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돌아왔다-7화 (7/175)

7.

“HK? 이게 누굽니까?”

뒷자리에서 장부를 확인하던 윤수호는 배덕철이 상납금을 상납한 상대가 HK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조춘영에게 물었다.

“HK는 흑사 길드의 간부, 구한규의 이니셜입니다. 그리고 흑사 길드가 길드의 검은돈을 세탁하기 위해 세운 페이퍼 컴퍼니 사장의 이름, 힐러리 키슨의 약칭이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정리하면 HK라는 닉네임과 구한규, 그리고 힐러리 키슨 모두가 동일 인물이라 이건가요?”

“예, 배덕철은 구한규의 페이퍼 컴퍼니로 상납금을 보내 돈을 세탁했을 겁니다. 그리고 세탁해서 깨끗해진 돈은 그 즉시 흑사 길드로 들어갔을 거고요.”

꽤나 빠삭한 조춘영의 정보에 운전하고 있던 이선호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물었다.

“그 정도로 정보를 쥐고 있는데도 그냥 두고만 본 거냐? 요새 대태러팀 너무 빠진 거 아니야?”

“뒈지실래요, 동기님? 누군 인력이 부족해서 있는 휴가, 없는 휴가 전부 반납하고 똥줄 빠지게 일하고 있는데 뭐가 빠져? 누군 뭐 흑사 길드가 예뻐서 봐주고 있는 줄 아냐?”

말을 마친 조춘영은 뒷좌석으로 고개를 돌려 당부했다.

“형님도 조심하십시오. 형님이 평범한 분이 아니신 건 저도 알았지만, 흑사 길드도 절대로 만만한 놈들이 아닙니다. 저희가 정보와 증거를 최대한 많이 수집했음에도 놈들을 치지 못하는 건 그만큼 섣불리 건드릴 상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건 춘영이 말이 맞습니다, 수호 씨. 저도 섬멸팀에 있지만, 흑사 길드라는 이름은 꽤 자주 들었을 정도로 악명 높은 녀석들입니다. 일단 장도리파의 배후가 흑사 길드의 구한규란 사실을 알았으니, 그 아래부터 차근차근 정리하면서 놈들을 압박하는 게…….”

“흑사 길드의 본거지로 가죠.”

“네? 지금 무슨 말씀을…….”

“역시…….”

고저 없는 윤수호의 나직한 요구에 조춘영은 경악을 금치 못했지만, 이선호는 조금 놀람이 덜했다.

그에 윤수호는 여전히 높낮이가 느껴지지 않는 편안한 말투로 이유를 얘기했다.

“배덕철이 구한규에게 돈을 바쳤다면 구한규가 몸담은 흑사 길드에도 제 부모님의 피와 눈물이 묻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굳이 구한규라는 자와 흑사 길드를 따로 취급할 필요는 없겠죠.”

“설마…… 우리 셋이서 지금 흑사 길드에 전쟁을 하러 가자는 말씀이십니까?”

“셋이 아닙니다.”

윤수호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저 혼자면 충분합니다.”

윤수호의 대답에 어벙해진 얼굴로 앞을 바라보던 조춘영이 발악하듯 소리쳤다.

“이건 미친 짓입니다! 야, 이선호! 너, 지금 내비에 뭐 찍고 있냐? 너 미쳤어?”

“나야 뭐, 수호 씨가 자리 잡고 안정될 때까지 돕기로 약속했으니까. 수호 씨가 살인하지 않겠다고 한 나와의 약속을 지켜 주셨는데, 나도 끝까지 약속을 지켜야지. 안 그러냐?”

“두 사람 다 미쳐도 아주 단단히 미쳤구먼! 아, 진짜 난 몰라요! 도와 달라고 사정사정해도 진짜 가만히 있을 겁니다!”

조춘영은 팔짱을 끼며 절레절레 고개를 젓더니 엄포를 놓았다. 그에 이선호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러라고 너 데려온 거야. 대신 대태러팀 고유 권한 있지?”

“뭐? 선 수사 후 영장, 그거?”

대태러팀은 초인적인 범죄자, 빌런들이 상대인 특성상 경우에 따라서는 도시, 혹은 국가 단위의 범죄 사건을 마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때문에 상부에 수색영장을 신청하고 영장을 받아 수사를 시작했다간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많이 발생할 수 있었다.

이 뼈아픈 경험을 토대로 정부는 고심 끝에 대태러팀에 선 수사 후 영장의 파격적인 권한을 허락한 것이다.

“그래, 그거. 괜히 잘못 털었다가는 쪽박 찰 수도 있지만, 흑사 길드는 확실한 범죄 조직이잖아. 안 그래? 당연히 잘되면 네 실적도 엄청 쌓일 거고.”

