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윤수호는 동생이 감정을 추스를 때까지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어깨만 토닥여 주었다.
그렇게 오빠의 배려로 한껏 격양되어 있던 감정을 추스른 윤수아는 담담히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오빠가 그렇게 실종되고, 은퇴하셨던 아빠는 아픈 몸을 이끌고 다시 일터로 나가셨어. 하지만 아빠가 원래 일하던 자리는 이미 다른 사람이 있었지. 결국 아빠는 예전보다 나빠진 몸으로 더 힘든 막노동을 전전하시는 수밖에 없었고.”
윤수아는 다 식은 커피를 내려다보았다.
“엄마도 마찬가지야. 식당 일이건 시장 일이건 몸이 부서져라 일하고도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오빠를 찾으러 나가셨어. 그마저도 아빠가 쓰러진 이후로는 아빠를 간병하느라 포기하셨지만…….”
“…….”
윤수호는 얘기만 들어도 마음이 착잡했다. 자신이 이럴진대, 그런 두 분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동생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그래도 나는 전혀 힘들지 않았어. 아빠는 쓰러지고 나서도 내가 기죽지 않도록 항상 나만 보면 웃으며 오히려 날 응원해 주셨고, 엄마는 자기도 힘들어 죽을 것 같으면서도 날 부족하지 않게 키워 주셨으니까. 하지만 몸이 편한 만큼 내 마음이 너무 괴로운 거 있지.”
윤수호는 그런 동생의 심정을 이해했다. 자신 역시 그러한 이유로 빠르게 사회생활을 시작한 셈이니까.
“그때 나는 나 자신을 부모님의 짐이라 생각했어. 아무런 도움도 못 되고 오히려 두 분을 힘들게 만드는……. 그래서 짐이 아니라 힘이 되고 싶었지만,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어. 부모님은 내가 당신들 때문의 자신의 꿈을 포기한 오빠처럼 살기를 원하지 않으셨거든. 나까지 당신들 때문에 희생한다면 너무 견디기 힘드시다고…….”
“난 딱히 부모님과 너를 위해서 희생한 게 아니야. 내가 그러고 싶었으니까 그렇게 한 거지.”
“하지만 부모님의 생각은 다르셨겠지. 아무리 오빠가 진심이라 하더라도.”
윤수호의 말에 윤수아는 미소를 머금었다.
“아무튼 처음에는 학교가 끝 부모님의 동의 없이 할 수 있는 간단한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했어. 부모님의 동의가 없다 보니 당연히 근로계약서 같은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지. 그런 아르바이트만 하다 보니까 돈도 제대로 못 받고, 혹사당해도 신고조차 할 수 없더라고. 신고하면 부모님도 알게 될 테니까. 하지만 갈수록 아빠의 건강은 악화되고 돈은 점점 더 많이 필요해졌어…….”
거기서부터 윤수아의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때 같이 일하던 언니의 소개로 어떤 사람을 만났어. 그 사람은 손님들을 만나서 간단한 얘기만 들어 주고 맞장구만 쳐 주면 돈을 준다고 하더라. 위험한 사람 같아서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엄마마저 식당에서 해고를 당했더라고. 그래서 그 사람이 준 명함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어. 당시 나는 돈만 벌 수 있다면 내가 어떻게 되든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으니까.”
“…….”
“그렇게 그 남자를 만나서 일을 시작했어. 첫 손님은 아직도 기억나. 차림새가 멀끔한 아빠뻘 남자였는데, 정말로 한 시간 정도 얘기만 들어 주면서 호응해 주니까 내 예전 알바 한 달 치 월급보다 많은 돈을 주더라? 난 그 돈을 사회복지단체의 이름으로 몰래 엄마의 통장에 입금했어. 그때 엄마가 통장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 거 있지.”
