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돌아왔다-13화 (13/175)

13.

더 해 볼 여지조차 기대할 수 없도록 윤수호가 단칼에 거절하자, 천호진은 다소 맥이 빠진 모습으로 의자에 착석했다.

그러고는 윤수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그를 설득했다.

“귀하의 지식을 전부 가르쳐달란 뜻이 아닙니다. 그 지식의 일부라도 일반 국민이 배우고 실천할 수 있다면, 적어도 그들이 눈앞에서 가족을 잃거나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일들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에 대한 사례는 충분히 할 것입니다.”

“총사령관님의 숭고한 뜻을 의심하거나 부정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저는 개인의 의지보다 인류의 의지를 더 존중하기 때문에 거절한 것입니다.”

“인류의 의지?”

“총사령관님께서 진심으로 우리나라의 보안과 국민의 안위를 걱정하며 제게 고개를 숙이셨을 때, 저에게 집중되었던 수많은 시선에 담긴 감정은 탐욕과 욕망이었단 걸 아십니까?”

“……!”

윤수호의 대답에 천호진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의 파격적인 대답에 몇몇 사람들이 발끈했지만, 함부로 나서지는 못했다. 여기서 섣불리 나섰다간 괜한 눈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수호는 좌중의 반응을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그저 자신이 보고 느낀 바를 솔직하게 얘기했을 뿐이니까.

“그렇다고 그들을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인류는 선의보다 더 큰 악의가 있었기 때문에 발전할 수 있었으니까요. 남들보다 편하게, 남들보다 부유하게, 남들보다 강하게……. 이런 원동력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힘이자 약점이기도 하죠. 책임질 수 없는 힘까지 욕심내게 만드니까요.”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무책임한 부탁을 드렸군요.”

“신경 쓰지 않습니다.”

윤수호의 대답을 가만히 듣고 있던 한 중장이 손을 들어 발언권을 구했다.

“특무대 보안사령부의 박상길 중장입니다. 우리 보안사에서는 솔직히 이번 사안을 보고받았을 때 상당히 충격받았습니다. 6급 재앙종을 손가락으로 가지고 노는 신원 미상의 정체불명 능력자라니, 솔직히 우리 보안사로서는 이보다 악몽 같은 일이 없으니까요.”

좌중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의견에 동의하자, 박상길 중장은 윤수호를 쳐다보며 물었다.

“솔직히 묻겠습니다. 귀하의 신분이 무엇이며, 어떻게 그러한 능력을 얻었는지, 목적은 무엇인지 솔직하게 말씀해 주시길. 국가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보안사령부의 수장으로서 정중히 부탁드리겠습니다.”

“보안사령관님의 질의에 대답하기에 앞서, 저희가 준비한 자료가 있습니다. 먼저 이걸 확인해 주시죠.”

이선호는 조춘영과 미리 준비해 둔 자료를 사람들에게 돌렸다.

“보시는 건 얼마 전에 회복한 윤수호 씨의 주민등록증과 그의 사진들입니다. 윤수호 씨의 부모님은 현재 우리 특무대 부속 병원에 입원해 계시고, 보시는 바와 같이 부모님과 찍은 사진, 거주 기록 등도 모두 남아 있습니다. 틀림없이 100%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우리나라 사람이 확실합니다.”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년간의 행방이 묘연하군. 게다가 현재 나이가 45세라는 말인데, 저 모습은 아무리 봐도…….”

많이 쳐도 20대 중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윤수호의 모습에 사람들의 신뢰가 뚝뚝 떨어졌다.

물론 사진이나 또 다른 증거들도 있긴 하지만, 그 정도야 얼마든지 조작 가능한 자료였으니.

“그건…….”

-아니 됐다. 여긴 내가 해결하지.

그 순간, 이선호는 머릿속에 들려온 윤수호의 전음에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이런 상황이 아니었으면 적절히 지어낸 말로 넘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앞뒤가 맞아떨어지도록 그럴듯하게 지어낸 말이 오히려 의심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그건? 무슨 할 말이 있던 게 아닌가, 이선호 대위?”

“아닙니다.”

“제가 직접 얘기하죠.”

그렇게 시작된 윤수호의 얘기는 이선호, 조춘영에게 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연히 사람들은 그 황당한 얘기를 믿지 못했고, 그가 거짓말을 하는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윤수호가 담담하게 얘기를 마치자 좌중은 불신과 의심의 눈빛으로 윤수호를 쳐다보았다.

“검은 회오리바람에 휩쓸렸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만화나 소설도 아니고 대체 그게 무슨……!”

