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그래서, 지금 우리가 찾아가는 사람이 누구지?”
윤수호의 질문에 보조석에 앉아 있던 이선호가 폰을 꺼내 확인했다.
운전대는 조춘영이 잡고 있는데, 윤수호가 내공으로 이들 체내의 알코올을 전부 날려 버렸기 때문이다.
“수아 씨의 고등학교 동창입니다. 최근 SNS에서 윤수아를 검색한 인물 중에 수아 씨의 나이대에 같은 지역, 같은 학교 출신을 선별하여 정보를 수집하다 보니 이 친구가 나왔다더군요. 이름이 임보름 씨인데, 혹시 형님께서도 아시는 분이십니까?”
이선호는 폰을 뒷자리에 타고 있던 윤수호에게 건네주었다.
거기에는 SNS로 생크림 케이크에 초가 꽂힌 사진을 올려두고 ‘내 친구, 윤수아. 38번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보고 싶다…….’라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
올해뿐만이 아니었다.
SNS를 시작한 이후로 매년 윤수아의 생일이 되면 항상 그녀의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임보름…… 임보름이라…….’
임보름이라는 이름을 계속 머릿속으로 되뇌자, 진흙 바닥을 헤집고 드러난 진주처럼 기억 저편에 묻어 둔 한 여자아이가 생각났다.
“그래, 기억났다. 보름이. 어릴 때부터 수아랑 친하게 지내던 단짝이 보름이다. 그러고 보니 수아가 보름이와 초등학교, 중학교에 이어서 같은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됐다고 좋아했었지.”
임보름이 올린 SNS의 해시태그에도 #절친 #옥천여고_퀸카_커플 #그리움 등등……. 자신이 아는 임보름이 맞을 것으로 추정되는 단서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야.”
“네?”
“적어도 수아한테 마음을 터놓고 지낼 친한 친구가 한 명 정도는 있었단 뜻이니까.”
“아…….”
“내가 없는 동안 아버지는 무리해서 골병이 드셨고, 어머니는 실종된 나를 찾기 위해 정신이 없으셨다고 들었다. 그렇게 되면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가족들이 수아를 챙겨 주기는 많이 힘들었겠지.”
“그럴 수도 있겠네요.”
운전하고 있던 조춘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다소 무거워진 목소리로 윤수호에게 물었다.
“혹시 그게 수아 씨의 실종과 관련이 있는 걸까요? 가출이라거나…….”
“모르겠군. 어디서 뭘 하고 있든, 부디 무사했으면 좋겠는데…….”
수술방에 들어가기 전, 윤수호는 어머니에게 동생에 관해 물었다.
그에 어머니는 윤수호가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도 사라졌다고 가슴을 치며 통곡한 적이 있었다.
“보름이는 지금 어디서 살고 있지? 혹시 계속 강릉에서 살고 있나?”
“아뇨, 강릉도 재앙종 출현 초기에 쑥대밭이 된 곳이라 지금은 사람이 거의 살지 않고 있습니다. 임보름 씨도 현재는 거처를 옮겨 경기도 해성시에 거주 중인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여기서 차로 두 시간 거리니, 가는 동안만이라도 푹 쉬십쇼. 요 이틀간 잠 한숨 못 주무시고 너무 무리하셨습니다, 형님.”
이선호는 윤수호를 진심으로 걱정했다.
그나마 자신은 그의 부모님이 수술을 받는 시간 동안은 잠시 눈을 붙였지만, 윤수호는 끝까지 부모님의 곁을 지켰기 때문이다.
“걱정 마십쇼. 아무 일 없을 겁니다. 이래 봬도 제가 원래 행운을 몰고 다니는 사나이거든요. 하하하!”
한껏 무거워진 차 내부의 분위기에 조춘영이 애써 너스레를 떨었다.
* * *
같은 시간.
재앙종의 출현을 탐지하는 특무대 탐지국에 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
“게이트 출현 감지! 게이트 출현 감지! 좌표 CK34 포인트. 오차범위 4.09%!”
“에너지 측정 완료. 5급 재앙종 이하 출현 가능성 96%입니다!”
“5급 재앙종이라고?”
탐지국 국장 오철민이 호출을 받고 관제실로 모습을 드러내자 직원들이 빠르게 보고를 시작했다.
“이 빌어먹을 괴물 새끼들! 꼭두새벽부터 부지런도 하시구먼. 그래서, 예상 포인트와 가장 가까운 인구 밀집 도시는?”
