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스읍…… 후우…….”
길게 들이마신 담배의 연기가 폐부를 깊숙이 훑고 코와 입으로 빠져나와 허공에 흩어졌다.
서주석은 침대에서 벗어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60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근육질의 몸이 엿보였다.
서주석의 몸은 수많은 문신으로 빼곡했지만, 가장 눈에 띄는 건 목에 있는 길고 진한 흉터였다.
마치 지네가 목을 기어가는 듯한 형상의 흉터를 가진 서주석은 유리벽을 가로막은 커튼으로 다가가더니 커튼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러자 통짜 유리 벽 너머로 눈부신 햇살이 집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는 창밖을 응시했다.
넓디넓은 정원, 깔끔하게 정돈된 정원수와 꽃들, 잉어들이 노니는 연못과 분수, 마당 한쪽에서 낮잠을 즐기는 도베르만과 셰퍼드까지…….
“아앙~ 좀 더 잘래.”
“불 좀 꺼 줘, 오빠.”
“일어나라. 밥 먹자.”
서주석은 알몸으로 침대를 뒹구는 여인들을 깨우며 주방으로 갔다.
거기서 서민들은 구경도 못 할 식재료들을 가지고 요리를 만들어 값비싼 와인과 함께 여인들과 식사를 즐겼다.
그러다 욕정이 끓어오르면 밥을 먹다가도 여인들에게 자신의 욕구를 풀었다. 그러면 여인들도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사내의 욕정을 받아 주었다.
그것은 서주석이 그 정도의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그의 아들이 가져다준 돈과 권력이지만.
“근데 오빠, 양의찬 소령님은 대체 언제 와?”
“그러니까. 나도 소령님 보고 싶어. 우리나라 최강의 특무대원 중 한 사람이잖아. 치우 팀? 그거라매. 사인이라도 받고 싶다~”
“자식새끼 일이 바쁜 걸 나더러 어쩌라고. 이리 와, 내가 그놈 몫까지 확실히 안아 줄 테니까. 그놈도 내 씨에서 나온 거 알지? 잘만 하면 팔자 고치는 건 시간문제다.”
“꺄악~!”
“나도, 나도!”
서주석의 집에는 다시 열락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다가올 자신의 운명은 꿈에도 모른 채…….
* * *
이선호와 조춘영이 자신들의 팀과 함께 윤수호를 따랐다. 그렇게 일행이 탄 차는 빠르게 도로를 달려 서주석의 집 앞에 도착하였다.
“니미! 누가 사람들 등골 뽑아서 세운 집 아니랄까 봐, 더럽게 크네.”
조춘영이 그렇게 말할 정도로 서주석의 집은 대문부터 집까지도 거리가 한참이나 멀어 보였다.
심지어 정원 가운데에 분수까지 갖춰 놓았을 정도니, 돈 잔치를 얼마나 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집 앞에는 대문에서부터 특무대의 경호팀이 철통같은 경계 근무를 서는 중이었다.
경호팀은 국빈이나 주요 인사의 경호 외에도 장성급 인사들의 가족을 보호하는 것 역시 주요 임무였는데, 치우 팀도 계급과 별개로 대우는 장성 대접을 받기 때문이었다.
“확실하게 변장해라. 어설프게 하다 들키지 말고.”
“예! 팀장님.”
“팀장님이 아니라 형님이다.”
이선호와 조춘영은 대원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지금 이들이 변장하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이것은 특무대의 명령도 아니고, 기록으로도 남지 않을 단독 작전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호팀도 자신들이 찾아올 거란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드르륵.
승합차의 문이 열리고, 변장을 마친 대원들이 차에서 우르르 내리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내린 윤수호는 검은 마스크에 검은 모자를 푹 눌러쓰며 정체를 가렸는데, 그를 필두로 일행들이 거침없이 서주석의 집을 향해 다가갔다.
“멈춰라! 더 이상 접근하면 무력으로 진압하겠다.”
그렇지 않아도 대문을 지키고 있는 경호팀 대원들은 승합차가 집 앞에 멈춰 섰을 때부터 차량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다 차에서 정체를 숨긴 수상한 사람들이 대거 하차하여 접근하자, 한 명이 경고하는 사이 다른 한 명은 안쪽으로 지원을 요청했다.
“자, 드가자!”
조춘영이 손짓을 하며 뒤쪽으로 소리치자, 강도로 변장한 101팀과 G팀이 앞으로 연장을 꼬나 쥐며 뛰쳐나갔다.
“뭐야?”
“이게 무슨……!”
평범한 강도들은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강도들의 민첩한 움직임에 경호원들이 크게 경악했다.
