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돌아왔다-8화 (8/175)

8.

반병신이 되어 나뒹구는 길드원들을 뒤로한 채, 윤수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흑사 길드의 본거지로 향했다.

“일단 정리는 나중에 하고 가자.”

“그래야겠지.”

쓰러진 길드원들을 보고 조춘영은 고개를 저었다.

쓰러진 길드원들이 한두 명이 아니라서, 자신이 남아 수갑을 채우는 것만 해도 한세월이 걸릴 듯하다. 애초에 그렇게 많은 수갑을 가지고 다니지도 않았고.

그렇게 윤수호를 따라 로비에 들어선 순간.

“환영 인사가 꽤나 융숭한데?”

“그러게. 누가 보면 대통령이라도 행차한 줄 알겠네.”

본래 이럴 용도로 사용하려던 것인지, 아니면 마침맞게 이런 용도로 사용될 수도 있었던 것인지…….

장식이나 가구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넓디넓은 로비에는 벌써 소란을 듣고 모여든 흑사 길드의 정예 길드원들이 보였다.

그중 무리의 리더로 보이는 금발로 염색한 사내가 앞으로 나서며 조춘영을 아는 체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조 팀장님.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너 같은 새끼들이 나라를 좀먹고 다니는데 안녕하겠냐, 김영순이, 이 개새끼야? 잔말 말고, 도진만이 어디 있어? 위에 있냐?”

“저희 회장님을 만나러 오신 분들치고는 아주 조금 구성에 성의가 없으신 것 같네요. 뭐, 예절을 개밥에 처 말아 드신 거야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김영순은 적들을 살펴보며 피식 실소를 터트렸다.

아무리 실력에 자신 있다 한들 고작 세 명.

‘한 명은 조춘영, 다른 두 명은 누구지? 우리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걸로 봐서는 설마 섬멸팀 팀장들인가?’

팀장급 세 명이면 대단한 전력인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런 만용을 부려도 될 수준은 아니었다.

“나랏밥 먹고 다니신다는 분들께서 너무 없이 다니시는 것 아닙니까? 다음에 제대로 성의를 갖춰서 다시 오시죠. 오늘 소란은 특별히 조 팀장님의 얼굴을 봐서 조용히 눈감아 드리겠습니다.”

“니미, 지랄 쌈 싸 먹는 소리 하네. 이빨까지 말고 콩밥 쳐드실 준비나 하시죠, 선생님들. 오늘 흑사 길드 확 다 잡아 처넣어 버리려니까.”

“뭐, 조 팀장님의 대책 없는 패기는 저도 좋아하는데, 허세를 부릴 거면 좀 앞에 나와서 하시죠? 다른 사람 뒤에 숨어서 그게 뭡니까? 명색이 대태러팀 팀장이라는 분이 모양 빠지게.”

김영순은 마치 아빠 코알라 등에 꼭 붙어 있는 아기 코알라처럼 윤수호의 뒤에 꼭꼭 숨어서 머리만 빼꼼 내놓고 소리치는 조춘영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조 팀장님.”

“예, 형님! 말씀하십쇼!”

“조금만 떨어져 주실래요? 움직이기 불편해서.”

“아, 넵!”

조춘영이 후다닥 떨어져 거리를 벌리자, 윤수호가 앞으로 나서며 김영순에게 물었다.

“여기 전력은 이걸로 전부인가?”

“뭐, 우리 애들이 전국 각지에 흩어져 열심히 일하는 상황이라 전력이라고 하기는 어려운데, 당신들 관짝 짜서 눕혀 줄 정도는 될걸. 그런데 어디 소속의 누구신지?”

“그럼 더 이상 기다려 줄 필요는 없겠군.”

자신의 질문을 상대가 무시하며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오자, 김영순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하아, 지금 저 새끼들이랑 문제 만들기는 좀 껄끄러운데, 하는 수 없지. 뭐 하냐? 손님 천국 가신다는데 배웅해 드려야지.”

그 순간, 길드원들의 몸에서 미지의 기운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기운은 순식간에 그들의 몸을 휘감아 돌더니 신체 능력을 강화하고 오감을 발달시켰다.

“들어가자!”

파파파팟!

김영순의 명령을 받고 몸을 날리기 시작한 녀석들의 움직임은 장도리파에서 만났던 깡패들과 차원이 달랐으며, 밖에서 근무를 서고 있던 길드원들과도 수준이 달랐다.

정말로 일반인들 수준으로는 눈으로 좇기조차 힘든……. 로비에 모인 백여 명에 달하는 길드원들이 모두 그 정도 레벨의 능력자인 것이다.

그들 모두가 일제히 윤수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자신들의 승리에 대해서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은 채.

그리고…….

