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강탁준이 혼자 차에서 내리자, 트럭을 들고 있던 빡빡머리의 청년이 그에게 다가가 이죽거렸다.
청년의 이름은 고성필, 갱단을 이끄는 무리의 리더였다.
“뭐야. 혼자 내렸네? 난 분명 둘 다 내리라고 한 것 같은데. 아재는 내 말이 우스웠나 봐?”
“보면 알겠지만 우린 가진 게 없다. 믿기 힘들다면 뒤져도 좋아. 그러니 제발 이대로 보내 다오. 부탁이다.”
“아니, 없어 보이는 거야 딱 보면 아는데, 왜 반말?”
빡!
“끄윽!”
고성필은 강탁준의 정강이를 마치 축구공처럼 걷어찼다.
아무리 그가 강탁준보다 훨씬 작은 덩치를 가지고 있다 해도 고성필은 알터다. 강화된 그의 다리는 무쇠와 마찬가지이니, 강탁준의 정강이뼈가 부러지며 무릎을 꿇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다.
“뭣 좀 있는 것처럼 가오 잡더니 개 병신이네. ㅋㅋㅋ”
“아재요, 아파요? 그래서 어쩔?”
“푸하하하하!”
그렇게 강탁준이 쓰러져 신음을 참으며 고통스러워하자, 주변에서 조롱하는 갱단의 웃음소리가 강탁준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아, 씨발. 이제야 눈높이가 좀 편해졌네. 도대체 뭘 먹고 그렇게 쓸데없이 덩치만 큰 거야. 왜? 그 덩치로 꼴아 보면서 반말하면 내가 쫄아서 길 줄 알았어? 어? 어? 어? 아재, 나 알아? 왜 초면에 반말인데, 씨발아!”
짝! 짝! 짝!
고성필은 강탁준의 머리채를 잡아 고개를 억지로 들어 올리며 그의 뺨을 반복적으로 후려갈겼다.
그러자 고성필의 눈가가 멍들어 부풀고, 입 안이 터진 것인지 입가에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갱단은 그 모습을 구경하며 더욱더 흥분해 소리쳤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강탁준의 시선은 차로 향했다. 차가 아직 출발하지 않았다는 것은 윤수아가 도망치지 못했다는 뜻.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야만 했다.
“미안……해유. 내가 잘못했슈. 우린 정말 가진 게 아무것도 없어유. 원하면 뒤져 봐도 돼유. 그러니까 제발 그냥 보내 주세유. 부탁드려유.”
그 순간!
부아앙!
요란하게 엔진을 울리며 급출발한 트럭이 그대로 고성필을 향해 돌진하였다.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었지만, 고성필은 피식 웃더니 오러를 끌어 올리며 트럭을 향해 두 손을 힘껏 내밀었다.
콰앙!
그러자 굉음과 함께 트럭의 뒷바퀴가 살짝 들렸다가 떨어졌다. 고성필이 손으로 막은 트럭의 앞부분은 엉망이 되었지만, 다행히 시동이 꺼지지는 않았다.
“강 실장님! 어서 타요!”
“네? 아, 네!”
설마 윤수아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강탁준이지만, 그녀의 말대로 강탁준은 서둘러 트럭의 짐칸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러나…….
“아, 나. 이 씨발 연놈들이 쌍으로 사람을 엿 먹이네?”
이마에 혈관이 도드라질 만큼 열이 받을 대로 받은 고성필이 오러를 좀 더 끌어 올리더니, 그대로 트럭의 밑 부분을 잡고 들어 올렸다.
그러자 놀랍게도 트럭이 번쩍 들리더니 그대로 전복되어 버렸다.
“꺄아악!”
“수아 씨!”
“에이, 씨발. 차 망가졌네. 야, 저년 끌어내.”
고성필은 자신을 따르는 똘마니들에게 명령했다. 그러자 몇몇 동료들이 운전석에서 이마에 피를 흘리며 아파 신음하고 있는 윤수아를 차에서 강제로 꺼냈다.
“이 아줌마, 보다 보니까 몸매랑 얼굴이랑 되게 꼴리게 생겼네.”
“그러게. 내가 본 미시 중에 이 아줌마가 갑인 듯.”
“야, 고성필, 이 아줌마, 우리가 먹어도 되냐?”
윤수아를 희롱하는 그들의 모습에서는 아무런 죄책감이나 망설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비슷한 짓을 한두 번 해 본 게 아니란 뜻이겠지.
“안 돼! 그 사람 건드리면 너희 전부 가만두지 않을 거다! 진짜야!”
고성필은 필사적으로 소리치는 강탁준을 쳐다보다 사악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아재, 그렇게 마누라가 소중하면 나랑 게임 하나 할래?”