윤수아는 다 식은 커피로 목을 축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업장에서는 점점 더 많은 돈을 미끼로 내게 높은 수위의 일을 요구하기 시작했어. 당시 나는 돈에 눈이 먼 상태였고, 더 많은 돈을 벌면 우리 부모님이 그만큼 더 편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밖에 없었지. 그러다 결국 정신을 차렸을 땐 너무 멀리 가 버렸던 거야. 일주일에 한 번 부모님을 만나기도 힘들었고, 돈을 부칠 때 외에는 부모님과 연락하는 것조차 힘들었어. 그러다 재앙이 시작된 거고…….”
결국 윤수아는 조직에 묶인 상태로 피난길에 올랐고, 그 후로 부모님의 행방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사장은 내게 몸 팔기를 강요했지만, 난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았어. 내 잘못된 판단 때문에 가족을 또다시 잃고 싶진 않았거든.”
“또다시 잃고 싶지 않다는 건……?”
“애들이 있었어. 큰딸 하나, 작은아들 하나. 지금쯤이면 큰 애는 열일곱 살이고, 작은 애는 열다섯 살 정도 됐겠네. 내가 성인이 됐을 때, 당시 날 아껴 주던 사장 부하가 있었거든. 당시에는 부모님 안부도 모르고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 사람과 함께 살았어. 물론 정식으로 결혼한 건 아니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나니 조금이나마 행복하게 살 수 있을 줄 알았지. 그런데…….”
그때 일을 떠올리며 윤수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사람의 본성이 드러나더라, 툭 하면 바람피우고, 술 마시면 때리고, 돈 뜯어서 도박하고…… 날 때리는 건 참을 수 있었어. 하지만 아직 열 살, 여덟 살밖에 되지 않은 애들까지 손찌검하는 건 참을 수가 없더라고. 그래서 그 사람한테 술을 잔뜩 먹이고 술에 취해 잠든 틈을 타서 아이들과 함께 도망쳤지. 하지만 세상은 예전보다 더 살기 힘들어졌더라.”
문득 윤수아의 뺨을 타고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몸 파는 것 말고 아무런 재주도 없는 내가 애 둘을 데리고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멀쩡히 살아간다는 건 꿈같은 이야기였어. 그때서야 깨달았지. 나는 우리 애들을 우리 부모님처럼 지켜 주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건 지켜 주는 게 아니라 함께 죽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그제야 이해가 되더라고. 당신들께서 왜 오빠랑 나만 보면 죄인처럼 미안해하시는지…….”
“네가 나보다 어른이다.”
윤수호는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윤수아가 자조 섞인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 부모님은 정말로 대단한 분들이야. 그래도 끝까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잖아. 지키려고 노력하셨잖아. 나는 그러지 못했거든. 나 혼자 죽는 건 상관없어. 하지만 이 아이들이 나 때문에 죽는 건 죽기보다 싫었어. 그래서 입양을 보냈어. 다행히 두 아이 모두 예쁘고 착한 아이들이라 입양이 결정되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더라고.”
“입양처는? 누가 입양했는지는 알고 있고?”
“아니, 일부러 물어보지 않았어. 알면 나도 모르게 찾아갈까 봐. 그 아이들이 새로운 집에 적응하지 못할까 봐. 하지만 보육원에서 말하길, 양부모가 서울 안에서 살고 있다더라고. 아버지는 경찰에 엄마는 초등학교 교사라고 해서 안심할 수 있었지.”
윤수호는 동생을 탓하지 않고 그저 말없이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자식을 입양 보낸다는 선택지가 윤수아에게도 결코 쉬울 리가 없었으니까.
“애들 이름은?”
“큰애가 은지연, 작은애가 은지한이야. 물론 지금은 이름이 바뀌었겠지만.”
“지연이랑 지한이도 입양을 원했어?”
“아니,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모르겠는데, 둘 다 처음에는 자지러지게 울면서 싫어했어. 죽어도 엄마랑 떨어지지 않겠다고……. 그런 애들을 설득하는데 차라리 같이 죽을까 하는 생각이 수도 없이 들더라. 결국 지연이가 먼저 수긍했고, 지연이랑 내가 달랜 끝에 지한이도 설득할 수 있었어. 입양 조건도 두 아이를 같이 데려갈 수 있는 사람으로 한정했고. 그런데 입양이 금방 결정됐으니 운이 좋았지.”
