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돌아왔다-12화 (12/175)

12.

다른 사람들이 자리를 비켜주고 두 사람만 남은 접견실에서 윤수호와 임보름이 대화를 나누었다.

“솔직히 저도 지금 수아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알 수 없어요. 혹시 몰라서 지금까지 한 번도 전화번호를 바꾼 적이 없지만, 이제껏 전화 한 통 오지 않았거든요…….”

임보름은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며 치맛자락을 꼭 쥐었다. 그녀의 눈망울에는 언제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윤수호는 차분한 말투로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혹시 내가 없는 동안 수아에게 문제는 없었니? 그나마 수아가 실종되기 전까지 가장 친한 사람도, 함께 있었던 사람도 너잖아. 안 그래?”

“그건 그렇지만, 수아도 집안 사정을 얘기하는 걸 굉장히 껄끄러워했어요. 저도 괜히 친구의 아픈 상처를 꼬치꼬치 캐묻고 싶지 않았고요. 하지만…….”

“하지만?”

“오빠가 실종되고 나서…… 수아의 표정이 어두워 보였던 이유가 당연히 오빠가 실종된 탓인 줄 알았죠.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표정만 어두워지는 게 아니라 분위기도 이상해지더라고요. 어느 순간부터 저 이외의 다른 친구들이랑 말도 잘 안 하고, 사라지기 얼마 전부터는 저까지 멀리하는 것 같았으니까요.”

“…….”

단정 지을 수 없지만, 윤수호 자신이 아는 동생이라면 자신이 아프고 괴로워도 가족과 친구들이 걱정할까 봐 그들 앞에서는 기꺼이 웃을 수 있는 그런 속 깊은 아이였다.

“혹시 수아가 사라지기 전에 이상한 점은 없었고?”

“그게…… 사실 이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거든요. 갑자기 애가 체육복을 입고 등교하질 않나…… 그것도 한여름에 동복 체육복을요. 초중학교 때까지 생전 지각도 안 하던 애가 결석을 밥 먹듯이 하는 것도 그렇고, 갑자기 돈 얘기를 꺼내는 것도 그렇고요. 물론 수아가 농담처럼 얼버무리긴 했지만, 제가 보기엔 전혀 농담이 아니었거든요. 제가 설마 수아 농담도 구분 못 할까 봐요.”

‘돈? 생전 부모님한테 용돈 달라는 소리 한 번 한 적 없고, 용돈도 내가 애써 쥐여 줘야 겨우 가져가던 애가 친구한테 돈 얘기를 꺼냈다고? 대체 왜……. 설마!’

그 순간, 윤수호는 머릿속에서 자신이 실종된 이후의 상황이 불현듯 그려졌다.

무리하다 몸져누운 아버지, 잃어버린 아들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된 어머니, 당연히 가계는 엉망이었을 것이고 집에 돈은 하나도 없었겠지.

아버지의 병원비며, 약값이며, 생활비며, 수아라면 아마 자신을 대신해서 가장 노릇을 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을 터였다.

하지만 그녀의 신분은 고등학생, 미성년자였다.

부모님의 허락 없이 할 수 있는 일도 거의 없을뿐더러, 부모님의 성격상 절대로 수아에게 일을 시킬 리가 없었다.

수아 역시 그런 부모님의 성격을 자신만큼 잘 알고 있다. 때문에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봐 무슨 일을 하건 말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아, 참! 그즈음 해서 이상한 사람들이 몇 번 수아를 찾아온 적이 있어요.”

“이상한 사람들?”

“네, 지금도 기억나요. 경찰은 확실히 아니고, 뭔가 되게 나쁘고 껄렁껄렁한 분위기였는데, 수아가 교문 밖으로 나오니까 몇 마디 나누더니 차를 타고 그냥 가더라고요. 나중에 물어보니까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 순간 고개 숙인 임보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혹시 몰라서 선생님이나 경찰에 대신 신고해 줄까 물어봤더니 그냥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고, 부모님이나 선생님한테는 절대로 말하지 말아 달라고 웃으면서 부탁하더라고요. 그때 제가 미움받더라도 경찰에 신고했어야 했는데…….”

결국 참지 못한 임보름이 눈물을 뚝뚝 흘리자, 윤수호는 그녀에게 손수건을 건네주고 그녀가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 주었다.

“죄송해요. 갑자기 그때 생각이 나서…… 그때 수아가 아프게 웃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분명 엄청 힘들었을 텐데, 명색이 절친이라는 년이 아무런 도움도 못 되고…….”

“아니야, 너도 많이 힘들었을 텐데 미안하다. 괜히 아픈 기억을 건드린 것 같아서. 하지만 나한테는 정말로 중요한 일이야. 그러니까 최대한 기억나는 대로 전부 설명해 줘. 혹시 그 이상한 사람들에 대해서 아는 거 없어? 그냥 네가 본 것만이라도 말이야.”

