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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이 돌아왔다-19화 (19/175)

19.

“허억, 허억……!”

강탁준은 끔찍한 소성이 연달아 들린 후, 누군가의 발소리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아마도 소성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겠지.

그는 눈이 퉁퉁 부어 그가 누군지, 어떤 짓을 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공포심에 물들어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그러나 그럼에도 강탁준은 도망치지도, 쓰러지지도 않았다. 상대가 누구든 도망치지 않고 그 자리에 버티고 설 뿐이었다.

오로지 윤수아를 지키기 위해서…….

윤수호는 그런 강탁준의 앞에 서더니 그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깊이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제 동생을 끝까지 지켜 주셔서…….”

윤수호는 허리를 펴고서는 곧장 이선호를 불렀다.

“선호야.”

“예, 형님.”

윤수호의 부름에 어느새 그의 곁에 나타난 이선호.

그가 만들어 낸 끔찍한 참극을 보고도 이선호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은은하게 타오르는 그의 분위기를 봐서는, 그도 지금 분노를 꾹 참고 있다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내게는 정말로 귀한 분이시다. 부탁하마.”

“일단 가장 가까운 큰 병원으로 모신 뒤에, 상태가 조금이라도 호전되면 곧장 특무대 부속 병원으로 옮겨 치료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겠습니다. 걱정 마십쇼, 형님.”

“그래.”

윤수호는 강탁준의 손을 잡으며 안심시키려다, 다 부러진 그의 주먹 뼈를 보고 눈을 감았다.

“은인분께서는 안심하세요. 저는 수아의 친오빠입니다. 지금부터는 제가 당신을 대신해서 수아를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걱정 마시고 이제 쉬셔도 됩니다.”

강탁준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왜 자신이 눈물을 흘린 건지, 왜 안심했고, 왜 기절을 한 것인지. 상대가 정말로 윤수아의 오빠인지 아닌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기절하여 허물어지는 강탁준을 이선호가 조심스럽게 업어 들고 빠르게 현장을 벗어나자, 윤수호는 시선을 돌려 고성필을 쳐다보았다.

“아, 아…….”

“방금 죽은 녀석에게 듣자 하니, 목숨 걸고 내 동생을 지켜 준 은인 분과 재미있는 게임을 했다더군. 널 이기면 순순히 보내 준다고? 그래. 은인분이 가셨으니, 이제 내가 대신 게임에 참가하도록 하지.”

윤수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고성필은 자신을 속박하던 미지의 기운이 사라졌음을 느꼈다.

그렇게 육체의 자유를 되찾은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동료의 복수가 아니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는 것이었다.

‘못해! 못해! 못해! 저런 미친 괴물을 내가 무슨 수로……!’

“네가 도망치면 게임이 되질 않잖아. 너를 이겨야 비로소 이곳을 떠날 수 있는데 말이야.”

“……!”

분명 모든 오러를 다해 전력으로 질주했다. 얼마나 오러를 심하게 불어 넣었는지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다리가 삐걱거릴 수준이었다.

그런데 상대는 어느새 소리 없이 자신의 앞을 막아선 것이다.

“제, 제가 졌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설마 아줌…… 아니, 그분이 동생분이신 줄 모르고…….”

“말을 이상하게 하는군. 내 동생이 아니면 그런 짓을 해도 된다는 뜻인가?”

“그, 그게 아니라…….”

“일단 게임에 집중하도록 하지.”

“자, 잠깐만요! 저는 분명 졌다고 말씀…….”

푸확!

고성필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손을 뻗어 손사래를 치던 자신의 왼쪽 팔이 어느새 그의 손에 들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는 이상한 얘기를 자꾸 하는군. 네가 살아 있는데 어떻게 내 승리가 될 수 있지?”

“크아아아아아악!”

“엄살이 심한 놈이구나. 네 이전 상대는 네놈보다 더 끔찍한 꼴을 당했음에도 신음조차 흘리지 않았다. 자, 전력을 다해 와라. 나도 시간이 아까워 네놈과 오래 어울리지는 못할 것 같으니까.”

“으아아아아!”

