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돌아왔다-21화 (21/175)

21.

다음 날.

“이게, 이게 뭔 일이래?”

“그러게. 세상 참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네…….”

보호소 직원 할머니들이 놀란 표정으로 보건소 앞에 모여 있었다. 보건소 앞에 때아닌 트럭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트럭에서는 식량과 생필품부터 시작해서 많은 지원 물자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디 불편한 곳은 없으세요?”

“허리가 좀…….”

“저희가 봐 드릴게요. 이쪽으로 오세요.”

최첨단 의료 기기를 탑재한 이동 의료 버스와 의료진까지 보호소를 찾아와서, 보호소 주민들은 물론 직원들의 건강까지 살폈다.

“검수 끝났습니다, 형님. 물자는 전부 도착했습니다.”

“그래, 고생했다. 그나저나 총사령관님께 굉장히 감사한 선물을 받았어. 설마 수아를 찾았다고 연락드리자마자 이런 걸 보내 주시다니.”

“에이~ 이 정도도 사실 약소한 거죠. 6급 재앙종은 둘째치고, 흑사 길드만 하더라도 녀석들을 검거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경비를 다 해도 족히 수십억은 넘게 들어갈걸요. 그걸 형님 혼자서 전부 해결하셨으니, 사실상 이 정도는 새 발의 피 같은 거죠.”

윤수호는 피식 웃었다. 그러자 이선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왜 웃으십니까, 형님. 제가 무슨 이상한 말이라도…….”

“아니, 네가 총사령관님과 똑같은 얘기를 해서. 그분도 그랬거든. 더 해 주고 싶은데, 더 하면 내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이 정도만 하는 거라고.”

“오빠!”

그때였다.

윤수호가 꼬인 기혈을 다스려 준 덕분에 오랜만에 잠을 푹 잤던 윤수아. 덕분에 그녀의 혈색은 이전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

그녀는 출근하자마자 곧장 윤수호를 찾아와 보호소 앞에 늘어선 트럭들과 수많은 사람을 가리키며 물었다.

“대체 이게 다 뭐야?”

“특무대 총사령관님이 너한테 주는 선물이라더라. 네가 무슨 선물을 주면 좋아할지 몰라서 나한테 물어봤거든. 그래서 이런 거라고 얘기했더니 그대로 보내 주셨네.”

“뭐, 뭐라고? 특무대 총사령관님? 아니 그런 높으신 분이 왜 나한테 이런 걸……. 아니, 근데 오빠는 특무대 총사령관님을 어떻게 알아?”

“이 오빠의 예비 직장이라고나 할까……. 아직 심사 중이라고나 할까. 뭐, 아무튼 오빠, 취직할 거 같다.”

“진짜? 오빠가 특무대에?”

“크흠!”

깜짝 놀라는 윤수아에게, 옆에서 듣고 있던 이선호가 헛기침을 하며 윤수아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아, 죄송합니다. 너무 정신이 없어서 누가 계신지도 모르고 있었네요. 처음 뵙겠습니다. 윤수호의 동생, 윤수아라고 합니다.”

“섬멸! 대한민국 특수임무대대 섬멸부대 101팀 팀장이자 수호 형님께서 가장 아끼는 동생 이선호라고 합니다. 이렇게 무사하신 모습으로 수아 씨를 뵐 수 있어서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고개 숙여 인사하는 윤수아에게 이선호는 마치 총사령관에게 경례하듯 각 잡힌 모습으로 거수경례를 올리며 우렁차게 자신을 소개했다.

“섬멸팀 팀장님요? 어휴, 죄송합니다. 제가 대단한 분을 몰라뵙고……. 부족한 오빠를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어휴! 이러지 마십쇼. 형님께서 부족하다니요? 저야말로 부족한 것투성이입니다. 수호 형님에 비하면 전 그렇게 대단한 녀석도 아니고요.”

“대단한 거 맞지. 설령 실력이 있다 해도 누구나 섬멸팀 팀장이 되고 싶은 건 아니잖아. 나라와 가족을 위해서 목숨 내놓고 사는 사람들인데.”

“아, 진짜 형님까지……. 오늘 남매가 쌍으로 왜 이러십니까. 아주 그냥 두 분이 똑같으십니다.”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한 이선호의 투정에 남매가 크게 웃었다.

“그런데 팀장님, 오빠가 특무대에 입대할 수도 있다는 게 사실이에요?”