콰아아아앙!

윤수호의 손끝에서 재앙이 시작되었다.

“크아아악!”

“끄어억!”

“으아아아아!”

윤수호가 가볍게 주먹을 내질렀다.

그 주먹에 직접 당한 사람은 없었다. 주먹에서 터져 나온 폭풍 같은 권풍만으로 이미 십수 명의 사람들이 휩쓸려 나가 바닥에 널브러졌기 때문이다.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였다.

윤수호의 주먹은 그들조차 눈으로 인식할 수 없었다. 아니, 사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자신들이 뼈가 박살 나는지, 왜 살과 근육이 터지며 날아가는지 이해조차 할 수 없었다.

그들의 눈에는 그저 윤수호가 담담히 걸음을 옮기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었다.

“뭐, 뭐야, 이 괴물은?”

“접근조차 불가능하다고?”

불과 몇 초 만에 백여 명의 동료 중 수십 명이 병신이 되어 날아가자, 남은 길드원들의 시선에 공포와 경악이 섞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타깃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일단은 대책 없는 괴물보다 적어도 해볼 만한 팀장들을 인질로 붙잡자고.

물론 팀장도 만만한 전력은 아니지만, 그들은 개인이니 자신들이 숫자로 밀어붙인다면 적어도 윤수호보다는 해볼 만하다 믿었던 것이다.

“야, 인마! 정신 차려! 온다!”

“아…….”

멍하니 윤수호를 쳐다보던 조춘영은 김선호의 외침에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의 신위에 침을 흘리며 경악하던 건 비단 적들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선호, 이 자식. 근거 없는 자신감에 이유가 있었구먼. 그런데 대체 이 자식은 어디서 저런 말도 안 되는 사람을 알게 된 거지?’

그사이, 타깃을 바꾼 길드원들이 윤수호를 빠르게 지나쳐 이선호와 조춘영에게 달려들었다.

조춘영은 달려드는 놈들을 노려보다 단전 깊은 곳에 쌓여 있는 마나를 빠르게 끌어 올리며 호랑이처럼 외쳤다.

“이 미친 돌아이들을 봤나? 야, 이 새끼들아. 우리가 졸로 보이냐? 대태러팀 팀장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주 제대로 가르쳐…….”

촤아악! 촤악!

내뱉은 호령이 무색할 정도로 달려들던 길드원들이 쓰러져 통곡하기 시작했다.

그들 모두 원인불명의 이유로 갑자기 팔과 다리가 한 짝, 혹은 두 짝씩 잘려 나갔던 것이다.

“이, 이게 갑자기 뭔…….”

“지금 여기서 우리가 모르는 일이 생기면 그게 누구 짓이겠냐?”

“아…….”

조춘영은 이선호의 설명에 감탄하며 윤수호를 쳐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검지와 중지가 곧게 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런 미친……. 저기서 여기까지 최소 50m는 넘을 텐데, 도대체 저 기술의 커버 범위가 어느 정도란 거야?’

보이지도 않고, 소리도 없다. 그저 정신을 차리고 보면 사지가 잘려 나갈 뿐이다.

순간, 조춘영은 같은 편임에도 자신의 목이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면서 지금 윤수호의 등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일인지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내가 저분의 등을 보고 있으니 망정이지, 정면에 서서 얼굴을 마주 보고 있을 거라 생각하면……. 어후!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

“지금 저 녀석이 그걸 그대로 느끼고 있겠지.”

이선호는 팔짱까지 끼며 관전자의 자세로 여유롭게 김영순을 가리켰다.

그의 말대로였다.

“이, 이게 대체…….”

김영순은 윤수호가 한 걸음 접근할 때마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눈동자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고, 이미 옷은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은 상태였다.

“방금의 여유는 다 어디로 갔지?”

윤수호의 나직한 이죽거림에 김영순은 이를 악다물면서도 속으로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 순간!

쒜엑! 쒜엑!

윤수호의 양옆으로 공간을 뛰어넘을 기세로 순식간에 달려드는 두 그림자. 너무 신속했던 나머지 소리도, 모습도 확인할 수 없었다.

‘됐다!’

김영순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두 사람은 흑사 길드에서 비밀리에 키우고 있는 살수들이었다. 길드에서 사업에 방해가 되는 장애물을 제거하고자 거금을 들여 육성한 살인 병기인 것이다.

녀석들이 작심하면 길드장이라 해도 무사할 수 없다. 지금 그런 녀석들의 암습이 완벽하게 성공…….

휘리릭.

“……!”

김영순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윤수호가 양쪽으로 손을 스윽 훑는 순간, 두 살수가 멈칫하더니 무형의 기세가 그들을 휘감은 것이다.

콰드드드드드득!