“그거야 잘됐을 경우의 얘기지. 아, 몰라. 두 사람 하고 싶은 대로 하쇼. 대신 잘못되면 난 이 자리에 없었던 겁니다.”

조춘영은 끝까지 못마땅했지만, 이선호는 그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 역시 수호 씨의 그런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지금 당장 핸들을 틀었겠지.’

지금도 눈을 감으면 윤수호가 6급 재앙종을 손가락으로 가지고 놀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이 충격적인 장면은 아마 자신이 늙어 치매가 걸린다 해도 잊히지 않겠지.

‘이번 기회에 재앙종이 아니라 수호 씨의 대인 전투 능력 또한 살펴볼 수 있겠어.’

재앙종뿐만 아니라 대인 전투 능력 또한 뛰어나다면, 특무대에 입대해서도 섬멸팀과 대태러팀이라는 선택지가 늘어나게 된다.

물론 이선호는 내심 그가 섬멸팀으로 와주길 바라지만, 섬멸팀이건 대태러팀이건 구분 없이 그저 그가 같은 특무대 식구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했다.

* * *

“진짜 왔네…….”

조춘영은 서울 도심에 자리한 흑사 길드 본거지를 두고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흑사 길드를 이렇게 셋이서 찾아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단순한 조사나 방문이 아닌, 체포를 목적으로 말이다.

“지금이라도 지원 병력을 지원해야 하나…….”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고민에 빠졌다.

각성자들의 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번에도 언급했지만, 조금만 단련하면 어지간한 총알은 맨몸으로 튕겨 내는 괴물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래서 현재의 경찰, 군대가 가지고 있는 공권력의 상징인 현대 병기들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그 이상의 화력 병기는 각성자에게 피해를 줄 수 있지만, 주변 일대에도 큰 피해를 입히기 때문에 민간인 피해자가 다수 발생할 수 있었다.

따라서 빌런들을 상대하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은 같은 각성자가 체포하는 것, 즉, 대태러팀이 출동해 해결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재앙종처럼 빌런들의 숫자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만 갔다.

때문에 지금의 대태러팀은 만년 인원 부족에 시달려 모든 대원이 초과근무를 밥 먹듯이 하는 상황이었다.

‘지금 당장 급하게 지원 병력을 호출한다고 해도 욕만 뒈지게 처먹겠지?’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결국 조춘영은 결심을 굳히는 수밖에 없었다.

“에이, 씨발! 남자가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 까짓것, 갑시다!”

끝까지 보조석에 앉아 있던 조춘영이 차에서 내리자, 먼저 내렸던 이선호가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뭐야. 차 안에서 기다리는 거 아니었어?”

“이거 왜 이래? 나, 조춘영이야. 대태러팀 G팀 팀장. 조춘영! 빌런이 무서워서 대태러팀 팀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차 안에 숨어 있을쏘냐!”

“뭐냐? 처음으로 네가 내 동기라는 게 살짝 자랑스러워졌다. 난 또 네가 거북이처럼 숨어 있다가 일 다 끝난 다음에 나오기 뻘쭘해질 것 같아서 기어 나온 줄 알았지.”

“하여간 새끼가 말이나 못 하면…….”

그렇게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을 돌아보며 윤수호는 미소를 그렸다.

“두 분은 참 좋은 동료시군요.”

“응? 왜 두 분입니까? 세 분이지.”

조춘영은 씨익 웃으며 윤수호를 향해 주먹을 내밀었다.

“목숨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면 그게 동료 아니고 뭐겠습니까, 형님! 안 그렇습니까?”

피식…….

“그렇군요.”

툭.

윤수호가 조춘영의 주먹에 자신의 주먹을 붙이자, 조춘영이 이선호를 쳐다보며 외쳤다.

“넌 뭘 멀뚱멀뚱 보고만 있어?”

“나도?”

“그럼 넌 빠질래? 그래도 상관없고.”

“누가 빠진대?”

툭.

“자, 지금부터 우리는 운명 공동체입니다. 살아도 같이 죽고, 죽어도 같이 죽는……. 그러니까 위험해지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튑시다.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동료를 위해서. 알았죠?”

“그럴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보죠.”

“알았다. 알았어. 하여간 대태러팀 팀장이라는 게 겁은 많아 가지고…….”

그렇게 결의를 다진 세 사람은 흑사 길드의 본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 * *

금사 그룹.

흑사 길드의 표면적 얼굴이자 흑사 길드의 치부나 범죄를 가려 주는 위장막의 이름이었다.