결국 고성필은 비명을 지르며 울며 겨자 먹기로 윤수호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이번엔 이쪽을 뽑아 달란 뜻인가 보군.”

푸확!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소용없는 짓인지는 고성필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두 팔과 두 다리가 뽑혀 나간 뒤에도 쉽게 죽지 못했다.

“출혈을 최대한 억제하는 점혈을 해 두었다. 밤바람이 제법 찰 테지. 조만간 배고픈 들개들도 너희가 흘린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들 거다. 그때까지 네 인생을 돌아보며 후회를 곱씹어라.”

“자, 잠깐! 차라리 죽여 주세요! 제발 죽여 줘……!”

그러나 윤수호의 관심은 이미 고성필을 떠난 지 오래였다.

* * *

자리로 돌아오자 윤수아는 101팀의 보호를 받으며 그 자리에 무사히 남아 있었다.

찢어진 옷 대신 101팀의 여성 대원들이 가져다준 옷으로 갈아입은 후 이불을 덮고 있었는데, 여전히 눈은 꼬옥 감고 있었다.

“우리 수아, 오빠 말대로 눈 꼭 감고 있었구나. 하여간 평소에는 오빠 말을 죽어라 안 들으면서, 어쩜 이럴 때는 찰떡같이 말을 지켜 주는지. 하여간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눈치 귀신이라니까.”

“……!”

꼭 감은 윤수아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눈치 귀신……. 이 별명은 오직 세상에서 단 한 명, 오빠만이 자신을 부르는 별명이었기 때문이다.

“지, 진짜 오빠야? 나, 지금 눈 떠도 돼?”

“아직은 안 돼, 수아야. 일단 자리를 좀 옮기자.”

윤수호는 직접 동생을 업어 들었다. 그렇게 동생의 온기가 등으로 전해지는 순간, 윤수호의 눈가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

“수아야.”

“응, 오빠.”

“살아 있어 줘서 고마워.”

“나도. 살아 있어 줘서 고마워, 오빠…….”

* * *

101팀이 남아서 시신을 수습하는 사이, 윤수호는 윤수아와 함께 동생의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됐어. 눈 떠도 돼.”

“정말? 답답해서 죽는 줄 알았…….”

드디어 미치도록 보고 싶었던 오빠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윤수아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어, 어떻게…….”

“왜? 예전하고 똑같아서?”

“똑같아도 너무 똑같잖아! 아니, 20년이 지났는데 어떻게 그때 그 모습 그대로일 수가 있는 거지? 이건 말이 안 되잖아!”

“수아야, 지금부터 오빠가 하는 얘기, 침착하게 잘 들어.”

그렇게 윤수호는 자신이 어떻게 실종되었는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아왔고 어떻게 돌아올 수 있었는지, 동생에게 하나도 빠짐없이 얘기해 주었다.

그 덕분에 밤은 어느덧 깊은 새벽이 되었지만, 윤수아는 하나도 빠짐없이 오빠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었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의심은 안 하는 거야?”

“의심? 할 리가 없잖아. 그 긴 시간 동안 누구보다 힘들고 괴로웠을 사람은 오빠였을 텐데.”

윤수아는 무릎으로 엉금엉금 다가가더니 윤수호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오구오구! 장하다, 우리 오빠. 그래도 우리를 잊지 않고 다시 돌아와 줘서 고마워. 난 이렇게 오빠가 무사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기뻐. 오빠가 없었던 지난날이 생각나지 않을 만큼…….”

“…….”

윤수호도 말없이 동생을 안았다. 이따금 울컥울컥 속에서 뜨거운 감정들이 솟구쳐 흘러나올 뻔했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고 또 참았다.

여기서 수아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니까. 자신이 약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 수아, 너는 어떻게 된 거야? 처음 어머니한테 너 실종됐다는 소리 들었을 때 얼마나 놀란 줄 알아?”

“엄마? 엄마도 만났어? 혹시 그럼 아빠도?”

윤수호가 부모님과 만났다는 얘기에 윤수아가 기쁨과 슬픔이 혼재된 복잡한 반응을 보였다.