“그냥 입대 정도가 아니라 총사령관님께서 직접 형님을 스카우트하셨습니다. 보직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절대로 낮은 자리는 아닐 거고요. 아니, 솔직히 말해서 수호 형님의 능력이라면 어떤 나라를 가건 그 나라 특무대의 최중요 보직은 떼어 놓은 당상이죠. 아직 형님이 크게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정말요? 오빠 진짜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었어?”

“그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수아야. 이제부터 우리 가족은 내가 책임진다. 예전에는 풍족하지 못해도 부족함 없이 사는 게 내 목표였지만, 이제는 누구보다 풍족하고 행복하게 살게 해 줄게.”

그 말에 윤수아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무리하지 말라고 말리고 싶은 심정은 굴뚝같지만, 어차피 말도 안 들을 거고……. 오빠는 그게 행복한 거지?”

“하여간 눈치 귀신 어디 안 갔네. 오빠가 좋아하는 건 귀신같이 알고 있다니까.”

윤수호가 씨익 웃으며 동생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자, 그 모습을 옆에서 이선호가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자 윤수호가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훔치며 물었다.

“근데 뭘 그렇게 멍하니 쳐다보고 있어? 내 얼굴에 뭐라고 묻었나?”

“아뇨, 그냥 신기해서요. 겉보기에는 이모……가 아니라 누나 동생처럼 보이는데 사실은 오빠 동생인 거잖아요. 두 분은 어제 만나셨는데 벌써 그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신 것 같아서요.”

그 사실이란 말의 의미를 윤수아는 자연스럽게 눈치챌 수 있었고, 그녀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어떤 사람이든 전 윤수호의 여동생인 것처럼, 오빠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건 윤수호는 윤수아의 오빠니까요.”

“그렇군요. 부럽습니다. 저는 외동이라 형제나 남매의 끈끈한 정 같은 걸 전혀 모르거든요.”

“왜 네가 혼자야. 내가 있는데.”

“혀, 형님……!”

윤수호의 무덤덤한 한마디에 이선호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안겨들자, 윤수호가 그의 이마를 잡고 밀어내며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만 받을게, 마음만. 넌 어째 하는 행동이 점점 춘영이를 닮아 가는 것…….”

“응? 왜 그러십니까, 형님?”

윤수호는 굳은 표정으로 정색하더니 순식간에 분위기를 바꾸며 이선호에게 명령을 내렸다.

“선호야. 지금 즉시 보호소랑 여기 마을 사람들 데리고 멀리 떨어져 있어. 되도록 멀리 안전한 곳으로. 서둘러.”

“섬멸! 아, 참! 그리고 이건 정보부와 직통으로 연결되는 인 이어입니다. 도움이 되실 겁니다.”

이선호는 거수경례를 올린 후 곧바로 움직였다. 이유를 물어볼 시간에 한 발자국이라도 더 움직이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왜 갑자기 윤수호가 그런 명령을 내렸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건 아무 이유 없이, 그저 장난으로 이런 명령을 내릴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이선호가 대원들과 함께 보호소의 피난을 주도하기 시작하자, 깜짝 놀란 윤수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윤수호에게 물었다.

“뭐야? 갑자기 무슨 일인데?”

“설명은 나중에 할게. 일단 선호랑 같이 멀리 피해 있어. 알았지?”

그 순간, 윤수아는 저도 모르게 오빠의 소매를 꼭 붙잡았다.

“정말로…… 돌아올 거지?”

수많은 감정과 의미가 함축된 그 한마디에, 윤수호는 동생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며 힘주어 대답했다.

“반드시!”

오빠의 대답에 윤수아 역시 침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소매를 놔 주었다.

피윳, 슈아악!

“세상에…….”

그 순간, 하늘 높이 솟아오른 윤수호의 신형이 순식간에 서해를 향해서 비행했고, 윤수아는 경악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 * *

하흥시 하흥 해수욕장에 도착한 윤수호는 먼바다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인 이어를 작동시켰다.

“들립니까?”

-박여진 팀장입니다. 무슨 일이시죠?

“현재 이곳은 하흥시 하흥 해수욕장입니다. 혹시 이쪽 주변에 게이트나 그에 버금가는 이상 징후가 관측되지 않았습니까?”

-확인해 보겠습니다. 확인 결과 최근 일주일 사이에 하흥 해수욕장 부근 서해상에서 관측된 게이트는 없습니다. 왜 그러시죠?

“이곳과 멀지 않은 바다에서 강대한 마기가 느껴졌습니다.”

