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돌아왔다-9화 (9/175)

9.

“이런 씨발!”

쾅!

도진만이 차서 날려 버린 헬기의 찌그러진 문짝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가 옥상으로 떨어졌다.

나동그라진 헬기에서 구겨진 몸을 애써 빠져나온 그의 뒤로 비서와 조종사가 힘들게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시나, 도진만이. 아무리 그래도 흑사 길드의 주인이란 양반이 모양 빠지게 이건 아니지.”

“조춘영!”

안 그래도 분노가 머리끝까지 뻗친 도진만으로서는, 능글맞게 이죽거리는 조춘영 때문에 그야말로 돌아 버릴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는 분노가 폭발할 것 같은 와중에도 윤수호의 눈치를 살피며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그의 활약은 자신도 CCTV를 통해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분노를 가라앉히고 윤수호에게 제안했다.

“거래하자. 특무대에서 솔깃할 만한 정보를 하나 주지. 적어도 내 모가지와 비교해서 그리 가벼운 정보는 아닐 거다. 그 대신, 다른 놈들은 필요 없고 나만 못 본 걸로…….”

쩌엉!

그 순간, 어느새 도진만의 눈앞에 나타난 윤수호가 그의 안면을 사정없이 갈겨 버렸다.

콰앙!

포탄처럼 날아간 도진만이 옥상 바닥에 충돌했다. 당연히 바닥은 푹 꺼졌고 주변은 엉망이 됐지만, 도진만은 정신을 잃지 않았다.

그 모습에 이선호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야! 아무리 수호 씨가 봐줬다지만 그걸 맞고 버틴다고? 저 녀석 맷집도 상당한 모양이네?”

“도진만 저 녀석, 저래 봬도 A급 빌런이야. 최소 우리 쪽 팀장 세 명 이상은 붙어야 그나마 피해를 최소로 줄일 수 있을 정도라고. 게다가 떡대만큼이나 질긴 맷집도 징그러운 녀석이지.”

이선호와 조춘영은 무슨 품평 하듯 도진만에 대해서 얘기를 주고받았다. 거기에 긴장감이나 불안 따위는 눈을 씻고 찾아 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도진만도 그 사실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그가 더욱 화가 나는 건 그걸 알면서도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방금 저 녀석……. 주먹으로 날 친 게 아니야. 주먹을 휘둘러서 발생한 풍압으로 날 여기까지 날려 보낸 거지. 만약 저 주먹에 제대로 맞았다면…….’

꿀꺽.

도진만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의 이마와 등허리는 이미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은 지 오래다.

이것으로 한 가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놈은 자신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괴물이라는 사실을.

그는 자신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오는 윤수호를 보며 진심으로 공포를 느꼈다.

‘도망칠까? 반항은…… 의미 없겠지. 지금이라도 고개를 숙여야 하나? 젠장!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힌다!’

그렇게 도진만이 속으로 갈등하고 있던 사이, 어느새 윤수호가 그의 앞에 섰다.

“나는 네 주둥이만 필요한데, 넌 어때?”

“네? 그게 무슨…….”

“네 사지가 멀쩡할 필요가 있냐고.”

“아…….”

도진만은 눈물을 흘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곧이어 그는 스스로 자신의 뼈마디를 작살냈고, 남은 팔은 윤수호가 직접 거들어 주었다.

그렇게 병신이 되어 널브러진 도진만에게 윤수호가 물었다.

“구한규는 어디 있지?”

“구, 구 이사 말씀이십니까? 그러고 보니 오늘은 늦게 출근한 거라고 연락이……. 아마 조금 있으면 오지 않을까 싶은데요…….”

도진만이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하자, 때마침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던 이선호가 외쳤다.

“아무래도 도착한 것 같습니다. 근데…… 그냥 차 돌려서 도망치려는 거 같은데요? 보기보다 감이 좋은 녀석이네요.”

그 순간.

도진만의 눈앞에 있던 윤수호가 몸을 날려 옥상 아래로 뛰어내렸다.

슈우웅!

무려 50층 높이의 빌딩 옥상에서 자유 낙하한 윤수호의 몸은 정확히 도망치려던 차량의 본네트 위로 떨어졌고…….

콰아앙!

차가 폭발함과 동시에 차 안에서 황급히 몇몇 인물들이 뛰쳐나왔다.

“뭐, 뭐야, 이 미친 새끼는?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네가 구한규냐.”

“니미, 불알친구다. 뭐 해? 저 새끼 잡아!”

잠시 후.

지상에서 옥상까지 순식간에 날아와 도착한 윤수호.

그는 옥상 바닥에 구한규를 아무렇게나 내팽개쳤고, 얼굴이 엉망이 된 채 기절한 그의 사지는 기형적인 모습으로 꺾여 있었다.

“이야! 이러고도 안 뒈진 게 신기하네. 이 정도면 뭐…… 완치는 절대로 불가능하고 잘해야 병신이 최선이겠는데?”

“타인의 도움 없이는 밥 한술 제대로 뜰 수조차 없겠지. 그게 이 새끼들 팔자에 맞는 거고.”

이선호의 평가에 조춘영이 냉정하게 대답했다.

