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돌아왔다-17화 (17/175)

17.

“수아 씨의 행방은 알아내신 겁니까, 형님?”

“아니, 대신 흔적은 알아냈다. 이제부터 그 흔적을 따라가야겠지.”

윤수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시를 내렸다.

“일단 이곳의 정리와 뒤처리는 춘영이 너한테 맡긴다. 자료들은 전부 모아서 박 팀장에게 전해 주도록.”

“알겠습니다. 형님.”

“선호 너는 나와 함께 간다.”

“예.”

이선호는 윤수호와 함께 차를 타고 가며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혹시 서주석이 수아 씨가 있는 곳을 알고 있던가요?”

“아니, 녀석은 수아가 누군지 기억도 못 하고 있었다. 하지만 20년 전에 자신이 미성년자를 데리고 불법 성매매를 알선한 후, 가치가 떨어진 아이들을 팔아치운 거래처가 있다더군.”

“그걸 기억하고 있던가요?”

“기억이 나도록 도와줬지.”

“…….”

그게 어떤 건지 지하실 앞에서 고통스러워하던 대원을 목격한 이들로서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끼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거래처가 아직도 남아 있답니까?”

“일단 연락처는 받았다. 지금 당장은 그 흔적을 쫓아가는 수밖에.”

“그렇군요.”

이선호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사실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속이 타는 사람은 다름 아닌 윤수호 본인일 테니까.

* * *

‘개가 똥을 못 끊는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이미 한 번 범죄의 맛을 들인 사람은 쉽게 범죄의 길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돈은 꼭 만나자마자 주시는 거죠? 아, 네. 그럼, 거기서 기다릴게요.”

전화를 끊은 여고생에게 윤수호와 이선호, 그리고 팀원들이 다가와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야~ 성은하, 아직 살아 있네. 동안인 건 알았지만 목소리도 그렇고, 교복을 입으니까 정말로 여고생 그 자체잖아? 진짜 서른으로는…….”

“서른이 아니라 아직 스물아홉이거든요? 교복 입은 사진도 보냈으니까 틀림없이 나올 겁니다. 어후, 씨발! 다시 생각해도 열 받네. 목소리로 이렇게 소름 끼치게 만들기도 힘든데…… 혹시 만나면 한 대 패도 됩니까? 팀장님.”

“그건 나중에 가서 보고, 일단은 약속 장소로 움직일까요? 형님.”

윤수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차가 부드럽게 약속 장소를 향해서 이동하였다.

그렇게 장소에 도착한 성은하가 차에서 내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자, 한눈에 봐도 덩치가 있어 보이는 사내들이 그녀에게 접근했다.

“아까 전화했던 은하…… 씨? 뭐야, 고딩이 아니라 아줌마잖아!”

“아줌마 아니라고!”

성은하는 단숨에 그 자리에서 떡대들을 제압했다.

그들도 놀라 다급히 칼을 꺼내 들며 대항했다. 하지만 아무리 칼을 들었다 해도 일반인인 그들이 성은하에게 손끝이라도 댄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밥상이 차려지자 윤수호와 다른 사람들이 나타나 그들에게 물었다.

“너희 사장, 지금 어디 있어?”

* * *

쾅!

“무, 무슨 일이야?”

갑자기 문짝이 부서져 안으로 날아오자 칼치기파의 두목 김상민과 그의 부하들이 중국 음식을 먹다 말고 놀라서 입구를 쳐다보았다.

그 순간.

푹!

“우읍우읍읍!”

윤수호는 어느새 김상민의 머리를, 그가 먹고 있던 짬뽕 국물 속에 처박았다가 빼며 물었다.

“20년 전에 네가 서주석에게 받아서 팔아넘긴 여자애들. 지금 어디 있어.”

“가, 갑자기 그게 무슨 개소리…….”

“너도 서주석처럼 기억을 되찾는 데 도움이 필요한 모양이군.”

“헉!”

“야, 야! 빨리 다른 새끼들 끌고 나와!”

윤수호의 말에 대원들이 눈을 부릅뜨더니, 김상민을 제외한 다른 조직원들을 체포하여 밖으로 끌고 나왔다.

그들에게는 윤수호를 말릴 명분도 힘도,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그 끔찍한 꼴을 실시간으로 보지 않으려면 최대한 빨리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지옥 밑바닥에서 손톱을 긁어 가며 기어 올라오는 듯한 비명이 이어지고 몇 분 뒤, 이번에는 윤수호가 깨끗한 모습으로 걸어 나왔다.

“아직 숨은 붙어 있을 거다.”

“설마…… 이번에도 살아 있는 겁니까?”