-마기라면…… 수호 씨만이 감지할 수 있다는 재앙종의 에너지 말이죠? 그게 서해에서 감지되던가요? 규모는요?

“지금도 빠르게 증폭 중이라 장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전에 만난 6급 재앙종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 지금도 최소 100배 이상은 되니까요.”

-네? 100배라고요? 자, 잠시만요!

경악한 박여진의 다급한 목소리가 끊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인물의 목소리가 들렸다.

-통신보안! 특무대 탐지국 국장, 오철민입니다. 윤수호 씨. 제 말 들리십니까?

“예, 잘 들립니다.”

-현재 윤수호 씨가 감지하신 재앙종은 정확한 데이터가 없어 장담하긴 힘들지만, 수호 씨의 증언으로 추정컨대 최소 8급 이상의 재앙종으로 추측됩니다. 당장 거기서 피하시고 후방에서 전열을 재정비하는 걸 권유해 드립니다. 8급 이상부터는 국가 재난에 해당하는 놈들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핵무기를 써야 할 정도로 위험하단 뜻입니다.

오철민의 다급한 목소리에 윤수호는 뒤를 쳐다보더니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가요. 하지만 불행하게도 지켜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요. 아무래도 후퇴는 불가능할 듯싶습니다.”

-윤수호 씨! 지금 고집부릴 때가 아닙니다! 정말로 위험한 상황이란 말입니다!

“걱정하시는 마음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8급 재앙종 이상이 출현하는 게이트라면 탐지국에 걸리지 않을 리가 없을 텐데, 어떻게 된 일인가요.”

-하아……. 아무래도 설득은 힘들 것 같군요. 서둘러 치우 팀을 파견하도록 총사령관님께 건의해 보겠습니다. 그러니 절대로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일단 질문에 대한 답을 드리자면, 지금 서해상에 출현한 재앙종은 카니발루션으로 진화한 개체 같습니다.

“카니발루션요?”

-예, 카니발리즘과 에볼루션의 합성어로, 동족 포식을 하는 재앙종들을 뜻하죠. 재앙종은 처음부터 강력한 놈들이 게이트를 통해서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카니발루션을 통해 동족 포식을 하며 진화하는 개체도 있습니다. 후자가 단연 골치 아픈 케이스고요.

“감지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까?”

-예, 에너지 파장이 일정한 패턴을 보이는 게이트와 다르게, 윤수호 씨가 마기라고 부르는 몬스터 에너지는 사람의 지문처럼 개체마다 주파수가 전부 달라서 사실상 감지가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출현 장소가 하필 바다라니…….

“그건 무슨 뜻이죠?”

-게이트는 지상과 바다를 가리지 않고 출현합니다. 다만 지상과 달리 바다에 열리는 게이트는 아무래도 해상이다 보니 대처가 어려울 수밖에 없죠. 게다가 대부분의 재앙종들은 통계적으로 육지 생활을 하는 개체들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즉, 바다에 떨어지면 익사해서 죽는 개체가 많다 보니 크게 신경을 쓰지 않기도 하고요. 하지만…….

윤수호는 오철민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만일 바다에 적합한 재앙종이 나타난다면…… 녀석에게 바다는 그야말로 식량의 보고겠군요.”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수생형 재앙종이 지상에 출현하면 오히려 같은 등급의 지상형 재앙종보다 훨씬 상대하기가 수월합니다. 다만 수생형 재앙종이 바다로 들어가 버리면 카니발루션을 통해 급속도로 성장하는 경우가 많죠.

오철민의 목소리가 더욱더 무거워졌다.

-물론 그 경우 해상 무역이 막히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당장 국민의 안위가 위협받는 일은 드뭅니다. 녀석들이 지상으로 올라오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수륙양용입니다. 지상과 바다를 오갈 수 있는 녀석들! 만약 바다에서 카니발루션으로 진화한 개체가 지상으로 올라온다면…….

“섬인 줄 알았는데 거북이군요.”

-예? 갑자기 그게 무슨…… 서, 설마 재앙종을 발견하신 겁니까?

“아무래도 수다는 여기까지인 거 같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국장님.”

-윤수호 씨? 윤수호 씨!

뚝.

윤수호는 인 이어를 끄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쿵! 쿵!

육중한 네 개의 다리가 하나씩 움직일 때마다 큰 지진이 일어나고, 십여 미터 높이의 파도가 밀려들며, 섬이 조금씩 해안가로 다가왔다.

전설 속의 귀수산이라는 존재가 이러할까?

그 압도적이라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경이로운 광경에 윤수호는 시선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검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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