윤수호는 그 광경을 보며 덜덜 떨고 있던 비서에게서 도진만의 가방과 태블릿 PC를 넘겨받았다.

그리고 그것을 조춘영에게 넘겨 주었다.

“이건 분명 저보다 조 팀장님이 잘 써 주시리라 믿습니다.”

“에이! 조 팀장이 뭡니까, 섭섭하게. 그냥 편하게 춘영이라 불러 주십쇼, 형님. 이제 우리가 남입니까? 진짜 한 번만 더 저한테 존대하시면 저 진짜 섭섭할 겁니다, 형님.”

주먹을 부르는 조춘영의 투정에 윤수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잘 부탁한다.”

“맡겨만 주십쇼, 형님! 형님께서 차려 주신 선물들 예쁘게 포장해다가 감옥에 처넣고 평생 콩밥만 처먹일 테니까.”

“크흠! 저기…….”

그때였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이선호가 은근슬쩍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며 부탁했다.

“그럼 저도 부탁드려도 될까요? 솔직히 만난 건 제가 먼전데 이 녀석만 형님 동생 하는 건, 까놓고 말해서 배가 아프달까.”

“뭐야? 이선호 너, 지금 질투하냐?”

“질투는 무슨…… 크흠!”

두 사람의 모습에 윤수호는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호칭이야 어쨌건 누굴 먼저 만났건, 선호도 춘영이도 지금은 내게 소중한 동생들이다. 나 역시 두 사람 같은 동생이 생겨서 진심으로 기쁘고.”

“형님!”

“수호 형님!”

감격에 겨워 안기려는 두 동생을 윤수호는 미소와 함께 차분히 밀어냈다.

* * *

“어휴! 늦어서 죄송합니다. 보고서 정리하다 보니 그만.”

이선호의 적극 추천으로 함께 오게 된 그의 단골 껍데기 집.

뒤늦게 도착한 조춘영에게 이선호가 술잔을 채워 주었다.

“일단 후래자삼배부터 하시고. 그래서, 보고서는 끝내고 온 거냐?”

“미쳤냐? 당연히 도망쳐 나온 거지. 수호 형님과의 첫 술자리를 제가 어떻게 빠지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형님?”

“하여간, 새끼. 그냥 지가 술 처먹고 싶었던 거면서 핑계는.”

이선호는 피식 웃으며 친구의 술잔에 거듭 술을 따라 주었다.

조춘영은 이선호가 따라 주는 석 잔의 술을 순식간에 비우며 술병을 건네받았다.

“캬! 달다. 이제 동생이 한 잔 올리겠습니다, 형님. 잔 받으시죠.”

“그래.”

“다음은 제 잔도 받아 주십쇼, 형님!”

“그래.”

윤수호는 조춘영이 따라 주는 술잔을 깔끔히 비우고, 이어서 이선호가 따라 주는 술잔도 깔끔히 비웠다.

“잔 받아라.”

“옙!”

윤수호는 술병을 들어 비어 있는 두 사람의 술잔을 채워 주었다.

고작 술잔을 주고받는 것일 뿐인데, 세 사람 사이에서 벌써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끈끈한 인연의 실이 엿보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진짜 오늘 저는 종일 꿈꾸는 것 같았습니다. 아침에 이 녀석한테 끌려 나올 때만 해도 이게 무슨 미친 짓인가 싶었는데……. 세상에 하루도 안 돼서 흑사 길드를 괴멸시키다니……. 그것도 우리 셋이서요. 이게 말이 됩니까?”

“우리 셋은 무슨……. 형님 혼자 다 하신 거지.”

“에헤이! 거참, 또 눈치 없이 섭섭한 소리 하긴. 그러니까 인마, 너한테 친구가 나밖에 없는 거야. 이 눈치 없는 자식아.”

“뒈질래? 내가 왜 친구가 너밖에 없어? 나 친구 많아!”

“그렇다 치고. 그런데 형님은 대체 어디서 훈련하셨기에 그렇게 터무니없이 강하신 겁니까? 조~금만, 진짜 조~~금만 가르쳐 주심 안 됩니까?”

발끈하는 이선호를 무시하며 조춘영이 윤수호에게 궁금했던 점을 묻자, 살짝 취해 있던 이선호의 취기가 단숨에 가셨다.

“야.”

“어, 어? 아, 그래. 죄송합니다, 형님. 제가 괜한 소릴…….”

눈치 빠른 조춘영은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고개를 젓는 이선호의 모습에 질문을 취소하고 윤수호에게 고개를 저었다.

이선호 나름의 배려였을 것이다. 그는 자기가 윤수호의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윤수호도 그 부분에 관해서는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을 동생처럼 여기기로 했다면 이 정도는 제대로 얘기해 주는 게 도리겠지.’

“아니다. 궁금하다면 얘기해 줘도 상관은 없다. 다만 남들이 듣기에 재미없는 얘기라 그렇지. 그래도 상관없다면 들어 볼래?”

“…….”

“어디서부터 얘기를 시작해야 할까.”