“허허, 이것 참…… 차라리 이해가 되는 얘기라면 사기라고 의심이라도 할 텐데, 이렇게 대놓고 거짓말 같은 얘기를 해 버리니…… 이게 진짜인지, 거짓인지 되레 구분하기가 힘들군요.”

하지만 한 사람의 반응은 달랐다.

그는 바로 총사령관 천호진 대장이었다.

“김 대위.”

“예, 사령관님.”

“자네는 지금 즉시 윤수호 씨가 말씀한 실종 시간과 장소에 관한 모든 정보와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을 때 위치 정보, 기록들을 모조리 수집해 오게. 사소한 것까지 전부. 정보부 인력을 한시적으로 그쪽에 전부 투입해도 좋네.”

“충성.”

그렇게 김 대위가 가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고작 30분도 안 돼서 돌아온 김 대위는 믿을 수 없는 증거들을 가지고 돌아왔다.

“제가 가져온 자료들을 메인 스크린에 띄우겠습니다. 모두 주목해 주십시오.”

김 대위는 먼저 스크린에 윤수호가 실종된 당일에 관련된 정보들을 출력하였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먼저 윤수호 씨가 말씀하신 실종 인물들과 당시 실종 신고가 된 인물들의 이름과 신상 정보가 동일합니다. 그리고 이걸 보십쇼.”

김 대위는 스크린에 사진 한 장을 띄웠다.

“당시 캡처된 생방송 뉴스 사진입니다. 거리에서 시민들을 인터뷰하는 리포터 뒤로 지나가는 이 사람 보이시죠? 확대하겠습니다.”

사진 속 인물을 확대하니, 그 사람은 놀랍게도 윤수호였다.

“윤수호 씨가 말씀하신 사건 발생 시각 10분 전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건 기상청에 남아 있던 기록인데, 윤수호 씨가 말씀하신 시각, 그 지점에 강력한 돌풍이 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다음으로 띄운 것은 당시 유행했던 미니 홈피의 일기장들이었다.

“그리고 이건 해당 돌풍을 목격한 사람들의 당시 미니 홈피에 올라왔던 글과 사진, 그리고 신문 기사인데, 당시 검은 회오리를 목격한 사람들의 증언과 증거가 다수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윤수호 씨와 실종자들은 이 시간을 기점으로 어디서도 흔적을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띄운 화면은 위성사진이었다.

“이건 윤수호 씨가 돌아왔을 때 해당 지점을 공전하고 있던 미국의 한 위성이 찍은 사진입니다. 기상청에서 전혀 관측되지 않은 먹구름이 약 1분 정도 발생했다 돌연 사라졌고, 이는 물리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기상 현상이라는 것이 기상청의 답변이었습니다.”

…….

보고가 끝나자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윤수호를 쳐다보았다. 윤수호는 딱히 놀란 것도, 당황한 것도 아닌 심드렁한 표정 그 자체였다.

“그, 그럼 그 황당무계한 얘기들이 모두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김 대위가 가져온 자료들과 그가 보여 준 능력들을 조합해 보면, 사실일지도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사실이라고 생각해야겠지요.”

“그럼 최소한 타국의 공작이나 밀정에 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닙니까? 적어도 신원은 거의 확실하게 증명된 셈이니.”

“허허, 이런 황당한 일이……!”

시간이 지날수록 수긍하지 못하던 사람들도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윤수호 씨가 지냈다는 그쪽 세상에서도 우리 세상에 관해 얘기하면 믿기 어려운 건 매한가지겠지요?”

“하기야, 우리도 갑자기 게이트가 열리고 재앙종이라는 괴물들이 나타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으니……. 처지가 달라지면 우리에겐 눈앞의 현실도 그들에게는 비현실이나 마찬가지겠지요.”

“그러고 보면 윤수호 씨가 비각성 일반인이면서 그만한 능력을 가진 것도 이해가 됩니다. 애초에 각성하지 않고 저쪽 세상에서 무공이란 것을 배워 손에 넣은 힘이니 당연히 검사가 되지 않을 수밖에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하자, 그동안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았던 부분들까지 전부 한꺼번에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사람들의 눈빛이 번쩍이며 모두의 시선이 윤수호에게 집중되었다. 그들의 시선은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하이에나와 같아서 윤수호조차 조금 흠칫할 정도였다.

천호진은 좌중을 훑어보더니 기분 좋게 웃으며 윤수호에게 물었다.