“게, 게임?”
“어. 안 그래도 저년 때문에 차가 망가져서 기분이 × 같은 참인데, 아재가 대신 내 샌드백 좀 해 주라. 아재가 버티고 서 있는 동안에는 저 아줌마 안 건드릴게. 나를 이기면 두 사람 다 곱게 풀어 주고. 대신 지면 아재가 보는 앞에서 저 아줌마, 우리가 먹는다. 어때? 이 정도면 나름 괜찮은 제안인 거 같은데?”
“뭐, 뭐라고? 이런 짐승만도 못한 새끼들이……!”
결국 강탁준은 참지 못하고 고성필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이익!”
강탁준은 확실히 덩치가 크고 힘이 장사다. 하지만 순둥순둥하고 순박한 성격 탓에 한 번도 싸움 같은 싸움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맞았으면 맞았지, 남들에게 주먹을 휘둘러 본 경험이 없었던 것이다.
반면 제대로 훈련받은 적이 없어도 싸움이라면 이골이 난 고성필은 강탁준의 그런 사실을 단숨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거, 떡대만 그럴듯하지 개허접이네. 아재요. 그래 가지고 스치기나 하겠어?”
필사적이라고는 하나, 힘만 믿고 요령 없이 휘두르는 강탁준의 주먹을 여유롭게 피하며 고성필이 이죽거렸다.
“주먹은 이렇게 치는 거야.”
퍽!
그 순간, 강탁준의 주먹을 피한 고성필의 펀치가 옆구리를 파고들며 간에 큰 충격을 주었다. 리버 블로를 카운터로 맞은 것이다.
“우웨엑!”
강탁준은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먹은 것을 쏟아 냈다.
의지와 상관없이 밀려드는 끔찍한 고통에 숨조차 쉬기 힘들었고, 눈과 코에서는 쉴 새 없이 분비물이 흘러나왔다.
“어라, 지금 포기하는 거?”
쫘아악!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갱단은 기다렸다는 듯이 윤수아의 옷을 찢기 시작했다.
“아, 안 돼!”
강탁준은 그 모습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서 자신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탁준 씨!”
그런데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불러 준 윤수아가 슬픈 미소로 자신을 쳐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그녀의 미소에 담긴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자신은 포기하라고…… 당신만이라도 살아서 돌아가라고…… 자신은 괜찮다고…….
언제나 보았던, 자신을 희생하는 걸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의 아픈 미소였다.
“그렇게 웃지 마유…….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다시는 수아 씨가 그렇게 웃는 일은 없을 거구만유.”
“뭐래, 미친. 둘이 영화 찍냐? 지금 이게 장난 같아? 좀 더 맞아봐야 정신을 차리지?”
퍽퍽퍽퍽퍽퍽퍽!
고성필은 일부러 오러를 조절해서 강탁준을 두들겨 팼다. 끝내려면 얼마든지 끝낼 수 있지만, 일부러 그러지 않고 그를 부수기 시작한 것이다.
“살려 달라고 빌어 봐. 그럼 너는 살려 줄게. 대신 저 여자는 우리가 먹겠지만. 어때?”
“무슨 헛소린지 모르겠구먼. 나, 아직 멀쩡해. 그쪽 주먹이 말랑말랑하니 기분 좋구먼.”
말과 다르게 강탁준의 상태는 상당히 심각했다.
두 팔은 이미 골절된 상태라 팔도 올라가지 않았고, 다리도 정강이 하나가 부러져서 한쪽 다리로 겨우겨우 서 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안면 골절도 심해서 이미 두 눈은 거의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고, 전신이 피범벅이 되어 목숨이 위험해 보였다.
“미친 새끼, 허세 부리는 거 보니까 더 맞아도 되겠네.”
“안 돼! 이 악마들아! 제발 그만하라고!”
윤수아는 악다구니를 쓰며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쳤지만 소용없었다.
그녀의 힘으로 자신을 짓누르는 남자들을 벗어나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심지어 그들조차 허접하다고는 해도 알터였으니.
힘으로 안 되자 울며불며 호소하고 부탁했지만, 오히려 그 모습은 갱단의 나쁜 욕망을 더욱 자극할 뿐이었다.
“에이, 씨발! 어차피 다 끝난 거 같은데 그냥 먹자.”
“그래, 더 이상은 못 참겠다!”
자신의 몸을 탐하는 남자들의 욕망은 익숙했다. 이미 그런 것에 겁먹어 울기엔 너무 많은 눈물을 흘려 버렸다.
그런데도 윤수아의 두 눈에선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그녀의 시선은 자신을 탐하려는 갱단이 아니라, 강탁준에게 고정되어 떠나질 않았다.