그들 역시 혹독한 훈련을 통과한 경호팀의 대원들이었지만, 상대는 거기에 더해 실전까지 두루 쌓은 섬멸팀과 대태러팀의 대원들.
게다가 숫자까지 압도했으니 제압당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렇게 문 앞을 지키던 경호팀 두 사람이 기절하자, 대원들은 그들을 빠르고 안전하게 옆으로 치워두었다.
콰앙!
그와 동시에 윤수호가 주먹을 뻗자, 장갑차가 들이받아도 멀쩡할 것 같은 대문이 폭발하며 산산조각이 났다.
뻥 뚫린 대문 너머로 일행이 진입하자, 연락을 받고 집결한 경호팀 대원들이 윤수호의 앞을 가로막았다.
“네놈들은 누구지? 보아하니 여기가 어딘 줄 알고도 찾아온 모양인데. 감당할 자신은 있나?”
푹.
경호팀원 중 한 명이 윤수호를 노려보며 이죽거리자, 윤수호는 그를 향해서 중지를 말았다가 가볍게 튕겼다.
퍽! 털썩.
단지 그것뿐이었다. 그것뿐이었는데 그의 몸에서 무슨 쇠 구슬을 얻어맞는 듯한 타격음이 터져 나오더니, 정신을 잃은 대원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비켜라. 저 녀석처럼 추하게 쓰러지고 싶지 않으면.”
“어딜!”
“놈들을 막아!”
푹, 푹푹푹푹푹푹푹푹!
윤수호는 달려드는 경호팀을 향해서 빠르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럴 때마다 소름 끼치는 타격음과 함께 경호팀이 빠른 속도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윤수호는 단 한 걸음도 멈추지 않았다. 그를 따르는 이선호와 조춘영의 팀원들도 그 사실이 그저 경악스러울 뿐이었다.
“가라.”
“예, 큰형님!”
대부분의 경호팀을 쓰러트린 윤수호의 한마디에 따르던 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집의 도면은 이미 박여진이 구해서 설명해 주었기 때문에, 그들은 비밀 통로를 비롯한 각 출입구를 점거한 채 빠르게 집 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 * *
“아직도 저런 겁 없는 녀석들이 있었네?”
처음 윤수호 일행의 침입을 확인했을 때, 그는 좋은 구경거리가 생긴 줄 알았다. 돈에 눈이 먼 겁 없는 날파리들이 분수도 모르고 이곳을 찾아왔다고 생각한 것이다.
경호팀은 특무대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을 알터…… 즉, 괴물들이다.
고작 알터로 각성했다고 해서 겁 없이 이곳을 습격하는 건, 일반인이 특수부대원에게 덤비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오랜만에 재미있는 장난감이 생기겠어.”
서주석은 경호팀이 강도들을 처리하면 그들의 신변을 인계받을 생각이었다. 절차상 그게 불가능한 일이라고 해도 경호팀은 자신의 명령을 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 자신이 양의찬의 아버지였으니까.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도 불행이 차고 넘치는 세상에서 강도들의 신변까지 걱정하지 않는다.
그 말인즉, 놈들을 지하실로 끌고 가 어떤 폭행을 하건 고문을 하건, 심지어 죽이더라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뜻이다.
설령 신고를 받더라도 자신이 양의찬의 아버지라는 것만으로 경찰들은 대충 스윽 훑어보고는 돌아갈 뿐이다.
이 세상은 돈과 권력이 곧 모든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행위는 서주석에게 달콤한 일탈과도 같았다.
그렇게 다가올 재미를 기대하며 경호팀이 강도들을 제압하는 걸 구경하고 있었는데, 그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터지고야 말았다.
경호팀이 이유도 없이 픽픽 쓰러져나간 것이다.
“이게 대체…….”
고민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경호팀이 거의 다 쓰러지고 강도들이 빠르게 저택을 향해서 뛰기 시작한 것이다.
“왜 그래, 오빠? 무슨 일…….”
“닥치고 저리 꺼져!”
“꺄악!”
서주석은 여자들을 거칠게 밀어내고 비밀 창고로 달려가, 돈과 돈이 되는 자료들을 급하게 챙기기 시작했다.
‘정원이 뚫렸다고 해도 아직 저택 곳곳에 남은 경호팀들이 있다! 녀석들이 시간을 끄는 동안 중요한 것만 챙겨서 빠져나가면…….’
하지만…….
와장창!
“꺄아악!”
“……!”
방탄유리보다 수십 배는 더 단단한 특수 유리벽이 박살 나면서 여자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깜짝 놀란 서주석은 놀란 토끼 눈으로 박살 난 창을 쳐다보았다. 거기에는 윤수호가 집 안으로 들어와 무심한 눈빛으로 서주석을 쳐다보고 있었다.