이선호가 흠칫하며 물어보자 윤수호는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가며 어깨를 다독였다.

“나는 한 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그것이 어떤 약속이건.”

“…….”

자신의 예상대로 김상민과 그가 있던 방은 꿈에 나올까 두려운 한 폭의 지옥도가 되어 있었다.

서주석이나 김상민만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증언에 따라 수아의 흔적을 찾아가면서 윤수호는 동생에게 많은 아픔과 고통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윤수호는 가슴이 아파서 미어질 것만 같았다. 불가항력이었다고는 하나, 자신이 없는 사이에 가족이 이토록 고통을 받고 있었다는 게.

무엇보다 가족을 지키지 못한 자신에게 화가 나서 미칠 것만 같았다.

그 때문일까? 그가 지나가는 길엔 수아와 연관된 범죄자들의 피가 마르질 않았다. 하나 윤수호에게 자비는 없었다.

그들 때문에 동생이 흘린 피눈물에 비하면 그들의 피는 아무런 가치도, 존재 이유도 없었으니까.

* * *

충청북도 하흥시의 어느 보호소.

“그럼 살펴 가세요. 오늘 모두 수고 많으셨어요.”

“아이고! 오늘은 좀 제발 집에 들어가라니까. 이렇게 일하면 골병들어서 오래 못 버텨.”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어서 들어가세요, 복자 할머니. 가족이 기다리시잖아요. 어차피 저는 가족도 없고, 집에 가도 할 게 없어서 괜찮아요.”

윤수아가 웃으며 괜찮다고 동료 할머니들의 퇴근을 종용했지만, 이번만큼은 할머니들도 고집을 꺾지 않았다.

“집에 가서 할 게 왜 없어? 푹 쉬는 것도 우리 일이야. 우리 보호소에서 윤 선생을 가족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지? 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윤 선생은 쓰러지면 안 돼.”

“김 씨 할매 말이 백번 옳지. 이거 받아. 비싸서 소는 못 구하고, 대신 실한 돼지로 한 근 샀으니까 가서 고기도 좀 구워 먹고, 몸보신도 좀 하고.”

“아, 아뇨! 저는 이런 거 괜찮…….”

“내가 안 괜찮으니까 받어! 아니면 확 그냥 길바닥에다 버려 버리려니까.”

그러면서 박옥자는 고기를 포장한 까만 비닐봉투를 윤수아의 손에 억지로 쥐여 주었다.

윤수아는 눈시울이 붉어지며 목이 메었다.

“고기 구하는 게 쉽지 않으셨을 텐데 이 귀한걸…….”

“귀한 거라서 윤 선생 주는 거야. 귀한 사람이 귀한 걸 먹어야지. 우리 같은 노인네들이 먹어봤자 똥밖에 더 돼?”

“근데 윤 선생이 먹어도 똥 되는 건 똑같지 않나?”

“장 할매! 하여간 꼭 눈치 없이…….”

“크흠! 왜? 나 암말도 안 했어!”

티격태격하는 할머니들의 모습에 윤수아는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깊이 숙였다.

“고마워요, 할머니들. 이건 꼭 가서 맛있게 먹을게요.”

“그려, 어여 가. 가서 여기 걱정일랑 눈곱만큼도 하지 말고. 잘 쉬고 있는지 우리 할매들이 돌아가면서 수시로 확인할 테니까 딴생각 말고.”

“그런데 수시로 들락거리면서 확인하면, 그게 쉬는 게 쉬는 게 아닐 텐데……”

“장 할매! 입! 고놈의 입!”

“아무튼 강 실장. 우리 윤 선생 좀 잘 데려다줘. 세상이 흉흉하니까 믿을 사람이 얼마 없구먼.”

“걱정 마시고 들어가세유. 수아 씨는 제가 안전하게 댁으로 모셔다드릴게유.”

강 실장이라고 자주 불리는 강탁준은 덩치가 크고 성실한 40대 중반의 남자였다.

보호소의 힘쓰는 일과 잡일을 도맡아 하는 직원인데, 순박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다른 동료들의 신임이 두터운 사람이었다.

그렇게 윤수아가 강탁준의 트럭을 타고 떠나자, 할머니들이 애처로운 눈빛으로 멀어져 가는 트럭을 쳐다보며 걱정을 쏟아 냈다.

“에휴……. 딱하기도 하지. 저 나이에 무슨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길래 자기를 못살게 굴지 못하면 살 수가 없는 지경일꼬…….”

“요 근래 당직도 전부 윤 선생이 도맡아서 했다지?”

“윤 선생이 당직 선 날보다 집에 간 날을 세는 게 더 빠를걸.”