당장 죽을 것처럼 만신창이가 되어도, 아무리 얻어맞고 피를 흘려도, 자신을 지키려고 끝까지 일어나는 그를 도와주지 못한다는 게 너무 분하고 미안했다.
‘하느님, 부탁드릴게요. 저는 죄인이라 아무리 심한 벌을 받아도 괜찮아요. 하지만 탁준 씨는 죄인이 아니잖아요. 저 사람이 저렇게 고통받아서는 안 되는 거잖아요. 부디 저 사람을 살려 주세요. 제 모든 걸 가져가셔도 좋으니까. 제발……!’
그때였다.
“여기 있었구나.”
* * *
“뭐야, 저 새끼는?”
인기척도 없이 갑자기 나타난 한 남자 때문에 갱단은 깜짝 놀라 서로를 쳐다보았다. 누구도 그가 말을 하기 전까지 접근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이쪽으로 오는데?”
“뭐야, 저 새끼는?”
윤수아를 제압하고 있던 갱단 동료 한 명이 일어나 윤수호에게 접근하였다.
“어이, 뒈질래? 안 꺼져?”
“눈 감아, 윤수아. 오빠가 눈 뜨라고 할 때까지 눈 뜨면 안 된다.”
“……!”
윤수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두워서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말투나 목소리가 모두 자신이 기억하는 오빠의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윤수아는 망설임 없이 오빠의 말대로 눈을 꼭 감았다.
윤수호는 그녀의 주변에 강기막을 펼쳐 소리까지 차단했다. 앞으로 일어날 참극에 그녀의 귀가 더러워지지 않도록.
“이게 미쳤나. 내 말을 씹어?”
그 순간.
쫘악!
윤수호는 자신을 향해 주먹을 휘두른 갱단의 팔을 잡아 뜯었다.
비유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주먹을 잡아 그대로 팔을 당겨 뜯은 것이다.
“어, 어……?”
녀석은 자신의 팔이 뜯겨나갔다는 비현실적인 사실에 놀라 자신의 어깨를 쳐다보았다.
푸확!
“끄아아아악!”
그 순간, 뿜어져 나온 핏물에 놀란 녀석이 비명을 지르며 어깨를 감싸 쥐었다.
윤수호는 그 모습을 쳐다보면서 나직하게 말했다.
“미안하다, 선호야. 아무래도 이번만큼은 약속을 못 지킬 것 같다.”
턱.
“무, 무슨…….”
눈앞에서 팔을 뜯기고 고통스러워하던 녀석의 머리를 한 손으로 덥석 그러쥔 윤수호.
그 순간, 눈물을 줄줄 흘리는 녀석의 표정이 공포에 질려 흔들렸다.
그리고…….
으드득, 빠득, 뿌지직…….
사람의 몸에서 흘러나와선 안 될 끔찍한 소성이 흘러나오자 갱단의 표정이 점점 사색으로 물들어 갔다.
그 순간…….
촤아악!
시원한 파육음과 동시에 녀석의 머리통이 그대로 뽑혀 나왔다. 문제는 머리통과 이어진 척추뼈와 부러진 갈비뼈까지 그대로 딸려 나왔다는 사실이다.
만약 현재 무림에서 연륜 높은 무인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윤수호의 모습을 보고서 공포에 질려 이렇게 외쳤을 것이다.
사람을 찢어 죽이는 악마. 혈귀(血鬼)가 재림했다고.
“오, 오지 마! 가까이 다가오면 이년은 죽는다!”
“…….”
한 녀석이 윤수아의 목에 칼을 들이밀며 협박했지만, 윤수호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에 겁이라도 줄 요량으로 그녀의 목을 살짝 찔러 피라도 보이려 했지만…….
‘모, 몸이 왜……?’
손끝 하나도 자기 뜻대로 움직이지 않자, 녀석은 경악한 표정으로 눈동자만 굴려 다른 친구들을 살펴보았다.
다른 녀석들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윤수호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윤수호는 뚜벅뚜벅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오, 오지 마! 제발 오지 말라고!’
그러나 이제는 입술과 혀도 굳었는지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가까워지는 윤수호의 모습은 끝나지 않는 악몽과도 같았다.
그렇게 윤수아를 포박하고 있던 녀석들의 코앞까지 접근한 윤수호는 녀석들을 하나씩 떼어다가 윤수아와 살짝 떨어진 곳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찢었다.
말 그대로 양팔을 찢고, 양다리를 찢고, 몸통을 찢고, 마지막에 머리를 찢었다.
신기한 것은 몸통을 찢을 때까지도 살아서 그 필설로도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전부 느끼고 죽었다는 사실이었다.
윤수호는 그렇게 고성필을 제외한 그들 모두를 하나하나 손수 찢어서 죽여 버렸다.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