“경기도 해성시입니다. 현재 해성시의 군사력으로 5급 이하 재앙종들이 급습할 경우, 약 12분 정도 버틸 수 있을 것으로 추정 중입니다.”
“지금 당장 해성시에 비상 대피령 발령하고 대테러, 섬멸 관계없이 포인트와 가장 가까운 지역에서 활동 중인 대원들을 포인트로 급파해. 현재 상주 중인 해성시 주둔군은 주민들의 피난을 지원하도록. 자, 자! 빨리빨리 움직이자. 우리가 1초 더 빠르게 움직이면 사람 목숨 하나를 구할 수 있다는 거 알지?”
오철민의 빠른 지시와 격려로 탐지국에서 발송된 공문이 해당 부서에 시급히 전해지자, 부서들도 즉시 공문에 따라 대처하기 시작했다.
* * *
왜에엥! 왜에엥! 왜에엥!
-긴급 피난 경보입니다. 이것은 실제 상황입니다. 주민 여러분께서는 피난 유도에 따라 안전하게 대피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반복합니다. 긴급 피난 경보입니다. 이것은…….
도시 곳곳에 설치된 확성기와 해성시 거주민들의 스마트폰으로 긴급 재난 문자가 도착하기 시작하면서, 깊이 잠들었던 도시가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으아앙!”
“괜찮아, 괜찮아. 우리 아들. 엄마가 있잖아.”
해성시에 거주하고 있던 임보름도 갑작스러운 사이렌과 소란에 놀라 깬 아들을 달래며 피난 준비를 서둘렀다.
“준우는?”
“준우는 내가 챙길게. 당신은? 필요한 거 전부 챙겼어?”
“챙겼으니까 빨리 준우 데리고 나가자. 늦으면 쉘터에 못 들어갈 수도 있어. 준우 나한테 주고 당신은 이거.”
그렇게 남편이 준우를 업어 들자, 임보름은 남편이 건네준 비교적 가벼운 비상용품을 챙겨 서둘러 집을 나섰다.
삐익, 삐익!
“저희 통제에 잘 따라 주십쇼! 불응할 시에는 무력 진압도 감행할 수 있습니다!”
“모두 안전하게 대피하실 수 있습니다! 질서를 유지해 주십시오!”
거리는 이미 피난민들로 혼란스러웠고, 곳곳에서 군인들이 피난민들을 한 곳으로 유도하고 있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피난민 전용 쉘터였다. 쉘터는 비교적 거리가 가깝고, 최대 5급 재앙종을 세 시간 정도는 막을 수 있는 방어력을 가졌다. 즉, 섬멸팀이 도착할 때까지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뜻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수용 인원이었다.
“현재 쉘터의 수용 인원이 포화상태인 관계로, 주민 여러분들께서는 저희의 지시에 따라 차분히 피난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립니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우린 피난 경보가 뜨자마자 여길 찾아온 거라고!”
“저는 상관없어요! 제발 아이들만이라도 들여보내 주세요! 부탁드려요!”
쉘터의 수용 인원은 현 해성시 인구의 고작 1/4밖에 되지 않았다.
애초에 현재 해성시 자체도 주변 피난민들이 모이고 모여 인구가 과포화 상태인 만큼, 쉘터 하나로 그 많은 사람을 수용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어떡하지?”
“어떡하긴. 이럴 시간에 빨리 도망쳐야지.”
임보름 부부는 꽉 막힌 쉘터의 입구를 확인하자마자 미련 없이 아들을 데리고 군인들의 피난 유도를 따랐다.
저기서 항의해 봐야 되레 도망칠 시간만 버린다는 사실을 그간의 피난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해성시 주둔군 중 일부는 현재 완전 무장을 갖춘 채 게이트 출현 포인트에서 심각한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게 게이트…….”
게이트를 처음 보는 신병 중 하나가 입을 멍하니 벌리고 게이트를 올려다보았다.
게이트는 마치 멀쩡한 공간의 한 부분을 손으로 움켜쥐어 일그러트린 것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정신 차려, 이 새끼야! 온다!”
그 비현실적인 광경에 넋을 놓고 있는데, 선임의 일갈이 신병의 정신을 일깨웠다.
그 순간.
와장창!
일그러져 있던 공간이 터져 나가며 그 속에서 재앙종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전군 사격 개시!”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쾅! 쾅! 쾅! 쾅!
병사들의 총구가 불을 뿜고, 전차의 포구에서 천둥이 터지며 포탄이 쏘아져 날아갔다.