“그럼! 나도 그렇지만 두 분은 나 이상으로 널 보고 싶어 하셨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게…….”

윤수아는 쉽게 말을 잇지 못하다가 처연하게 웃으며 윤수호에게 물었다.

“목마르다. 혹시 커피 마실래, 오빠?”

“……그래. 부탁할게.”

윤수아가 커피를 끓이러 간 사이 윤수호는 그녀가 지내고 있는 방을 살폈다.

집들끼리 다닥다닥 붙은 골목길 사이에 끼어 있는 단칸방. 짐도 별로 없는데 사람이 누우면 뒹굴거릴 여유 공간조차 없었다.

당연히 통풍과 제습 또한 제대로 될 리가 없어서, 늦은 새벽인데도 불구하고 집은 사우나처럼 푹푹 쪘으며 벽과 천장에는 곰팡이가 가득했다.

‘그동안 이런 곳에서 지냈던 건가…….’

“미안, 오빠. 집이 많이 덥지? 에어컨은 고사하고 선풍기도 없어서……. 차라리 밖에 나가서 얘기할래?”

그렇게 커피를 들고 두 사람이 향한 곳은 그녀가 사는 단칸방 건물의 옥상이었다.

옥상으로 올라가니 그나마 텁텁해도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조명은 없었지만 대신 하늘에 쏟아질 것 같은 별빛들이 조명을 대신해 두 사람을 비춰 주었다.

“그런데 강 실장님은? 강 실장님은 어떻게 되셨어? 나 때문에 많이 다치셨잖아…….”

“그분은 걱정 안 해도 돼.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고, 치료받으면 충분히 회복할 수 있을 거야.”

“그래? 다행이다. 다음에 병문안 가게, 병원 주소 꼭 좀 알려 줘.”

“같이 가면 되지. 그나저나 둘이 어떤 사이야? 혹시 부부는…… 아니지? 강 실장님이라고 부르는 걸 보면.”

“뭐?”

윤수호의 질문에 윤수아는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런 거 아니야.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오빠는…….”

‘반응을 보아하니 영 마음에 없는 건 아닌데.’

“나는 찬성이다.”

“뭐가?”

“강 실장님이란 분 말이야. 이번에 처음 봤지만, 목숨 걸고 너를 지켜 줄 수 있는 남자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지.”

“아, 오랜만에 만나서 자꾸 이상한 소리 할래? 안 그래도 자기 혼자만 그 얼굴로 나타나서 열 받아 죽겠는데. 왜 오빠는 20대 모습 그대로고 나만 나이를 먹은 건데! 누가 보면 내가 누난 줄 알겠네.”

“에이~ 누나는 오버지. 잘해야 이모…….”

“죽을래? 아니다. 그냥 죽어! 이 웬수!”

“야, 아파! 아파! 항복!”

윤수아가 오빠의 목을 휘감으며 헤드락을 걸자 윤수호는 곧장 동생의 팔에 탭을 치며 항복을 선언했다.

그렇게 오빠를 풀어 준 윤수아는 처연한 표정으로 커피를 내려다보다 씁쓸하게 웃었다.

“오빠가 무슨 마음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 잘 알지만, 강 실장님은 순수하고 착하신 분이야. 나 같은 것보다 훨씬 더 깨끗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야지.”

“그게 무슨 헛소리야? 네가 어디가 어때서?”

“나 말이야. 사실 오빠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럽고 못난 년이다? 아마 오빠도 내 얘길 들으면 정나미가 떨어져서 도망칠지도…….”

윤수아는 히죽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윤수호는 그녀의 미소 속에 감춰진 아픔이 손에 잡힐 듯 빤히 보였다.

와락!

그는 아무 말 없이 동생을 당겨 품에 안아 주었다.

“뭐, 뭐 하는 거야, 갑자기.”

“참지 말고 울라고.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야, 오빠는.”

“뭐래, 바보 오빠가…….”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윤수아의 어깨가 들썩이며 그녀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윤수호는 아무 말 없이 동생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흐느낌은 오열이 되었고, 윤수호는 그런 동생의 마음을 담담히 위로해 주었다.

검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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