윤수아는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재앙 초기에는 거리에 널린 게 고아였고,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모두가 더욱 힘든 시기였기에 아이들의 입양률이 매우 낮았던 것이다.
“애들이 보고 싶진 않아?”
“왜 안 보고 싶겠어. 지금도 눈만 감으면 지은이 지한이 얼굴이 선명하게 떠오르는데. 하지만 참아야지. 그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만약 아이들을 되찾을 수 있다면? 네가 그러길 원한다면 오빠가 노력해 볼게. 그 정도 능력은 되는 사람이거든.”
윤수호의 말에 윤수아는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깊이 생각하던 윤수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는데…… 만약 그 아이들이 날 잊고 지금 있는 곳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면 나 역시 그 아이들이 행복한 게 좋아. 하지만…….”
“하지만?”
“아니야. 역시 이건 욕심이겠지. 무엇보다 그 아이들을 거둬주신 양부모님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두 분께서 아이들을 잘 키워주신다면 그걸로 만족해. 한 번 버린 거나 마찬가지인 아이들을 이제 와서 내 욕심 때문에 은인께 몹쓸 짓을 하고 아이들을 뺏어 오는 건 절대로 못 할 것 같아.”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윤수호는 피식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의 욕심보다 타인을 생각하고 걱정하는…… 답답하지만 어떻게 보면 참으로 동생다운 대답이었다.
“그런데 넌 어떻게 여길 오게 된 거야?”
“서울에는 들어갈 수 없었고, 재앙을 피해서 정처 없이 떠돌다 보니까 여기까지 오게 됐어. 여기 보호소 사람들은 정말 좋은 분들뿐이라서 외지인인 나 역시 금방 받아들여 주시더라고. 근데 신기하지. 월급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고 일은 고되지만, 전에 했던 일들과는 비교도 안 되게 보람 있고 행복하다? 다행히 어르신들도 날 좋아해 주시는 것 같고.”
비단 윤수아만 대우받지 못하는 게 아니다. 보호소 자체가 피난하지 못할 만큼 연로한 노인들이 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여 정부의 지원금도 매우 적거나 없다시피 해서 거의 자원봉사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내 얘긴 끝! 어때, 이래도 오빠가 알던 예쁘고, 착하고, 순수하고, 깜찍한, 동생 윤수아 같아?”
툭,
윤수아가 서글프게 웃으며 아픈 농담을 건네자, 윤수호는 담담하게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꾸했다.
“네가 살아 있다. 그것만으로도 넌 내게 예쁘고, 착하고, 순수하고, 깜찍한 동생 윤수아야. 넌 남들보다 열심히 살았고, 가족들을 너 자신보다 아끼고 사랑했을 뿐이다. 그런 건 허물이라고 하지 않아. 훈장이라고 하는 거지.”
“……!”
오빠의 대답에 동그랗게 뜬 윤수아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더니 이내 하염없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흐아앙……!”
“그래그래, 많이 울어라. 어차피 옷 젖은 거, 한 번 젖지 두 번 젖냐. 그런데 수아야, 아무리 생각해도 아까 했던 말 중에 예쁜 거랑 깜찍한 건 빼는 게…….”
“흐아앙……!”
“아니다. 아무것도…….”
* * *
더 서럽게 우는 동생을 달래주며 윤수호가 진땀을 빼고 있던 그 시각…….
하흥시와 멀리 떨어진 서해에서 조금씩 이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철썩, 철썩…….
검은 바닷물이 찰랑이며 파도가 치는 가운데, 하흥시 인근 서해에 갑작스레 섬 하나가 두둥실 떠올랐다.
하나 그것은 섬이 아니었다.
섬인 줄 알았던 그것은, 어떤 생명체의 거대한 등딱지였다. 그것에서 뻗어 나온 긴 모가지는 거대한 두 눈으로 하흥시를 주시하였다.
그렇게 하흥시를 눈에 담은 그것은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