“기억이라고 해도 한두 번 스쳐 가듯 본 게 전부라……. 저도 무서워서 똑바로 관찰하지는 못했으니까요. 다만 이게 단서가 될지는 모르겠는데, 지금도 확실히 기억하는 건 있어요.”

“그게 뭔데?”

윤수호가 진지하게 묻자 임보름은 자신의 목을 가리키며 답했다.

“이쯤에 지네인지 뭔지, 하여간 길쭉하게 뻗은 문신을 본 것 같았어요. 그것 말고는 죄송해요. 그 이후에 곧바로 재앙이 시작되는 바람에 저와 우리 가족 역시 필사적으로 강릉을 도망쳤거든요.”

“양태 삼촌이랑 미연이 이모 말이지. 그러고 보니 너희 가족과는 수아랑 네가 어릴 때 함께 고기도 자주 구워 먹었었지. 두 분은 안녕하시니?”

“…….”

임보름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에 윤수호는 한층 더 무거워진 얼굴로 그녀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래, 유감이구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런 개엿 같은 세상이잖아요. 어쩔 수 없죠. 우리 가족만 불행한 것도 아니고. 그나마 다행히 저는 좋은 남편 만나서 착한 아들과 함께 열심히 사는 중이에요. 그러니까 수아도 꼭 어딘가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을 거예요. 저는 그렇게 믿어요.”

“나도 그렇게 믿는다. 그런데 보름아,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 줄래?”

윤수호는 임보름을 자리에 남겨 두고 이선호와 조춘영을 찾아갔다.

“혹시 지금 서울에 한 가족이 지낼 수 있을 만한 집을 찾을 수 있을까?”

“집요? 혹시 형님이 사실 집요?”

“아니, 나 말고. 보름이네 가족이 서울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었으면 싶어서. 수아를 찾으면, 수아가 믿고 기댈 수 있는 사람들이 가족 말고 친구까지 있다면 수아도 기뻐하지 않을까?”

윤수호의 부탁에 조춘영이 자신의 가슴을 자신 있게 두드리며 대답했다.

“그런 이유라면 없어도 마련해야죠. 걱정 마십쇼. 제가 책임지고 마련하겠습니다. 특무대 권력 좀 남용하면 그까짓 거 일도 아니죠, 뭐. 하하하!”

“그래, 고맙다, 춘영아.”

다시 자리로 돌아온 윤수호는 임보름에게 이 얘기를 전했고, 임보름은 이전과 다른, 기쁨에 가득 찬 눈물을 흘리며 윤수호를 끌어안았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수호 오빠! 그리고 두 분……! 여러분은 우리 가족의 은인이세요. 정말로 감사합니다! 흐흑…….”

임보름은 이 사실을 가족에게 전했고, 눈물바다가 된 가족은 윤수호와 두 동생에게 몇 번이고 감사를 전했다.

* * *

그렇게 임보름과 가족이 집으로 돌아가고, 이선호와 조춘영이 윤수호를 찾아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형님, 아무래도 일이 생겨서 서울로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선호가 쉽사리 말을 잇지 못하자, 그의 사정을 익히 짐작할 수 있었던 윤수호가 먼저 그를 헤아려 주었다.

“둘만 오라고 하던가?”

“네? 아, 그게…….”

“사실 형님도 모셔 오라고 하긴 했는데……. 선호, 이 자식이 정직까지 각오하고 필사적으로 설명했는데도 윗선 새끼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 거 있잖습니까.”

“아무래도 6급 재앙종과 흑사 길드, 그리고 이곳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 더 이상 상부가 묵과할 수 없게 된 모양입니다. 그렇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특무대의 사정이지, 형님께서 신경 쓰실 사항은 아닙니다. 형님께서는 지금처럼 수아 씨를 찾으시면 됩니다. 제가 제 밑에 대원들에게 설명해서 최대한 형님께 협조하라고 지시해 두겠습니다.”

“이런 씨부레. 비번만 안 끝났어도……. 죄송합니다, 형님. 일 끝나는 대로 바로 합류하겠습니다.”

두 사람의 배려에 윤수호는 고개를 저었다.

“말하지 않았나. 너희 둘은 나에게도 소중한 동생들이라고. 동생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건 형이 할 짓이 아니지. 게다가 특무대에는 나도 볼일이 있거든.”

“볼일이라 하시면…….”

“설마?”

“내가 특무대에 정식으로 입대하면 그들이 가진 정보력과 권력을 나도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수아를 찾기도 더 수월해지겠지.”