“네가 서주석인가.”
“이런 씨발!”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서주석은 몰래 숨겨 두었던 소총을 꺼내 윤수호에게 갈겼다. 근처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여자들은 그의 시야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런데…….
퍼부어진 총알은 거짓말처럼 윤수호의 코앞에 멈춰 서더니, 사격이 끝나자 거짓말처럼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본인이 맞는 것 같군.”
팟.
그 순간, 사라진 윤수호의 모습이 어느새 서주석의 눈앞에 나타났다.
“무슨……!”
턱, 빠각!
윤수호는 그가 들고 있던 총을 빼앗더니, 손아귀에 힘을 주는 것만으로 산산조각 부숴 버렸다. 그리고 이제는 그 손으로 서주석의 턱을 잡고는 들어 올렸다.
“이 손으로 뭘 할 수 있는지 잘 봤지? 그럼 신중하게 대답해야 할 거야.”
“자, 잠깐만! 나는 아무것도……!”
“20년 전에 네가 돈벌이 목적으로 이용했던 여자애 중에 윤수아라는 아이가 있었다. 내 동생, 지금 어디 있어?”
“난 몰라!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고! 20년 전의 일을 내가 어떻게 알아!”
“…….”
윤수호는 서주석의 머리채를 잡고 바닥을 질질 끌었다. 그러다 머리가 빠지고 두피가 벗겨지면 귀를 잡았고, 귀가 찢어지면 다른 쪽 귀를 잡아끌었다.
“사, 살려 주세요! 제발 이 미친놈이 절 죽이려 해요! 원하는 건 다 드릴 테니까 제발 저 좀 구해 주세요!”
서주석이 비명을 지르고 발버둥을 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는 오히려 경호팀을 제압하고 진입에 성공한 대원들에게 울면서 목숨을 구걸했지만 의미 없었다.
윤수호의 눈빛을 보는 순간, 그들은 누구도 그 자리에서 꼼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건 무슨……. 저승사자도 저 눈보단 따뜻하겠네.’
그렇게 윤수호가 서주석을 끌고 간 곳은 그가 취미와 쾌락을 얻기 위해 특별히 만든 지하실이었다.
아직 처분하지 못한 피해자들의 썩는 냄새와 피, 내장 조각들이 부패하는 냄새가 가득한 이곳에서, 윤수호는 그를 구속 의자에 꽁꽁 묶어 두었다.
그러고는 서주석의 두 눈을 똑바로 보며 고저 없는 목소리로 나직하게 말했다.
“기억이 안 난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살점을 한 점 한 점 도려내다 보면 네 젖먹이 시절도 떠오르게 될 테니까.”
“……!”
이후 지하실에서는 쉴 새 없이 비명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비명이 얼마나 참혹하고 끔찍했는지 대원들은 섣불리 지하실 근처에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문을 열고 전신에 피를 뒤집어쓴 윤수호가 담담히 걸어 나왔다.
“안쪽에 서주석에게 당한 피해자들의 시신이 남아 있다. 잘 수습해서 가족들에게 보내 줄 수 있었으면 좋겠군. 혹시 갈아입을 옷이 있을까?”
“아, 예! 이쪽으로…….”
“아, 참! 되도록이면 이런 쪽에 익숙하고 비위가 강한 대원이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다.”
대원 중 한 명이 윤수호에게 수건을 넘기자, 윤수호는 충고와 함께 몸에 묻은 핏물을 닦으며 욕실로 향했다.
그사이, 호기심을 참지 못한 대원 한 명이 지하실을 흘깃 기웃거린 순간.
“으읍! ……우웨엑!”
“야, 이 병신아! 그러길래 함부로 들어가지 말랬잖아!”
밖으로 튀어나온 그가 속에 든 것을 모조리 게워 내는 것으로도 모자라 눈물 콧물을 질질 흘리자 동료가 그의 등을 두들겼다.
속에 든 것을 모두 게워낸 그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혹은 아직 악몽에 덜 깨어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사, 살아 있어…….”
“뭐, 뭐가 살아 있다는 건데?”
“살점은 하나도 없이…… 근육이 보이고…… 갈비뼈가 보이고…… 내장도 보이고…… 심장이 뛰는 게 두 눈으로 똑똑히 보였어……. 그런데 그게 제발 죽여 달라고…… 나를 보면서…… 우읍!”
그 광경이 생각났는지 더 이상 토할 것도 남지 않은 대원이 죽을 기세로 구역질을 다시 시작하자, 동료는 감히 지하실 쪽으로 시선조차 돌리지 못했다.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