“볼 때마다 죽은 내 딸 같아서 더 마음이 미어지는 것 같어. 우리 딸 희경이도 딱 윤 선생처럼 몸도 마음도 고왔는데…….”

“뭣들 해? 우리는 들어가서 일이나 하자고. 윤 선생이 걱정하지 않게.”

그렇게 할머니들은 윤수아를 진심으로 걱정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한편, 할머니들과 헤어진 윤수아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창문을 열자 7월의 밤바람은 해가 지고 달이 떴는데도 후끈하게 그녀를 스치며 지나갔다.

“죄송해유, 수아 씨. 에어컨 고칠 시간이 없어서……. 많이 덥쥬?”

“아뇨, 충분히 시원해요. 이렇게 태워다 주시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데요. 고맙습니다, 강 실장님.”

“어휴! 그런 소리 마세유. 수아 씨가 쓰러진 저랑 제 엄니를 구해서 돌봐주지 않았다면 둘 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구만유. 수아 씨는 우리 두 사람의 생명의 은인 이어유. 수아 씨를 위해서라면 이 목숨이 하나도 안 아깝구만유.”

“마음은 감사하지만 그런 위험한 말은 다신 하지 마세요.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강 실장님은 꼭 끝까지 살아남으셔야죠. 설마 어머니만 두고 가실 생각은 아니시죠?”

“아, 아니, 제 말은 그게 아닌데…….”

“알아요, 강 실장님이 착하고 좋으신 분이라 그런 말씀을 하셨다는 거. 마음만은 감사하게 받을게요. 하지만 정말로 위험한 상황이 닥치면 저보다는 어머니를 위해 주세요. 하나뿐인 가족은 잃어버리면 다신 만날 수 없으니까요.”

“네, 명심할게유.”

‘에휴! 오늘도 혼나기만 하는구나. 멍청한 놈!’

강탁준은 속으로 한숨만 내쉬었다.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자란 탓에 여성에 대한 경험은 백지와 같았다. 그에게 있어 윤수아는 생에 처음 찾아온 첫사랑인 셈이다.

그래서 더 좋은 모습만 보여 주고 싶고, 더 멋진 모습만 보여 주고 싶은데 생각처럼 그게 쉽지가 않았다.

강탁준의 답답한 마음처럼 트럭도 천천히 도로를 달렸다. 차도가 뻥 뚫려 있어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속도를 낼 수 있지만, 강탁준은 안전을 제일로 생각했다.

도로를 힘겹게 밝히는 가로등 불빛은 그렇게 밝지 않았다. 전력의 여유가 그렇게 많지 않은 탓에 드문드문 가로등이 켜져 있는 탓이었다.

게다가 사심을 좀 섞자면 조금이라도 더 윤수아와 단둘이 함께 있고 싶은 마음도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번쩍!

“헉!”

끼이익!

정면에서 쏘아진 갑작스러운 조명에 놀란 강탁준이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팔을 뻗어 본능적으로 보조석에 앉아 있던 윤수아를 보호하였다.

“수, 수아 씨, 괜찮아유?”

“네? 아, 네. 덕분에요. 그런데 저 사람들은…….”

빠르게 다가온 불빛의 정체는 다름 아닌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칼이나 각목, 쇠 파이프 같은 무기를 가지고 있었고, 숫자 역시 스물이 넘었다.

강탁준은 인상을 찌푸리며 그들의 면면을 훑었다.

“이 근처에서 못 보던 녀석들인데……. 아무래도 떠돌이 갱단 같습니다. 손잡이 꽉 잡으십쇼. 이대로 도망…….”

“누구 마음대로?”

번쩍!

“헉……!”

후진하려던 강탁준은 트럭의 앞바퀴가 들리자 놀라 두 눈을 부릅떴다.

갱단이 뭉쳐서 차를 들어 올린 것이 아니었다. 그들 중 하나가 나서서 씨익 웃더니 두 손으로 번쩍 트럭의 앞부분을 들어 올린 것이다.

“이대로 뒤집어 줄까? 아니면 알아서 기어 나올래?”

놈이 보조석에 앉은 윤수아를 쳐다보며 입맛을 다시는 모습에 강탁준은 결심을 굳혔다.

“수아 씨, 무슨 일이 있어도 차에서 내리면 안 됩니다.”

“네? 그, 그게 무슨…….”

“운전하실 수 있죠? 제가 내려서 놈들의 시선을 잡아끌 테니까 그 틈에 도망치세요. 기회가 많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니까 꼭 망설이지 말고 도망치셔야 합니다.”

“강 실장님? 강 실장님!”

그러나 윤수아가 말릴 새도 없이 강탁준은 차에서 내려 갱단 앞에 섰다.

검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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