두 사람은 이미 말없이 윤수호에게 집중하고 있었고, 윤수호는 자신의 얘기를 담담히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검은 회오리에 휩쓸려 조선으로 떨어진 일,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다 환인의 무공이라 부르는 천부공을 만난 기연.

그렇게 더는 생존을 걱정할 일이 없어지자, 그때부터 가족에게 돌아오는 방법을 찾기 위해 500년 이상 조선 팔도는 물론이고 무림을 비롯한 전 세계를 떠돌았던 일까지…….

“천부공…… 무림…… 500년……. 그럼 실례지만 형님의 지금 나이…… 아니, 연세가?”

“정확히는 나도 잘 모르겠군. 사실 오백 살 이후로는 귀찮아서 세는 걸 그만뒀거든.”

“세상에…….”

이선호는 윤수호의 얘기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니, 누구라도 이런 얘기를 듣고 단번에 수긍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 저를 만났을 때도 모호하게 말씀하신 거로군요. 어차피 사실대로 얘기해 봤자 믿기 힘든 얘기일 테니까.”

“그래서, 지금은 믿을 수 있어?”

“사실 아직도 조금 힘들지만, 적어도 형님이 그런 걸로 거짓말을 지어내실 분이 아니라는 건 믿습니다. 게다가 형님께서 손에 넣으신 능력의 단편들도 저희 둘의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고요. 사실 형님 같은 강자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거나, 땅에서 불쑥 솟아오를 리는 없을 테니까요.”

“그런가.”

윤수호는 이선호의 대답에 수긍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은 사실을 설명했으니 받아들이는 건 이들의 몫이라는 태도다.

“하지만 이 사실은 당분간 저희끼리의 비밀로 간직하는 게 좋겠습니다. 거짓이 아니라고 해도 타인이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얘기인 것 역시 사실이니까요. 오히려 쓸데없는 의심과 불안만 심어 줄 수도 있겠죠.”

“그건 저도 선호 말에 찬성합니다, 형님. 때론 감춰진 진실보다 눈앞의 사실이 더 중요할 때가 있는 법이잖아요.”

윤수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는 그 역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강한 힘에 관심과 욕심을 가지지만, 도를 넘은 힘에 대해서는 역으로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는 법이지. 이들처럼 예외도 분명 존재하긴 하지만.’

그렇게 무거운 얘기가 끝나자 조춘영은 아까부터 궁금했던 질문들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떻게 오백 살이 넘게 사실 수 있으신 겁니까, 형님? 그리고 그 얼굴은요? 제가 보기엔 아무리 많아 봤자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데.”

“천부공의 심법 중에 수명을 늘리는 심법이 있다. 대성하면 불로불사한다고 하지만, 난 아직 그 경지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럴 생각도 없고. 내 얼굴이 동안인 건 몇 번이나 반로환동과 환골탈태를 경험하다 보니 결국 이 모습으로 굳어지더군.”

“불로장생에 반로환동에 환골탈태까지…… 무슨 무협지도 아니고…… 형님! 진짜 과거에는 그런 게 실존했던 겁니까?”

“글쎄, 내가 보기에 그쪽 세상이 이쪽 세상의 과거처럼 보이진 않았다. 나도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그런 능력들이 실재했다면 현세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남기지 않았을까?”

“그렇군요. 확실히 그렇겠네요.”

윤수호의 대답에 조춘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자, 윤수호의 시선이 이번엔 이선호에게 향했다.

그는 많은 걱정이 담긴 시선으로 이선호에게 물었다.

“그런데 혹시 수아에 대한 소식은 아직인가?”

“예, 아버님과 어머님 같은 경우는 복지 센터에 주거 기록이 남아 있어서 비교적 쉽게 찾아낼 수 있었지만, 수아 씨는 실종된 이후 흔적이 전혀 남지 않아서 추적이 힘든 것 같습니다. 게다가 사적인 부탁이다 보니 정보부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정보력도 한계가 있고요. 하지만 걱정 마십쇼. 박 소위라면 금방…….”

그때였다, 이선호의 벨 소리가 울린 것은.

“호랑이도 제 말 하니까 오네요.”

액정에 뜬 박여진의 이름을 두 사람에게 보여 준 이선호는 윤수호가 허락하자 그 자리에서 전화를 받았다.

“어, 나야. 어, 그래. 자료 나한테 바로 넘겨 주고. 이 늦은 시간까지 고생했어, 박 소위. 나중에 밥이랑 술 꼭 살게. 그리고 새로운 정보 들어오는 거 있으면 바로 알려 주고. 그래.”

전화를 끊은 이선호가 다급하게 얘기했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수아 씨의 행방에 대한 흔적을 찾은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윤수호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소는?”

“에이, 형님! 섭섭하게 왜 이러십니까? 형님 여동생이면 우리 여동생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당연히 우리도 같이 만사 제쳐 두고 찾으러 가야죠.”

“춘영이 말이 맞습니다. 저희도 돕게 해 주십쇼. 부탁드립니다.”

진심으로 부탁하는 두 동생의 모습에 윤수호는 살짝 미소를 그리며 수락했다.

“그래, 고맙다.”

그렇게 세 사람은 윤수아의 흔적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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