“보아하니 더 이상 귀하의 신원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군요. 하면 윤수호 씨는 다시 돌아온 고향에서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십니까? 저희가 전력을 다해 지원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글쎄요. 그때 당시에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야간에 막노동을 했습니다. 물론 가족을 건사할 수만 있다면 지금도 마다할 생각은 없지만, 저 두 친구와 함께 다니다 보니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윤수호는 이선호와 조춘영을 가리키며 미소를 그렸다.

“그 말씀은……?”

“제가 가진 재주가 제 가족을…… 제 가족이 살아갈 이 땅을 지키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그 역시 나쁘지 않겠다는…….”

벌떡!

“부디 우리 보안부로……!”

“보안부는 얼마 전에 인원 충당했잖아요! 우리 정보부로 오십쇼! 최고의 대우를 약속해 드리겠습니다!”

“저런 인재를 정보부에 데려가서 엉덩잇살만 찌울 셈인가? 우리 대태러팀으로 오시죠. 최고의 대원에게 걸맞은 최고의 자리가 바로 우리 부대 아니겠습니까?”

“에휴! 다들 섬멸팀 사정 뻔히 알면서 욕심들 부리기는……. 윤수호 씨? 고민하지 말고 섬멸팀으로 오십쇼. 특무대에서 누가 뭐래도 최고의 대우와 보상을 약속받는 부대는 바로 우리 섬멸팀뿐입니다.”

“섬멸팀은 무슨! 대한민국 최강의 요원이 될 사람을 벌써부터 송장 치를 생각인가?”

“지금 말 다 했어? 6급 재앙종을 손가락으로 가지고 노는 분일세! 그런 분을 송장으로 만들 재앙종이라면 이 나라는 진즉에 망했어, 이 양반아!”

“이 양반? 지금 말이면 단 줄 아나!”

“여기 신병교육대도 있습니다!”

윤수호가 의사를 밝히자 대회의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

윤수호를 어떻게든 자신의 부대로 영입하기 위해서 아귀들이 치열하게 각축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와…… 대박. 이거 돈 주고도 못 보는 광경 맞지? 혹시 이거 찍어서 가지고 있어도 되나? 우울할 때…….”

“응? 왜? 뭐?”

조춘영은 이미 폰으로 슬그머니 영상을 촬영 중인 이선호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때였다.

“모두 정숙하세요. 귀한 손님 앞에서 이게 무슨 추태입니까!”

“크흠!”

상황을 보다 못한 천호진의 일갈에, 그제야 사람들은 사태를 깨닫고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이미 잃어버린 체면은 돌이킬 수 없었다.

“저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예, 윤수호 씨. 말씀해 보세요.”

천호진이 고개를 끄덕여 허락하자 윤수호는 궁금했던 사실 하나를 물었다.

“제가 듣기로 특무대는 기본적으로 각성자들만이 현장에서 근무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럼 저는 현장 요원은 될 수 없는 건가요?”

“각성자가 아닌 일반 대원들의 무분별한 차출과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 해당 조항을 특무대의 군법으로 정해 두긴 했지만 상관없습니다. 윤수호 씨께서 그럴 뜻만 있다면 군법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요령 있게 해결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윤수호 씨의 능력이라면 치우 팀도 문제없을 거라 확신합니다.”

“그렇군요.”

“하면 윤수호 씨는 특무대에 입대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판단해도 되겠습니까?”

“예.”

윤수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자 천호진은 기분 좋게 웃으며 결정을 내렸다.

“그럼 이례적이지만 특채 입대 시험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형식적으로라도 다른 특무대 대원들이 수긍할 만한 결과를 보여 줘야 낙하산 인사니, 뭐니 하는 뒷말이나 분란이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요. 아, 참! 이선호 대위, 조춘영 대위.”

“대위! 이선호.”

“대위! 조춘영.”

“자네들 두 팀은 당분간 맡은 업무를 변경하도록 하겠네. 지금까지처럼 윤수호 예비 대원을 신경 써서 보필하게. 이 명령은 윤수호 예비 대원이 정식 대원으로 입대할 때까지 유효한 명령일세. 대태러팀도, 섬멸팀도 이견 없지요?”

“물론입니다.”

대태러팀과 섬멸팀의 사령관들이 입을 모아 고개를 끄덕이자, 이선호와 조춘영이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힘차게 거수경례를 올렸다.

“충성!”

천호진은 다시 윤수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여동생을 찾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저희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부담 없이 말씀해 주세요.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총사령관님의 배려, 감사히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덕분에 윤수호는 여동생을 찾는 일에 한층 더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검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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