그 금사 그룹의 간판이 떡하니 걸린 건물은 초고층 빌딩이었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한 회사 같아 보였다.

하지만 조금만 살펴보면 이곳이 결코 평범한 회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우리가 주시하고 있을 때는 평범한 회사인 척 위장이라도 하던 놈들이, 잠시 눈 좀 돌렸다고 아주 기고만장해져서는…….”

한눈에 보기에도 살벌한 기세를 감추지 않고 출입구를 철통같이 경계하고 있는 길드원들의 모습에 조춘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사실 저 모습을 보고 경찰에 신고할 간 큰 일반인도 없을뿐더러, 설령 신고한다고 해서 경찰들이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와서 스윽 훑어보기라도 하면 다행이지.

“그런데 작전은 뭡니까? 적어도 무슨 작전인지는 알아야…….”

뚜벅뚜벅…….

조춘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문으로 당당히 걸어 들어가는 윤수호의 모습을 보고, 조춘영은 눈을 부릅뜨며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이선호가 그의 어깨를 툭툭 다독이며 말했다.

“지금 말씀해 주셨네. 정면 돌파.”

작전을 얘기한 이선호가 윤수호를 따라가자 조춘영이 죽상을 하고선 그들을 따라 뛰었다.

“에이 씨……! 같이 가요!”

금사 그룹 정문.

이곳은 문이 닫히면 장갑차가 전속력으로 달려와 부딪쳐도 꿈쩍하지 않을 정도로 튼튼하다.

게다가 여러 가지 보안 장치가 설치되어 있어, 당연히 회사에서 허락하지 않으면 누구도 이 정문을 넘을 수 없었다.

-금사 그룹입니다. 무슨 용무로 찾아오셨습니까.

윤수호 일행이 문 앞에 서자 스피커를 통해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친절하게 용건을 물었다.

“쓰레기 청소.”

-네? 청소하시는 분은 방금…….

쩌엉!

콰아아앙!

윤수호가 가볍게 주먹을 내질렀다. 단지 그것뿐이었는데 장갑차도 거뜬하게 막아내는 두꺼운 철문이 종잇장처럼 잘게 찢겨 안쪽으로 터져나갔다.

“우와! 우리 형님, 진짜 노 빠꾸시네…….”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조춘영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떤 새끼들이야?”

“다들 정문으로 집합!”

철문이 박살 나며 굉음이 들려오자, 주변에서 순찰을 돌고 있던 길드원들이 침입자를 발견하고 소리쳐 동료들을 끌어모았다.

그러자 순식간에 수많은 길드원이 모여 일행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들 중에는 터진 철문의 파편에 당해서 부상을 입은 사람들도 있었다.

동료가 부상을 당한 탓인지 그들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적의와 살기는 한층 더 거셌다. 그들의 적의와 살기를 느낀 조춘영이 식은땀을 흘리며 마른침을 삼켰다.

‘확실히 장도리파 그 떨거지들과는 비교가 안 된다. 이놈들 모두 각성자. 게다가 어느 정도 훈련도 받은 놈들이야.’

최근 길드의 조직화는 상당히 체계적인 편이었다. 심지어 영입한 길드원들을 대상으로 특수 훈련까지 진행하는 곳도 있을 정도니까.

이들은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일반적인 각성자들 중에서는 강한 편에 속하는 게 확실했다.

“역시 아무래도 우리만으론 힘들 것 같은데. 선호야, 잘 들어. 내가 기회를 만들게. 그사이에 넌 형님이라도 모시고 얼른 도망쳐. 알았지?”

조춘영이 곁에 있던 이선호에게 은밀히 윤수호를 데리고 탈출하라 지시를 내리던 순간이었다.

슉.

‘뭐야? 형님이 사라졌…….’

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

윤수호의 모습이 사라지자마자 사방팔방에서 들리는 파육음에 조춘영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엥? 도대체 형님이 몇 명이야?’

가끔 윤수호의 모습이 보이긴 했지만, 그것도 찰나의 순간이었다. 아니, 움직임이 너무 빨라서 그의 잔상이 열 명, 스무 명으로 한없이 늘어나는 게 아닌가?

“크아아악!”

“커헉!”

“끄아아아아!”

길드원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사지가 부러져 나풀거릴 뿐이었다. 고통에 찬 그들의 비명이 정문 앞을 크게 울렸다.

아직도 조춘영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그의 어깨를 톡톡 두드린 이선호가 능글맞게 웃으며 물었다.

“미안, 제대로 못 들었는데, 방금 뭐라고 했지?”

“……뭐가? 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조춘영은 삐질삐질 진땀을 흘리며 능글맞은 이선호의 얼굴을 애써 외면해야만 했다.

검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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