그렇게 쏟아진 탄환과 포탄은 자비 없이 재앙종들을 습격했다. 이 정도 화력이라면 어지간한 마을 하나 정도는 흔적도 없이 날아갔을 것이다.
“사격 중지! 사격 중지!”
솟구친 먼지구름 때문에 적들의 모습을 파악할 수 없자 사령관이 사격 중지를 명령했다.
하지만 그 명령을 따르는 병사들은 많지 않았다.
크르르르르…….
먼지구름 너머에서 느껴지는 녀석들의 거친 숨소리와 살기가 여전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병사들은 공포에 질려 미친 듯이 총알을 난사했다.
쒜에엑!
그 순간, 재앙종들이 먼지구름을 뚫고 군인들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빗발치는 총알을 맨몸으로 맞으면서도 놈들의 몸에는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총과 포탄에 맞아 죽은 건 거의 급이 낮고 약한 소형 재앙종들뿐, 대다수의 강력한 재앙종들은 포탄의 세례를 버티고 살아남았다.
두두두두두두!
“으아아아! 죽어! 이 괴물 새끼들아! 좀 뒈지……!”
퍼억!
거의 반쯤 미쳐서 총을 갈기던 병사의 머리가 재앙종이 휘두른 앞발에 걸려 수박처럼 터져나갔다.
그는 시작에 불과했다. 재앙종들은 마치 잔치를 벌이는 것처럼 병사들을 찢고, 베고, 부수며 그들의 피와 고기를 씹어 삼켰다.
“작전대로 진행한다!”
“놈들을 최대한 도시와 먼 곳으로 유인해라!”
병사들이 빠르게 차량에 탑승하자, 전차와 장갑차들이 전속력으로 도시와 반대 방향으로 도망치며 시간을 끌었다.
그들은 전사하겠지만 군인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적어도 10분…… 아니, 5분만이라도 피난 시간을 벌 수 있다면…….’
그런데…….
콰아앙!
“무슨……!”
사령관이 타고 있던 장갑차에 올라타 정면 유리로 고개를 빼꼼 들이미는 한 재앙종.
“헉!”
“사, 살려…….”
“끄아아악!”
“아아악!”
콰지직! 으득, 으드득……!
마치 호랑이와 늑대를 교묘히 합쳐 놓은 것 같은 녀석은 차에 탄 인간들을 보며 입맛을 다시더니, 그대로 장갑차를 물어뜯고 사람들을 집어삼켰다.
그 결과, 녀석과 다른 재앙종이 유인하던 군대를 전멸시키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3분에 불과했다.
그렇게 군대를 전멸시킨 녀석들의 시선은 인간의 냄새가 더욱 많은 곳을 향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바로 해성시로.
* * *
“응?”
“왜, 무슨 일 생겼어?”
이선호는 자신의 폰으로 도착한 문자를 확인하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조춘영에게 말했다.
“야, 비상 떴다. 해성시 근방에 5급 재앙종 뜰 거라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행운을 몰고 다니는 사나이 씨.”
“뭐? 그거 진짜야?”
“그럼 내가 이걸로 구라를 치겠냐? 아무래도 해성시랑 가장 가까운 GPS 좌표 순서대로 활동 중인 섬멸팀 대원들에게 비상 문자를 보낸 것 같은데……. 어떡하죠, 형님?”
“차 세워.”
윤수호의 한마디에 조춘영이 차를 세우자 그가 차에서 내렸다.
“위치만 내 폰으로 먼저 보내. 차로 가면 늦을 테니까.”
“예, 형님.”
그렇게 이선호가 재앙종의 출현 위치를 윤수호의 폰으로 보내자 위치를 확인한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갈 테니까 따라와라.”
“예, 형님. 해성시 사람들을 꼭 지켜 주십쇼. 부탁드리겠습니다.”
끄덕.
고개를 한 번 끄덕인 윤수호가 가볍게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그러자 어느새 밤하늘의 점이 되어 사라진 윤수호의 모습에 조춘영이 입을 벌리고 고개를 저었다.
“역시…….”
“지금이 감탄하고 있을 때냐? 밟아. 우리도 서두르자.”
“하기야, 똥 싸고 닦는 것까지 전부 형님께만 의지할 수는 없지. 안전벨트 꽉 매라. 지금부터 조금 거칠게 갈 테니까.”
“근데 입맛은 왜 다시는 건데?”
왠지 모를 불안함을 느낀 이선호가 안전벨트를 곽 움켜쥔 순간, 조춘영의 눈빛이 광기로 물들었다.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