이어진 것은 뼈와 관절이 부서지고 근육이 뒤틀리는 끔찍한 소성, 그리고 바닥에 기형적인 모습으로 처참히 널브러진 살수들의 몰골이었다.

“자, 잠깐만요! 우리 대화를 좀…….”

콱!

“……!”

어느새 접근한 윤수호가 그의 얼굴을 그러쥐더니 위로 가볍게 들어 올리며 물었다.

“여기 책임자, 위에 있지?”

끄덕끄덕!

김영순이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이선호가 뜻밖이라는 듯이 말했다.

“와! 그래도 조금은 의리를 지킬 줄 알았더니 너무 쉽게 부네. 뭐, 수호 씨를 눈앞에 두고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지만.”

“너, 길드가 무슨 옛날 홍콩 느와르 영화처럼 끈끈한 정과 의리, 뭐, 이딴 걸로 묶여 있는 거라고 착각하는 거 아니지? 저 새끼들은 그냥 쓰레기야. 힘으로 약자들을 괴롭히고, 범죄를 이용해서 돈을 버는 것밖에 대가리에 없는 새끼들이라고. 그런 놈들한테 정이나 의리? 웃기는 소리지.”

한편, 순순히 대답하면 곱게 보내 줄 거라 생각했던 김영순의 판단은 큰 오산이었다.

“크아아악!”

윤수호는 김영순의 두 다리를 부러트리고는, 그의 머리채를 잡아 길드장이 있는 최상층까지 끌고 갔다.

가는 동안 김영순의 비명은 그치지 않았다. 머리가 뽑히고 두피가 벗겨져 피가 흘러내렸지만, 윤수호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길드장실로 가는 동안에도 숨어 있던 길드원들이 끊임없이 기습을 감행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들 모두 사지가 박살 나거나 잘려 나간 모습으로 바닥에 널브러졌을 뿐이니까.

윤수호 일행이 지나간 길은 쓰러져 울부짖는 처참한 몰골의 길드원들로 복도가 가득했다.

그렇게 길드장실에 도착했지만, 정작 방의 주인은 그림자도 찾을 수가 없었다.

“설마 벌써 눈치채고 도망친 건가?”

“그러네. 여기 CCTV를 보고 중요한 것만 챙겨서 바로 도망친 모양인데?”

조춘영이 길드장실 벽면에 크게 걸린 스크린에서 실시간으로 송출되고 있는 회사 내 CCTV 영상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윤수호는 데리고 온 김영순의 머리를 집어 올리며 나직이 물었다.

“녀석은 어디로 갔지?”

“끄아악! 옥상! 옥상으로 갔을 겁니다! 거기에 길드장만 사용할 수 있는 비상 헬기가 항상 대기 중이니까요!”

쿵.

윤수호는 기절한 김영순을 그곳에 버려두고 빠르게 옥상으로 달려 올라갔다. 사실상 이선호와 조춘영이 눈치를 챘을 땐, 그의 모습은 거기 없었다.

“옥상으로 올라가셨겠지?”

“우리도 가자.”

뒤늦게 두 사람이 윤수호를 쫓아 옥상으로 달려가는 동안, 이미 옥상에 도착한 윤수호는 날아가는 헬기를 발견한 상황이었다.

옥상과의 거리는 대략 200m 이상 차이가 났으며 더 이상은 방법이 없어 보였다.

이렇게 허무하게 도진만을 놓치는 것일까?

하지만 그의 눈에는 티끌만큼의 걱정도, 분노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귀찮게 하는군.”

윤수호는 자주 그랬듯 검지와 중지를 펴서 붙인 후에 날아가는 헬기를 향해서 손가락을 다소 강하게 휘둘렀다.

서걱!

그러자 무색의 검기가 초승달 모양으로 빠르게 공간을 베어 가르더니, 순식간에 헬기의 프로펠러와 본체의 접합부를 베어 버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당연히 프로펠러를 잃은 헬기는 추락하기 시작했고, 그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 역시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팟!

윤수호가 허공을 향해 몸을 날렸다. 단순한 점프가 아니었다.

순식간에 200m를 도약한 그는 헬기를 받쳐 들더니, 허공을 박차고 다시 헬기와 함께 옥상으로 돌아왔다.

이선호와 조춘영이 도착한 것도 딱 그때 즈음이었다. 윤수호가 헬기를 향해 몸을 날린 그 순간 말이다.

“이게 무슨…….”

“야, 선호야. 나, 볼 좀 꼬집어 봐라. 이거 꿈 맞지? 그치?”

옥상에 도착한 윤수호는 헬기를 아무렇게나 바닥에 던져 버렸고, 시종일관 별것 아니라는 듯 그의 무심한 모습에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검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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