고 있던 치우 팀조차도 놀라 소리치며 윤수호를 걱정했다. 에너지포가 코앞에 당도할 때까지 윤수호가 미동도 하지 않았던 탓이다.
그렇게 에너지포가 윤수호를 집어삼키려던 찰나, 그가 두 손을 동시에 정면으로 쭉 내질렀다.
그 순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한 차례 충격파가 사방으로 뻗어 나간 후, 거대한 빛의 돔이 거북이와 윤수호를 집어삼키며 빠르게 영역을 확장하였다.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