윤수호의 결정에 두 사람은 눈을 부릅뜨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톱 텐…… 어쩌면 그 이상의 존재일지 모르는 윤수호와 비로소 진정한 의미로 한솥밥을 먹는 식구가 될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 * *

윤수호와 이선호, 조춘영이 특무대에 도착하였다.

세 사람이 향하는 곳은 대회의실. 그곳에는 이미 특무대 총대장을 비롯하여 특무대의 핵심 간부라 할 수 있는 중장들과 소장들이 전부 모여 있는 상태였다.

“야, 나 떨고 있냐…….”

“너만 그런 거 아니다. 나도 심장이 터질 것 같으니까.”

그러다 보니 대회의실에 가까워질수록 이선호와 조춘영은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을 느꼈다.

반면, 윤수호의 표정과 분위기는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두 사람은 그게 너무 신기했다.

“저희는 심장이 터질 것 같은데 형님은 되게 평온하시네요. 혹시 긴장 안 하는 비법이라도 있으십니까?”

“별로. 그냥 이런 상황이 익숙할 뿐이다.”

“아…….”

500년 동안 모르는 세상을 떠돌아다니면서 가진바 무력 때문에 무림맹이든 왕성이든 초청받아 찾아간 횟수는 셀 수조차 없었다.

윤수호는 딱히 지금이 그때의 상황들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후우…….

똑똑똑.

“대위 이선호 외 2명,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와.”

안에서 허락이 떨어지자 이선호는 앞장서서 대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안에는 길쭉하고 고풍스러운 원목 테이블을 중심으로 특무대의 핵심 인물들이 모여 자신들을 쳐다보았다.

‘×알이 쪼그라드는 기분이군.’

그들의 강렬한 시선에 이선호는 강한 긴장을 느꼈지만, 사실상 그들의 시선은 마지막에 들어온 윤수호에게 전부 집중되었다.

“앉게. 거기 빈자리가 자네 자리일세.”

총사령관이 비어 있는 한 자리를 가리키며 윤수호에게 권하자, 윤수호는 사양 않고 자연스럽게 착석했다.

‘이런 상황에 무신경한 건지, 대범한 건지……. 여튼 평범한 녀석은 아니구먼.’

기라성 같은 특무대 간부들의 집중 관심을 받으면서도 시종일관 태연한 윤수호의 모습에 총사령관은 큰 흥미를 느꼈다.

“먼저 자기소개를 하지요. 반갑습니다. 저는 특무대 총사령관 천호진 대장이라고 합니다.”

“윤수호입니다. 저 역시 이 나라의 기둥들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하하! 시작부터 저희 얼굴에 금칠을 하시는군요. 사실 저희 역시도 수호 씨의 활약을 살펴봤습니다. 101 섬멸팀의 바디캠과 흑사 길드 건물에 남아 있던 CCTV, 그리고 해성시 군인들이 촬영한 전투기록 영상까지……. 솔직히 보면서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영상 전문가에게 의뢰하니 합성도, 조작도 없다는군요.”

“가진 재주를 조금 썼을 뿐입니다. 도움이 되었다면 저 역시 만족합니다.”

천호진은 윤수호를 직시했다.

“영상만 봐도 저희는 귀하의 능력이 평범한 각성자의 범주를 넘어섰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소위 톱 텐이라 부르는 세계 최강의 열 명과 비슷할 수도 있다고요. 그런데 조사해 본 바로는 얼마 전에 우리 센터에서 이 팀장의 권유로 검사를 받으셨더군요.”

윤수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F급…… 즉, 무특성 일반인이 그만한 힘을 손에 넣었다는 뜻인데…….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그 힘, 어디서 어떻게 손에 넣은 건지 알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해서라도 꼭 부탁드립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천호진은 많은 사람이 보는 가운데 직접 윤수호에게 직각으로 허리를 숙이며 부탁했다.

그러자 좌중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떤 식으로든 이런 얘기가 나올 거라고는 예상한, 그들도 설마 이런 식으로 천호진이 윤수호에게 부탁할 거라 예상한 이는 없었기 때문이다.

“크흠!”

“저런…….”

그것은 정중함을 넘어 비굴함마저 엿보이는 태도였다. 그런 총사령관의 행동에 다소 불편함을 내비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더욱 황당한 것은 윤수호의 대답이었다.

“거절합니다.”

……!

특무대의 총사령관이라면 대통령과 독대해도 꿇릴 것이 없는 권력의 정점이었다.

그런 사람이 허리 숙여 부탁했는데 조금의 고민도 없이 일언반구로 거절하는 윤수호의 모습에 좌중이 눈을 부릅뜨며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윤수호는 시종일관 흔들림 없는 표정과 눈빛으로 자신의 의사를 내비칠 뿐이었다.

검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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